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로고
[김동욱 칼럼] 항암신약개발 투자, 아직도 미흡하다
오피니언 김동욱 칼럼

[김동욱 칼럼] 항암신약개발 투자, 아직도 미흡하다

▲
2001년 5월 세계 최초의 백혈병 표적항암제 글리벡이 국내에 처음 도입된 경위를 보면 여러가지 만감이 교차한다.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던 인류 최초의 표적항암제 신약을 국내에서도 말기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에게 사용하기 위하여 다국적 제약사에 수없이 많은 자료를 보내며 연락을 하였지만 매번 돌아오는 답변은 임상시험이 끝나고 난 후에 시작될 ‘동정적치료프로그램’ (미국 식약청이 초기 임상시험 허가가 난 후에 항암제를 조건부로 무상 공급하는 제도)으로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이후 글리벡은 치료에 실패한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에게 2003년 초부터 의료보험으로 허가가 되어 환자들은 매월 약가의 10%인 30만원 정도의 약제 비용을 부담하고 치료를 시작했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연간 환자 1인당 3천만원이 넘는 돈을 약제 구매 비용으로 지불하게 되어 많은 환자와 의료진이 제약사와 정부를 상대로 약가 인하 투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환자를 중심으로 한 시민단체들이 본격적으로 태동하게 되었고 고가의 약가가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정부의 표적항암제 구입 비용은 급속하게 증가하여 현재는 연간 1천억원 이상이 필요하며 대부분의 환자가 발병 후 수십년간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매년 100억원 이상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다.

 

오늘날 혁신적인 항암치료제 개발에는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의 막대한 비용과 7~10년간 장기간의 임상시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 유럽, 일본 중심의 글로벌 제약사만의 독점적인 무대가 되어 버린지 오래되었다.

 

그동안 국내 제약사는 많은 비용이 드는 신약 개발보다 특허 기간이 만료된 블록버스터급 항암제의 복제약 출시에만 집중하였고, 정부는 복제약의 약가를 일정 부분 보장해 주는 자구책을 고수하다가 스스로 신약 개발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내에 300개가 넘는 제약사가 난립하고 비슷 비슷한 복제약을 값싸게 출시하여 단기적인 눈 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식은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아 2013년 글리벡 알파크리스탈의 특허가 만료되었을 당시에 무려 15개 이상의 국내 제약사가 글리벡 복제약을 출시할 정도였다.

 

국산 신약 표적항암제와 많은 다국적제약사의 표적항암제 연구, 개발에 참여해 온 필자는 현재 국내 상황을 보면서 ‘국내 제약사들의 개별 노력만으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진 블록버스터급 항암 신약의 개발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

 

6년전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출범한 ‘시스템통합적항암신약개발사업단’으로 인해 국가 차원에서 국내 개발자나 제약사들이 공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생겨 다행이다 생각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정부의 재정 지원이 축소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다음달부터 2차 항암신약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최근 소식이다. 하지만 다국적 제약사 한 곳이 항암 신약의 연구, 개발에 쓰는 비용이 연간 1조원을 넘는 현실을 보면 국가 차원의 지원으로 600~700억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 정도의 투자로 과연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신약 개발이 가능할까?

 

현재 암 환자의 치료에 사용되는 각종 항암치료제의 기하급수적인 비용 증가는 전세계적인 이슈이며 모든 국가의 의료 재정 소모의 주원인이다. 2013년 미국혈액학회 공식 의학잡지인 블러드 (Blood)지 사설에 실린 ‘한국의 만성골수성백혈병 표적항암제 치료 약가는 최근 한국 제약사가 개발한 항암제와의 경쟁 때문에 전세계에서 가장 저렴하다. 글로벌 제약사의 한국 약가도 가격 경쟁으로 줄었기 때문이다’는 내용에 주목해 보자.

 

2018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오리지널 글리벡인 베타크리스탈 제형의 특허가 만료된다. 1세대 표적항암제 글리벡의 약가는 지금보다 약 50% 이상 저렴해지고, 그동안 오리지널을 선호하던 환자나 의료진들도 안심하고 복제약을 복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보지만 지난 16년간 다국적 제약사는 특허가 만료될 글리벡을 대체할 더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적은 차세대 표적항암제를 이미 출시하고 있다.

특허 만료에 대비하여 지속적으로 다음 신약을 준비하는 개발 능력과 투자는 우리 제약사와 정부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언제까지 다국적 제약사의 뒤만 따라가며 복제약만으로 만족할 것인가?

 

국가의 보건의료재정을 건실하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의료 소비자인 암 환자들에게 고가라는 이유로 항암신약의 보험 처방을 수년간 방치하는 부자연스러운 약가 인하 정책이 아닌, 보다 적극적으로 약가를 인하할 수 있는 ‘국산 항암신약의 연구, 개발에 우선 투자하는 것’임을 우리 사회 모두가 깨달아야 할 것 같다.

 

김동욱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