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아끼려 저급 자재 사용 ‘부실 시공’ 우려
최근 수도권에 지어진 원룸과 빌라 등 공동주택 5천800여 곳이 건설업 면허가 없는 ‘무자격자’들의 손에 지어졌다는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무자격자들은 공사비를 아끼고자 공사 자재를 규정대로 사용하지 않아 건물 안전에 문제가 있는 등 서민들의 피해가 크게 우려되고 있다. 이에 본보는 ‘건설업 불법대여’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모색해 본다.
안양시 한 원룸에 살고 있는 직장인 A씨는 최근 원룸 내벽에 물방울이 생겨 집주인에게 보수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집주인은 “건축업자와 연락이 끊겼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수원에서 건설업을 하고 있는 B씨는 최근 한 빌라 공사장의 시공사가 건설업 면허가 없는 ‘무자격 업체’인 것을 알게 돼 경찰에 신고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목격했다. 건축주가 다른 업체와 계약해 공사를 진행한 것. B씨가 신고했을 당시 이미 3층까지 지어진 빌라는 나머지 4~5층만 정식 업체가 시공했다. B씨는 이 건물에 입주할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까 걱정됐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건설현장에서 무자격 업체들이 ‘건설업 면허’를 불법으로 빌려 공사하는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가운데, 행정 당국은 무자격 업자가 지은 공동주택임을 알면서도 건물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대한건설협회 경기도회에 따르면 현행법상 주거용은 연면적 661㎡ 이상, 비주거용은 연면적 495㎡ 이상일 경우 반드시 건설업 등록증이 있는 업체가 공사해야 한다. 그러나 무자격 건축업자들은 정상 업체보다 비용을 20%가량 적게 요구, 일선 건설현장에서는 건설업 면허를 빌린 무자격 건축업자들에게 공사를 맡기는 현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 대한건설협회 경기도회가 자체 조사해 경찰에 신고한 무자격 업체 공사현장은 도내에만 지난 2015년 1천354곳, 2016년 932곳에 달한다. 또 최근 경기남부경찰청은 무자격 건축업자에게 건설면허를 빌려준 일당을 붙잡았는데, 이들에게 지난 4년간 건설면허를 빌려 지은 원룸 등 공동주택이 수도권에만 무려 5천831곳에 달했다.
그러나 해당 지자체는 무자격 업체가 지은 공사현장을 인지해도, 면허를 빌린 자와 건축주에게 벌금(최대 5천만 원)을 부과할 뿐 정작 건물에 대한 조치는 하지 않고 있다.
무자격 건축업자들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건설자재 등을 규정대로 설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부실공사 우려가 크다. 이러한 건물이 안전점검 및 원상복구 등의 조치 없이 벌금만 내고 완공되면 결국 입주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행정기관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면허를 빌려준 자와 빌린 자에 대한 벌금 부과와 법인 등록 말소뿐”이라며 “한번 지어진 건축물은 사유재산이어서 행정기관이 임의로 조치하기 어렵다. 향후 발생하는 하자는 건축주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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