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행궁동 골목에서

나의 어반스케치 교실에 마음씨 고운 중국 여성이 들어왔다. 산시(陝西)성 시안 출신의 리린(李璘)이다. 한국에 온 지 17년 차다. 수원시가족여성회관의 여행드로잉 어반스케치 전시를 보러 왔다가 배워보고 싶어 바로 등록했다고 한다. 수원의 역사와 문화를 잘 알고 매사에 적극적이다. 평소 중국인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었는데 그로 인해 모든 중국인이 새롭게 보인다. 어학원에 다니다 만난 남편은 한국인이다. 다섯 살 난 아들 지호는 우리들의 야외스케치에 따라온 적이 있다. 언젠가 도토리시민농장에 갔을 때도 함께 그림도 그리고 밥도 먹은 적 있는, 그래서 모두의 이웃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깨끗한 성정이 한 나라의 품위를 격상시킬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지난 여름 시안에 계신 부모님이 린의 집에 와서 오래 머물다 가신 걸 나는 알고 있다. 이래저래 자랑할 것이 많은 그는 요즘 나의 행궁동 현대미술 프로그램에서도 멋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크릴로 그린 행궁동 풍경이다. 나이프로 그린 일종의 어반스케치다. 모두 그의 실력에 감탄한다. 며칠 후 카페 행궁 다과에 있을 행궁동 주민자치회 프로그램 전시에도 멋진 작품이 기대된다. 다문화센터에서 강사 일도 하는 린은 오늘도 명랑한 희망을 전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탑동 시민농장

지난해 이즈음 수강생들과 탑동 시민농장에 갔다. 올해도 시월의 마지막 날 야외 스케치 일정이 있다. 묵은 그림에서 묵은 자취를 본다. 빨간 엔실리지탑이 보이고 농장의 일손은 분주했다. 새파란 배추와 가을 무에 물 주는 모습, 허리 굽혀 우거진 채소를 가꾸는 풍경은 자연과 인간의 원초적 교감이 느껴졌다. 주말농장으로 불리던 가족 텃밭은 수원에 여러 군데 있지만 이곳이 가장 규모가 큰 것 같다. 채소는 사 먹는 게 편하고 경제적일 수 있겠지만 내가 농작물을 직접 길러 먹는 의미가 훨씬 큰 것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농사일의 체험과 노동의 가치를 알게 하는 가족과의 공동체적 유대와 교육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부근엔 소금을 뿌려 놓은 것 같다는 메밀밭과 억새도 무성해 가을에 젖게 했다. 농사를 취미처럼 하는 것과 생업으로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어떤 것을 아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이 낫고 좋아하는 것보다 즐기는 게 최고인 뜻은 오랜 언어적 유산이다. 날씨가 소슬하다. 가을 모기처럼 날씨는 짓궂고 상냥하지 않다. 슬쩍 한 해도 기운다. 높은 이상에 튀어오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착지도 잘해야 하는 시기다. 사람이 살아 가는 동안 근심 걱정은 쉼 없이 동행한다. 가을운동회는 끝났다. 남은 결실을 잘 거두자. 그리고 가을 우체국 앞에서 주소지 없는 편지 한 통이라도 마음에 남기자. 누구라도 그대가 되는.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빨간 슬레이트 지붕-양평 가는 길

