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너무나 짧게 스쳐간 화양연화

고양이 목숨은 9개라는 서양 속설이 있다. 낙하 시 몸을 회전시켜 발로 착지하는 정위반사, 유연한 몸 구조, 뛰어난 점프력 등을 통해 수많은 생사의 위기를 넘긴다는 고양이. 하지만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은 듯 싶다. 적어도 대한민국 길냥이로 살아가는 운명이라면 더욱더. 두 달 전 회사 후문 주차장 인근 조그마한 화단. 길고양이 한 마리가 그곳에 거취를 정한 듯 자리를 잡더니 곧이어 꼬물이 네 마리를 출산했다. 회사 맞은편 빌라 주민이 하루에도 몇 번씩 길냥이들의 사료를 챙기며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일부 회사 직원도 수시로 간식과 물을 제공했다. 시도 때도 없이 서로 뒤엉키는 손바닥만 한 작은 생명체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잘 만들어진 힐링 영상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한 평 남짓한 화단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잔인한 현실. 질병과 굶주림 그리고 로드킬. 이를 알 턱이 없는 새끼 냥이들은 화단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묘생 1막을 즐기는 듯 보였다. 한 달쯤 지난 오후. 식빵 자세로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던 새끼 한 마리. 코와 입 주변에 번져 있던 핏자국. 주말을 보내고 돌아왔을 때 경비 반장님의 한마디. “결국 한 마리가 갔어요”. 사체가 발견된 장소는 밥그릇이 놓여 있던 화단 안쪽. 그렇게 새끼 길냥이 한 마리가 고양이 별로 떠났다. 형제자매의 죽음을 목도해서였을까. 그날 이후 거짓말처럼 새끼냥이 식구들은 화단에서 자취를 감췄다. 며칠 뒤 회사 인근 골목에 주차돼 있던 차량 밑. 안면 출혈에 다리를 절고 있던 또 다른 새끼 냥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싸늘한 주검이 된 냥이를 빌라 주민이 수습했다는 소식이 이틀 만에 들려왔다. 세상에 나와 잠시 누렸던 묘생의 황금기가 너무나 짧게 스쳐 지나갔다. 화양연화(花樣年華). ‘꽃처럼 빛나는 시절’,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순간’. 길 위에서 태어나 이름 없이 살다 사라져 가는 수많은 길고양이들. 지금도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길냥이들이 험난한 묘생의 길자락 어딘가에서 길고 긴 화양연화를 맞이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지지대] ‘염소는 힘이 세다’

한 소년이 가족과 서울 변두리에서 염소 한 마리를 키우며 살았다. 어느 날 염소가 옆집의 생사탕집 화로를 깨뜨렸고 생사탕집 주인은 염소를 죽였다. 염소를 땅에 묻으려는데 옆집 아저씨가 염소탕을 만들어 팔라고 권했다. 이를 계기로 할머니는 집에서 염소탕을 팔았다. 1960년대 발표된 김승옥 작가의 단편소설 ‘염소는 힘이 세다’의 얼개다. 힘없는 서민의 삶을 조명했다. 소년의 집안에선 죽은 염소를 제외하고는 힘이 있는 건 없었다. 어머니는 아팠고 누나는 힘이 없었으며 할머니의 염소탕 장사에는 걸림돌이 많았다.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났지만 염소의 자화상은 여전하다. 개 대신 염소가 보양식 시장에서 대체품으로 부상했지만 관련 제도가 수년째 뒷받침되지 못한다는 지적(경기일보 10일자 8면)이 나와서다. 관련 당국에 따르면 국내 염소 소비량은 2021년 6천600t에서 2024년 1만3천700t으로 3년여 만에 두 배 이상 뛰었다. 소비 규모가 커진 것에 비해 관련 산업은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육 단계부터 지자체별 규제가 제각각인 데다 도축·유통 기준마저 천차만별인 탓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사육 단계부터 적용되는 일관성 없는 규제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자체별 사정이 다른 ‘축종별 악취 등급’이다. 유통과 소비 단계로 넘어가면 더 심각하다. 표준화된 부위 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판매처마다 부위 명칭과 손질 형태도 제각각이다. 소비자는 적정 가격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시장의 투명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정부의 관리체계에서도 염소는 여전히 비주류다. 통계청과 농림축산식품부의 가축 통계에서 염소는 토끼, 지렁이, 기러기 등과 함께 기타 가축으로 묶여 관리된다. 수요는 증가하는데 공급이 뒤따르지 못하자 빈틈을 수입산 염소가 장악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염소 수입량은 2015년 1천570t에서 2024년 8천143t으로 10년 새 5배 이상 폭증했다. 이 무렵 정육 기준 국내산 염소 자급률은 2019년 77.3%에서 2023년 37.7%로 반 토막 났다. 염소는 아직도 비주류다. 그래서 ‘염소는 힘이 세다’는 명제는 수정돼야 한다.

