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더하기] 2년마다 묻자, 잘 하고 있느냐고

지방선거가 끝이 났다. 어느 쪽도 웃을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 국민들의 선택이 놀랍다. 12·3 내란을 막아내고, 탄핵을 이끈 국민들은 민주당에도 무조건적인 신뢰를 주진 않았다. 정치권을 향한 국민들의 평가는 아직 냉정하다. 이제 정치가 다시 논의의 장을 열어야 한다. 12·3 내란과 탄핵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은 하나다.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문제였나, 아니면 그런 사람에게 그토록 막강한 권력을 몰아준 제도가 문제였나. 징검다리 탄핵을 맞는 국민들은 참담하다. 답은 분명하다. 그런 사람에게 그런 권력을 몰아준 5년 단임 대통령제라는 제도의 한계다. 1987년 개헌으로 5년 단임제가 시행된 이후 무려 38년이 흘렀다. 1인당 GDP는 2,643달러에서 36,232달러로 14배 가까이 늘어났고, 합계출산율은 1.58명에서 0.6명대로 떨어졌으며,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4.3%에서 20%를 넘어섰다. 인구 다섯 명 중 한 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인구를 나이순으로 세웠을 때 정중앙의 나이가 25.1세에서 46.5세로 변화했다. 7%가 되지 않았던 1인 가구의 비중이 이젠 35%를 돌파했으며, 통계에 잡히지조차 않았던 국내 체류 외국인이 이젠 250만 명을 돌파했다. 세계도 변했다. 독일 통일과 소련의 해체, 사회주의 국가의 퇴조와 냉전의 종말, 디지털 혁명과 세계화 그리고 다시 신냉전 체제에 이르기까지, AI와 로봇으로 대표되는 미래 산업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내일을 향해 가는 중이다. 우리 사회와 국제사회는 변화와 성장, 격동의 시기를 한 번도 멈추지 않고 헤쳐왔다. 바뀌지 않은 것은 단 하나, 이미 수명이 다한 5년 단임 대통령제를 품은 대한민국 헌법이다. 단 한 번의 선거로 5년간은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는 대통령, 그 권력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임기가 끝나봐야 안다. 국민은 그저 기다릴 뿐이다. 5년 단임제의 악순환 앞에서는 진보도 보수도 따로 없었다. 잘못된 정책을 중간에 바로잡을 재신임의 기회는 없고, 퇴임 후엔 어김없이 전임 지우기가 시작된다. 어느 당이 집권해도 레임덕, 정치보복, 정책 단절의 패턴은 반복됐다. 국가의 장기 과제는 5년마다 리셋되고 전략의 축적은 불가능해진다. 그런데도 이 실패한 제도는 38년째 바뀌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이 악순환을 끊자는 개헌 논의가 재점화됐다. 개헌을 국정과제 1호로 선정한 이재명 정부는 대통령 4년 연임제의 도입과 함께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국회와 지방정부로 분산하자는 구상을 내놓았다. 시민사회와 학계에서는 지방분권 강화, 기후위기 헌법 명시, 기본권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하는 등 정치권보다 더 넓은 범위의 개헌을 요구해왔다. 우원식 전 국회의장은 단계적 접근을 제안했다. 2026년 지방선거와 함께 5·18 민주화운동의 헌법 전문 수록 등 이견이 적은 과제를 먼저 국민투표에 부치고, 2028년 총선에서 권력구조 개편을 완성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반대로 2026년 동시 투표는 이미 무산됐다. 개헌 논의가 또다시 미끄러지고 있다. 이 개헌이 완성되면 권력구조뿐 아니라 선거의 구조 자체가 바뀐다. 4년 중임제가 도입되면 행정권력을 구성하는 대선·지방선거와 입법권력을 구성하는 총선이 2년 간격으로 교차하게 된다. 국민이 2년마다 권력을 심판하는 구조, 미국의 중간선거와 같은 효과다. 여당이 의석을 잃으면 대통령은 즉각 국정 방향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권력이 스스로 민심을 읽게 만드는 구조다. 흩어진 선거를 통합함으로써 막대한 선거 비용과 정치 에너지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지방선거도 제자리를 찾는다. 지금 지방선거는 후보의 지역 공약보다 여당이냐 야당이냐가 먼저다. 지역 현안은 실종되고 중앙 정치의 유불리만 남는다. 지방선거가 대선과 함께 치러지면 비로소 중앙 정치의 대리전에서 벗어나 진짜 지역의 민심을 묻는 선거로 거듭날 수 있다. 그 변화의 기회는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다. 2030년 대선부터 4년 중임제를 도입한다면 이후 대선과 지방선거를 같은 해에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가 자연스럽게 만료되는 2030년은 대통령 임기 단축이라는 개헌의 최대 난제를 피해갈 수 있고, 지방의원, 지자체장, 국회의원 누구도 임기 단축이라는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 기회를 살리느냐 마느냐는 오롯이 정치의 몫이다. 개헌은 언제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말 속에 묻혀왔다. 그러나 12·3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제도가 사람을 막지 못하면 민주주의는 언제든 무너진다. 완패도 완승도 아닌 성적표를 받아든 정치권은 이제는 국민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2028년 총선과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못 박아야 한다. 국민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2년마다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당신들은 잘 하고 있느냐고. 다음 지방선거가 그 시작이어야 한다.

[생각 더하기] 태국-캄보디아 분쟁 교훈과 과제

아직도 뜨거운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및 중동전과 함께 동남아전쟁은 또 다른 모습의 전쟁이다. 2025년 발발했던 네 차례의 태국-캄보디아 국경 분쟁은 단순한 국지전을 넘어 정밀 유도무기와 첨단 감시자산이 정글이라는 지형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보여준 독특한 형태의 현대전 시험대였다. 특히 한국산 정밀 유도무기가 실전에서 거둔 성과와 캄보디아군의 구조적 한계는 남북이 대치 중인 우리 군에 준엄한 교훈을 던진다. 군사적 교훈으로는 첫째, 기술 불균형이 초래한 전장의 일방성이다. 국경 분쟁에서 태국 공군은 한국산 GPS 유도 활공폭탄인 KGGB로 캄보디아군의 핵심 지휘소와 포병진지를 정밀 타격했다. 다른 한편 한국산 최신예 호위함과 초계함을 갖춘 태국 해군은 해상 봉쇄 및 거부 작전을 수행하고 정밀 함포사격으로 지상군 작전을 지원했다. 과거 ‘정글전’은 빽빽한 밀림이 천연 방패 역할을 해 첨단 무기의 효율이 떨어진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태국군은 전천후 감시 및 추적장치(EO/IR 센서)가 장착된 드론과 정밀 유도 탄약의 조합으로 이 공식을 깨뜨렸다. 반면 캄보디아군은 구형 방사포와 지상군 병력에 의존한 가운데 낮은 명중률로 인해 민간인 피해만 양산하며 국제적 비난과 전술적 패배를 동시에 안았다. 이는 현대전에서 제해권·제공권 상실과 ‘정밀도의 열세’가 곧 재앙으로 직결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둘째, 지휘 구조의 비대화로 무력화된 군사지휘권 효능성 문제다. 캄보디아군의 결정적 패인은 ‘별들의 인플레이션’으로 상징되는 기형적 지휘 구조에 있었다. 병력 12만5천명에 3천여명의 장성단은 머리만 크고 몸집은 작은 형태로 군사적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이러한 구조는 긴박한 실전 상황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을 방해했고 현장 부대와의 유기적인 협조를 마비시켰다. 한편 압도적 화력에 의한 압승에도 불구하고 태국군은 평정작전에는 실패했다. 주간에는 태국군이 점령하고 야간에는 캄보디아 잔당이 출몰하는 소모전 양상은 확고한 점령지 통제를 위한 충분한 전력과 일원화된 지휘 체계의 부재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 전쟁은 북한의 비대칭 위협과 대치 중인 우리 군에 핵심적인 대비 방향을 제시한다. 우선 북한의 양적 우세를 상쇄할 수 있는 KGGB 같은 가성비 높은 정밀 유도무기를 충분히 비축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최첨단 전투기 운용과 함께 ‘전투기 도태’의 개념을 재정립, 노후 기체에서도 정밀 유도무기를 운용할 수 있게 개선해 ‘저비용·고효율’의 거부적 억제력을 극대화하는 발상의 일대 전환 또한 필요해 보인다. 또 군 지휘 구조의 슬림화와 효율화, 군 본연의 임무 재강화 차원에서 군 구조 혁신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종합적 분석과 정밀한 처방이 요구된다. 캄보디아의 사례처럼 군이 정권안보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거나 상부 계급 구조가 비대해지면 실질적인 작전지휘권 행사에 혼선이 생기고 결국 첨단 무기도 제값을 못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인구절벽에 따른 병력 감소에 맞춰 계급의 거품을 걷어내고 ‘전투력 극대화’를 위한 현장 중심의 체계로 재편해야 함을 일깨운다. 나아가 하이브리드전 및 점령지 통제 능력 강화가 중요한 만큼 바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주야간 주도권이 바뀌는 혼란은 정규전 승리 이후의 ‘안정화 작전’이 얼마나 난해한지 보여준다. 잘 훈련된 ‘안정화 작전부대’의 감시장비와 열상장비를 활용한 24시간 감시망 구축, 그리고 특수목적 부대의 운영 효율성을 높여 적의 게릴라 전술에도 대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현대전은 이제 적정 상비군 병력의 규모와 함께 ‘데이터와 정밀도의 싸움’이다. 태국이 한국산 무기로 승기를 잡은 것은 우리 방산 기술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동시에 우리 스스로가 그 무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거울이다. 기술의 격차는 곧 안보의 격차다. 태국-캄보디아 분쟁의 포성은 한반도의 평화가 오직 견고한 힘의 우위와 효율적인 군 구조 위에서 보장될 수 있음을 재확인시켜 준다.