양평 가는 길. 오랜만의 외출이다. 고무줄처럼 팽창한 하늘이 풍선줄을 잡고 냇둑을 달리던 유년을 부른다. 밑천 없던 시절이 미래의 꿈을 열지 못했지만 웃고 뛰던 맑은 추억은 그립다. 집으로 갈 순 있지만 옛날로 돌아갈 길은 없다. 양평 가는 길에 옛집들이 신작로 위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풍경을 본다. 푸른 강물이 순간을 묻고 떠간다. 한 방울로 나뉠 수 없는 강물의 집합체, 인간도 그럴까. 공동체로 살아가며 사랑을 물들이고 합치며 외롭지 않게. 후배가 전시하는 펫 리퍼블릭 카페에 들었다. 수영장을 갖춘 애견 카페인데 그림 전시도 겸하고 있는 색다른 공간이다. 반려견을 친구로 자식같이 가족같이 나들이하는 현대인들의 시대상이 낯설지 않다. 후배의 작업실도 방문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미술교사로 교직을 은퇴하고 전원과 마주한 그의 의기와 성실한 태도가 멋지다. 돌아오는 길에 한적한 시골길의 빨간 슬레이트 지붕이 있는 집을 발견하고 차를 멈췄다. 근처엔 정미소도 있고 낡은 집들이 향수를 자극했다. 외갓집같이 친근한 풍경이다. 낡은 슬레이트 처마를 뚫고 하늘로 치솟은 굴뚝이 이상의 푯대 같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산다. TV를 시청하다 폐허가 된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의 한 여인이 죽은 남편의 유품을 찾으려 잿더미를 뒤지는 광경을 봤다. 남편의 사진과 의복이라도 찾으려는 것이다. 추억의 힘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여행 오큘러스–유리방

수원 역전은 과거 어두운 늪이 있었다. 옛 터미널 근처다. 지나가기 민망한 성매매업소가 길게 이어져 있던 기억을 되뇐 것은 이곳에서 전시를 하게 돼서다. 수원시는 2021년 5월 퇴폐로 얼룩진 이곳을 과감히 정비했다. 처음엔 저항이 심했으나 끝내 설득이 통해 2021년 5월31일 60여년을 이어온 소위 은하수 마을의 불편한 역사는 막을 내렸다. 대부분 스스로 이 거리를 떠나 자진 폐쇄됐다. 시는 이곳을 철거해 소방도로를 만들었고 시민들에게 문화 향유의 공간이 되는 커뮤니티 전시장을 만들었다. 기억 공간 ‘잇~다’다. ‘잇~다’는 암울한 과거와 오늘의 어긋난 간격을 잇고 미래를 향한다는 의미다. 이곳에서 ‘여행오큘러스—우리동네 어반스케치’를 주제로 20여년간 세계의 오지를 여행하며 스케치한 작품들과 산루리라는 수원의 원도심을 주제로 그린 어반스케치를 동시에 전시한다. 세계의 오지를 탐험하면서 모으기 시작한 미니어처 말과 낙타, 국가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들어간 기념물품도 함께 전시한다. 성매매업소를 표징한 유리방에 설치하니 어떤 숨겨진 의미의 상징성과 조형미가 어우러져 매력적이다. 한쪽 테이블엔 여러 개의 스케치북과 여행의 단상이 적힌 수첩도 있고 그간 출간한 책들도 전시하며 현재 신문에 연재 중인 글을 모은 ‘어반스케치 에세이 호주머니 속의 시처럼’도 출간한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젊은 거리, 행리단길

구월도 저물었고 추석이 가깝다. 어디 먼 여행이라도 할 수 있는 넉넉한 연휴지만 의욕이 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냥 머무르고 싶지도 않다. 긴 휴일 동안 그림이나 그려야겠다. 그림의 효능은 직간접으로 이롭다. 껍질 없는 알맹이같이 준비된, 정신을 모으는 부단함이 좋다. 이런저런 새로운 것을 준비하며 예술의 영감을 확장한다. 작업 구상은 오래된 계획이어야 한다. 그리고 상상을 조금씩 당겨온다. 멀리서 봐야 전체가 보이고 떨어져 봐야 번뜩인다. 너도 그렇다. 어떤 시인의 시를 반어적으로 해석한다. 멀리서 전체를 보는 것은 미학이고 다음을 관조하는 철학이다. 세밀한 그림과 설명서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더욱 그렇다. 식은 밥처럼 너무 진부해도 욕구가 사라진다. 뜨거운 커피가 제맛이다. 천천히 음미하는 따뜻한 시간이 있으므로. 늘 새롭고 목적 없는 표현이 되길 스스로에게 바란다. 궤도를 이탈한 포스터모더니스트가 되고 싶다. 젊은 행리단길을 걸으며 시대와 문화적 괴리가 모래알처럼 접촉되지 않음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산뜻한 컬러와 발라드한 느낌과 가을 콩밭의 콩깍지처럼 톡톡 터지는 생동감이 좋다. 오랜만에 들른 골목집 여사장님이 나를 알아보고 친구의 안부까지 묻는 감사함에 행복했다. 사람이 살아 가는 게 그렇다. 묵은지 김치찌개처럼 오래 익어 변함없는.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가을을 맞으며

