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일 국민의힘이 이번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후보로 양향자 전 의원을 선출하면서 경기도의 대진표가 마무리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추미애 전 의원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일찌감치 확정했고 개혁신당이 조응천 전 의원을 후보로 결정한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가장 늦게 경기도지사 후보를 확정한 것이다. 현재 경기도가 민주당 우세 지역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2018년 이전까지는 경기도에서 보수가 전반적으로 우세했지만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첫 번째 지방선거에서는 민자당의 이인제 후보가 당선됐고 1998년에는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의 임창열 후보가 당선됐다. 이후부터 2014년 지방선거까지는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후보가 연속으로 당선됐다. 그러나 2018년 지방선거 이후부터는 민주당이 도정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 이후 민주당이 경기도를 장악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문재인 정권 시기 급등한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3040세대가 경기지역에 대거 유입된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상으로도 이들 세대의 진보 성향은 뚜렷하게 확인된다. 2018년 당시 3040세대는 현재 대부분 4050세대가 됐고 여론조사에서도 대통령 지지율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모두 이 연령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다. 5월8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5월5일부터 7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천1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를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보수 진영은 경기도에서 상당히 어려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제21대 대통령선거 선거인수’를 보면 경기지역에 가장 많이 거주하는 연령층은 4050세대다. 전국에서 4050세대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도 경기도다. 이들이 단기간에 대거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지 않는 한 이번 선거 역시 보수 진영에 불리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불리한 구도를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이 바로 보수 진영의 후보 단일화다. 보수 진영의 두 후보, 즉 조응천 후보와 양향자 후보는 모두 중도적 성향이 강한 후보다. 조응천 후보는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근무하다 비선 실세 문제를 제기한 끝에 해임됐고 이후 더불어민주당의 인재 영입을 통해 정치에 입문해 경기지역에서 재선 의원을 지냈는데 민주당 의원 시절 당내 강경 세력의 득세에 반발하며 탈당해 개혁신당에 합류했다. 양향자 후보는 고졸 신화로 불리며 삼성전자 임원을 한 뒤 영입 인재로 민주당에 합류해 광주지역 국회의원을 지냈다. 양 전 의원 역시 민주당 내 강경 세력에 비판적 입장을 보이다가 결국 탈당하고 개혁신당을 거쳐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들 두 후보의 이력에는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진보든 보수든 강경한 세력에 대해 반대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러한 공통점은 이들이 합리적 노선을 지향한다고 해석하게 하는 근거가 되는데 이런 이유에서 다른 지역보다 후보 단일화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조응천 후보는 국민의힘과의 후보 단일화 여부에 대해 “이유는 없지만 제안이 오면 들어볼 생각”이라고 언급한 바 있고 양향자 후보는 표면적으로는 단일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정치적 조건에 따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 분위기라고 판단된다. 두 후보가 단일화에 성공할 경우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강성 이미지의 추미애 후보와 분명한 차별점을 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생물이어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치적 리스크는 과학적 분석에 기반해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 후보 단일화의 향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즘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달라지는 세상이 돼 버렸다. 그의 발언 하나에 유가는 오르락내리락을 거듭하고 주가는 폭락과 폭등을 오가며 환율 또한 춤추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세상이 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전까지 미국은 자유와 인권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현하려 애쓰는 국가라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역시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최소한 명분만큼은 지키려는 모습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의 미국은 그러한 명분마저 완전히 내팽개쳐 버린 듯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합작해 촉발된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는 상황이 전개돼도 자국은 해당 해협을 통과할 필요가 없으니 호르무즈 해협 통과가 필요한 국가들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한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수많은 국가의 경제가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음에도 최소한의 책임 있는 자세 대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트럼프의 발언을 논리로 따지는 일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예측 가능한 국가로 취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를 국빈방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3일 한국·프랑스 경제인들과의 만남에서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해 “프랑스는 미국보다 예측 가능하다”며 “한국이 프랑스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일본 방문 시에도 유사한 발언을 한 바 있다. 방일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이 때로는 다른 지역보다 느리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안다”면서도 “하지만 예측 가능성은 중요한 가치이며 최근 몇 주간 이를 입증해 왔다”고 밝혔다. 필자는 이러한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치에서 예측 가능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국가 혹은 정부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해당 국가에 대한 신뢰와 직결된다. 