[생각 더하기] 며느리 모임

‘며느리 모임’, 이는 일가친척 며느리들 모임이 아니며 별칭이다 보니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모임인지를 먼저 밝힌다.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배나무골 마을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며느리들의 모임으로 햇수로는 30여년의 연륜이 됐다. 배나무골은 전체가 단독주택의 도농복합형으로 대동회 등 세시풍속 문화를 지켜오는 토속적 전통이 있어 지역사회에 회자되고 있다. 모임 배경은 노모를 모시는 분이 배나무골 새집에 이사해 보니 마을에 시부모님을 봉양하는 며느리 10여명의 효행에 공감하며 각별한 애착을 느껴 상당한 기금과 함께 명절 등에는 본인 집으로 초대해 윷놀이 등의 격려에 남편들도 더불어 함께하게 된다. 오래전 유명을 달리한 이분은 수원시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특히 우리나라를 거점으로 개발도상국에 화장실문화 개선 사업을 선도한 세계화장실협회 초대 회장을 지낸 인사로 존함을 밝히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며느리, 아들의 아내를 칭하는 친족 용어로 한자로는 ‘자부(子婦)’다. 조선시대 유교 가례(家禮)가 정착되면서 ‘며느리’라 불렸으며 시부모를 친부모처럼 섬겨야 한다는 뜻이 있다. 언어적 유래는 민간설에 메(밥), 나리(나르다), 즉 제사 때 음식을 올리는 역할을 뜻하나 명확한 정설은 없다. 며느리 단어는 단순한 호칭을 넘어 가족제도 그리고 여성의 역할과 신분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언어라는 점에서 지금은 그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필자는 대형 서점에서 ‘며느리’ 제목의 도서를 검색해 봤다. 16개 음반을 제외하고 장르 별로 우화, 전기 소설과 유아와 아동의 전래동화책, 인문도서로 고부관계의 심리학 등 140여권이 있는데 이 중 재고 도서가 7권에 불과한 것은 독자가 적다고 해석된다. 재미있는 건 유아용으로 ‘방귀’ 제목이 16권이나 있음은 며느리의 시집살이 어려움을 해학적으로 풍자한 흥미로운 발상이다. 우리나라의 모임을 반추해보면 목돈 마련에 초점을 둔 ‘계모임’을 들 수 있다. 세계적 유력 일간지인 미국 뉴욕타임스 2024년 9월7일 자에 유명세를 타고 있는 ‘K-문화’ 전통의 일면으로 계모임을 소개했다. ‘우정을 돈독히 하는 한국인의 비결’ 제목의 기사로 미래의 지출에 대비해 돈을 모으는 계모임을 한글 발음 그대로 ‘gyemoim’이라 쓰고 ‘Saving Group(저축 모임)’으로 한국인 특유의 공동체정신에 관심을 주목시킨 바 있다. 며느리들이 이젠 모두 시어머니가 된 연륜이 됐지만 고인이 언급했던 노인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가정이 진정 행복한 삶이라는 고귀한 뜻이 사회적 가치로 동화되는 소박한 바람에 한마음으로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4월 초에는 그간 알뜰하게 관리한 기금으로 봄나들이 친목 기회를 가졌다. 관광버스의 차량 전면에 ‘며느리 모임’이라는 전광판으로 눈길을 끌었으며 여행에서 만난 같은 연배의 여성들은 정감 있고 특유의 친근함을 주는 모임 명칭에 함께하고 싶다는 공감에 효행친화적 참모습의 의미를 나누기도 해 흐뭇했다. 특히 며느리에 내재된 한국적 효행의 깊은 뜻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할 책무가 ‘며느리 모임’에 있음을 상기하면서 고인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며 이분의 바람이 사회에 긴 울림이 되기를 소망한다. 여담으로 이젠 자식들 세대에 승계가 필요하니 ‘원로 며느리 모임’으로 승격을 했으면 좋겠다. 며느리, 한 가정에서 버팀목이 된 이 소중한 단어가 5월 가정의 달의 끝자락에 자긍심과 효행의 미덕을 일깨우는 여운의 아름다운 메시지가 되기를 기대한다.

[생각 더하기] 6기 지역사회보장계획, 지역복지 ‘골든타임’

앞으로 4년, 초고령사회와 지역소멸이라는 거대한 변곡점 앞에서 우리는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2026년은 향후 4년(2027~2030년)간 지역의 복지 이정표가 될 6기 지역사회보장계획을 수립하는 해다. 사회보장 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 제35조에 따라 전국 17개 시·도와 226개 시·군·구가 수립하는 이 계획은 단순 법정 사무를 넘어 인구 구조의 격변기에 지역 공동체의 생존전략을 짜는 중차대한 작업이다. 특히 2026년 현재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에 본격 진입했으며 돌봄 공백과 1인 가구 증가, 사회적 고립 문제는 더 이상 미래의 우려가 아닌 눈앞의 현실이 됐다. 이번 제6기 계획은 지역복지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골든타임’이 돼야 한다. 제5기 계획(2023~2026년)은 코로나19 이후 심화된 사회적 고립과 돌봄 공백 문제에 대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출발이었다. 위기 가구 발굴 체계를 정비하고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역할을 강화한 것은 ‘지역 중심 돌봄’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진전이었다. 그러나 현장의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 계획은 거창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예산은 부족했고 부서 간 칸막이 행정은 여전히 견고했다. 지역 간 복지 역량의 격차 또한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제6기 계획이 성과 나열 보고서가 되지 않으려면 지난 4년의 구조적 한계를 정면으로 진단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솔직한 평가 없이 새로운 도약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6기 계획은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는 전환 전략이어야 한다. 필자는 다음 세 가지 방향이 계획의 핵심 축이 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첫째,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의 실질적 구현이다. 2026년 3월27일부터 본격화된 통합지원법에 발맞춰 이제 복지는 분절된 서비스를 넘어 지역사회 기반의 통합 시스템으로 진화해야 한다. 노인 인구 1천만 시대의 돌봄은 양적 확대를 넘어 질적 결합을 요구한다. 지방정부가 컨트롤타워가 돼 대상자 발굴부터 서비스 연계, 사례 관리까지 책임지는 구체적인 실행체계가 이번 계획에 반드시 담겨야 할 것이다. 둘째, 기술을 복지의 도구로 활용하는 ‘디지털 스마트 사회보장’을 구현해야 한다. 복지인력 부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는 인력 중심 대응에서 기술 기반 대응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위기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고 빅데이터를 통해 복지 사각지대를 과학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고령층 등 디지털 취약계층이 소외되지 않도록 ‘디지털 포용’ 전략도 반드시 병행 설계돼야 한다. 셋째, 부서 간 칸막이 행정을 허물고 실질적인 재정 실행력을 확보해야 한다. 복지는 더 이상 복지부서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주거, 고용, 보건, 교육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통합형 사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부서 간 협력체계와 계획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재정 투입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지역복지의 실질적 컨트롤타워로 기능할 수 있도록 연계·조정의 권한과 책임을 강화하는 거버넌스 혁신 내용도 계획에 포함돼야 할 것이다. 이번 계획이 형식적인 수치 채우기에 머문다면 우리는 다가올 거대한 사회적 위기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격차를 직시하는 용기, 부서의 경계를 넘어서는 협력, 그리고 기술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혜안이 모일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지역 공동체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생각 더하기] 시대전환 설계할 리더를 기다리며

