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희 소설의 인물들은 전장(戰場)에 있다. 조선족 베이비시터의 본모습이 몹시 궁금한 프로그래머(‘당신은 말한다’), 새로운 터전에서 새 이름을 얻고 싶어 하는 탈북 여성(‘네 개의 이름’), 사고로 뒤집힌 차 안에 묶여 불안했던 삶의 순간들을 파노라마처럼 떠올리는 여자(‘점심의 연애’), 일상적으로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히키코모리 청년(‘사막의 뼈’), 아내의 실종과 아들의 실종이 자신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가족(‘미싱 도로시’),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않는 딸을 10여년째 기다리는 아버지(‘극’), 어떤 돌봄도 받지 못한 채 아기를 사산하는 소녀(‘소녀의 난’), 물속에서 채무자의 눈을 보게 된 채권추심원(‘인어’), 매일 유서를 쓰는 이혼녀(‘허들’),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며 모성을 잃어가는 여자(‘잘 자 아가, 나무꼭대기에서’), 생계를 위해서라면 어떤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는 탈북 청년(‘소년과 소녀가 같은 방식으로’), 뇌수술을 앞둔 엄마와 언제나 이기적인 아버지 앞에 무기력한 딸(‘로즈쿼츠’)이 그러하다. 작가 신주희는 이들의 전쟁 같은 일상을 냉철한 시선으로 추적한다. 마치 영화감독의 시선 같고 폐쇄회로(CC)TV의 시선 같다. 이 시선은 인물들의 마음속으로까지 침투해 작가, 화자(話者), 인물 대상이 서로 구별되지 않는 지대로 진입하기도 한다. 자궁 속 태아의 입장에서 전개되는 ‘소녀의 난’(‘모서리의 탄생’)은 시선(視線)이 어디까지 가닿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텍스트다. 현대사회의 군상을 감정이입 없이 전시하는 그의 소설은 자연주의 작가 에밀 졸라의 소설을 닮았다. 난무하는 폭력에 시달리는 삶의 참혹함을 마치 외과의사처럼 치밀하게 해부하는 자연주의 문학의 근저에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모색하려는 휴머니스트의 열정이 잠재해 있기 마련이다. 그의 장편소설 ‘영과 영원’(교유서가)은 2023 경기예술지원 문학창작지원 선정작으로 나경희와 최승구, 마나와 이성호, 해나와 오재 그리고 노라 등의 캐릭터로서 과거와 현재의 삶을 속박하는 굴레를 탈피하지 않으면 미래(아기)란 없음을 강렬히 피력한다. 올해 출간된 장편소설 ‘친애하는 나의 종말’(북다) 또한 기성세대가 엮어낸 종교적⋅교육적 억압 구조가 미래세대들을 어떻게 해(害)하는지를 역력히 보여준다. 작가는 청년의 미래에 많은 기대와 관심을 기울인다. 상류계층 진입을 꿈꾸지만 지금 당장은 ‘스펌’을 팔아야 하고(‘홀로, 코스트코’), ‘마사지 서비스’를 팔아야 하는(‘브라질리언 왁싱’) 청년층의 곤궁한 삶을 작가 신주희는 경쾌한 문체, 다정한 시선, 넘치는 활력으로 그린다. 작가는 청년을, 미래를 사랑하고 있다.
문화일반
경기일보
2025-09-18 1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