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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의 도시 이야기] 격자형도시 히포다무스의 공(功)과 과(過)
오피니언 김영훈의 도시이야기

[김영훈의 도시 이야기] 격자형도시 히포다무스의 공(功)과 과(過)

오늘날 도시가 아무리 규모가 크고 복잡하다 해도 도시를 만드는 기법은 본질적으로 고대나 그 이전 시대의 도시와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 심지어는 고대에 사용되던 방법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격자형 패턴의 도시계획이다.

역사적으로 격자형 도시계획이 나타난 것은 B.C5 세기경이었으며 밀레투스(Miletus) 출신의 히포다무스(498 B.C-408 B.C)에 의해 창안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소아시아에 위치한 밀레투스(475 B.C)를 비롯하여 아테네 근처에 위치한 피레우스(Piraeus, 470 B.C-그림) 등에 마치 그물을 씌우듯이 격자형 도로 패턴을 채용하여 도시를 만들어갔다.

말 그대로 선 하나하나는 도로가 되었으며 도로로 인해 구획이 생기고 각 구역에는 도시가 필요로 하는 공공시설과 주거지역 및 종교지역 등이 배치되는 아주 간단하고 명쾌한 도시 만들기였다. 하긴 그가 살고 있던 B.C 5세기가 페르시아 격퇴에 따른 그리스 고전시대의 시작이었으며 이후 페리클레스의 아테네 황금시대로 이어지면서 여기저기에 식민도시를 건설할 때였으니 어찌 보면 신속하고 관리가 용이한 도시 만들기 기법이 필요했을 법이다.

그러나 격자형 도시계획은 단지 도시라는 공간에 줄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수많은 그리스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히포다무스도 도시계획가나 건축가 같은 엔지니어 이전에 철학자이자 기상학자, 수학자, 물리학자이기도 했으며 국가의 통치이념을 고민하던 정치가였음을 생각해 보면 격자형 도시계획 패턴은 새로운 시기를 위한 이상적인 정치 패러다임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그는 격자형 도시계획을 통해 장인과 농부 및 군인으로 구성된 1만여 명의 시민이 공적 공간, 사적 공간 및 신성 공간으로 명확히 구분된 도시에 각자 역할에 충실하게 거주할 수 있는 이상적인 도시국가를 표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그의 계획은 당시의 자연 순응적이고 비계획적이던 기존 도시와는 달리 기하학적 질서와 규칙성을 보장받았으며 급기야는 사회적 질서와 합리성의 표현으로서의 새로운 도시라는 칭송까지도 받게 되었다.

물론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격자형 도시계획이 출현하게 되자, 그리스 반도의 해안가나 구릉지 이곳저곳에 등고와 지형을 따라 아기자기한 집들과 공터 혹은 아고라들이 자연스럽고 자유스럽게 자리하던 당시 도시의 모습은 그 경관의 아름다움이나 삶의 여유와는 별개로 비합리적이고 전근대적인 도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도시의 이상(理想)이 변하는 순간이었다.

히포다무스가 비록 도시계획의 아버지로 불리고는 있지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격자 속에서 자유와 자연스러움이 마치 그물에 걸린 물고기 마냥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 꼭 그리 칭송만 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김영훈 대진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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