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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의 도시이야기] 도시의 세포분열, 네아폴리스와 메갈레 헬라스
오피니언 김영훈의 도시이야기

[김영훈의 도시이야기] 도시의 세포분열, 네아폴리스와 메갈레 헬라스

도시라는 것이 처음부터 팽창이나 발전을 고려하여 거대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대도시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특히 B.C. 10세기부터 8세기에 걸쳐 그리스 지역에서 촌락집주(村落集住, synoikismos) 형태로 형성된 자그마한 도시, 즉 폴리스(polis)들은 산악 지형이 많은 그리스 반도의 지형적 특징이나 종교 및 사회적 관습의 차이 등으로 인하여 애초부터 대규모 도시 건설은 언감생심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작은 규모의 촌락이 도시가 되고 나아가 국가가 되는 특이한 도시구조를 만들어내게 된다. 게다가 거의 모든 폴리스들이 크지도 않은 지역에 방어를 위한 성벽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혹여 도시가 발전하거나 인구가 팽창한다 해도 도시 자체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원천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고대 그리스의 네아폴리스(neapolis)는 이러한 배경에서 태어나고 있다. 네아폴리스는 본토 주변이나 혹은 외지에 건설되었으며 본토의 모도시, 즉 팔레아폴리스(paleapolis)의 사회, 정치 조직은 물론 문화와 예술까지도 공유하고 있었다. 요즘 말로는 신도시일 것이며 혹은 경제적 이유로 속국을 만든 지역에도 네아폴리스를 만들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식민도시라 불러도 크게 문제 되지는 않을 것이다.

 

B.C. 280년 경 그리스 반도에 발생한 기근이나 인구과잉 등 사회 경제적 위기와 전쟁의 위협 등으로 인하여 그리스인들은 새로운 상업 판로와 항구를 찾아 고국을 떠나 이탈리아 남부에 네아폴리스를 건설하게 되었다. 일종의 식민지 개척에 해당하는 이 같은 행위는 이탈리아 남부뿐만 아니라 당시 흑해 동부 해안이나 프랑스의 마르세유 등 본국과 멀리 떨어진 곳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식민도시 건설을 재촉하였다. 그 결과 B.C. 8세기 중엽에는 큐메, 포세이도니아, 시바리스, 타라스 등의 도시가 건설되었으며 B.C. 7세기 무렵에는 로크로이, 시리스, 메타폰티온 등의 네아폴리스가 세워졌다. 특히 B.C. 4세기 무렵에는 이 지역에 세워진 그리스의 네아폴리스의 숫자는 물론 그 경제적 세력이 강성했기 때문에 비로서 위대한 그리스 즉 메갈레 헬라스(Megale Hellas)라는 칭호를 얻게 된다. 이 도시들은 B.C. 272년 타라스가 로마의 수중에 떨어질 때까지 비옥한 농산물과 자연적 풍광 등에 힘입어 경제적으로 크게 번영하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리스인들의 네아폴리스 건설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리스 문화와 고대 그리스어의 방언, 종교 의식과 폴리스의 전통도 이탈리아에 수입되었으며 이후 이탈리아 반도에 내재하던 라틴 문명과 교류하게 되면서 독창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일례로 이탈리아 반도에 거주하던 에투루리아인들이 칼키스와 쿠마이의 그리스 알파벳을 받아들여 이후 로마 알파벳을 거쳐 라틴 알파벳으로 진화한 사실은 이탈리아 지역에 건설된 그리스의 네아폴리스와 그들의 번영이 만들어낸 메갈레 헬라스의 힘이었다. 어찌 보면 헬레니즘의 정신은 이 때부터 싹트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스인들은 마치 종족을 보존하고자 하는 동물의 본능처럼 세포분열을 통하여 이탈리아 반도 남쪽에 또 하나의 그리스와 도시를 만든 셈이다. 비록 메갈레 헬라스는 이제 그 자취를 감추었지만 네아폴리스(neapolis)를 어원으로 하는 나폴리(Napoli)라는 도시의 이름을 통해 여전히 그리스 도시의 정신은 이어지고 있다.

김영훈 대진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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