[지지대] 분꽃나무 단상

“모닥불은 계속 지펴지는 데다 달빛은 또 그렇게 고와 동네는 밤새껏 매양 황혼녘이었다. 뒷산 등성이 솔수펑 속에선 어른들 코골음 같은 부엉이 울음이 마루 밑에서 강아지 꿈꾸는 소리처럼 정겹게 들려오고 있었다. 쇄쇗 쇄쇗.... 머리 위에선 이따금 기러기떼 지나가는 소리가 유독 컸다. ‘낄룩~’ 하는 기러기 울음 소리가 들릴 즈음이면 마당 가장자리에는 가지런한 기러기떼 그림자가 달빛을 한 옴큼씩 훔치며 달아나고 있었다. 그 한복판에서 분꽃나무의 향기가 은은했다.” 이문구 작가의 ‘관촌수필’은 언제 읽어도 소담스럽다. 이 소설에서 눈에 띄는 식물이 있다. 분꽃나무다. 이 나무에 대해 좀 더 들어가 보자. 연복초과의 작은 키 나무다. 산기슭이나 해안의 산지가 서식지다. 키는 다 자라면 2~3m 남짓하다. 낙엽수로 잎은 마주 난다. 긴 원 모양으로 끝은 뾰족하게 튀어나온다. 아랫부분은 둥글다. 톱니처럼 작은 줄기가 불규칙하게 잎 끝자리에 나 있다. 생김새는 분꽃을 빼닮았다. 분꽃나무라고 이름이 붙여진 까닭이다. 물 빠짐이 좋고 적당한 습도가 유지되는 토양에서 잘 자란다. 심을 때 뿌리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충분히 물을 줘 활착을 도와야 한다. 4, 5월 가지 끝에서 백홍색의 꽃들이 모여 달린다. 깔때기 모양이다. 꽃말은 수줍음이다. 열매는 9~10월 검은색으로 익는다. 모양은 달걀처럼 갸름하다. 꽃 색깔은 붉은색과 노란색이 섞인 개체가 주류다. 꽃은 오후 4시께 피고 다음 날 오전 4시께 진다. 그래서 영어로 ‘four o’clock flower’라고도 부른다. 친정은 중남미다. 한반도로 시집 온 시기는 17세기로 추정된다. 아열대 지방에선 여러해살이였지만 온대지방에선 얼어 죽는다. 뿌리가 크게 발달한다. 온대지방에서도 뿌리를 캐 보관했다가 심는 식으로 여러 해 기를 수 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이 나무를 4월의 ‘우리의 정원식물’로 선정했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식물 중 가장 감미롭고 진한 향기를 가진 보석 같은 존재여서일까. 이 나무의 은은한 향기와 함께 깊어 가는 봄의 정취를 느껴 보자.

[지지대] 57조원 환호성의 이면

삼성전자가 2026년 1분기 영업이익이 57조2천억원으로 지난해 동기에 비해 755%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매출은 133조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68.1% 늘었다. 분기 매출과 영업익 모두 역대 최대치다. 지난해 4분기 매출 93조8천374억원, 영업익 20조737억원으로 세운 역대 최대 기록을 다시 한번 넘어섰다. 분기 기준 매출이 100조원, 영업익이 50조원을 넘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반도체 업황의 부활과 인공지능(AI) 열풍이 만들어낸 ‘반도체 초호황’의 결과물이다. 숫자로만 보면 대한민국 경제는 유례없는 축제의 시간을 보내야 마땅하다. 그러나 거대 기업의 독주 뒤에 가려진 우리 경제의 ‘체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우려스러운 지점은 산업생태계의 극심한 불균형이다. 이번 실적의 대부분은 메모리반도체에서 나왔다. 삼성 내부에서도 반도체를 제외한 가전·모바일 부문의 성장은 정체기에 머물러 있다.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수많은 중소 제조 기업은 고금리와 원자재 가격 상승, 그리고 인력난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생존 투쟁 중이다. 삼성전자의 실적 그래프가 우상향 곡선을 그릴 때 도내 부품·장비 협력사들의 영업이익률은 오히려 제자리걸음이거나 하락하는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거인의 성장이 주변의 숲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양분을 독식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환호성이 아니라 냉정한 진단이다. 거대 기업의 낙수효과가 멈춘 곳은 어디인지, 반도체의 그늘에 가려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절규는 무엇인지 촘촘히 훑어야 한다. 삼성전자의 실적 서프라이즈가 우리 경제의 ‘진짜 실력’이라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 우리는 가장 위험한 독배를 마시는 셈이 될 것이다.

[지지대] K-선거?

최근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ARIRANG’(아리랑) 앨범을 들고 컴백해 또다시 미국 빌보드 차트 정상을 점령하면서 케이팝의 위상을 드높였다. ‘K’(케이)가 붙으면 일단 한국을 대표해 세계적 위상을 얻는 모양새다. BTS, 블랙핑크 등 케이팝 그룹의 활약은 물론이고 K-드라마, K-푸드, K-뷰티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 K-컬처는 그만큼 세계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다른 분야는 어떨까. 마침 시기적으로 눈앞에 다가온 6·3 지방선거를 보면 ‘K-선거’라고 ‘선거’ 앞에 ‘K’를 자신 있게 붙일 만한 위상을 갖췄을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숏폼영상공모전를 마련하는 등 젊은 감각으로 유권자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한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선거 소식을 전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결국 선거는 모든 국민이 참여해야 하는 권리의 측면에서 개인의 관심이 중요하다. 이에 선관위는 민주주의의 꽃에 유권자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여러 작전을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지선이 50여일 남은 현재 정당의 상황을 보면 유권자가 출마한 후보자를 잘 들여다보고 평가할 수 있도록 공천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여당이나 거대 야당 모두 공천 과정에서 불복과 반발이 나오면서 지켜보는 유권자를 혼란스럽게 했다. 심지어 공천이 한때 마비 상태에 놓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장기판에 말을 놓는 사람이 직접 말이 돼 뛰어들려 하거나 장기 말이 없어 체스판의 말을 빌려와야 하는 판인 것 같다. 선거로 향하던 유권자의 시선마저 돌리게 만든다. 과연 세계 정치권에 ‘K-선거’, ‘K-정치’를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을까. ‘K’를 붙일 수 있는 것은 외부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가져다 쓸 정도의 부끄럽지 않은 ‘퀄리티’가 있어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지지대] 기억