계절을 맞이하는 사람의 마음은 바람의 관습을 잘 수용한다. 차려놓은 음식을 쉽게 먹듯이, 수고한 자의 짐을 내려놓듯이 선물처럼 가을이 안겼다. 밤이 길어지는 것과 함께 긴 겨울도 이어질 것이다. 지난 여름 남수동 어느 공터에서 풀들이 무성한 키 작은 집을 그렸다. 숨 쉬기조차 힘들었던 한여름의 일기다. 낡은 양철지붕의 벽돌집을 보며 그곳에 더욱 가족과 이웃의 깊은 유대와 사랑이 풀잎처럼 우거짐을 느꼈다. 가족이 한 방에서 먹고 자고 했던 추억을 우리는 모두 캥거루 주머니처럼 지니고 있다. 비좁은 공간일수록 가족애는 직접적이고 진하다. 사랑이란 단어를 다시 한번 꺼내 본다. 사랑이 뭐길래 우리의 마음을 송두리째 착취하는 것일까. 사랑이 밥 먹여 주는 건 아니지만 사랑은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 인생은 써도 사랑은 달다. 사랑의 슬픔은 타지마할을 만들고 사랑의 기쁨은 궁전을 이룬다. 사랑은 존경이고 맑은 성정이지만 배신도 있고 나약하기도 하다. 사랑을 앓다가 떠난 브람스, 사랑을 잃고 죽은 모딜리아니를 죽음으로 따른 잔느, 사랑의 묘약은 불가능한 꿈이다. 김남조 시인은 사랑을 담은 시 ‘편지’를 이렇게 썼다.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사랑의 종말은 외롭고, 외로움 때문에 우리는 사랑한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빨간 우체통이 있는 집

빨간 우체통이 있는 집 앞을 지나며 그리운 사람에게, 고향의 부모 형제에게 손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던 시절을 소환했다. 언덕 위 주택가를 지나다 보면 ‘그 집 앞’이라는 가곡이 떠오른다. 단독주택이 대부분이던 시절, 대문은 그 집과 거주하는 사람까지도 그려지는 그리움 같은 것이었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 노라면’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장롱 속의 옷처럼 빠른 시대상에 갇혔다. 학창 시절 윗마을 여학생이 내 앞에 아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일부러 다리를 꼬며 막아서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여학생을 도저히 앞지를 용기가 없었다. 긴 들판 중간쯤에 논두렁길이 나오자 나는 빠르게 질러가다가 그만 미끄러져 논에 빠지고 말았다. 이튿날 여학생의 아버지가 장로로 있는 교회를 함께 다니는 친구가 다가와 묘한 웃음을 날렸다. 그림 하나 그려 달라는 말을 하려 했다며, 도망친 나의 심약함을 조롱하는 듯했다. 세월이 지금까지 흘렀다. 그 여학생의 집 앞이 꿈속에서 수십번 지나갔던 ‘그 집 앞’이었음을 알 것 같다. 요즘의 우체통엔 세금 고지서, 공과금 납부 통지서 등이 대부분이다. 남자로서의 긴장감을 주지 못하는 인생의 절기가 오고 있다. 하지만 빨간 우체통에 그리움과 설렘을 전할 수는 없어도 그대를 향한 마음의 편지는 아직 긴 밤을 오가고 있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능소화가 피어 있는 대문

