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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진 칼럼] 생활 속의 미술 문화
오피니언 이재진 칼럼

[이재진 칼럼] 생활 속의 미술 문화

가족들과 의미 있는 휴일,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한적한 전시관을 둘러보며 휴식과 배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좋은 휴일이 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08년 미술작품을 전시하던 화랑은 183개였다. 불과 10년 후인 현재는 그 두 배가 넘는 수의 화랑이 운영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미술문화가 대중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하지만 아직 서민들에게는 작품을 구매하고 집에 거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린다. 미술이라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어느 작품이 좋은 작품인지 판단하기 어려우며, 가격이 비쌀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전시를 관람하러 가면 미술이란 것이 상당히 어렵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작가의 예술사조나 그의 배경으로 인한 작품성 등을 장대하게 쓴 글들은 읽기 난해할 뿐만 아니라 도저히 작품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이는 미술이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뿐, 이것이 어렵다고 해서 미술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클래식의 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블루스나 팝의 기원과 역사를 알지 못해도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음악을 듣다보면 관심이 생겨 그 역사를 찾아보게 되듯, 미술도 처음엔 자신의 눈과 생각으로 관람해도 상관없다.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생기게 되면, 자연스럽게 더 깊은 이야기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졌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인 빈센트 반 고흐는 자신의 작품이 비싼 금액으로 거래되기 보단, 평범한 사람들의 식탁에 걸리기를 희망했다. 물론 고흐의 그림은 현존하는 가장 비싼 그림들 중 하나이지만, 고흐의 그림들은 그의 바람과 같이 감상할 때 편하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미술 작품은 더 이상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 섞여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을 때야말로 비로소 자기 모습을 찾고 빛을 발하게 된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에 오게 된 스페인 출신, 열아홉 살의 청년인 파블로 피카소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당시 가난을 등에 지고 살았다. 그의 자존심은 그의 그림을 싸게 팔려하지 않았지만 그의 굶주린 배는 자존심을 내려두게 만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유명세를 탔으며 그의 그림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그림 값은 마치 그의 가난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폭등하게 된다. 마음에 든 그림이 생겼다면 평소에 관람을 하듯 그저 지나가지 말고 한 번쯤 가격을 물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 그림의 작가가 청년 시절의 피카소일지도 모를 일이다.

최근 수원지방법원에서는 미술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휴게 공간을 마련해 민원인들이 쉴 수 있는 자리를 조성하면서, 법정 안에 그림들을 걸어두고 있다. 법정은 보통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항상 흐르는 곳이다. 특히 형사법정은 사람의 인신에 관한 판결을 내리고, 범죄에 대한 처단을 하는 곳이기에 더욱이 싸늘한 분위기일 수밖에 없다. 희고 휑한 벽은 무거운 분위기를 한 층 더해준다. 그런데 그 차가운 벽면에 걸린 몇 점의 그림들은, 봄날 햇살처럼 따스함과 희망을 준다. 그야말로 그림 한 점이 주는 큰 아우라다.

스트레스와 불안에 시달리며, 과도한 경쟁, 과중한 업무로 지칠 대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그림 한 점이 주는 공간의 변화는 큰 위안과 여유를 마련해 준다. 손을 씻으며 바라보게 되는 세면대 위의 작은 꽃 그림 한 점, 식후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감상할 수 있는 카페 벽면의 유화, 일에 지칠 때 잠시 쳐다보며 휴식시간을 가져보는 사무실의 수채화 한 점. 돈이나 경쟁으로 점철되어 있는 현대의 회색빛 벽면 한 가운데 한 뼘의 미술 문화가 현대인의 쉼터가 되어줄 것을 기대해 본다.

이재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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