민선 9기 지방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시민은 경제와 일자리를 원하지만, 후보들은 여전히 국정의 대리인인가 견제자인가를 두고 소모적인 구호를 반복한다. 그 사이 바깥 세계는 공급망 충돌과 에너지 위기로 요동치고, 지역의 현실은 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전쟁 한 번에 유조선이 멈추면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시대다. 세상은 탐욕으로 점점 아사리판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모두의 시선은 용인 반도체에만 쏠려 있다. 그 이면에서 경쟁력을 잃은 중소기업, 전환 압박에 내몰린 하청업체와 노동자, 버티는 것조차 버거운 농민들은 철저히 지워져 있다. 나는 소위 접경지역으로 분류되는 버리진 땅, 잊혀지고 있는 도시, 김포에서 에너지 전환과 탄소사회 이후의 세상을 꿈꾸며 살아간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이라는 목표는 존재조차 희미하다. 대신 80년대식 토건 개발이 ‘지역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된다. 탄소중립은 산업 구조를 바꾸는 전략이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예산을 따기 위한 사업 목록으로 쪼개졌다. 중앙에서 내려온 정책은 지방에 도착하는 순간 힘을 잃고, 시민은 체감하지 못하며 기업은 대응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가 굳어졌다. 문제는 인식이다.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을 국가 단위로만 보는 순간, 정책은 반쪽이 된다. 설계는 중앙이 할 수 있지만, 변화는 지역에서만 일어난다. 이 단순한 사실이 무시될 때 정책은 존재하지만 작동하지 않는다. 경기도는 이 모순이 가장 극단적으로 응축된 공간이다. 산업, 인구, 에너지 소비가 모두 집중된 곳, 동시에 수도권이라는 특수한 구조 속에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반도체·자동차·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 밀집된 이곳은 한국 탄소 문제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경기도의 성공은 곧 국가의 성공이고, 실패는 곧 국가의 실패다. 그러나 지금의 경기도는 여전히 중앙 정책을 따라가는 하위 집행자에 머물러 있다. 평균을 기준으로 설계된 정책은 초집적 지역인 경기도와 맞지 않는다. 경기도는 재생에너지 발전시설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분산형 에너지, 저장장치, 마이크로 그리드, 지역 간 전력 연계를 결합한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각 지자체가 예산을 놓고 경쟁하는 구조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광역 단위의 통합 전략과 공동 투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경기도는 단순한 정책 수행 주체가 아니라 ‘전환의 시험대’이며, 동시에 ‘모델 창출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과 직결된 경기도 산업은 이미 탄소 규제의 한가운데에 있다. 기업이 아니라 지역 단위에서 에너지 체계를 바꾸지 않으면 경쟁력은 급격히 무너질 수밖에 없다. 경기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중앙정부 정책의 하위 집행자가 아니라 독립적인 전략 설계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둘째, 지역 간 협력체계를 구축해 ‘에너지 생산-소비 연계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 셋째, 지역 기반의 에너지 자립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완전한 자급자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의존도를 줄이고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향을 의미한다. 넷째, 단순한 홍보와 권고가 아닌 ‘역할의 전환’을 요구한다. 경기도는 더 이상 중앙정부 정책을 전달하는 통로가 아니라, 새로운 전환 모델을 설계하고 실험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결국 답은 하나다. 외부 의존을 줄이고 내부를 연결하는 ‘지역 에너지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 분산형 전원, 저장, 수요 관리, 디지털 플랫폼을 결합하고, 시민과 기업이 직접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생각 더하기] ‘웰다잉’, 장례 패러다임 변화

세상사 가치 있는 일이 수없이 많이 있지만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에게 죽음과 연계되는 사회적 가치를 교과서적인 좋고, 옳고, 바람직한지 관점에서의 판단보다는 실용성과 정성적인 효과 측면에서 피력한다. 중앙부처에서는 문화예술 분야와 외국 언론 대상 해외홍보 및 새마을운동 홍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신도시 일선 기관 책임자와 주로 외국과의 교류협력을 담당해 국제통이라는 필자는 유품정리·관리와의 인연에 대한 사유를 많이 듣는다. 생의 마무리를 반듯하게 정돈하고 천국으로의 먼 여행길을 떠나도록 생존해 있을 때 준비하는 웰다잉문화운동에 적극 공감했기 때문에 웰다잉 국내외 도서에서 부족한 식견을 새롭게 익혀 가며 이를 나누는 행정봉사의 자긍심이라고 대답한다. 2025년 우리나라 노인 인구 20%를 넘어선 초고령사회는 한편으로 다사(多死)사회를 의미한다. 1인 가구가 2025년 말 1천29만 가구로 전체의 42.2%을 차지하며 이 중 65세 이상 고령층이 328만 가구로 31.9%나 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수치의 맥락에서 볼 때 다소 금기시되는 죽음을 이젠 본인은 물론이고 자손들도 현실 문제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생존의 노인복지정책도 중요하지만 웰다잉, 즉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자기 스스로 결정하며 품위있게 맞이하는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실천하는 일이다. 2019년 우연히 접한 유품정리업이 한국표준직업분류에 등재가 안 된 점에서 행정적 제도화에 뜻을 두고 사회적 인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 대한 공론화를 위해 일본의 사례를 연찬해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언론에 수십회의 기고와 유력 일간지와의 인터뷰 그리고 기고문에 대한 공감으로 강의활동, 특히 웰다잉의 한 축인 사전유품정리 관련 토크쇼 등을 통해 다음 네 가지 사회적 가치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게 됐다. 한편 이 같은 주제에 관심을 더한 것은 1월 을지대 장례지도학과와 죽음문화연구소가 주최한 ‘장례 패러다임 변화’ 세미나에서 다수의 젊은 장례학도가 참석해 함께하는 모습에서 네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펜을 들었다. 첫째, 삶의 마무리를 육체적 생명, 사회적 관계와 정신적·물질적 유산에 두고 있는 웰다잉문화운동이다.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서도 자신 및 가족에게 심신의 부담을 덜어 주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그리고 유언장 쓰기와 이를 통한 기부문화는 웰빙의 연장선이자 가치 있는 삶의 한 단계다. 둘째, 언젠가는 내가, 우리집이 겪어야 할 일이 유품정리다. 필자가 관리하는 협회에서 실제의 비즈니스에 부응해 ‘유품자원순환관리사’ 명칭을 민간자격 등록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핵가족 시대의 1인 가구 증가에서 유족 또는 고객이 전문업체에 위탁하는 사전·사후 유품정리와 생활환경 보전의 거소 정리다. 한편 유품의 자원순환 그리고 기부와 판매를 통한 환경적·경제적 이점의 실용적 가치다. 셋째, 회원 가입비와 매월 납입금 없이 무료 가입 또는 상담만으로도 장례비 할인과 여러 가지 서비스 혜택 및 발인 전에 정산하는 후불제상조다. 특히 선불제 가격 대비 30% 절감으로 경비 걱정을 덜어주는 경제성, 안전성, 편의성 등의 이점이 있다. 무엇보다 효행의 기준이 될 수도 있는 선불제상조 가입에 경제적 문제 등으로 조치하지 못한 입장에서 갖는 상대적 박탈감을 유연하게 해소하는 효행친화상조인 점에서 정성적 가치가 크다. 넷째, 조문의 최고 가치인 고인에게는 추모를, 유가족에게는 애도의 장례문화다. 고인 기억과 슬픔의 마음가짐을 갖는 빈소 환경을 위해 고인의 발자취를 담은 조문보(弔問報) 리플릿과 사진전, TV 동영상 등은 ‘K-장례문화’로서 제도화시킬 수 있는 가치다. 가정에서 제일 중요한 대사(大事)인 장례도 패러다임의 변화, 즉 멋진 이별의 생전장례식, 친인척 위주의 가족장, 무빈소 등의 혁신성이 사회적 관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초고령사회의 인공지능(AI) 시대 장례문화로 온라인 조문, 자녀 수의 감소와 상주의 고령화에 따른 조문객 축소 등이 나타나고 있다. 제례봉사(祭禮奉祀)는 종교별 차이가 있으나 조상 각각의 기제(忌祭)에서 통합 형태로 간소화되고도 있지만 우리의 전통적 의례 미덕이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에 부응하는 장례산업의 행정관리 정책과 비즈니스 미케팅도 변환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생각 더하기] 시대착오적 의료기사법, 정비해야

