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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22.구리 고구려대장간마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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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22.구리 고구려대장간마을 박물관

아차산 자락에 잠들었던 고구려가 깨어났다
실내전시관 1층, 한강 건넌 후 76년간 기록 한눈에
당시 토기 파편 직접 손으로 만지며 고구려혼 느껴
2층엔 아차산 4보루 모형물·보루군 등 생생한 전시
야외전시장, 삼족오 대문 들어서면 타임머신 세상

7m에 달하는 물레방아가있는 마을 중심에 위치한 대장간의 모습.
7m에 달하는 물레방아가있는 마을 중심에 위치한 대장간의 모습.

고구려대장간마을 박물관은 구리시 아천동 우미내길 41번지 아차산 자락에 자리한다. 고구려대장간마을 박물관은 고구려 유적을 전시하는 전국 유일의 고구려 전문 공립박물관이다. 아차산은 시민들이 언제든지 오를 수 있는 야트막한 동네 야산이었다. 수도권 시민들의 휴식처로만 알고 있던 그 아차산에 고구려 유물이 묻혀 있는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구리시에서 중국 동북공정이 한창이던 1994년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아차산 일대에 대한 학술조사를 추진해 1997년부터 고구려 유적을 발굴하기 시작한다. 아차산 제4보루(堡壘)를 필두로 봉우리마다 구축된 20여개의 보루에서 약 3천여점의 토기와 철제 유물들이 출토됐다. 1천500여년 동안 묻혀 있던 고구려가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이에 따라 아차산 일대 보루군(群)은 2004년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455호)로 지정됐다.

2008년 아차산 자락에서 개장한 ‘구리 고구려대장간마을’은 2009년 4월 공립박물관으로 등록하고 아차산에서 출토된 고구려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구리 고구려대장간마을 전경.
2008년 아차산 자락에서 개장한 ‘구리 고구려대장간마을’은 2009년 4월 공립박물관으로 등록하고 아차산에서 출토된 고구려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구리 고구려대장간마을 전경.

한강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각축을 벌였던 삼국시대의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삼국은 국가 이익의 사활이 걸린 한강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충돌했다. 한강은 해양력을 확보할 수 있는 해상교통로였다. 그 한강과 한강으로 흐르는 왕숙천과 중랑천의 상황을 두루 경계하고 침투를 감시할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아차산이었다.

고구려는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소수림왕 때 율령 반포 등을 통해 독립국가로서 중앙집권국가체제를 확립한다. 광개토태왕(재위 391~413)은 독자적 연호인 영락(永樂)을 사용하며 만주 일대를 정복하면서 한국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는 동시에 동북아시아 강자로 발돋움한다. 정복군주 광개토태왕에 이어 집권한 장수왕(재위413~491)은 만주 통구에 있던 수도 국내성을 평양으로 천도한 후 남진정책을 추진한다. 475년 장수왕은 3만 군대로 백제 수도 한성을 함락시키고 백제 개로왕을 사로잡아 죽인 뒤 한강 이남까지 점령한다. 고구려는 남진정책의 최전방 전초기지이자 국방의 요충지로 아차산을 확보한다.

당대 동북아시아 패자였던 고구려는 551년 신라와 백제의 동맹군에 의해 퇴각할 때까지 76년 동안 아차산 보루를 진지 삼아 한강 일대를 지배한다. 보루의 병사들은 전투가 주임무였다. 쇠스랑 등 농기구들이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주둔지에 필요한 식량은 아차산 아랫마을 어디쯤에서 농사를 직접 지어 조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고구려 병사들의 병영생활은 전투하면서 평시에는 둔전(屯田)을 일궈 농사도 짓는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단한 병영생활이었으리라.

고구려대장간마을 박물관 전시 공간은 크게 실내의 고구려 유적 전시관과 야외전시장으로 구분된다. 실내전시관은 1층과 2층으로 나뉜다. 문화해설사는 18명이 근무하고 있다.

대장간에 전시된 모루, 망치, 풀무 등 다양한 도구를 통해 고구려시대의 제철기술을 엿볼 수 있다.
대장간에 전시된 모루, 망치, 풀무 등 다양한 도구를 통해 고구려시대의 제철기술을 엿볼 수 있다.

1층은 고구려 전성기 강역도와 고구려가 한강을 건넌 후 76년간의 기록을 간략하게 일별할 수 있다. 또한 고구려 토기 파편을 직접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2층은 아차산 4보루와 일대보루군(群)을 전시한다. 먼저 아차산 4보루 축소 모형물을 볼 수 있다. 보루는 성벽과 생활터로 구성돼 있고 성벽에는 적을 감시하고 방어할 수 있는 치(雉)가 확인된다. 성벽 내부에는 병사들의 막사로 사용된 건물들과 각종 시설물이 축조됐다. 생활에 필수적인 물을 담을 수 있는 저수시설, 성벽 밖으로 물을 빼내기 위한 배수로가 보인다.

온돌은 고래가 하나뿐인 외고래 형식이다. 취사와 함께 공기를 따뜻하게 덥히는 기능을 동시에 한 듯하다. 솥은 쇠 솥이다.

