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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 칼럼] 눈물도 정치라고?
오피니언 변평섭 칼럼

[변평섭 칼럼] 눈물도 정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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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당의 입구에는 조그만 그릇에 사제가 축성한 물을 언제나 비치한다. 보통 물과는 달리 사제가 의식을 갖춰 축성했다 하여 성수(聖水)라고 부르는 데 신자들은 성당에 들어올 때 손가락 끝으로 이 물을 찍어 이마에 바르며 십자 성호를 긋는다. 세례 때처럼 거룩한 물(Holly Water)로 영혼을 깨끗이 한다는 기도의 성격이 짙다.

 

그런데 이 ‘거룩한 물’을 눈물에 비유한 이가 있다.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영국의 천재적 작가 셰익스피어. 그는 ‘눈물은 성수(聖水)’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 주옥같은 4대 비극, 거기에서 주인공들이 흘리는 눈물은 영혼을 깨끗이 씻어주는 성수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

 

정봉주 전 의원이 성추행 의혹으로 세간의 여론이 뜨거워질수록 TV카메라 앞에서 눈물 흘리는 횟수가 늘어났고 두 뺨에 흐르는 눈물의 양도 많아졌다. 만약 셰익스피어가 살아서 그 자리에 있었다면 ‘눈물은 성수다’고 한 자신의 말을 당장 취소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눈물은 쇼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정 전 의원이 자꾸만 눈물을 보이는 것에서 오히려 ‘감취진 검은 진실’을 예감했을 것이다. 그는 성추행을 세상에 고발한 여성을 ‘만난 적이 없고, 렉싱턴호텔에 간 적도 없다. 전 국민과 언론을 속게 한 기획된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펄쩍 뛰며 일관되게 의혹을 부인했다. 그리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780장이나 되는 사진이 있다고 내세웠으며 마치 고려말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回軍)을 연상시키기라도 하듯 ‘나에게 회군은 없다’고 선언했다. 서울시장 출마 결의에 변함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눈물 많고 소피스트를 무색게 하는 레토릭(수사학)의 언변에 능란했던 정 전 의원은 손바닥 크기도 안되는 신용카드 영수증 하나에 맥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의 정치 꿈도 무너졌다. ‘눈물을 성수’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을 허망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원래 정치인들의 눈물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정치하는 사람들에겐 ‘눈물도 정치’라는 말이 통한다. 물론 정치를 떠나 가슴에서 우러나는 눈물이 없는 건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광고에 눈물 흘리는 모습으로 유권자들을 움직였지만 정말 가슴을 짠하게 하는 장면도 있었다. 재임시절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자신을 위해 감옥에 가는 등 고생한 것을 말하다 ‘나는 그에게 빚을 졌다’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장면이었다. 지금은 그 안희정도 성추문 사건으로 지사직마저 잃고 회한(悔恨)의 눈물을 흘리지만….

 

197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조총련계 재일 교포 문세광에 의해 비명에 간 육영수 여사의 운구차를 배웅하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던 모습, 오바마 전 미대통령이 총기 난사로 목숨을 잃은 20명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추모하며 눈물을 줄줄 흘리던 모습.

정말 정치인들이 ‘눈물도 정치’라고 생각하며 허투루 우는 모습은 ‘악어의 눈물’처럼 역겹지만 진정성에서 우러나는 눈물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문제는 정치인이 무대에서 우는 모습이 아니라 국민들의 삶 속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이다.

 

최근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몰아왔던 영화 ‘인턴’에서 주인공 벤(로버트 드 니로)는 울고 있는 젊은 직원에게 자기 손수건을 건네주며 말한다. “손수건은 나를 위해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 주기 위해 있다.”

정말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정치인이 너무 그립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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