능소화 핀 계절이다. 장미꽃보다 화려하지 않아도 긴 넝쿨 사이 주황색 꽃은 토속적 미가 있다. 정조로를 걷다가 큰길 안쪽 골목에 설핏 스쳐 가는 낯선 풍경을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이국적인 풍경에 놀랐다. 담장 밖으로 처음 보는 양식의 이색적인 지붕이 있고 그 옆 녹색 대문 위에 푸른 넝쿨이 우거진 집이 있었다. 능소화 꽃이 반기지만 대문 앞에 시멘트 포대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다. 도시에도 빈집이 많다. 편리함을 쫓아 아파트로 이사 갔거나 노부부가 살다 다 돌아가서 빈집이 됐을 수도 있다. 하긴 고향의 우리 집도 빈집이 된 지 오래다. 빈집은 추억의 창고 같다. 한 사람의 생애와 한 가족의 희로애락이 묻혀있는 곳이다. 어쩌면 함께 덮고 잤던 이불 장롱도 있고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던 수저와 밥상도 남아 있으리라. 아니, 어쩜 인생을 함께 걷던 부부의 신발도 남아 있을지 모른다. 문득 이런 시가 기억 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집’)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화령전 작약

행궁동은 1896년 나혜석이 탄생한 동네다. 그의 생가터가 있고 부근의 새마을도서관 서가엔 나혜석의 다양한 책들이 별도로 꽂혀 있다. 나혜석의 대표작 화령전 작약을 다시 꺼내본다. 야수파적인 간략한 화려함이 시절을 당겨와 무르익게 한다. 담쟁이넝쿨이 담장을 덮고 커다란 나무가 안팎으로 푸르고 싱그럽다. 화령전은 화성의 화(華)자와 시경의 ‘돌아가 부모에게 문안하리라(歸寜父母)’라는 구절에서 따온 령(寜)자로 이뤄진 이름이라고 한다. 나혜석의 화령전 작약을 모티프로 이곳엔 여러 작약을 심어 놓았다. 작약은 아름답다. 돌담 밑에 곱게 피어 있던 고향 큰댁 뒤란의 작약이 그립다. 고향 생각은 나와 나의 뿌리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마음 뉠 태안 같다. 이즈음 동네 산자락엔 칡넝쿨이 우거졌고 나는 그것을 걷어와 토끼를 길렀다. 토끼 키우기는 애완용 사육이 아니라 가축(家畜)이라는 가족관의 공동체적 생활이었을 것이다. 수강생 박용삼님이 자연과 친구 맺고 조암에서 밭을 가꾼다고 한다. 그의 영농은 건강한 생활과 세월 보내는 방편 같다. 여럿이 그의 농장에 가보고 싶어 한다. 고구마순이 밭을 덮고 있으니 걷어 가라는 것이다. 고소하고 맛난 고구마 순, 힘든 고구마줄기 까기는 맛이 아니라 인생을 진지하게 달관하는 과정 같다. 치사하지만 그것은 벌기는 어려워도 쓰기는 쉬운 돈과 같다. 그의 영농이 노동의 가치를 넘어선 정신의 가치가 되기 바란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하남지터에서