최근 언론은 인공지능(AI) 시대에도 대체되지 않을 유망 직종으로 물리치료사를 꼽는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다르다. 시대는 ‘뉴노멀’과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요구하며 병원 밖 재활을 강조하고 있지만 낡은 의료기사법과 직역 간 이해관계는 물리치료사를 여전히 과거의 틀에 가두고 있다.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대한의사협회의 ‘환자 안전’ 논리다. 의협은 물리치료사가 의사의 ‘지도’가 아닌 ‘처방과 의뢰’에 따라 업무를 수행할 경우 환자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실제 임상 현장과 괴리가 있다. 이미 다수의 보건소와 복지관에서 시행되고 있는 지역사회중심재활(CBR) 사업을 통해 물리치료사는 지역사회 기반 재활의 안전성과 전문성을 오랜 기간 축적해 왔다. 더욱이 병원 내에서도 치료는 의사의 진단을 기반으로 물리치료실 코드 처방으로 이뤄지고 물리치료사는 환자의 상태를 직접 평가한 후 그에 맞는 치료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지시 수행이 아니라 전문적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와 ‘의뢰’라는 표현 차이에 집착하며 제도 변화를 막는 것은 환자 안전을 위한 논의라기보다 구조적 이해관계에 따른 저항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문제의 본질은 ‘안전’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특히 최근 논의되고 있는 도수치료 관리급여 문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높은 도수치료 비용이 문제로 지적돼 왔지만 실제 현장에서 치료를 수행하는 물리치료사에게 그 가치가 정당하게 반영되기보다 병원 수익 구조 안에서 활용된 측면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급여 논의는 이러한 구조를 개선하기보다 가격 통제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실제 치료 제공 주체인 물리치료사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당사자가 배제된 상태에서 이뤄진 결정은 결국 또 다른 왜곡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조는 분명한 결과로 이어진다. 낮게 책정된 수가로는 숙련된 물리치료사의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렵고 이는 개원가에서 물리치료사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리치료사의 감소는 곧 재활 서비스 접근성 저하로 이어지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된 의료기사법 개정안이 충분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지연되고 있는 현실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이는 단순한 법안 논의를 넘어 국민의 재활 접근성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보다 책임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의 요구는 새로운 권한을 달라는 것이 아니다. 1964년 ‘의료보조원법 시행령’에는 물리치료 업무가 ‘지시 또는 의뢰’에 의해 이뤄지도록 명시돼 있었다. 그러나 1972년 의료기사법 개정 과정에서 ‘의뢰’는 삭제되고 ‘지도’ 중심 체계로 변화했다. 이 변화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물리치료사의 역할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벽으로 남아 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이번 의료기사법 개정안은 물리치료사들을 단독개설 주체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진단과 처방이라는 체계 안에서 물리치료사가 환자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을 열어 달라는 것이다. 특히 거동이 어려운 환자를 위한 방문 재활 서비스는 고령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직역이 아니라 국민이다. 병원의 문턱을 넘지 못해 재활의 적기를 놓치는 환자가 더 이상 발생해서는 안 된다. 물리치료의 전문성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제도를 현실에 맞게 정비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과제다.

[생각 더하기] 세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애인의 날

봄이 오면 꽃이 피듯 4월20일이면 장애인의 날 기념식이 어김없이 열린다. 복지부와 17개 광역시,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는 비슷한 현수막을 걸고, 비슷한 축사를 내고, 상장과 꽃다발이 오갈 때마다 큰 박수를 보낸다. 행사의 백미는 여전히 기념품이다. 물론 기념품은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받을 수 있다. 참으로 익숙한 풍경이다. 그런데 왜 하필 4월20일일까. 우리 법은 매년 4월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그날부터 1주간을 장애인주간으로 두고 있다. 지금의 법정기념일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1972년 민간에서 시작된 ‘재활의 날’ 행사가 있었고 이후 ‘장애인재활대회’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다 1991년 장애인복지법 개정을 통해 법정기념일이 됐다. 첫 법정기념일 행사를 ‘제1회’가 아니라 ‘제11회’로 부른 일은 상징적이다. 이날이 정부가 갑자기 만든 날이 아니라 민간의 오랜 축적 위에 세워진 날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26년 4월20일은 제46회 장애인의 날이다. 왜 날짜가 4월20일이 됐는가를 떠올려 보면 이날에는 다소 한국적인 정서가 배어 있다. 4월은 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이고 20일 무렵은 긴 겨울을 지나 바깥 활동이 가능해지는 시기다. 4월20일은 장애인을 생각한 제도 이전에 장애인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좋은 계절감과 생활감각을 담은 날이기도 했다. 이 지점에서 생각은 갈라진다. 우리는 참 따뜻한 나라다. 그러나 따뜻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어느 봄날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장애인이 일상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제도와 구조를 바꾸는 데 더 많은 힘을 기울여 왔다. 유엔은 12월3일을 세계 장애인의 날로 기념하고 영국은 ‘장애인 역사의 달(Disability History Month)’을 통해 역사와 권리를 돌아본다. 스웨덴은 보편 설계와 접근성을 장애 정책의 중심 원리로 삼는다. 중요한 것은 기념 그 자체보다 장애인이 이동하고 배우고 일하고 살아가는 일상의 구조다. 그래서 묻게 된다. 우리는 장애인의 날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닐까. 기념품에 담긴 따뜻한 마음은 넘치는데 정작 교통과 교육, 고용과 주거에서 보편적 권리를 구현하는 일은 더디지 않았는가. 특별한 하루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하루가 장애인에게만 주어지는 위로로 끝나서는 안 된다. 날마다 동등한 하루가 보장되는 사회로 가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삶을 다루는 다수의 법률과 제도를 이미 갖고 있다. 문제는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통합적으로 작동하지 못해 왔다는 데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권리의 실현이다. 따뜻한 마음이 제도로 이어지고 배려의 언어가 접근 가능한 구조로 바뀔 때 비로소 장애인의 날은 하루의 행사가 아닌 사회의 수준이 될 것이다.

[생각 더하기] 백제 ‘피리’ 유물 발굴의 한계

우리가 사용해 온 피리는 신락적, 횡적, 고구려적 세 종류다. 신락적은 ‘제천의례’에서부터 전해지고 있다. 피리의 길이는 33㎝, 구멍은 3개·7개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구중이라는 사람이 피리를 처음 제작했다. 전통 음악에서 사용되는 악기 ‘패’는 ‘소각’이라고도 하는데 불교 전통악기로 불교에서는 교리를 음악으로 표현해 보급하기도 했다. 국립부여문화연구소는 백제 부여 사비왕궁터에서 1천500여년 전 피리와 목간을 발굴했다. 피리는 사비왕궁 경내 화장실로 추정되는 구덩이에 부러져 있었다. 피리의 탄소연대가 642년까지 나오며 568~642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제 사비왕궁이 멸망한 660년과 큰 차이가 없다. 일본에서는 백제 부흥을 위해 제38대 사이메이 일왕(655~661)이 일본군 파견을 준비했다. 663년 일본군 수만명이 금강지역 등에서 신라와 당나라군에게 격퇴되는 일도 있었다. 백제와 고구려는 신라와 당나라의 교류를 막으려고 군사 연합작전으로 신라의 중국 교역 뱃길을 차단했다. 백제, 고구려와 앙숙 관계가 된 신라는 당나라의 백제 공격에 합의했고 소정방이 이끄는 당나라 군사 13만명이 산둥성 내주를 출발해 백제 바닷가를 지나 부여 사비왕궁으로 향했다.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 5만 군사는 탄현을 넘어 황산벌로 진격하고 당나라 군사는 논산지역으로 육군과 수군이 공격하는 양면 작전으로 백제를 멸망시켰다. 660년 7월의 일이다. 사비왕궁을 점령한 신라와 당나라는 이곳에서 10여년 머물며 고구려 공격을 준비하고 각종 행사를 통해 가무를 즐겼다. 중국 대륙에서 생활하던 우리 선조 동이인은 봄과 가을 제천의례를 열어 북과 피리 등을 연주했다. 제례를 마친 후에는 모두가 모여 가무를 즐겼다. 동이인의 문화가 중국 은허지역 상나라에 전파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우리의 음악과 무용이 더욱 발전했다. 고구려는 수와 당나라에 고구려 악단의 상설 무대를 설치했다. 고구려의 무용 호정무·지서무·괴뢰무와 내원성·연양·명주 등의 노래에 중국인은 매혹됐다. 신라에는 회소·가야·무애·처용 ·지백 등의 무용과 동경·본주·처용 등의 노래, 백제 음악은 30가지가 넘었다. 일본 황실 궁내청 의례에서 연주된 ‘납소이곡’은 백제의 고유 음악이 전래된 것이다. 제천의례부터 사용돼 온 우리의 악기 제작은 중국, 일본보다 앞선다. 당나라는 백제를 멸망시킨 후 우이·신구·윤성·인덕·산곤·안원·빈문·지심·노산·고사 등 주와현 56개 지역의 행정구역을 재설정했다. 피리와 함께 발굴된 하서·개비·감라·고란·이림 등의 목간은 당나라 행정구역명이었다. 피리의 구멍이 3개, 7개인 것은 백제뿐이 아닌데 혹 가야·신라·당나라·일본인들이 사용하던 피리를 백제 것으로 판명한 건 아닌지 의문을 품게 된다. 피리의 탄소연대를 검사하면서 가야·신라·백제·당나라·일본지역의 대나무 재질 및 유전자형 검사도 함께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역사·유적·유물 조사는 국적, 연대, 생활사, 문화 등을 알 수 있는 것이므로 완벽할수록 좋다.