고등학교 때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올해 47세. 아내와 열세 살, 열한 살 아들딸만이 세상에 남았다. 황망한 이별이었다. 우리에게나 가족에게도. 미련한 놈이 며칠 동안 가슴이 아팠는데도 참았나 보다. 결국 찾아간 응급실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다. 내 아픔쯤은 견디는 것이 가장의 무게였을까. 지난 토요일 인천가족공원에서 친구를 보냈다. 할아버지도 이곳에 계시고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가끔 찾아온 곳인데 또 마음이 다르다. 고교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또래 친우의 배웅은 처음이어서 그랬나 보다. 정이 많아 종종 삐치기도 했지만 유독 친구들을 잘 챙겼다. 한창 철이 없을 시절 시시콜콜한 일에 웃고 떠들며 학창시절의 한 페이지를 함께한 친구. 만개한 다른 지역과 달리 인천가족공원의 벚꽃은 한창 몽우리를 터뜨리고 있다. 벚꽃이 활짝 폈더라면 고와서 더 아팠을 텐데 다행이다. 벚꽃이 피는 요즘 다시 죽음을 생각한다. 2014년 4월16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그들을. 친구의 새 보금자리인 별빛당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노란 리본이 길을 열어주는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있다. 이곳엔 환갑 기념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 인천 용유초등학교 동창생 12명이 함께 있다. 그리고 영원히 고등학교 2학년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된 250명의 단원고 학생들. 싱그러운 학창시절의 추억만 남겨둔 채 우리를 떠나야 했던 그들. 열흘 뒤면 세월호 참사 12주기다. 전남 목포 신항에 있는 세월호 선체를 목포 신항만 배후 부지로 옮겨 보존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2030년까지 체험관과 기억관을 함께 만든다는 구상이다. 부디 많은 이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지기를.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안타까운 죽음이 재발하지 않기를. 그리고 남은 이들이 좀 더 행복해지기를 기도해본다. “열두 번째 봄, 기억은 멈추지 않습니다.”

[지지대] 포성이 멈추는 한식을 기대하며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을까. 자신의 허벅지까지 내줬던 신하가 불에 타 숨졌으니 말이다. 먹을 게 없어 사경을 헤매던 왕자를 살리기 위해서 말이다. 아버지였던 임금이 갑자기 세상을 뜨자 나라는 어수선해졌고 왕자는 굶기를 밥 먹듯 했다. 그때 그 신하가 없었더라면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왕자는 그 신하를 까맣게 잊고 지내다 왕위에 오른 뒤 찾았다. 하지만 그 충신은 응하지 않고 어머니와 산속에서 지냈다. 그를 부르기 위해 산에 불을 질렀다. 그러면 내려올 줄 알았다. 그랬는데 산속에서 불에 타 세상을 등졌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면 그의 넋을 기리기 위해 불을 때지 않고 찬밥을 먹었다. 기원전 600여년 중국 춘추시대 진(晋)나라 임금 문공과 충신 개자추 이야기다. 한식(寒食)은 바로 이런 날이다. 애달픈 서사가 녹여졌다. 시기적으로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이다. 양력으로는 4월6일 무렵이다. 음력을 기준으로 한 명절은 아니어서 음력 2월일 수도 있고 음력 3월일 수도 있다. 이 무렵은 씨를 뿌리거나 나무를 심기에 알맞은 만큼 특별한 놀이를 즐기지 않는다. 그 대신 조상의 묘에서 차례를 지내거나 산소를 찾으면서 조용히 하루를 보냈다. 한식에 멀쩡하던 하늘에서 어쩌다 비가 내리면 ‘물한식’으로 불렀다. 고려 문종 24년(1070년)에는 한식과 연등 날짜가 겹치므로 연등을 다른 날로 바꿨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전기에는 한식이 중요한 명절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중요한 명절로 지켜졌다. 한식을 주제로 한 많은 시가 전해지는 사실도 이를 반영한다. 세종 13년(1431년)에는 한식 사흘 동안 불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명령이 내려진 적이 있었다.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영농철이다. 소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부려보기도 한다. 볍씨를 담그기도 한다. 과일나무의 벌어진 가지 사이로 돌을 끼워 넣는 과일나무 시집보내기도 한다. 열매를 잘 열리게 하기 위해서다. 아직도 지구촌 한쪽에선 여전히 포성이 멈추지 않고 있다. 찬밥을 먹으면서 충신을 기렸던 문공의 애틋한 정서가 평화로 되살아날 순 없을까.

[지지대] 변화의 시대, 축적의 시간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두어 번 말했다. “나도 학교 좀 쉬자.” 평일에 체험학습 계획서를 제출하고 ‘인정 결석’하는 아이들이 내심 부러웠나 보다. 요즘엔 과거와 같이 학교에서의 학습만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가족과의 체험 등 다양한 형태의 교육을 유연하게 인정한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아프면 집에서 쉬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고 해외여행도 보편화됐다. “학생은 학교 일정을 우선으로 하고, 빠지지 않고 성실히 임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같이 말하면서도 혹여 시대에 맞지 않은 생각을 강요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학교에서 ‘개근상’이 사라진 지 오래다. 10여년 전만 해도 개근상은 성실과 근면, 인내의 상징이었다. 1990년대 이전 세대 대부분은 ‘아파도 학교에 가서 아파라’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자랐다. 전쟁으로 황폐화된 땅에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근면, 인내, 성실이었다. 그렇게 자랐기에 그 자식에게도 근면과 인내, 성실을 첫 번째 덕목으로 가르쳤다. 오늘의 학교는 결석이 드문 상황이 아니다. 사회에서도 변화와 혁신의 이름 아래 이제 이러한 덕목에 예전 같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개근상의 자취가 흐려진 풍경은 우리 시대의 변화된 감각을 동시에 드러낸다. 직장과 사회에서 근속의 의미는 예전보다 희미해졌다. 요즘엔 기술 문명의 급변과 사회 유연화로 여러 직장과 직업을 거치는 것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한자리를 오래 지킨 사람은 숙련과 경험의 창구이기보다 때론 ‘고인물’과 같은 조롱의 언어처럼 ‘정체’의 상징으로 대변되기도 한다. 경력이 길수록 깊어지는 지혜보다 익숙함에서 비롯된 느림이 도드라져 보이는 탓일까. 빠른 교체와 즉각적 성과가 요구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실과 꾸준함은 점차 가벼운 덕목으로 취급되는 듯하다. 개근상에 예전보다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성실함과 인내의 가치가 희미해진 요즘, 학교만의 고유한 이름을 붙여 그 희소성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학생들을 격려한단다. 돌이켜 보면 역사를 쌓아 올린 것은 단 한번의 비범함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긴 시간을 견디며 쌓아 올린 결과였다. 새로움이 주목받는 시대이지만 역사를 만든 건 언제나 성실과 꾸준함, 인내가 동반된 작은 반복들이었다. 변화가 빠른 시대일수록 축적의 시간 역시 귀해진다.