나의 교실에 마음씨 고운 중국 여성 린 님이 오늘도 멋진 그림을 그린다. 소재가 궁금해 물어보니 하남지터란다. 아이와 함께 이 공터에 놀다 온 추억을 담는 것이었다. 수원화성 안에 모두 5개의 연못이 있고 그중 하나가 하남지터다. 복원 공사를 위해 남창초등학교 앞의 상가들이 모두 철거됐고 2028년 화성성역의궤에 수록된 대로 조성 공사를 실시해 2029년 준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공백 기간 유휴지에 계절 따라 청보리를 식재했고 금계국도 심어졌다. 하남지가 복원되면 이곳은 또 다른 수원화성의 명소가 될 것 같다. 클로드 모네의 일본 다리가 있는 수련 연못이나 궁남지, 안압지가 그려진다. 시간을 조금 당기면 남문이 수원의 중심이었고 젊은이들로 가장 붐비던 곳이 아니었던가. 금계국 사이의 고추잠자리 한 쌍이 청춘의 긴장감처럼 청량하고 팽팽한 하늘을 날아 허공을 출렁인다. 가을 기색이다. 푸른 논의 벼 이삭이 가을을 익히고 백로가 날아가는 논두렁 따라 잠시 고향이 마음에 머문다. 한적한 시골이나 금계국이 있는 공터가 아니면 생각이 머물 틈마저 없을 것이다. 문화센터 수업이 끝나고 작업실로 향한다. 혼자 있어도 늘 분주하다. TV를 켜놓고 글을 쓰고 빵을 먹으며 그림을 그린다. 틈 없는 일상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삶은 지평선 없는 풍경화처럼 목적지 없는 바람처럼 맴돈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도서관 가는 길

불어오는 책 내음은 그윽한 연서 같다. 예쁜 카페가 화단을 내어 놓은 선경도서관 가는 길이다. 도서관은 걸어서 가야 사색적이다. 며칠 전 김훈의 글을 읽었다. ‘죽음과 싸워 이기는 것이 의술의 목표라면 의술은 백전백패한다. 의술의 목표는 생명이고 죽음이 아니다. 깨어진 육체를 맞추고 꿰매서 살려내는 의사가 있어야 하지만 충분히 다 살고 죽으려는 사람의 마지막 길을 품위 있게 인도해 주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의미 있는 담론을 제시했다. 그렇다. 죽음은 성큼 자라난 비 온 뒤의 옥수처럼 세수하고 면도하듯이 자연현상으로 품위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가끔 버리고 갈 것에 주변을 돌아볼 때가 있다. 수해 복구 지역 같은 어수선한 작업실에 책과 그림이 대부분이다. 김훈 작가는 책은 버리는데 분신 같은 신발은 못 버리겠다고 했다. 나와 다르다. 그림은 남은 자의 선택이지만 시선과 정신이 머문 책은 아직 버릴 수 없다. 책은 나를 지탱하는 인생 설명서이고 죽음까지도 안내받아야 할 영혼 같아서다. 창밖으로 화성행궁이 내다보이는 새마을 도서관에서 가을 깃든 커피 한잔 마신다. 현대미술 수업의 가장 창의적인 수강생 양선희님이 봉사하는 곳이다. 화령전을 그린 이 동네 사람 나혜석의 책을 꺼내 본다. 그가 살아온 생애가 다시 외롭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수원시가족여성회관 손바닥 정원에서

옛 수원시청은 1950년 6·25전쟁으로 현 후생내과 거리의 시청이 파괴되자 전후 새로 지은 청사다. 1954년 10월 착공, 1956년 준공한 이래 1987년까지 수원시청사로 사용됐다. 이후 시청은 옮겨가고 권선구청으로 사용되다 현재의 수원시가족여성회관이 됐다. 성벽 같은 돌벽에 세로로 길게 내린 창이 아름다운 이 건물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필자도 당시 민원 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여러 번 오갔던 곳이다. 뜬금없이 밀짚모자를 쓴 촌로들이 오가던 면사무소가 떠오르고 마룻바닥에 놓인 풍금 소리 같은 옛 초등학교 교실이 생각난다. 필자의 작업실과 지척인 이곳에서 어반스케치를 강의하게 된 것은 우연한 인연이다. 규모와 인구가 늘며 도시는 점점 진화한다. 시청이 구청이 되고 동사무소는 구청 규모로 신축된다. 열기 식은 바람이 가을을 부른다. 오늘의 어반스케치는 매교반의 주미향님이 그렸다. 늘 조용히 그림만 남기고 가는 소슬바람 같지만 실력은 들깨향처럼 차고 그윽하다. 그의 침묵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시처럼. ‘이미 오래전부터/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아직 말하지 않음으로/나는 모든 것을 말하였으므로.’ (‘고백’, 배영옥)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팔월, 바람의 미학