[생각 더하기] 고령자 이동권과 교통안전

최근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 이슈가 대두되고 있다. 2025년 부천제일시장 트럭 사고, 2024년 서울 시청역 사고 등 이 사고들의 공통점은 ‘페달 오조작’이었다. 멈춰야 할 순간에 오히려 가속페달을 밟는 이 실수는 단순한 운전 미숙이 아니다. 고령화에 따른 근력 저하와 인지 반응의 지연, 이른바 ‘고령자의 인지능력 저하’가 빚어낸 물리적 결과다. 한국교통연구원과 서울연구원 등 주요 연구기관은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이 교통사고 감소에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정은 엄중하다. 경찰과 지자체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률은 3년 연속 2% 초반대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면 왜 고령자들은 면허 반납에 주저할까. 고령자가 면허를 반납하는 순간 그들은 이동의 자유를 상실하고 사회적 고립이라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한다.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며 특히 ‘국가는 노인의 복지 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동권은 이러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조건이자 기본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중교통 서비스의 심각한 양극화를 겪고 있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농어촌지역에서 노인들에게 운전면허는 단순히 편리함을 넘어 병원에 가고 장을 보기 위한 ‘생존 면허’와 같다. 대안 없는 면허 반납 독려는 이들에게 이동권의 포기, 즉 삶의 질 포기를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제는 ‘면허 반납’이 아닌 ‘안전한 이동’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수요응답형교통(DRT) 및 자율주행을 통한 대중교통서비스 제공이다. 고정된 노선버스로는 교통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어렵다. 고령자가 원하는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DRT 등의 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자율주행 기술을 도입해 경제적, 물리적으로 효율적인 수요응답형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둘째, 고령 운전자의 인지능력을 보완할 기술적 지원이다. 일본의 ‘사포카’제도처럼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등을 국가 및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29년 1월부터 신차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고령 운전자의 보유 차량에 대해서도 애프터마켓을 활용해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장착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교통안전공단 시범사업 결과에 따르면 이 장치는 오조작 53%, 과속 21%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고령 운전자의 인지 능력 저하를 기술로 보완한다면 면허를 유지하면서도 사고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주기적인 전국 교통서비스 양극화 진단이 필요하다. 도시와 지방의 교통 서비스 격차를 정밀하게 진단할수 있는 지수를 개발해 교통 서비스 낙후지역을 우선적으로 선별해야 한다. 이러한 낙후지역에 노인 친화형 인프라(Age-friendly SOC) 예산을 투입하고 교통 서비스를 제공해 지역 간 이동권 격차를 해소하는 솔루션이 필요하다. 이제는 고령 운전자를 잠재적인 사고 유발자로 간주해 규제하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령 운전자의 실수를 방지하는 기술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대중교통 소외지역에 모빌리티 서비스를 보급해 ‘이동권과 교통안전이 공존’하는 교통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생각 더하기] 남양주 스토킹 범죄 ‘사후 대응’ 이대로 괜찮은가

남양주에서 벌어진 이번 스토킹 살해 사건은 결코 ‘우발적 범죄’로 치부할 수 없다. 충분히 막을 수 있었고 반드시 막았어야 할 예견된 참사였다. 그리고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 범죄를 ‘끝나지 않는 일상’으로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심지어 그 끝이 죽음일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를 버티고 있을지도 모른다. 피해자가 제도가 자신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느꼈을 공포와 절망을 생각하면 그 무게 앞에 쉽게 말을 잇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여전히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피해자는 여러 차례 구조신호를 보냈다. 신고를 반복했고 위치추적 장치까지 발견해 경찰에 알렸다. 이 정도라면 위험은 명백했고 대응은 즉각적이어야 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형식적인 조치와 안일한 대응뿐이었다. 접근금지 명령, 전자장치 지급. 이미 수차례 한계를 드러낸 조치들이 또다시 반복됐고 결국 한 생명은 보호받지 못한 채 사라졌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이 나라의 법과 제도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피해자가 스스로 몸을 숨기고 일상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 가해자는 경고만 받은 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구조.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인가. 더 심각한 문제는 정치의 무책임이다. 국회에는 스토킹 범죄 대응과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법안이 수십건이나 계류 중이다. 그러나 정쟁에 밀려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입법은 뒤로 밀린 채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이 무책임이 결국 또 하나의 죽음을 만들었다. 국민의 일상과 직결된 이른바 ‘민생 법안’이 시급성을 이유로 처리되는 상황에서 정작 가장 기본적인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법안들이 충분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계류돼 있다는 점은 우리 정치가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되묻게 한다. 왜 이 문제는 ‘민생 법안’들과 함께 다뤄지지 못했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대책이 아니다. 전자발찌나 스마트워치 같은 보조 수단에 기대는 수준을 넘어 위험 신호가 감지되는 순간 즉각 가해자를 분리·격리하는 강제적이고 선제적인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반복 신고가 있었다면 더 이상의 판단 유예는 없어야 한다. 그 즉시 신병 확보와 접근 차단이 이뤄지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스토킹 범죄는 더 이상 개인의 불운이 아니다. 명백한 구조적 실패이며 국가 책임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피해자에게 ‘설마’, ‘조심하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사회라면 우리는 또 다른 비극을 준비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국가는 더 이상 변명해서는 안 된다. 왜 피해자가 숨어야 하는지, 왜 위험을 알리고도 보호받지 못했는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답은 말이 아니라 제도로 증명돼야 한다. 이번 사건이 또 하나의 ‘안타까운 일’로 소비된다면 다음 희생자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 신호를 또 외면할 것인가.

[생각 더하기] 호리 카즈오와 태정관 지령, 독도는 일본령이 아니다

일본 시마네현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2월22일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강행했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는 이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뉴스 화면을 통해 익숙해진 그 풍경 앞에서 독도는 늘 감정의 언어로 먼저 다가왔다. 그러나 독도 문제의 이면에는 감정과는 별개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소리 높인 주장이나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오래된 문서 한 장이 묵묵히 전하는 기록의 이야기다. 그 기록을 다시 세상에 드러낸 인물이 일본 학자 호리 가즈오(堀和生)다. 1987년 당시 30대 후반의 교토대 사학자였던 호리 박사는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태정관 지령’(1877년)을 발굴했다. 메이지 정부 최고 행정기관이었던 태정관이 내무성에 전달한 이 문서에는 분명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울릉도(죽도) 외 1도는 일본과 관계없음을 명심할 것.” 이는 단순한 내부 검토 의견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공식 절차를 거쳐 행정 판단으로 내려졌다. 지령에는 한참 뒤인 2006년 발견된 ‘기죽도약도’라는 부속지도도 함께 첨부돼 있었다. 지도 속에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영토와 분명히 구분된 모습으로 확인된다. 19세기 후반 일본 정부가 이 섬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더 이상의 해석이 필요 없을 만큼 분명히 알 수 있다. 독도 문제는 여기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기록과 법리의 문제로 실체를 밝혀 주고 있다. 이 문서는 1905년 시마네현의 독도 편입 고시와 자연스럽게 대비된다. 일본 정부는 러일전쟁 중 독도를 무주지로 보고 선점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약 30년 전 같은 정부가 “관계없다”고 판단했던 섬이 어느 순간 주인 없는 땅이 됐는지에 대한 논리적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더구나 영토 편입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 고시 형식으로 처리했다는 점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국제법에서는 국가의 말과 행동의 일관성을 중요하게 판단한다. 한 국가가 공식적으로 표명한 입장은 이후의 주장과도 연결돼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른바 ‘금반언(禁反言·Estoppel)의 원칙’이 거론되는 이유다. 물론 구체적인 법적 적용을 둘러싼 논의는 신중해야 한다. 다만 과거의 공적 기록과 이후의 정책 사이에 놓인 간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는 여전히 남는 질문이다. 이 대목에서 호리 가즈오라는 이름은 깊은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한국의 주장을 대변한 인물이 아니다. 일본 학자로서 일본 정부의 문서를 읽고 그 문서가 말하는 바를 그대로 세상에 내놓았을 뿐이다. 국가의 입장에 편승하지도, 시대의 분위기에 침묵하지도 않았다. 그의 작업은 외부의 비판이 아니라 내부의 기록이 스스로 말하게 한 결과였다. 독도는 우리에게 역사적·정서적 의미가 깊은 공간이다. 그렇기에 더욱 이성적인 언어가 필요하다. 감정이 앞서기 쉬운 문제일수록 기록은 오히려 차분하게 읽혀야 한다. 호리 가즈오가 찾아낸 ‘태정관 지령’은 독도 문제가 단순한 외교 분쟁이나 민족 감정의 대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동시에 근대 국가가 남긴 문서와 그 일관성을 묻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증언한다. 독도를 둘러싼 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목소리가 커질수록 기록은 더 낮은 자리에서 오래 남는다. 150여년 전 일본 정부 스스로 남긴 한 장의 문서는 오늘의 주장에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질문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분노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문서를 다시 펼치는 일일지 모른다. 독도를 지키는 또 하나의 방식은 그렇게 기록을 끝까지 읽는 데서 시작된다.