[지지대] ‘시진핑 신도시’

대도시 인근에 계획적으로 건설한 새로운 도시. 신도시를 이르는 말이다. 인구 과밀과 교통난, 주택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조성된다. 우리에겐 낯설지 않다. 중국 베이징에서 남서쪽으로 100㎞ 남짓 떨어진 곳에 슝안(雄安)신구라는 신도시가 2017년부터 건설 중이다. 4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 우리의 신도시와는 차이가 있지만 중국의 미래를 보여준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챙긴다는 의미로 그의 이름을 따서 ‘시진핑 신도시’로 부른다. 당초 취지는 베이징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계획대로라면 최종 마무리는 2049년이지만 이미 기본시설은 마무리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신도시는 현재 사무실 건물, 주거단지, 대중교통, 학교와 유치원, 상점과 레스토랑 등 하드웨어는 대부분 갖춰진 것으로 중국 언론은 전하고 있다. 특이한 건 중국 대다수 도시와 달리 이곳에는 그 흔한 고층빌딩이나 지하도, 고가도로 등이 없다. 모든 건물의 높이는 중간 정도이고 이례적으로 70% 이상이 공원과 호수 등 녹지 공간으로 조성되고 모든 도로에는 자전거도로가 개설됐다. 현실은 어떨까. 등록된 공식 인구는 120여만명이지만 실제로는 인적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외신들이 지적했다. 미래형 신도시인데 인적이 드문 도시가 됐다. 금융지구와 테크파크가 예정된 룽둥지역에선 상업 공간 대부분이 빈 것으로도 파악됐다. 이런 가운데 시 주석이 막대한 투자에도 평가가 엇갈리는 슝안신구를 방문, 베이징의 기능 일부를 분산해야 한다며 추진 의지를 강조하고 나섰다고 중국 언론이 전했다. 당의 결정이 옳았다면서도 전략적 인내가 필요하다고도 언급했다. 원래 이곳은 하천과 습지가 점점이 흩어져 있는 평야를 갖춘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문제는 이 도시 건설을 위해 첫 삽을 뜬 지 벌써 강산이 한 번 바뀌었는데도 아직도 사회간접시설이 부족해 유령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걸까. 그것도 국가 지도자의 이름이 들어간 신도시가 말이다. 덩샤오핑과 장쩌민이 각각 주도한 선전특구와 상하이 푸둥신구 등이 있지만 이 신도시에 이들의 이름을 붙이진 않았다.

[지지대] 구민·군민보다 ‘시민·주민’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후보자들이 유세 차량 위에서, 혹은 당선 뒤 공식 석상에서 “○○구민 여러분”, “○○군민 여러분”을 외친다. 낯익은 풍경이지만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선출직 공직자가 유권자를 부르는 그 말에 민주주의를 대하는 태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구민(區民)’과 ‘군민(郡民)’은 행정 분류 용어다. 특정 행정구역에 주소를 둔 사람이라는 뜻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조례 문안이나 예산서, 공문서에 어울리는 언어다. 그런데 이 말이 민선 단체장의 연설에 그대로 옮겨오면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당신들은 내가 관리해야 할 행정구역의 구성원”이라는 뉘앙스를 은연중 풍길 수 있다. 물론 반론도 있다. 관할 지역을 특정하려면 행정 단위 기반의 호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천시장이 ‘시민(市民)’이라 부르는데 기초단체장도 굳이 달리 부를 이유가 없다는 논리도 나온다. 실용적 측면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언어는 단순한 표지가 아니다. 선출직이 유권자를 어떤 말로 호명하느냐는 그 관계의 성격을 규정한다. 그동안 시민이라는 말은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권리의 주체, 공동체의 주권자라는 의미를 쌓아 왔다. 영어로 ‘Citizen’, 즉 권리를 가진 구성원이라는 뜻이다. 단순한 거주자, ‘Resident’와는 결이 다르다. 우리가 부르는 주민(住民)은 ‘지역 자치의 당사자’라는 함의를 품는다. 반면 ‘구민’이나 ‘군민’에는 이 같은 철학적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일부 자치단체장들은 공식 발언에서 ‘주민’과 ‘시민’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있다.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유권자를 행정 대상이 아닌 자치의 주역으로 바라보려는 인식의 전환을 담은 것이다. 지방자치는 주민이 스스로 지역의 일을 결정하는 제도다. 그 제도를 이끌어가는 선출직이라면 유권자를 행정용어가 아닌 주권자의 언어로 불러야 마땅하다. “○○구민(군민) 여러분”보다 “시민 여러분”이나 “주민 여러분”이 지방자치의 본래 정신에 더 가까운 말이다. 작은 호칭의 변화가 큰 인식의 차이를 만든다.