폭염이 작열한다. 작열은 군더더기 없고 숨 쉴 틈 없는 격투기 선수의 소나기 펀치 같다. 용광로 같은 더위는 폭서라는 수식어도 모자란다. 품격 있는 바람이 필요하다. 종일 에어컨 앞에 있으면 바람의 가치를 잊는다. 동요 산바람 강바람은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 준대요’라고 한다. 서늘하다의 어감은 엄청난 땀 뒤에 얻는 소중한 대가이자 납량 특집 유령의 손처럼 간담을 녹이는 형용사다. 회전하는 선풍기 바람이 내 앞에 올 때 비움과 채움의 가치를 알 수 있다. 바람을 기다리는 사이의 미학, 그게 쉼이다. 스케치북을 정리하다가 지난 여름휴가 때 그린 남원 광한루 앞의 어떤 풍경을 발견했다. 딱 이맘때다. 벌써 누렇게 변한 고전처럼 세월의 깊이를 느낀다. 오랜만에 나무를 주제로 스타필드 수원의 작은 미술관에서 전시회도 열었다. 수원문화재단과 기업이 협업한 일종의 메세나다. 장소의 특성상 대작들을 빼고 비교적 가벼운 것들로 대체했다. 수원문화재단의 작은 미술관 사업은 수원시의 적극 행정 최우수 사례로 선정됐다. 팔월 한 달 진행되는 이 전시가 모쪼록 시민들의 작은 휴식이 되길 기대한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남수동의 여름

남쪽에 엄청난 수해가 났다. 자연재해처럼 무서운 것도 없을 것이다. 천둥 치고 소나기 퍼붓더니 어느새 폭염이 사납다. 옥탑방 작업실은 하루 종일 가마솥더위다. 작업도 게을러지고 입맛도 없고, 의욕이 없다. 수강생들과 야외 스케치를 했다. 가끔 일상도 환기해야 새로운 의지가 생길 것이다. 남수동은 해마다 찾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동네다. 나지막한 골목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파스텔처럼 곱게 묻어난다. 흐릿한 방 안에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도 걱정 없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뜨락에 채송화, 봉숭아, 맨드라미가 소박하게 핀 정겨운 길이 좋다. 수강생들은 저마다의 풍경과 이야기를 열심히 담았다. 몰입은 꽃 한송이 마음에 피우는 것, 더구나 자신을 넓고 깊게 열어주는 친구 곁이라면 양귀비꽃보다 더 밝을 것이다. 시원한 샘물 같은 남수동의 여름은 올해도 미루나무에 매달린 매미 소리처럼, 어깨동무 줄기를 잇는 나팔꽃처럼 더불어 정답다. 이 세상 태어나 진정한 친구 하나 얻고 싶다. 씨알 함석헌 선생의 글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를 다시 내어본다. 나의 뿌리요, 혼(魂)이요, 고전인. “만릿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맡기며/맘 놓고 갈 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탔던 배 꺼지는 시간/구명대 서로 사양하며/“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광교, 쇠죽골천을 걸으며