[생각 더하기] 베풀수록 커지는 평등의 힘

3월의 이른 봄기운이 만연해지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날이 있다. 바로 매년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이다. 이날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여성 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용기 있는 발걸음을 되새기는 날이다. 그 시작은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궐기였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안전의 부재, 참정권 박탈에 맞선 그들의 외침은 인간다운 삶을 향한 절박한 요구였다. 이후 이는 세계 여성 인권운동의 상징이 됐고 우리나라도 2018년 법정기념일로 지정하며 성평등이 사회 전체가 지켜야 할 약속임을 공고히 했다. 권리는 선언을 넘어 실천으로 완성된다. 1898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인권선언문인 ‘여권통문’은 교육·정치·경제 영역에서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100여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성들은 여전히 일터와 가정,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차별과 불평등을 마주한다. 경제활동 참가율과 임금 격차, 의사결정 영역에서의 낮은 대표성은 성별 격차가 여전히 구조적 장벽으로 존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 경력중단과 돌봄 부담, 디지털 성범죄와 스토킹, 혐오 표현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안전과 존엄을 위협하는 과제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인천시는 이러한 현실을 해소하기 위해 성평등을 시정의 핵심 가치로 두고 정책과 제도를 정비해 왔다.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추진 중인 ‘제2차 인천양성평등정책 종합계획’은 일·생활 균형과 돌봄안전망 강화, 여성폭력 근절, 성인지 교육과 행정 역량 강화, 대표성 확대를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공직사회와 지역사회 전반에 성인지 관점을 확산하기 위해 공무원과 시민 대상 교육을 확대하고 정책 수립, 집행, 평가 전 과정에서 성별 영향을 분석하는 체계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돌봄 공백을 줄이고 취약계층 여성의 안전과 권리를 보호하며 디지털 환경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유형의 폭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평등을 향한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고용과 돌봄 등 삶의 전 영역에서 성별 격차는 구조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디지털 공간의 혐오와 왜곡된 인식은 사회적 갈등을 키우는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 성평등은 특정 계층의 요구가 아닌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결정짓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다. ‘모두를 위한 도시’ 실현의 필수 토대인 성평등 없이는 진정한 도시 발전도 시민의 행복도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일상에서 차별 대신 존중을 선택하고 있는지, 불평등한 관행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말이다. 성평등은 여성만의 과제가 아니다. 남성과 청년, 어르신 등 모든 시민이 함께 짊어져야 할 공동의 책임이다. 서로의 경험에 공감하며 불평등을 한 걸음씩 고쳐 나갈 때 비로소 ‘함께 사는 도시’는 완성될 수 있다. 3·8 세계 여성의 날은 과거의 용기를 기리며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는 날이다. 인천시는 앞으로도 성평등 가치를 시정 전반에 확산시켜 시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다. 안전한 일터와 공정한 평가, 돌봄의 무게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책을 정교하게 다듬고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는 상생의 틀을 넓혀 나갈 것이다. 특히 2026년 세계 여성의 날 주제인 ‘베풀수록 커진다(#GiveToGain)’는 성평등 실천이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는 바탕이 되고 나아가 공동체 전체의 가치를 키운다는 상생의 원리를 담고 있다. 인천이 앞장서 평등의 기준을 높이고 변화를 앞당기기를 소망한다. 거창한 구호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 내 자리에서 공정과 존엄을 선택하는 작은 실천이다. 모두가 각자의 잠재력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인천의 미래를 시민의 일상 속에서 실현해 나가겠다.

[생각 더하기] 고령사회에 진입하며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기대수명이 증가해 남자 80.8세, 여자는 86.6세로 늘어남에 따른 사회적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경제가 발전해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보건과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절식과 운동, 영양가 높은 음식 섭취, 위생 상태가 양호해 사회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고령사회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 이상인 사회를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가 1천만명을 넘어 초고령사회가 됐으며 출산율의 감소로 고령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고령화는 생산 주체인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거나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해 재화 및 용역의 부가가치는 물론이고 국내 총생산도 감소해 국가 몰락의 요인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저출산 현상으로 육아 부담, 주거 문제, 여성의 사회 진출, 고용 불안 등으로 결혼 및 출산을 기피하고 의료기술의 발달, 영양 상태 개선, 생활 수준 향상 등으로 노년층 인구가 증가하며 사회적 구조 변화로 결혼연령이 높아지거나 비혼 가구가 늘어 유소년층이 감소하는 등 인구 구조 변화가 지속되기 마련이다. 이런 현상은 생산가능인구 감소, 노동력 부족, 경제성장 둔화, 노인 부양비 증가 등의 문제를 유발한다. 즉,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경제성장률이 하락한다. 사회적 비용 부담 증가와 노인 비중 증가로 인해 연금, 건강보험, 요양비용 등 사회복지 지출이 늘고 노인 빈곤 및 소외는 퇴직 후 소득 감소, 사회적 역할 상실로 고독·빈곤율·유병률·자살률이 증가하고 인구 구조 불균형으로 인해 지방도시의 소멸 위기가 발생한다. 도시 및 지방의 인구 감소로 학령인구가 줄어 입학생이 거의 없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많은 학교가 폐교된 상태이고 심지어 지방에서는 유치원·초중등 미래통합형 학교를 신축한 곳도 있다. 폐교를 놀이시설, 숙박시설로 활용해 지역경제 활성화 및 일자리 창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지방대에서는 폐교를 피하기 위해 입학하는 학생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인 유학생 유치, 편법으로 입학해 학기시험 및 출석 등 불법이 드러나 물의를 빚곤 한다. 고령사회의 해결 방안으로 일자리 창출 및 정년제도 개편은 물론이고 정년을 연장시키고 임금체계 개선, 고령 노동 활용도를 상향 조정하는 한편 돌봄 체계 강화와 치매 국가책임제 등 의료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사회보장 및 연금개혁으로 재정건전성 확보, 연금 및 건강보험제도를 지속가능하게 개선하고 지자체는 문화·복지·스포츠·시스템 및 프로그램을 개발해 고령층을 위한 분위기 및 공간을 만들어 주고 여가 시간을 보내면서 즐길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령층이 건전한 사고와 건강한 생활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게 해 치매, 우울증, 자살을 예방하면 밝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 더하기] 서해5도 주민들도 명절 고향길 갈 권리를

병오년 설 연휴 전날인 2월13일. 이날 새벽부터 연안여객터미널은 사람들로 북적댔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날을 맞아 고향을 찾는 옹진섬 주민들이었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얼굴은 들떠 있었다. 저마다 양손 가득 선물꾸러미를 들고 있었고 터미널에서 만난 친구, 친지들이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인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1980년대의 악몽이 떠올랐다. ‘안개주의보 때문에 배가 지연된다’는 방송이 나오고 만 것이다. 그렇게 오전 8시30분 출발해야 하는 배의 출항시간이 오전 11시까지 늘어졌고 결국 ‘출항통제’라는 방송이 나왔다. 마음을 졸이며 출항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뒷모습을 보며 나 역시 인파 속에 휩쓸려 여객터미널을 나왔다. 다음 날인 14일 다시 연안부두를 찾았다. 방송에선 오늘까지 안개와 풍랑주의보로 고향 방문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오전 9시, 10시, 11시까지 대기하라는 방송만 나왔다. 또다시 불안함과 아쉬움, 화가 뒤섞인 감정이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둘 힘없는 표정으로 돌아서려는 순간 ‘출항통보가 났다’는 방송이 터져 나왔다. 터미널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우리나라 선수가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이라도 딴 것처럼 “와아”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민선 7기 옹진군의원이던 시절 ‘시계 완화 촉구결의안’을 국회에 건의한 적이 있었다. 시계 제한을 1㎞에서 700m로 완화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즉, 1㎞의 시계가 확보돼야 배가 뜨는데 700m만 보여도 배를 띄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자연인으로 돌아와 백령주민으로 살고 있는 지금 다시 한번 시계 완화를 촉구한다. 과거와는 달리 현재 항법장치가 첨단화됐고 자율주행까지 일상화된 정보기술(IT) 강국 대한민국에서는 시계를 완화해도 충분히 정상 운항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야간운항을 허가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해상 야간운항이 금지된 곳은 서해5도 항로가 유일하다. 대형 여객선의 건조와 운항도 시급하다. 5천t급 카페리호가 취항해 오후 10시 인천에서 출항해 오전 6~7시 섬에 도착하거나 역으로 섬에서 출발해 육지에 도착할 수 있다면 섬 주민들은 명절에 고향을 오가는 것은 물론이고 육지와 일일생활권으로 연결돼 백령, 대청, 소청 주민들의 해상교통주권이 보장될 것이다. 해상교통 개선을 위한 제안을 하나 더 한다면 여객선 운임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인천i-바다패스’ 제도시행으로 인천시민은 편도 1500원, 타지 사람들은 1박 이상을 하는 조건으로 뱃삯의 70%를 할인해주고 있다. 이러다 보니 배표를 예약하고 나타나지 않는 ‘노쇼’가 비일비재해 정작 배표가 필요한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또 부담 없이 섬을 오가며 쓰레기를 마구 버리고 불법 해루질을 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뱃삯을 올려 차액을 지역상품권으로 되돌려주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서해5도 주민들도 명절에 마음 졸이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 친지를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려본다.