[지지대] 교육감의 무게

학교의 최상급 관리자는 교장이고 그 다음이 교감인데 왜 시·도교육청의 수장은 교육장이 아닌 교육감일까. 초·중등교육과정을 거치며 가장 명예로운 것 중 하나는 ‘교육감상’을 받는 것이다. 지금은 졸업식에 지역구 국회의원, 도지사, ○○○노조 경기지부장상 등 종류도 많고 수상자도 늘어 교육감상에 대한 가치는 상대적으로 좀 줄어든 느낌이다. 교육감의 ‘감(監)’은 살필 감 자다. 이는 단순히 교육 행정을 집행하는 것을 넘어 교육의 질을 살피고 감독하며 외부의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교육의 가치를 수호한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아울러 우리 아이의 미래를 편견 없이 살피고 올바른 교육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지 엄격히 감독하라는 시민의 명령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교육감은 거대 광역지자체의 교육 사무를 독립적으로 관장하는 독립 집행기관이다. 명칭이 ‘교육장’이었다면 이는 마치 도지사 아래 속한 일반 행정 부서의 장처럼 비칠 우려가 있다. 하지만 ‘교육감’이라는 독자적인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교육이 일반 행정으로부터 분리돼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교육자치의 정신을 명확히 하고 있다. 즉, 경기도교육감이 경기도교육장이 아닌 이유는 하급 기관인 교육지원청의 수장과 급을 달리하며 경기도민의 교육 복지를 총괄하는 선출직 공직자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교육감은 도민의 직접선거로 뽑히는 만큼 그 책임의 무게가 일선 행정 공무원과는 다르다. 결론적으로 경기도교육감이 경기도교육장이 아닌 이유는 경기도 교육의 독립성을 상징하며 정치와 행정의 풍랑 속에서 교육의 본질을 지켜내는 최후의 보루와 같은 존재임을 뜻한다.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두고 있다. 경기도교육감 후보자들의 면면을 지켜보고 있는 유권자의 매서운 눈이 있음을 의식해야 할 때다.

[지지대] 독립운동가 조응순

청년 12명이 무릎을 끓고 앉았다. 태극기가 그려진 흰색 창호지를 땅에 깔았다. 자작나무들이 으르렁거리며 포효하고 있었다.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 왼손 네 번째 손가락 한 마디를 잘랐다. 검붉은 피가 솟구쳤다. 그 피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고 썼다. 1909년 2월7일 연해주 그라스키노 카리에서였다. 신체 일부를 훼손한다는 건 목숨을 담보해야만 한다. 대의명분은 장엄했다. 반드시 이루려 하는 목적도 숭고했다. 그때의 모임은 단지동맹(斷指同盟)이라고 역사에 기록됐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열두 분이 참여했다. 거룩한 거사는 3·1독립운동을 거쳐 상하이임시정부와 독립 등으로 이어졌다. 단지동맹의 일원이었던 조응순 지사가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진 사실이 확인(경기일보 27일자 2면)됐다. 26일이었다. 이날은 안중근 의사 순국 116주기다. 국립서울현충원 위패봉안관 48판 8면 207호에 독립운동가 후손 10여명이 모였다. 이달 초 국립서울현충원에 조응순 지사의 위패가 봉안된 것으로 확인됐다. 공식 기록상 사망 시기와 묘소, 후손 정보가 모두 ‘미상’이었던 조 지사의 조카가 모습(경기일보 2024년 8월14일자 1·3면 등)을 드러낸 지 2년 만에 거둔 결실이다. 그의 위패 봉안 결정은 의미가 남다르다. 위패 봉안은 유족이 신청하고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데 조 지사는 ‘법정 미상’으로 관리됐기 때문이다. 보훈부는 그의 행정기록이 전무해 법적인 유족관계를 확정할 수 없었는데도 단지동맹의 역사적 가치 등을 근거로 심의를 진행했다. 1885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나 연해주로 이주한 뒤 안중근 의사 및 엄인섭 독립운동가 등과 함께 전제익 의병장 부대에 가담했다. 조 지사의 청년시절 궤적이다. 단지동맹 참석 이후에는 연해주 일대 70여곳에서 학교 설립에 앞장섰다. 1922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게 없다. 안중근 의사와 마찬가지로 조 지사의 유해도 발견되지 않았다. 위패는 현충탑 내부 석판에 기록돼 영구 보존된다. 독립운동 행적이 알려지지 않은 선열은 부지기수다. 제2, 제3의 조응순 지사를 찾아 그 기록을 보존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지지대] 흰우유의 쇠락사