그런데 지금의 미국에는 이러한 예측 가능성을 발견하기 어렵고 이는 곧 국제사회가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하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하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미 동맹의 미래 또한 낙관하기 어렵다. 프랑스는 이미 미국의 핵우산을 신뢰할 수 없다며 스스로 유럽 대륙의 핵우산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독일 역시 이를 수용하는 입장이다. 주지하다시피 독일과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앙숙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나라의 관계는 한일 관계보다 더 심각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국가들이 이제 안보를 위해 연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유럽 국가 가운데 프랑스와 영국이 핵보유국이니 유럽의 안보를 책임지겠다는 선택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동북아다. 동북아 국가 가운데 공식적으로 핵을 보유한 국가는 중국뿐이고 비공식적 핵보유국으로는 북한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나 일본의 입장에서는 두 나라에 안보 차원에서 의지할 수 없다. 체제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현실로 인해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이 독자적 핵 보유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이란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란은 북한의 사례를 통해 핵 보유의 전략적 가치를 절감했을 것이다. 더구나 현재 트럼프로 인해 각종 국제 규범과 조약, 그리고 국제기구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란의 NPT 탈퇴 시도는 설득력을 지닐 수밖에 없다. 지금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미국의 행태를 목도한 적지 않은 국가들이 NPT를 탈퇴할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될 경우 핵 보유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로 인해 기존의 세계질서는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강(自强)만이 살길이다. 핵무기 없는 세상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핵 보유 도미노가 현실화된다면 당위론만으로는 우리를 지켜낼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안보는 곧 생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안철수 의원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그의 지방선거 출마 가능성을 두고 사방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는 지역은 서울과 경기도다. 실제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가까운 인사가 직접 안철수 의원을 찾아가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했다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요청에 대해 안 의원은 즉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외에도 그가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안 의원에 대한 주목도가 이렇듯 높아지는 이유는 아마 그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안 의원은 우리나라 정치인 가운데 중도를 가장 잘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의 중도적 이미지는 지난번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더욱 강화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이미지를 가진 안 의원에게 국민의힘 지도부가 매달리는 것은 그래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곧 안 의원의 중도적 이미지가 지방선거에서 절실하다는 것이고 결국 중도층의 포섭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정작 당 지도부는 중도층 확보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절윤’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러한 모순적 행위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3일 국민의힘이 이른바 사법개혁 3법에 항의하며 국회에서 청와대까지 도보 행진을 했을 당시 ‘윤 어게인’ 세력이 의원들의 행진 대열을 뒤따라갔는데도 당 지도부는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중도층을 확보하기 위해 안 의원의 이미지를 활용하려 하면서도 정작 ‘윤 어게인’ 세력과의 분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은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중도층에 대한 소구력이 매우 강한 인물임에도 현직 시장을 제치고 다른 중도 정치인을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모든 선거에서 현역 프리미엄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지방선거에서는 특히 그렇다. 지방선거에서는 이른바 ‘줄투표’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줄투표 현상이란 자신이 선택한 광역단체장 후보와 같은 정당 소속 후보들을 ‘줄줄이’ 찍는 현상을 의미한다. 독자 여러분도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도지사나 시장 정도의 이름은 알 수 있지만 자신이 사는 지역의 시의원이나 군의원 혹은 구의원의 이름을 알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광역단체장 후보의 인지도는 매우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그런데 인지도 측면에서 현역 광역단체장만큼 유리한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현역을 제치고 새로운 인물을 찾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이 역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실제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정현 전 대표는 “당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니 현직들이 직을 내려놓고 절박하게 선거운동을 하자”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 위원장의 언급은 새로운 인물을 찾으려는 국민의힘 지도부의 움직임과 일정 부분 맥락을 같이한다. 그런데 현재 국민의힘이 사실상 구인난을 겪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새로운 인물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 역시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구인난 때문인지 몰라도 국민의힘 지도부와 공관위는 현역 의원들에게 출마를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점은 107석의 의석을 가지고 있는 국민의힘이 찾는 새로운 후보가 결국 현역 의원들이라면 이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이들 가운데 일부라도 실제로 출마한다면 개헌 저지선이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보면 지금 국민의힘 지도부의 판단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현역 의원들은 설사 당의 출마 요청을 받더라도 이를 거절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 수 있다. 