[생각 더하기] 인천지역 경제 해법은 ‘인천공항’

공항이 도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이제 공항은 단순한 여객의 이동 통로를 넘어 도시의 생존과 성장을 결정짓는 거대한 경제 엔진으로 진화했다. 2024년 기준 인천국제공항이 인천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실로 막대하다. 항공 운송과 공항 운영은 물론이고 관광, 레저 등 연관 산업을 포함한 경제적 가치는 약 51조원에 달한다. 이는 인천지역 명목 지역내총생산(GRDP)의 약 41%에 육박하는 수치다. 취업 유발 효과 또한 약 21만명으로 인천 전체 취업자의 12%가 공항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인천공항은 단순한 기반시설이 아니라 지역경제를 떠받치는 거대한 산업 플랫폼이자 최대의 고용처인 셈이다. 이제 인천시는 이 거대한 동력을 지역경제 전반으로 확산시키고 도시의 삶과 유기적으로 융합할 수 있는 전략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사실 지금까지 인천공항의 비약적인 성장은 정부의 국제선 집중 정책과 내국인 항공 수요의 폭발적 증가, 그리고 저비용항공사(LCC)의 급성장이라는 삼박자가 맞물린 결과였다. 하지만 이러한 ‘여객 중심’의 수익 구조는 외부 환경 변화에 대단히 취약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우리는 이미 사스(SARS),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전 세계를 멈춰 세운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그 취약성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특히 코로나19 시기 공항 여객 수요는 무려 98% 급감했다. 연간 수천억원 규모의 흑자를 기록하던 공항이 하루아침에 대규모 적자의 늪에 빠지는 것을 목격하며 우리는 공항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단순히 사람과 짐을 실어 나르는 공간을 넘어 스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공항경제권’으로의 진화가 절실해진 것이다. 세계 주요 공항은 이미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공항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산업을 융복합하고 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초대형 복합문화공간 ‘주얼 창이’를 통해 공항 자체를 세계인이 찾는 목적지로 만들었다. 네덜란드 스키폴공항은 고도화된 물류 네트워크와 첨단 산업 클러스터를 결합해 글로벌 기업을 불러 모으고 있으며 일본 하네다공항 역시 공항 인접 지역을 연구개발(R&D)과 혁신 산업의 거점인 ‘하네다 이노베이션 시티’로 육성 중이다. 이들에게 공항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거쳐 가는 경유지가 아니라 비즈니스가 일어나고 문화가 소비되는 도시 그 자체다. 인천 역시 공항이 주도하고 민간이 동반 성장하는 비즈니스 허브로 거듭나야 한다. 항공기정비(MRO), 관광·마이스(MICE), 스마트 물류, 첨단 항공산업 클러스터를 공항경제권 내에 집적시켜야 한다. 공항을 중심으로 한 창업 생태계와 고용 시장이 활성화될 때 인천공항은 비로소 인천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의 실질적인 중심으로 기능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의 약 70%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이 인천에 머무는 비율은 단 6.3%에 불과하다. 서울, 경상, 경기, 제주에 이어 전국 5위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다. 대한민국 최대의 경제자유구역을 보유하고 전 세계 190여개 도시를 연결하며 비행시간 3시간 이내에 61개 핵심 도시가 포진해 있는 천혜의 요충지 인천으로서는 실로 뼈아픈 현실이다. 인천은 이제 ‘관문’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기회비용을 되찾아 와야 한다. 단순히 통과하는 도시가 아니라 사람이 머물고 산업이 꽃피며 양질의 일자리가 쏟아지는 ‘공항 중심 도시’로 변모해야 한다. 공항의 경쟁력이 곧 도시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다. 인천 경제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미래지향적인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천공항이 인천의 자부심을 넘어 글로벌 경제의 표준이 되는 길, 그 길 위에 인천의 내일이 있다.

[생각 더하기] 평화·기회 결합될 도시, 포천

경기도가 2월11일부터 3월10일까지 도내 8개 시·군을 대상으로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공개 모집을 하고 있다. 이번 공모는 단순한 지역개발 사업이 아니다. 접경지역이라는 이유로 수십년간 감내해 온 안보 부담과 구조적 제약에 대해 국가가 어떤 방식으로 응답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정책적 분기점이다. 이 질문 앞에서 포천은 더 이상 뒤로 밀려나서는 안 된다. 포천은 법적으로 수도권에 속해 있다.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른 각종 규제는 예외 없이 적용돼 왔다. 그러나 산업 인프라, 인구 유입, 재정 여건, 도시 기능 어느 하나 수도권다운 혜택을 온전히 누려본 적이 없다. 군사시설보호구역, 사격장과 훈련장, 반복되는 소음과 진동, 출입 통제와 토지 이용 제한은 포천시민의 일상이었다. 국가는 안보를 이유로 포천의 발전 가능성을 제약해 왔고 포천은 그 제약을 오랜 시간 감내해 왔다. 이제는 분명히 짚어야 한다. 안보를 위해 희생이 요구됐다면 그에 대한 보상 역시 국가의 책임이라는 점이다. 같은 접경지역으로 분류되고 이번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고양·파주·김포·양주와 포천의 현실은 분명히 다르다. 이들 도시는 이미 자족 기능을 갖춘 성장 궤도에 올라섰고 산업과 인구, 도시 인프라 면에서 포천과는 다른 단계에 도달해 있다. 접경이라는 행정적 분류만으로 모든 지역을 동일선상에 놓고 정책을 설계하는 것은 형평이 아니다. 국가 전략사업은 가장 절실한 곳에 우선 배치돼야 하며 평화경제특구 역시 그 원칙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특히 이번 평화경제특구 지정과 관련해서는 현재 포천시가 유치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기회발전특구와의 정책적 연계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회발전특구는 기업의 이전과 대규모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세제 감면, 재정 지원, 규제 특례, 정주 여건 개선 등을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제도로 포천시 역시 이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기 위해 지속적인 준비와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기회발전특구와 평화경제특구가 함께 지정되면 정책 효과는 단순한 합이 아니라 상호 증폭되는 시너지로 나타날 수 있다. 평화경제특구가 접경지역의 안보·평화·경제를 결합한 국가 전략 공간을 제시하는 제도라면 기회발전특구는 그 공간 안으로 기업과 자본을 실제로 유입시키는 강력한 실행 장치가 된다. 두 특구가 결합될 경우 포천은 국가 전략사업의 실증과 사업화, 산업 집적과 일자리 창출이 동시에 이뤄지는 핵심 거점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는 접경지역 정책이 선언을 넘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포천은 이미 군사·안보 인프라가 도시 전반에 내재된 지역이다. 이를 규제의 대상으로만 둘 것이 아니라 방위산업과 안보 기술, 드론·로봇, 재난·안전 분야 등 첨단 산업의 실증과 제조, 인력 양성이 집적되는 공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여기에 평화경제특구의 정책적 틀과 기회발전특구의 투자 유인책이 함께 작동한다면 접경지역의 구조적 한계를 기회로 전환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이는 포천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수도권 과밀 해소와 접경지역 안정이라는 국가적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합리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한편 경기도는 이번 평화경제특구 후보지 선정 이후 그 결과를 토대로 ‘경기도 평화경제특구 개발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연구용역은 형식적인 절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접경지역이 실제로 겪어온 제약과 희생, 그리고 각 지역이 가진 잠재력을 어떻게 정책 패키지로 묶어 투자와 일자리로 연결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도가 돼야 한다. 특히 포천은 수도권 규제와 안보 제약이 중첩된 지역인 만큼 이 현실이 초기 단계부터 충실히 반영되지 않는다면 평화경제특구의 실효성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필자는 포천시의회 의장으로서 평화경제특구 유치를 위한 노력에 어떠한 역할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면 적극 나서고 정책적 논의와 공론화가 요구된다면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집행부 역시 이번 공모 대응을 단순한 형식적 신청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평화경제특구와 기회발전특구의 연계를 포함해 포천이 무엇을 할 수 있고 국가가 무엇을 얻게 되는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전략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포천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평화경제특구는 먼 미래의 구상이 아니라 지금 반드시 잡아야 할 현재의 기회다. 국가가 안보를 이유로 포천의 발전을 제약해 왔다면 이제 국가는 정책으로 그 책임을 응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응답은 선언이 아니라 지정이어야 한다. 평화와 기회가 결합될 도시, 포천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답이어야 한다.