“내가 사는 동네는 개울이 많다. 아파트 사이 우리 집도 개울이 흐르는 산책로가 있다. 이런 환경이 좋아 이사 왔다. 집 앞 개울에 발도 담가 보고, 분수공원 개구리 소리를 밤새 듣는다. 쇠죽골은 소죽골, 소마당, 새말 등으로 불렸는데 유래는 두 가지로 전해온다. 하나는 칡넝쿨 등 소먹이가 풍부해 광주군 윤중동, 태장 등에서 수원으로 들어오다가 이 마을에 쉬면서 소의 먹이를 주고 물을 먹였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소가 작다는 의미로 죽보다 작은 골짜기 마을이어서이다. 우리 집 창순이는 매일 다른 길로 산책했다. 쇠죽골천 쪽으로, 성죽천 쪽으로, 절골천 쪽으로, 산책길을 다 외워서 줄 뒤의 우리를 안내하듯 데려갔다. 가끔은 개구리가 뛰어다녀 놀라기도 하고, 뱀이 지나가면 소리도 지르고, 꿩이 나타나기도 했다. 줄 뒤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창순이는 그저 앞만 걸었다. 올해 봄날 그는 명을 다해 홀로 떠났다. 이젠 남편과 나만이 산책한다. 줄을 잡았던 손으로 서로의 손을 잡고 걷는다. 걷다 보면 그와 쉬던 의자도 보이고, 올라가기 싫다고 보채던 돌계단도 보이고, 간식을 먹던 공원도 보인다.” 과제 발표로 글을 읽던 승은님이 더 이상 이야기를 잇지 못한다. 눈물이 복받쳐서, 딸처럼 키운 창순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교실은 잠시 묵념 같은 침묵이 흘렀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보다 큰 위안과 반려를 애완동물로부터 부여받고 산다. 그에게 창순이는 가족이고 자식이고 그 너머였다.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옛 수원문화원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조선중앙무진회사라는 금융지주회사였다고 한다. 이후 수원시청사였던 수원시가족여성회관의 별관 건물이었으나 시청이 옮겨간 후 수원문화원으로 사용됐다. 그때의 2층 갤러리는 수원의 몇 안 되는 전시 공간으로 화가들의 개인전 단체전이 수시로 열렸다. 역사는 깊지 않지만 조형적 양식은 근대적 향수가 흐르는 아름다운 국가유산이다. 하나의 꼭짓점에서 지붕골이 만나는 특별한 지붕 형태와 1층 입구 좌우의 꽃봉오리 장식, 창호 돌림 장식은 볼수록 멋지다. 획일적인 아파트형 건물을 바라보는 것은 수십, 수백년을 이어오는 가우디의 건축이 아니더라도 도시의 피곤함을 지워줄 시각적 조형미에 대한 갈증이 깊었다. 아주 오래전 레바논의 브샤리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칼릴 지브란의 미술관도 보고 레바논산맥의 눈 덮인 백향목을 본 추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솔로몬왕의 궁전을 지었다는 구약성서의 백향목은 해마다 여름이면 고향 시냇가의 버들치처럼 떠오른다. 문득 칼릴 지브란의 잠언 한 구절이 생각난다. “미술은 자연에서 출발해 신에게 가는 과정이며 안개가 형상으로 조각돼 가는 과정이다. 나는 모든 그림이 보이지 않는 이미지의 시작이 되기를 원한다”. 이 그림의 주인공 한진옥님은 바쁜 교사 생활에 야학까지 나와 유화, 어반스케치 등을 익히고 있다. 색 맑은 그의 스케치북은 오늘도 까치집처럼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보물처럼 추억처럼.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수원향교

교동은 향교가 있는 동네라는 뜻이다. 수원향교 입구엔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는데 이는 충절을 상징한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 세운 공립교육기관으로 공자와 여러 성현의 제사를 지내고 지방 사람들을 교육하던 곳이다. 수원향교는 대성전을 비롯해 외삼문 동재, 서재, 명륜당, 내삼문 동무, 서무, 대성전 등 향교의 기능을 두루 갖추고 있다. 1787년 정조가 친림한 이곳은 대성전 아래로 유생들이 학문을 닦던 명륜당이 있는데 현재 다양한 시민 예절 프로그램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곁에 있는 유림회관의 시민교육 또한 활발하다. 이곳의 명륜대학에서는 유학반, 서예반, 다도반, 한문반, 한시반, 경전반 등의 프로그램을 지속 운영 중이다. 또 성년이 되는 청소년에게 집체 성년례를 개최해 새로운 첫걸음을 내딛는 성년의 의미와 전통예절을 직접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필자는 향교 입구에 마을 공동체와 함께 벽화도 그리고 솟대도 만들어 세웠는데 아직 일부가 그 자리에 있어 흐뭇하다. 한 해의 반환점을 돈 후반부가 시작됐다. 온통 초록 물감을 칠해 놓은 듯 왕성한 풀과 숲은 무표정하게 살모사의 혓바닥 같은 햇살을 받아들이고 있다. 불변의 시간은 뻔뻔히 속도를 내고 욕망의 내재율은 점점 나약해져 인생의 종말이 예술의 상실이라는 만성적 자책감이 재발한다. 한심하지만 조촐한 타협을 하자. 새파란 수평선에 뜬 흰 구름처럼 깨끗하고 한결같이.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수채화처럼