어렸을 적 기억으로는 분명 하얀색이었다. 굳이 하얗다고 표현할 필요도 없었다. 흰우유 이야기다. 우유 빛깔은 당연히 흰색이라는 명제가 성립됐던 논리의 교집합이기도 했다. 사실 원유를 살균 처리하고 색소는 첨가하지 않은 상태로 가공한 우유를 일반적으로 이렇게 불렀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초콜릿 우유가 나왔다. 우유에 코코아나 초콜릿 등을 첨가해 제조했다. 색깔은 고동색 또는 어두운 갈색이었다. 1680년대 영국의 의사 한스 슬론이 처음 고안했다. 그는 영국 해군 군함을 타고 자메이카로 연구를 떠났다. 그곳에서 원주민들이 카카오를 마시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카카오 음료의 맛이 매우 이색적이었다고 적었다. 우유에 섞으면 더욱 먹을 만하다는 점도 발견했다. 영국으로 돌아오면서 초콜릿 우유 제조법을 전파했다. 국내에는 1970년대 중반 처음 출시된 것으로 파악됐다. 비슷한 시기에 옅은 노란색 우유도 나왔다. 바나나 우유다. 우유에 바나나 또는 바나나 향료를 넣었다. 바나나향을 넣으면 바나나향 우유로, 바나나를 넣으면 바나나 우유나 바나나맛 우유 등으로 팔 수 있다. 출시 당시 바나나는 국내에선 수입 규제로 귀한 식품이어서 바나나를 넣지 않고 그 대신 바나나향을 넣었다. 디저트로 많이 먹고 목욕탕 및 찜질방 등의 단골 음료다. 색깔로 본 우유의 변천사다. 흰우유의 국민 1인당 소비량이 최저치로 줄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1인당 소비량은 22.9㎏으로 전년(25.3㎏)보다 9.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흰우유 소비가 본격적으로 증가한 1980년대 후반 이후 최저치로 집계됐다. 소비량은 2021년 26.6㎏에서 2024년 25.3㎏으로 꾸준히 줄어들다가 지난해는 감소폭이 크게 확대됐다. 지난해 전체 우유 소비량은 425만t으로 전년(389만t)보다 늘었다. 하지만 이는 흰우유와 떠먹는 요구르트 등 발효유, 치즈 소비량 등까지 합친 수치다. 그런데 궁금하다. 이 같은 소비량 감소가 꼭 흰우유에만 적용되는 위기일까. 아날로그시대 소중했던 것들의 쇠락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지대] 미래는 과거를 기초 삼으니까

인천 동구 한적한 동네 골목길을 걷다 이어지는 언덕을 오르다 보면 수도국산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비탈을 오르다 의외의 장소에서 나타나는 박물관은 만남부터 정겹다. 수도국산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다. 시간을 되돌려 놓은 듯한 기억의 골목이자 잊고 지냈던 감정을 조용히 끄집어내는 공간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좁은 골목 사이로 이어진 판잣집, 연탄 냄새가 배어 있을 것만 같은 부엌, 그리고 낡은 교복과 빨랫줄에 널어놓은 옷가지들은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수도국산박물관은 어린이들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현대인은 과거와 달리 매우 빠른 삶의 속도를 따라가다 지쳐 과거를 돌아볼 여유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발걸음을 늦추게 되고 자연스레 자신만의 시간을 되짚는다. 단순히 내가 살던 옛날 동네 모습을 감상한다기 보다 내가 살았던 순간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인천은 개항 도시이자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떠나간 기억의 도시다. 그만큼 개인의 삶과 도시 역사가 촘촘히 얽혀 있다. 수도국산박물관은 그 교차 지점을 잘 표현해냈다. 화려한 발전과 변화의 이면에 있던 서민의 삶을 조명하면서 어떻게 지금 모습을 이루게 됐는지를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고령화 단계에 깊숙이 들어섰다. 단순히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넘어 ‘어른들이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무엇을 느끼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주변 문화시설은 주로 어린이와 청년층, 소위 요즘 세대를 중심으로 기획됐다. 대부분 최신 기술이나 화려한 콘텐츠에 집중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필요한 것은 도파민이 아니라 공감이고 속도가 아니라 회상이다. 특히 인천처럼 이주와 정착의 역사가 반복된 곳에서는 더욱 필요하다. 어린이들에게 미래와 희망을 보여주는 공간 만큼이나 어른들에게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등 이들이 즐길 만한 공간이 필요하다. 인천이 가진 이야기는 아직도 충분히 많다. 이제는 그 이야기들을 ‘추억’이라는 언어로 풀어내 미래를 이끌어 갈 어린이들에게 교훈을 줌과 동시에 미래를 만들어 온 어른들을 위로할 때다.

[지지대] 수원 군 공항, 또 선거용 공염불?

선거철만 되면 수원과 화성, 경기도 단체장 및 지방의원에 출마하는 후보군 사이에 어김없이 돌아오는 화두가 있다. 바로 ‘수원 군 공항 이전’, ‘경기국제공항 건설’이다. 기본적인 입장은 2014년 수원시가 국방부에 군 공항 이전을 건의하고 2017년 국방부가 화성 화옹지구를 단독 예비이전 후보지로 선정한 이래 변하지 않았다. 수원 후보들은 ‘조속한 이전 추진’을 공약으로 밀고 화성지역 후보들은 생태 파괴, 사고 우려를 이유로 저지를 약속한다. 화성지역 후보군 중 일부는 균형발전 수단으로 공항 유치 검토를 고려하지만 양분된 지역 민심 속에 위험을 감수하며 소신을 밝히기엔 부담이 큰 모양새다. 경기도는 가장 모호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민선 8기 도는 ‘(성남과) 수원 군 공항 이전을 통한 경기국제공항 조성’ 공약을 제시했지만 2024년 ‘경기국제공항 사업 내 수원 군 공항 이전 배제’ 조례가 시행되자 도는 ‘민간·반도체 공항’과 ‘수원 군 공항’ 선 긋기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도는 같은 해 말, 화옹지구를 경기국제공항 후보지 중 하나로 선정하고 최종 결과를 발표하지 않으며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수원, 화성 지방의원과 국회의원은 선거철을 맞아 지루한 ‘경기국제공항과 수원 군 공항 이전 연계’ 찬반 논쟁을 재소환 중이다. 그 사이 정부 예산 속 ‘경기국제공항 사전타당성조사 용역비’도 편성과 불용을 반복하고 있다. 이미 10여년에 걸쳐 되풀이된 상황들은 군 공항 이전이 지자체의 손을 완전히 떠났으며 선거철 공염불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번 선거에 나서는 단체장, 지방의원 후보들은 공항 이전과 건설 찬반을 직접 논하기보다 예비 이전 후보지를 한 곳 밖에 선정하지 않아 단초를 제공한 국방부, 나아가 정부에 공을 넘기는 방법을 논해야 할 것이다.

