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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의 도시 이야기] 인더스 문명의 이상-모헨조다로와 하라파
오피니언 김영훈의 도시이야기

[김영훈의 도시 이야기] 인더스 문명의 이상-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무릇 사람의 사상은 문명을 창조하고 문명은 도시를 만들어낸다. 도시는 문명과 함께 생성되고 발전하며 쇠락하거나 멸망한다. 특히나 세계 최초의 도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도시들이 고대 문명권의 시간과 공간을 공유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전에 이야기했던 수메르인의 도시나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인도 지역에서도 역시 찬란한 선사 혹은 고대문명의 흔적과 도시의 잔흔이 발견되고 있다. 이미 B.C7000년 ~ B.C5500년부터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 주의 카치 평원을 중심으로 메르가르(Mehrgarh) 문명이 시작되고 있었으며 흙벽돌로 주택을 짓고 농경과 가축을 키우는 등 선사시대 도시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인더스 강과 현재 파키스탄, 인도에 걸쳐있는 가가하크라강 사이에 위치하면서 B.C2600년부터 1900년경에 이르기까지 번성한 인더스 문명이 등장하면서 좀 더 성숙한 도시가 탄생하게 된다. 바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등의 찬란한 도시 문명이 그것이다.

모헨조다로는 지금까지 전체 유적의 10% 정도밖에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알기 힘들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모헨조다로는 파키스탄 신드 지방의 라르카나 지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동서 1천60m, 남북 1천200m의 사각형 도시로 크게 서쪽의 성곽 요새 지구와 동쪽의 시가지구로 구획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격자형태의 12개의 도시 구획 내에 2층 평지붕 형태의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었으며 약 4천명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부분의 집들은 불에 구운 벽돌로 축조하였고 주택의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방과 우물, 욕실 등이 있었으며 폐수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전체 도시는 폭 10m의 포장된 간선도로와 2~3m의 골목길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개인 소유의 우물이 700개 이상, 화장실과 도시 전체에 깔려있는 하수도 및 마을 한 가운데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대 욕장 시설이 존재하는 등 철저한 계획에 의해 건설된 이상적인 도시 형태를 보이고 있다.

모헨조다로보다 나중에 건설된 것으로 보이는 하라파는 파키스탄 펀자브 지방의 몽고메리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도시 구획이나 도로, 하수도 혹은 주택 양식 및 흙벽돌을 사용하고 있는 등 많은 부분에서 모헨조다로와 유사하였다.

일반적으로 도시공간의 기하학적 구획 및 격자형 직교도로나 포장기술 등은 절대적인 통치자의 존재나 군사적 필요성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임을 생각하면 당시 강력한 통치세력이 존재하지 않던 모헨조다로에 이러한 도로 패턴이 존재한다는 점은 매우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도시민의 편의와 위생 등을 과학적으로 고려한 인간 중심의 이상적인 도시 만들기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인더스 문명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도시들도 진흙 속에 묻히고 말았다. 문명이 죽어 도시가 숨을 거두기는 했지만 과연 그들의 사상마저도 사라진 것일까. 모헨조다로나 하라파에서 보이는 도시민에 대한 애정과 평등사상 그리고 그에 따른 과학적 배려는 아마도 그리 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영훈 대진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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