승리가 불투명한 지방선거에 출마했다가 오히려 개헌 저지선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더 큰 비난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당과 의원 모두 지금은 무엇보다도 신중하고도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4일 “선거 연령을 16세로 낮추는 방안을 선도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이번 지방선거부터 선거 연령을 낮출 수 있도록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를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이 선거 연령 하향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청소년층과 젊은 세대에서 나타나는 보수화 경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다. 실제로 이들 세대의 보수화 경향은 구체적인 지표로 확인된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6년 1월 통합 자료에 따르면 2030세대의 국민의힘 지지율 합산치가 70대 이상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정당 대표가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이용하려는 것은 전술적 차원에서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다만 선거 연령을 16세로 낮추는 것이 과연 제도적으로 타당한가 하는 근본적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독일의 경우 연방의회선거나 유럽의회선거에서는 선거 연령이 18세이지만 일부 주(州)의 주의회 선거에서는 16세로 낮춘 사례가 있다. 독일은 연방제 국가이기 때문에 주의 자율성이 보장돼 있고 그래서 각 주는 독자적으로 선거 연령을 정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모든 전국 단위 선거의 선거 연령이 16세다. 이들 외에도 일부 국가가 선거 연령을 16세로 낮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선거 연령이 16세인 국가는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코틀랜드, 웨일스를 제외하면 대부분 남미 국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절대 다수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여전히 선거 연령을 18세로 유지하고 있다. 선거 연령 문제는 입시제도, 그리고 이와 연동된 교육 시스템과의 연관 속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독일에는 ‘아비투어(Abitur)’라는 대학 입학 자격시험이 존재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수능과 근본적으로 상이하다. 한국의 수능은 정답이 명확히 존재하기 때문에 이 정답을 기준으로 점수를 산출하고 이에 기반해 어떤 대학에 갈지를 결정하는 구조다. 반면 독일의 아비투어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서술형 문제가 다수를 차지한다. 즉, 사고 능력과 논리력을 중심으로 한 문제가 다수라는 것인데 이런 입시제도의 차이는 교육제도가 상이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정답 중심의 입시제도에서는 학교 교육이 암기 위주의 주입식으로 흐르지만 사고력과 논리성을 요구하는 시험에서는 토론식 교육을 통해 사고 능력과 판단 능력을 기르는 방향으로 교육이 이뤄진다. 이는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허용할 수 있는 교육적 기반이 된다. 독일의 경우 정당 가입이 16세부터 가능한데 이는 교육을 통해 청소년 개개인의 정치적 판단 능력을 신뢰할 수 있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독일도 최근 극우 정당이 학생들의 정치적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며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극우 정당이 학교에 침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도 현재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데 하물며 한국처럼 주입식 교육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선거 연령을 하향 조정하면 교사 등 교육 주체의 정치적 성향이 학생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선거 연령 하향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면 먼저 입시제도의 근본적 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즉, 교육 시스템을 주입식에서 토론식으로 전환한 이후에야 선거 연령 하향 논의가 정당성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선거 연령 하향을 추진하려는 전략적 의도는 정파적 차원에서 이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국민의힘이 직면한 정치적 위기 상황은 상당 부분 스스로 초래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과 같은 상황, 즉 국민의힘이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여론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선거 연령 하향보다는 먼저 왜 국민 여론이 자신을 외면하는지를 숙고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자기 반성 없이 제도 변화만을 추구한다면 원하는 정치적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갤럽이 9일 발표한 자체 정례 여론조사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민주당 지지율은 직전 조사 대비 5%포인트 상승했으나 국민의힘 지지율은 변화가 없었다. 이 점이 흥미로운 이유는 현재 정치 상황이 민주당에 반드시 유리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병기 전 원내대표와 강선우 의원 간 대화 녹취 공개에 따른 후폭풍은 여전하고 논란이 되고 있는 기획예산처 장관 지명 문제도 계속해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악재가 잇따를 경우 일반적으로는 해당 정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민주당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으니 ‘이례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 원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고려할 수 있는 점은 국민의힘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여전히 중첩돼 있다는 사실이다. 일치율 100%라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윤석열의 이미지가 국민의힘 내부에 잔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7일 비상계엄 논란에 대해 사과했지만 정작 그 비상계엄을 주도한 윤 전 대통령과의 단절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마치 주어가 빠진 채 동사와 목적어만 남은 문장처럼 본질을 비켜간 인상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비상계엄의 핵심 인물인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여전히 연결돼 있다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로 짚어볼 수 있는 요소는 메신저의 문제다. 