[지지대] ‘선장’ 수개월 비운 LH, 어디로 가나

정부의 주택 공급 대책이 발표될 때마다 시장의 시선은 국토교통부를 넘어 실무 집행 기구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 향한다. 3기 신도시 조성, 공공주택 공급, 최근의 전세사기 피해 지원까지 LH가 짊어진 짐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하지만 정작 이 거대 조직을 이끌 ‘선장’의 자리가 수개월째 비어 있어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LH는 수십조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국내 최대 공기업이다. 사장의 공석은 단순한 행정 공백에 그치지 않고 대규모 택지 조성이나 토지 보상, 건설 현장의 안전 관리 강화 등 중장기 프로젝트를 ‘임시 보류’ 수준에 머물게 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금처럼 고금리와 공사비 상승 등으로 주택 공급 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민간시장의 위축을 메워줘야 할 공공의 역할이 사장 부재로 인해 동력을 잃는 게 뼈아픈 실책이다. 최근 LH는 신뢰 회복을 위한 조직 혁신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내부 기강을 확립하고 잇따른 사고로 실추된 이미지를 쇄신해야 하는 시점에서 사장 공석은 내부 조직원에게도 부정적인 신호를 준다. ‘대행’, 그리고 ‘대행의 대행’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어차피 대행 체제인데”라는 식의 무사안일주의가 멈추지 않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적기 공급을 기다리는 서민에게 돌아간다. 정부는 적임자를 찾는 과정이라고 설명하겠지만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정치적 셈법’이나 ‘낙하산 인사’ 논란만 무성해질 뿐이다. 주택 시장의 안정은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현장을 알고 정책의 맥락을 짚어낼 수 있는 인물을 신속히 투입해 멈춰 가는 LH의 엔진을 다시 돌려야 한다. 문제는 속도와 책임이다. 아무리 화려한 주택 공급 청사진을 내놓아도 현장에서 실현할 LH의 사령탑이 부재하면 지난해에만 세 차례 내놓았던 각종 부동산 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나. 조직 내 의사결정이 보수적으로 흐르고 현장의 갈등 조정도 표류할 수밖에 없다. ‘내 집 마련’의 꿈을 담보로 정책 적기를 기다리는 서민의 기대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리더십의 공백이 정책의 지지부진으로 더 이어지기 전에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지대] 새 학기 증후군

학교 가기를 유난히 꺼리던 아이가 있었다. 그날도 등교한다는 핑계를 대고 개울로 갔다. 어느 정도 기다린 끝에 낚싯대 끝에서 신호가 왔다. 들어올려 보니 웬 종이쪽지였다. 거기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왜 학교 안 가니”. 어렸을 적 동화책에서 읽었던 에피소드다. 필자의 코흘리개 시절을 소환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등교하기 싫었던 적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까닭도 명쾌하지 않았다. 친구들도 보고 싶고, 운동장에서 뛰어다니고도 싶었지만 갑자기 지루하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오늘 하루 정도는 그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호소했다.“배가 아파 학교에 못 가겠어요.” 하지만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수작이 먹힐 리 없었다. 그런 위험한 유혹은 끊임이 없었다. 해마다 매일 아침 또 다른 나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올해 첫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부모들의 인터넷 카페에 이런 사례가 많이 올라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녀와 등교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물론 대다수 아이는 시간이 흐르면 적응하지만 일부는 심한 불안이 복통 같은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다. 새 학기 증후군이다. 입학과 개학 등으로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 적응하지 못하고 불안을 느끼거나 힘들어하는 증상이다. 의료계는 자녀가 부모와 떨어짐을 불안해하면서 등교하지 않으려 한다면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타고난 기질이나 성격 때문일 수도 있고, 부모가 불안해하는 성격일 때도 그럴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부모가 양육 과정에서 과잉 보호 및 지나친 간섭을 보이거나 부모와 아이 사이 애착이 불안정할 때 늘어날 수도 있다. 등교를 거부하면 급하게 해결하려 하지 말고 천천히 타이르는 게 효과적이라고 충고한다. 부모가 자신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 이해한다는 사실로 자녀를 안심시켜야 한다. 학교 가기를 싫어하는 아이를 즐겁게 등교하도록 만드는 으뜸은 소통이다. 아이의 어려움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얘기를 나눈 후 아이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물어보는 게 좋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시급한 영역이다.