[생각 더하기] 쿠팡 사태가 통상 이슈가 되는 이유

전순환 중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前 한국무역학회장 유럽연합(EU)이 최근 플랫폼 시장의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자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이를 미국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조치로 규정하며 통상 긴장을 예고했다. 국제 통상 관계의 상호 신뢰가 마찰의 불꽃으로 변하는 변곡점은 바로 이 대목이다. 규제 자체의 옳고 그름을 넘어 그 조치가 특정 국가나 기업을 겨냥했다는 ‘신호’로 읽히는 순간 국내 정책은 글로벌 신뢰를 흔드는 통상 이슈로 비화한다. 최근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을 둘러싼 정부의 파상공세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정책 목표의 정당성과는 별개로 이 사안은 이미 국내 담론을 넘어 국제 투자 및 통상 질서의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디지털 플랫폼 규제는 현대 통상 질서와 분리될 수 없다. 개인정보 보호는 소비자 권익인 동시에 외국인 투자 보호, 비차별 원칙, 그리고 규제의 예측 가능성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해외에서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개별 기업의 일탈로 보지 않는다. 정부 부처 11곳이 동시다발적으로 개입하고 경찰과 국회까지 전례 없는 강도로 가세한 현 상황은 단순한 법 집행을 넘어 미국계 디지털 기업 전반에 대한 한국 정부의 규제 기조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다. 과거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여타 기업 사례와 비교해 봐도 이번 대응은 유독 이례적이며 압도적이다. 이러한 전방위적 압박은 정책 당국의 의도와 무관하게 해외시장에서 특정 국적의 기업을 겨냥한 ‘과잉 대응’이라는 강력한 신호로 인식되기 쉽다. 국제 통상 질서에서는 정부가 내세우는 정책의 정당성보다 더 빠르게 확산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식이다. 그리고 일단 형성된 인식은 정부의 해명만으로 쉽게 되돌릴 수 없다. 특히 한미 통상 환경이 민감한 시점이라는 점이 우려를 더한다. 관세와 공급망 이슈로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특정 기업에 대한 과잉 대응 논란은 불필요한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미국 내 투자자와 의회 및 행정부 차원에서 이 사안이 언급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는 대응의 ‘강도’를 높이는 데 골몰할 것이 아니라 고도의 ‘행정적 관리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쿠팡에 대한 조사는 국내법에 따라 엄정히 집행하되 그 과정이 국제사회가 납득할 만한 절차적 합리성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는 특정 기업을 비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한국의 정책 환경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공표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이나 과도한 공권력의 결집이 아니다. 국내 정책 목표를 관철하면서도 국제사회의 오해를 사지 않는 정교한 균형 감각이다. 한국의 규제 행정이 ‘국내용 정서’에 머무를지, ‘글로벌 규범’으로 인정받을지는 이번 사안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에 달려 있다.

[생각 더하기] 한국식 옴부즈만제도의 필요성

현재 전 세계는 글로벌 무한 경쟁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수일 전 트럼프는 다보스포럼에서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미국 중심의 보호관세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한국이 이제 글로벌 경제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한국은 아직도 동남아 및 남미 국가 수준의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지난 윤석열 정부의 12·3 비상계엄 선포는 전 세계인의 눈에는 한국이 정치와 경제 및 문화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인식을 심었다. 한국이 정치적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 중심제의 삼권분립제도가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중 입법부 다수당의 횡포로 인해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교착 상태에서 입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한 행정부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은 12·3 비상계엄 선포로 이어졌다. 방법론적 차원에서 법의 한계를 넘어선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 역사의 오점으로 남았으며 정권 역시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입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 역시 한 방법이다. 그중 현재 48명인 서울시의 국회의원 수를 4명(동서남북)으로 줄여야 한다. 서울시는 광역 및 기초지방의회가 충분히 정책을 대신할 수 있다. 나머지 지역의 국회의원 수는 그대로 유지하면 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국회의원 44명의 비용을 이용해 한국식 옴부즈만제도를 체택해야 한다. 옴부즈만제도란 유럽에서 공직자의 비리를 감시하기 위한 제도다. 현재 서울시 등에서 옴부즈만제도를 채택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필자가 주장하는 옴부즈만제도는 새로운 제도를 마련하고자 한다. 옴부즈만제도에서 선택하는 감시자는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그리스의 철인 플라톤은 정치는 예술 중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의 이상국가론에서 철인정치를 주장하면서 정의를 가진 자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의, 즉 지혜, 용기, 절제 및 열정을 겸비한 사람들만이 사회정치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정한 판단을 위해서는 정의를 갖춘 감시자로 선택해야 한다고 본다. 둘째, 국회의원 자격은 현재 당이 규율을 정해 공천하고 있다. 그러나 장래 공천은 국가가 엄격한 절차(인격 및 전문성)를 거쳐 통과한 자에게만 국회의원 출마할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이러한 규정은 여야의 정치권 및 국민 공청회, 시민단체 등을 포함해 국민 전체의 의사를 반영, 결정해야 한다. 현재 케이팝을 비롯해 K-콘텐츠가 전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우리의 정치가 경제와 같이 선진화된다면 이제 한국은 글로벌 초강대국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것으로 사료된다.

[생각 더하기] 전쟁의 신이 된 알고리즘

필자는 오랫동안 안보와 보훈의 현장에서 교육을 해왔다. 전쟁의 그 무게와 책임을 어떻게 시민에게 전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올바른 판단으로 자신을 지키고 결국 나라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르치고, 쓰고, 조용히 활동해 왔다. 그 과정에서 점점 분명해진 질문이 있다. 기술이 전쟁의 양상을 바꾸는 시대에 인간의 판단은 과연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질문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전쟁을 바라보며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인류의 전쟁사는 언제나 도구의 진화와 함께 잔혹해졌다. 돌과 창에서 화약으로, 다시 핵무기로 이어진 파괴의 역사는 결국 ‘더 효율적으로 죽이는 방법’을 향해 질주했다. 그리고 지금, 전쟁은 인공지능이라는 차가운 두뇌를 장착한 채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오늘날의 전장은 더 이상 병사들의 함성이나 포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이 표적을 고르고, 전기를 끊고,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테크노 전장’의 실험실처럼 보인다. 전쟁은 이제 물리적 충돌을 넘어 시스템과 인식 자체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의 전쟁이 영토를 점령하고 국기를 꽂는 일이었다면 알고리즘이 주도하는 전쟁의 목표는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다. 가장 먼저 공격받는 것은 문명의 혈관인 에너지 인프라다. 인공지능은 어디를 끊어야 가장 넓은 지역이 암흑에 빠지는지, 어떤 순서로 차단해야 복구 의지를 꺾을 수 있는지를 계산한다. 미사일이 날아오기 전 이미 사이버 공간에서는 전기가 끊기고 난방이 멈춘다. 도시는 서서히 얼어붙는다. 더 서늘한 장면은 인간의 정신을 향한 공격이다. 딥페이크로 조작된 지도자의 영상과 AI 봇이 퍼뜨리는 거짓 정보는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할 시민의 능력을 마비시킨다. 이는 단순한 선전이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인지 전쟁이다. 총성이 울리기 전 전선은 이미 우리의 스마트폰 화면과 생각 속으로 옮겨 왔다. 전장에서의 살상 방식 또한 점점 기계의 얼굴을 닮아간다. AI 드론은 은폐된 병사의 체온을 순식간에 포착하고 얼굴 인식 기술은 생명을 데이터로 치환한다. 이름과 사연을 가진 인간은 ‘처리해야 할 정보’로 바뀐다. 연민과 망설임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확률과 연산뿐이다. 이 장면 앞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의 효율이 극대화될수록 인간의 존엄은 어디에 남는가. 알고리즘의 오판으로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될 때 그 책임은 누구의 몫인가. 그동안의 교육 현장에서 필자는 한 가지를 반복해 강조해 왔다. 나라를 지키는 힘은 언제나 무기보다 먼저 사람의 판단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것을 멈출지 밀어붙일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전쟁의 신이 된 알고리즘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편리함과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넘겨준 판단을 우리는 다시 되찾을 준비가 돼 있는가. 기술은 중립일지 모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은 중립일 수 없다. 이 시대의 마지막 방어선은 코드가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의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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