정치에서 메신저가 신뢰를 얻지 못하면 그가 전하는 메시지의 내용이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유권자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만큼 메신저의 이미지가 메시지의 설득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되면 정당 지지율 상승은 어렵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비교적 ‘무난하게’ 마무리된 점도 민주당 지지율 상승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이 여당 지지율을 견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강성 보수층의 지지만으로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수 있다. 이는 과거 민주당이 강성 지지층을 기반으로 한 선거 전략을 구사해 선거에서 승리한 ‘경험’을 봤기 때문일 수 있지만 이는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크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45%였다. 이 정도의 지지율만 유지된다면 민주당은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만을 겨냥한 선거 전략으로도 승산이 있다. 지방선거는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기 때문에 45% 지지층을 최대한 투표장으로 이끌 수 있다면 승리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상황은 다르다. 중도층이 많이 응답하는 전화 면접 방식의 여론조사에서 6개월 가까이 20%대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는 설령 지지층을 최대한 투표장으로 유인한다고 해도 선거 승리는 쉽지 않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중도층은 실재하지 않으며 결국 모든 유권자는 투표장에 가면 양 진영 중 하나를 택하게 될 것이라는 시각도 일부 존재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중도층의 성향을 오해한 것이다. 중도층 유권자의 선택은 선거 시점의 여론 흐름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른바 ‘셰임 보수(shame conservative)’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선거 사례를 보더라도 이들의 비중은 전체 유권자 중 1% 내외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기에 지금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상황의 ‘자의적 해석’이 아니라 ‘객관적인 인식’이다. 선거에서 상대적으로 더 합리적인 정당이 승리하는 것은 상식이다. 어느 쪽이 유권자들에게 더 합리적으로 비칠지에 대해 정치권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리버스터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필리버스터는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카리브해 일대에서 활동하던 해적 혹은 약탈자를 가리키는 스페인어 ‘필리부스테로(filibustero)’에서 유래했다. 합법적인 의사 진행 방해 행위를 이러한 약탈 행위나 해적 행위에 비유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를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소수 의견이라도 배제하지 않고 제도에 반영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만약 소수 의견이 반영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된다면 소수 정당들이 이에 저항하는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는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소수의 목소리가 무시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국회 내에서의 필리버스터를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2월10일 국회에서는 필리버스터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필리버스터 발언을 중단시킨 것이다. 공식적인 사유는 두 가지였다. ▲나 의원의 발언 내용이 필리버스터 대상 법안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점 ▲ 무단으로 사적인 마이크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법리적으로 검토하면 이러한 사유가 존재할 경우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를 제지할 수는 있다. 실제로 국회법 제102조는 ‘의제와 관계없는 발언이나 허가받은 발언의 성질과 다른 발언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언의 내용이 상정된 의안과 관련이 있는지는 의장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표면적으로는 의제와 무관해 보이더라도 간접적이거나 포괄적 차원에서는 관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국회의장 단독의 판단만으로 특정 의원의 발언 적절성을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과거 사례를 봐도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 발언을 중단시킨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2016년 테러방지법에 대한 필리버스터 당시 민주당 의원들이 총선에서 야당을 지지해달라고 호소했을 당시에는 이러한 행위가 모두 허용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이크를 끄고 발언을 제지했으니 국민의힘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현재 국민의힘은 분명 소수 정당이지만 동시에 제1야당이다. 제1야당은 여권의 주요 국정 운영 파트너이고 동시에 이들의 목소리는 소수 의견이기에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 우 의장은 나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중단시켜서는 안 됐다. 우 의장의 이번 조치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가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정치적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과거 비상계엄 정국에서 존재감을 보였던 우 의장이 시간이 흐르며 점차 주목을 덜 받게 되자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부각시키기 위해 이처럼 이례적인 결정을 내렸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일각의 주장일 뿐 그것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만큼 드문 선례였기에 이런 해석이 등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 의장의 필리버스터 중단 조치 외에도 주목해야 할 사안은 또 있다. 현재 민주당은 이른바 '필리버스터 제한법'을 추진 중인데 이 법안에 따르면 필리버스터 연설자를 국회의장이 지정하고 해당 정당 의원의 5분의 1 이상이 본회의에 출석하지 않으면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킬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자주 필리버스터를 시도하면서도 정작 연설하는 의원 외에는 대부분 본회의장을 이석한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법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국민의힘이 빈번히 필리버스터를 시도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반대하는 법안을 민주당이 단독으로 강행 처리하는 데 맞설 수 있는 수단이 필리버스터밖에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현재 여권은 입법권과 행정권 모두를 장악하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것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사회과학에 ‘사회 자본’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개념을 처음 사용한 인물은 알렉시스 드 토크빌로 그는 이미 19세기에 이를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다가 1980년대 들어 다시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개념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사회 자본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은 20세기 후반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붕괴했을 때였다.