[지지대] 춘분을 맞으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 오묘하다. 뉘엿뉘엿 땅거미가 졌는데도 컴컴하지 않다. 동장군의 서슬퍼런 심술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이십사절기의 네 번째인 춘분 이야기다. 이날 먹는 떡이 있었다. 나이떡이 그렇다. 추석에 먹는 송편과 비슷했다. 온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나이 수대로 먹었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은 자기 나이 수대로 먹기 어려울 수 있어 작게 만들기도 했다. 개구쟁이들은 자신의 주먹만큼이나 제법 크게 만들어 먹었다. 볶은 콩을 먹기도 했다. 새와 쥐가 사라져 곡식을 축내는 일이 함께 사라져야 한다고 믿어서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겨우내 쉬고 있었던 일꾼을 불러 1년간 농사를 부탁하고 술과 음식 등을 대접했다. 이를 머슴떡이라 불렀다. 이날 이후에는 봄보리도 갈고 춘경도 하며 담도 고치고 들나물도 캐먹었다. 봄은 시나브로 이렇게 시작됐다. 정확하게 따져 보면 사실 이날은 낮이 밤보다 8분 정도 더 길다고 한다. 낮과 밤은 태양의 중심이 지평선에 걸리는 시점을 기준으로 삼는 게 아니고 태양이 보이고 안 보이고의 시점을 기준으로 삼아서다. 아침에 태양이 머리만 살짝 내밀어도 낮이 시작되고 저녁에 꼬리까지 다 져야 비로소 낮이 끝난다. 낮의 길이를 일출 이후부터 일몰 이전까지로만 본다면 이해되는 대목이다. 우리에게만 이 절기가 특별한 건 아니다. 이집트나 유럽의 켈트족 등도 이날을 기렸다. 기독교 세계에서도 중요한 날이다. 부활절도 이때 진행되기 때문이다. 예수의 사망과 부활 사건이 있었던 유월절이 원래 이스라엘 전통에선 춘분축제 기간에 해당한다. 유월절을 계기로 예루살렘에 간 예수가 제사장과 로마 당국의 눈 밖에 나 처형 당했으나 제자들은 부활을 증언했다. 중국과 일본 등지에선 춘분 이후 보름 동안 현조지(玄鳥至·제비 등이 오는 때), 뇌내발성(雷乃發聲·봄비와 천둥이 치는 시기), 시전(始電·번개가 치는 시기) 등으로 나눠 의미를 되새겼다. 절기와 관련된 풍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전통에 너무 얽매여 멱살을 잡힐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춘분이 찾아왔다.

[지지대] 유행 음식과 제철 음식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를 구하려고 선 대기줄은 길었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인증샷이 가득했다. 달콤함에 열광하던 기세는 점차 누그러지더니 입춘(立春) 무렵엔 ‘봄동비빔밥’이 그 자리를 꿰차는 듯했다. 제철 나물이 드디어 유행의 주류가 되나 싶었지만 반가움도 잠시 이제는 ‘버터떡’이 젊은층의 미각을 장악하려 등장했다. 음식 유행은 항상 있었다. 허니버터칩, 먹태깡, 마라탕, 탕후루가 그랬다. 대만식 카스텔라, 소금빵, 십원빵, 흑당버블티가 유행을 탄 적 있다. 가게가 많으면 많을수록, 대기줄이 길면 길수록 인기는 치솟았다. 유행 음식은 제각각 다른 듯해도 공통점이 있다. 자극적이거나 달콤하거나 고소하다. 강렬한 첫인상이 있다. 그리고 소수만 남고 빠르게 사라졌다. 유행 음식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유행 덕에 몰랐던 재료도 알게 됐다. 두쫀꾸 아니었으면 카다이프이란 재료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평범한 식재료가 뜻밖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봄동이 그렇다. 겨울 끝자락 밭에서 묵묵히 자라던 채소가 어느 날 갑자기 젊은 세대의 입에 오르내릴 줄 누가 알았으랴. 다만 두쫀쿠, 봄동, 버터떡으로 이어지는 미각의 유행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음식은 음미하는 것이었는데 먹는 행위가 유행을 쫓는 일이 돼버렸다. 한 입 먹고 ‘나도 안다’고 말하기 위해 달려가는 풍경은 어쩐지 허기보다 조급함처럼 느껴진다. 맛을 보기보다 먹었다는 인증을 SNS에 남기려는 것처럼 보인다. 봄은 유행처럼 단박에 오지 않는다. 천천히 제 속도로 올라온다. 봄기운에 자라는 냉이, 달래, 봄동 역시 그렇다. 유행도 좋지만 오래 남는 것은 유행의 이름보다 천천히 먹던 한 끼의 맛일지 모른다. 제철 음식을 제때 먹는 것도 행복이다. 봄이다. 봄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며 봄을 맞아보길 기대한다.

[지지대] 말에 담긴 가시는 돌아온다

어느 날 주변을 돌아보니 유독 인복이 많은 사람이 있다. 언제나 많은 사람이 주변에 함께하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에 칭찬만이 가득한 이들 말이다. 유심히 들여다보니 그들에게 몇 가지 공통점이 보였다. 말에 가시가 없다는 것, 늘 다정함을 담은 채 부드러운 말투로 주변을 대한다는 점이다. 따뜻함을 나누는 그들 곁엔 언제나 많은 사람이 함께했고, 따뜻함은 배가 돼 주변을 채웠다. 이들의 공통점은 또 있다. ‘갈등’을 겪어야 하는 순간, 의견이 ‘대립’해야 하는 순간에 충분히 갈등하고, 충분히 대립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당연하듯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그것은 곧 상대에 대한 존중이 됐고 이후에도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반면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뒤를 생각하지 않고, 기를 쓰고 상대에게 가시 돋친 말을 내뱉는 이들. 그 가시가 언젠가 나에게 돌아와 나를 공격할 무기가 될지 모름에도 뒷일은 없다는 듯, 이후의 관계는 고려치 않는다는 듯 구는 이들 말이다. 그런 이들 곁에선 가장 먼저 사람이 사라지곤 했다. 바야흐로 선거의 시간이 다가왔다. 6·3 지방선거까지 70여일. 후보들 간의 치열한 정쟁이 시작된다. 자신의 강점을 알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알리는 장이다. 그러나 우리의 선거는 가시 돋친 말이 앞서는 장이 된 지 오래다. 벌써 지역 곳곳에서는 수십년을 함께했던 상대방을 경쟁자라는 이유로 깎아내리고 그들에게 아픈 말을 골라 던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당장 눈앞의 후보를 꺾기 위해 말에 가시를 담아 뱉어내면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올지 모른다. 그리고 그 가시가 가장 먼저 앗아가는 것은 따뜻함을 담은 내 옆의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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