솥은 비록 녹슬었지만, 솥의 자태를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두 번째로 눈여겨 볼만한 유물은 도끼, 투구, 등자, 화살, 말재갈 등 무기이다. 도끼는 고구려 시대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모양에 따라 외날 도끼, 양날 도끼, 초승달형 도끼로 구분되는데 특히 외날 도끼는 안악3호분 벽화의 부월수가 들고있는 것과 동일하다.

등자는 말을 탈 때 발을 딛는 도구이다. 이 등자가 있기 때문에 쏜살같이 달리는 말 위에서 중심을 잡고 활을 쏠 수 있다. 이렇게보면 부대는 병사가 소지한 무기에 따라 부월수, 궁수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말을 탄 기병도 편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병사들은 무기 등 전투 장비가 파손되거나 마모되었을 때 집게 등을 이용해 간이대장간에서 직접 수리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로 보습, 삽날, 낫, 쇠스랑 등 농기구가 전시됐다.

모두 철제 농기구이다. 제철기술이 발달한 고구려는 철제 농기구를 제작해 사용했다. 쟁기질할 때 쓰는 보습은 얼마 전까지 농촌에서 사용했던 보습과 크기만 약간 다르지 모양은 영락없이 똑같다. 쇠스랑 또한 1천500년의 시간이 무색할 정도다. 농사를 지은 후 농산물을 보관하는 항아리도 출토됐다.

명절 때 고향의 부모형제를 그리며 떡을 쪄서 먹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시루. 물 긷는 동이. 맥주 안주를 담아놓는 쟁반같이 생긴 오절판 토기 그릇 등 이 모두는 고구려군의 문화이자 병영생활을 엿볼 수 있는 소재들이다.

야외전시장은 아차산에서 출토된 유물을 기반으로 상상의 건축물을 구축했다. 삼족오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가상의 고구려 세계로 빠져든다. 가장 먼저 거믈촌이 다가온다. 거믈촌 지붕은 널빤지를 이용한 너와지붕이다. 연호개채는 대장간 맞은편에 있는 건물로 쪽구들과 해신과 달신의 그림이 분위기 조성에 한몫한다.

최근 영화 ‘안시성’의 성주방으로 사용된 거믈촌의 중앙 건물.
최근 영화 ‘안시성’의 성주방으로 사용된 거믈촌의 중앙 건물.

대장간은 고구려 최첨단의 철기문화를 대표한다. 대장간에는 화덕에서 풀무로 공기를 불어넣어 쇠를 녹이고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칼 등의 모양새를 주조하는 시설들이 구비됐다. 달구어진 쇠는 망치로 두들기고 담금질을 반복한 후에야 제품으로 탄생한다. 금방이라도 돌아갈 것 같은 지름 7미터의 물레는 장엄하기까지 하다. 고구려대장간마을 야외전시장은 그동안 태왕사신기, 신의, 선덕여왕 등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안시성 등의 촬영장소로 각광을 받았다. 관람객들은 때로 드라마와 영화 속의 그 장소에서 주인공이 되어 보기도 한다. 고구려의 건국과 광개토태왕의 활약상을 기리기 위해 414년 길림성 집안에 세운 광개토태왕비의 모형 비석도 방문객을 기다린다.

고구려대장간마을 박물관에서는 유치원생부터 어르신까지 고구려 복식 입기, 갑옷 입고 활쏘기, 대장장이 망치질하기 등을 통해 역사의 산 교육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는 ‘찾아가는 박물관’, ‘초등학교 역사체험단’ 등을 상시 운영하였으나 코로나19 사태로 대면수업이 어렵게 되자 ‘학교에서 고구려 대장간마을과 놀자’라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고구려는 고조선 이래 우리 역사의 한 축이다. 그러나 중국은 동북공정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고구려를 중국 국경 내의 소수민족이 세운 ‘소수민족 지방정권’ㆍ‘변방민족정권’으로 탈바꿈시킨다. 현재 중국 영토 내에 벌어졌던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입장이다. 한나라, 당나라같이 팽창기일 때에는 천하를 하나로 보는 ‘대일통(大一統)의 시각’이 중심축으로 등장한다.

송나라, 명나라처럼 위축되는 시기에는 ‘정통성의 시각’으로 중국의 내부 분열 상황을 극복하려 한다. 지금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한 지 70여년이 흘러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의미)를 벗어버리고 대국굴기(大國屈起) 하는 시점이라 ‘대일통(大一統)의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오늘날 중국이 점유하고 있는 정치적 영토와 그 정치적 영토 안에서 전개되었던 과거 역사와의 불일치를 해소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붕괴 시 북한 영토에 대한 역사적인 연고권을 확보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기도 하다. 고구려 역사 문제는 고대사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고구려는 5천년 민족문화의 보루다. 따라서 고구려 문제는 국가공동체와 민족공동체의 역사와 정체성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이다. 자손만대의 미래를 위해 치밀한 역사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8월15일(화)부터 야외전시장은 개장했다. 한국에 하나뿐인 아차산 고구려대장간마을 박물관에서 잊혀져 가는 민족혼을 재확인해보자.

아차산고구려유적전시관 2층은 아차산 보루군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고구려 축성 기술을 전시, 설명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아차산고구려유적전시관 2층은 아차산 보루군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고구려 축성 기술을 전시, 설명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권행완(정치학박사, 다산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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