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시장경제 체제가 옛 사회주의 국가들에 성공적으로 이식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로 사회 자본이 활용됐기 때문이다. 사회 자본의 개념은 학자마다 약간씩 다르게 정의되지만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핵심 요소는 바로 ‘사회적 신뢰’다. 사회적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는 시민사회가 활성화돼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시장경제 체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될 가능성이 크다. 제도나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자율에 기반한 경제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사회적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수용할 수 있는 제도나 장치의 형성이 어렵다. 대표적 사례가 우리나라의 ‘입시 지옥’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 유교 문화권에서 두드러지는데 그 배경에는 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 부족이 자리 잡고 있다. 제도에 대한 신뢰가 낮기 때문에 비교적 객관적인 시험 성적만이 유일한 입학 기준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유럽식 입시 시스템처럼 철학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방식은 명확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아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신뢰가 부족한 사회일수록 시민들은 공정성 문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믿음이 확고하다면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신뢰가 부족하면 모든 영역에서 공정성을 의심하게 되고 불공정 이슈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대장동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항소 포기 결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 이후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자 국민의 분노는 급격히 고조됐다. 이 사안을 둘러싼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검찰의 항소 포기 결정이 상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고 둘째는 이들이 수천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온전히 ‘보전’할 가능성이다. 이 중 국민적 분노가 집중된 지점은 단연 후자로 대장동 일당이 천문학적인 이익을 대부분 자신의 수익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국민의 분노가 상당 수준이라는 것이다. 민주당과 정부는 민사소송을 통해 이들의 부당이득을 상당 부분 환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장동 사건 관련자 중 한 명인 남욱이 검찰에 수백억원대 자산 동결 해제를 요청하며 해제되지 않을 경우 국가배상 청구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국민은 이런 여권의 주장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눈치다. 남욱의 사례처럼 1심에서 추징금을 한 푼도 내지 않게 된 다른 일당들도 이런 조치를 요구하면 국민의 분노는 더욱 커질 것이다. 물론 민사소송을 통한 이득 환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는 국민의 ‘인식의 영역’에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평생 성실히 일해도 꿈조차 꿀 수 없는 금액을 이들이 가져갈 것이라는 인식을 국민 다수가 가지면 이는 상당한 파급력을 지닌 정치적 사안이 될 것이다. 한마디로 조국 사태에 이은 또 하나의 ‘불공정’의 문제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럴수록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은 국민이 느끼는 분노와 박탈감에 진지하게 공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안은 정권 운영에 지속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이들의 수익 환수 방법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요사이 국회 선진화법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국회 선진화법이 없었다면 아마 이번 국정감사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난투극으로 점철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 선진화법의 제정 취지는 잃어버린 국회의 품격을 찾자는 것이었다. 난투극을 벌이지도 말고, 회의실을 점거하지도 말며, 품격 있는 언어로 좀 국정을 풀어 달라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국회 선진화법이 있다는 사실도 우리 정치판의 서글픈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언어와 글 이외에는 인간의 사고(思考)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없는데 국회 선진화법이 필요할 정도로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면 이는 국회의원의 품격은 고사하고 인간적 됨됨이를 의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국정감사를 보면 인간의 사고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인 언어조차 무기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참담하다. 일단 자신들이 속한 상임위와 무관한 문제를 두고 여야 의원들 간 비속어가 오간 것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결국 해당 의원들의 갈등은 사법 영역으로 넘겨질 모양이다. 다른 상임위에서는 이른바 반말 논란이 벌어졌는데 이런 갈등은 이번 국감의 ‘주제’가 두 가지밖에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조희대 대법원장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문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는 공통점이 있다. 아무리 여야 의원들이 격돌한들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것이다. 우선 조 대법원장의 문제를 생각해 보면 이렇다. 민주당이 조 대법원장에게 따지려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 환송 문제다. 