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상 13개 왕조의 수도였던 서안(西安)에서 이틀 동안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안까지 7천500㎞를 달려왔다. 이번 여행 거리의 약 3분의 1을 이동한 셈이다. 7월 서안의 여름 햇살은 무척 뜨겁다. 우리는 서안성에서 아침 일찍 고대 실크로드 상인들이 다녔던 ‘천산남로’ 길로 출발한다. 실크로드(비단길)는 비단처럼 아름답거나 편안한 길이 아니다. 1877년 독일 지리학자 리히트 호펜이 고대 중국과 로마의 가장 대표적인 교역품이 비단인 점에 착안해 ‘실크로드(Silk Road)’라는 아름다운 명칭을 붙였다. 도로라기보다는 오아시스, 사막, 산맥을 통과하는 ‘오솔길 흔적’이라는 표현이 맞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이 오면 길은 없어진다. 실크로드 개척자는 기원전 2세기 한나라의 장건이고 실크로드 전성기는 당나라 시대다. 실크로드는 당나라와 동로마제국 사이의 무역, 종교, 철학, 문화의 소통 길이다. 동서 교역에서 소그드 상인(사마르칸트 등 상인)들이 서기 5세기부터 10세기까지 500여년간 활약했다. 실크로드는 ‘육상 실크로드’, ‘해상 실크로드’ 크게 두 길이 있다. 육상 실크로드는 세 길이 있다. ‘서역남로, 천산남로, 천산북로’다. 우리는 서안에서 출발해 하서주랑과 둔황을 지나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 길 천산남로를 통과할 것이다. 오전 9시 호텔을 출발, 서안성 서문에 있는 실크로드 기념 조형물에서 출정식을 한다. 실크로드 조형물은 쌍봉낙타를 타고 서역으로 떠나는 승려, 소그드 상인, 출정하는 군인 등을 실물의 2배 크기로 1992년 설치한 것이다. 오늘 저녁 숙박지는 산시(陝西)성 서쪽의 ‘천수(天水·현 중국어 표기 톈수이)’다. 서안 외곽의 고속도로 톨게이트 이름이 진시황의 궁전 이름인 ‘아방궁’이어서 눈길을 끈다. 관중평야를 지나며 크고 작은 도시, 평야의 무성한 옥수수, 밀, 유채밭, 농촌 마을이 보인다. 작은 도시에도 30, 40층 고층 아파트가 많다. 제대로 분양이 되는지 궁금하다. 현재 중국은 미분양 아파트 수가 1억여채로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서안을 조금 벗어나면 강태공의 낚시터로 유명한 ‘위수(渭水·웨이수이)’강을 옆으로 지나서 간다. 3천년 전 주나라 문왕이 사냥을 나갔는데 그날은 짐승을 한 마리도 못 잡고 우연히 위수에서 낚시하는 강태공을 만났다. 문왕이 “낚시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을 걸었다. “물고기를 낚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낚고 있습니다”라고 강태공이 대답했다. 그때 강태공 나이 72세다. 처음 만난 문왕과 강태공은 긴 대화 끝에 의기투합해 재상으로 등용된다. 강태공의 전략으로 주나라는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통일중국을 이뤘다. 학창 시절부터 꿈꿨던 실크로드 종단을 결혼 40주년 기념으로 하고 있으니 감개무량하다. 실크(비단)라는 이름 때문에 ‘무역의 길’이 강조되지만 불교,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마니교 등 ‘종교의 길’, 전쟁하러 출발하는 ‘전쟁의 길’, 페스트 등 질병이 오갔던 ‘재난의 길’이다. 당나라 장안에서 출발한 상품의 최종 목적지는 이스탄불, 페르시아, 이집트 등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다. 반대로 서쪽에서 온 상품은 당나라, 신라, 일본 등이 목적지다. 실크로드 상인들은 중간에 재난과 위험을 피하고 장사가 잘돼 돈을 벌게 해달라며 실크로드 중간 곳곳에 사찰과 석굴을 건축해 신에게 기도하고 많은 공물을 바쳤다. 신라의 계림(경주)에서 출발, 서해 당진항에서 중국 산둥반도를 거쳐 당나라 수도 장안으로 가는 길도 실크로드 지선(支線)의 하나다. 신라시대 청해진(현재 완도)에서 당나라와 신라, 일본까지 국제무역을 했던 해상왕 장보고도 실크로드 무역상의 한 사람이다. 실크로드의 개척자는 2천200년 전 한나라 시대의 장건이다. 기원전 2세기 한무제는 흉노족의 계속되는 침략과 공물 요구 때문에 전쟁을 준비한다. 한무제는 흉노족의 침략으로 서쪽으로 쫓겨간 월지족이 흉노족에 원한이 많다는 정보를 접한다. 기원전 139년 서쪽의 월지족과 군사동맹을 체결, 흉노족을 양쪽에서 협공하라는 한무제의 명령을 받고 장건이 서역으로 출발했다. 장건은 서역으로 가는 길에 흉노족에 붙잡혀 1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한다. 장건은 흉노족의 내분을 틈타 탈출해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근처에 살던 월지족 왕을 만난다. 그런데 월지족 왕이 흉노족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아 장건은 13년 만에 빈손으로 귀국했다. 장건은 월지족과 동맹은 못 했지만 복숭아, 수박, 포도, 무화과 등 서역 과일을 한나라에 가져오고 한혈마(汗血馬)고 불리는 천마(天馬)가 대원국(현재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에 있다는 정보를 가져왔다. 흉노족은 한나라의 공격과 종족의 내분으로 멸망한다. 서쪽의 흉노족을 굴복시킨 한무제는 동쪽으로 군대를 보내 고조선의 후예인 평양의 위만조선을 기원전 108년 멸망시키고 낙랑군 등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한다. 낙랑군은 서기 313년 고구려에 의해 멸망했다. 고구려의 낙랑군 함락과 관련해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읽었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로맨스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낙랑군에는 적이 침입하면 스스로 소리가 나는 북(자명고)이 있어 고구려는 평양성 함락이 어렵다. 호동왕자가 낙랑공주에게 자명고 파괴를 부탁하고 호동왕자와의 사랑을 위해 고국을 배신한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어 낙랑군이 함락됐다는 얘기다. 한반도의 고대 역사는 실크로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음을 생각한다. 오후 천수에 도착해 중국 4대 석굴의 하나인 ‘맥적산 천불동 석굴’을 관람할 계획이다. 천수에 도착했을 때 비가 심하게 내린다. 맥적산 석굴은 산 중턱에 설치된 계단을 타고 걸어서 올라가야 하는데 비 때문에 계단이 미끄러워 폐쇄됐다. 맥적산 석굴은 유목민 왕조인 북위가 5세기에 조성을 시작한 오래된 석굴이다. 바위벽에 촘촘히 있는 석굴은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한다. 문화혁명(1966~1976년) 시대에 석굴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망가져 홍위병 침입이 어려워 보존이 잘됐다고 한다.
경기일보
2025-07-31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