그런데 해당 문제는 정치적 영역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즉, 사법적 판단 영역이라는 것인데 이럴 경우 민주당이 아무리 의회의 절대적 다수당이라 하더라도 사법권의 독립성을 침해해 삼권분립을 훼손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또 조 대법원장이 민주당의 요구에 응답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민주당은 소기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면서 삼권분립을 훼손한다는 역풍에만 직면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런 민주당에 대항하기 위한 카드로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장 문제를 꺼내 들고 있다. 그런데 김 실장이 현재 실정법을 어겼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의혹 제기 수준이어서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계속 김 실장의 국감 출석을 요구할 경우 역시 여론의 역풍을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사법부의 수장인 조 대법원장은 국정감사장에 불러냈으면서 왜 김 실장은 부를 수 없느냐’고 파상공세를 펼치면 여론은 국민의힘의 주장에 동조할 수도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는 구구절절이 설명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말 한마디로 끝내야 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지금 국민의힘은 김 실장이 조 대법원장보다 위에 있느냐고 주장하는데 이런 말 한마디는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 어쨌든 이번 국감은 이 두 인물이 지배하는 국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유감스럽게도 국감에 임하는 양 정당의 소재 빈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진짜로 따질 것이 있었다면 두 인물이 국감의 중심에 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감은 본래 입법부가 행정부의 업무를 감사하는 것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모두 입법부의 일원이다. 여당도 대통령 소속 정당이기 이전에 입법부의 일원이라는 말이다. 정권은 5년이지만 민주당의 생명력은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 것이기 때문에 여당이기 이전에 입법부의 일원으로 행동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이런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지금 국정감사가 이 모양인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판에 합리성이 돋보이는 날이 올까 정말 궁금하다.
경찰은 무소속 이춘석 의원이 차명으로 10억원이 넘는 규모의 주식을 매입한 정황을 포착하고 자금 출처를 추적 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의원이 최근 4년간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한 재산이 4억2천만원에서 4억7천만원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이 의원 측은 경찰 조사에서 “출판기념회와 경조사비 등을 통해 주식 투자금을 마련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정치인들은 자금 출처를 해명할 때 ‘출판기념회’와 ‘경조사비’를 마치 ‘마법의 지팡이’처럼 활용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이 의원의 해명이 사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 사례들을 살펴보면 어떤 정치인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현금이 발견되면 이를 출판기념회 수입이라고 주장하거나 수입을 초과하는 지출을 설명하면서 경조사비를 언급한 경우가 반복돼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례를 보면 해당 주장들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모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만약 사실이라면 출판기념회가 거액의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모금하는 창구로 기능하기 때문에 문제이고 거짓이라면 말할 것도 없이 문제다. 출판기념회를 둘러싼 이런 문제점은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일부에서는 아예 출판기념회를 금지하자는 주장도 제기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다지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기 어렵다. 출판기념회를 금지하면 다른 정치자금 모금 방식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예전이나 미술전 같은 방식이 그 대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서예작품이나 미술작품은 정해진 시장 가격이 없고 구매자의 주관적 평가에 따라 가격이 매겨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출판기념회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번에 김건희씨 오빠 집에서 발견된 이우환 화백의 그림 가격 논란을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대만에서 해당 그림은 3천만원에 거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해당 그림이 그 정도 가격에 팔렸다는 점과 다른 이유를 들어 위작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위작이 아니더라도 그림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면 그런 가격에 팔릴 수도 있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출판기념회조차 책을 정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예술품을 통한 자금 모집은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출판기념회 자체를 금지하기보다는 출판기념회에서의 거래 규모를 철저히 관리하고 책을 반드시 정가에만 판매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첫 번째 조치는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카드 결제로만 구매할 수 있도록 의무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정가 판매 원칙을 효과적으로 지키게 할 수 있다. 동시에 한 사람이 1부를 초과해 구매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아무리 정가로 판매하더라도 한 사람이 수십부를 구매한다면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출판기념회에서 발생한 판매 금액을 선거관리위원회에 정확히 보고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출 내역까지 함께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이 발견되거나 신고 재산보다 많은 지출이 드러날 경우 출판기념회를 자금 출처의 ‘알리바이’로 삼는 일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우리는 흔히 ‘돈 안 드는 정치’를 이야기하지만 현실적으로 돈이 들지 않는 정치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돈 적게 드는 정치’를 지향하는 것이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접근이다. 그런 점에서 합법적인 정치자금 모집 창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합법의 외피를 쓴 탈법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이라도 제도 정비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