세월을 쫓다가 잃어버린 시간이 너무나 많다. 올해도 반환점을 돈다. 가파른 세월을 힘겹게 오르다 어느새 브레이크 없는 내리막길로 들었다. 억울하지만 이미 저 아래 바닥이 바라보인다. 여름은 추억 숲이다. 경포해변의 푸른 바다와 여름밤의 텐트 속. 반딧불이 날던 마당에 멍석 깔고 밤하늘의 무수한 별을 바라보던 틴에이저 시절, 라디오는 낭랑하고 또렷했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시그널 뮤직이 아직 귓가에 있다. 직장 생활 땐 등산팀을 만들어 리드가 되기도 했다. 그 시절 그들은 어디서 무얼 할까, 많이 보고 싶다. 인생의 가장 왕성한 시절이 여름이었다. 오늘은 행궁동 현대미술팀과 수채화를 그린다. 스펀지 붓이 흠뻑 물을 머금고, 수채화지 하얀 가슴에 깊이 스며든다. 청춘의 수액 같다. 언젠가 고등학교 미술 교사를 하던 후배의 미술실을 찾아간 적이 있다. 복도의 창 위로 수업 중인 그를 바라봤다. 그런데 후배의 등 뒤에 걸린 급훈을 바라보고 미소가 전율처럼 흘렀다. 급훈은 ‘수채화처럼’이었다. 근면, 성실, 봉사가 아닌 ‘수채화처럼’이라니. 젊음의 패기가 무기인 아름다운 형용사로 느껴졌다. 수업이 끝나고 총각 선생인 그와 함께 맑고 투명한 이슬을 오래도록 축였다. 참이슬이 수채화처럼 번졌다. 후배의 보름달 같은 웃음이 그립다. 초록 물감으로 싱그럽고 명료한 옛꿈을 다시 그린다. 그대의 빛나는 눈동자에 맺힌 영롱한 추억 같은.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부국원이 보이는 풍경-향교로

부국원은 종자와 종묘, 농기구, 비료 등을 판매했으나 조선총독부 산하 농사시험장 등과 연계돼 산미증식계획과 식민지 농업 수탈의 어두운 역사에 일조한 곳이기도 하다. 1950년대 수원지방법원과 지방검찰청, 수원교육청사와 민주공화당사, 수원예총회관 등으로 변모했으나 1980년대 이후 박 내과라는 병원이 있었다. 나이 많으신 원장님은 2015년경 이 건물을 매물로 내놨다. 필자는 이 근대적 향수가 있는 건물이 참 좋았다. 그러나 한 건설업자가 이 건물을 원룸으로 재건축할 계획으로 사들였다. 필자는 언론매체에 이 사실을 알리고 건물이 사라지지 않을까 안타까워했다. 다행히 시에서 이 사실을 알고 재매입해 위기를 넘겼다. 건축주는 애초의 계획을 변경해 부국원 옆에 보이는 원룸만 짓게 된 것이다. 필자의 화실에서 뒷문을 열면 팔달산의 사계를 볼 수 있었는데 이젠 이 원룸에 가로막혀 숨이 막힐 듯 답답하다. 벚꽃 피는 봄도 단풍잎 고운 가을도 볼 수 없다. 한때는 이 거리가 수원의 중심 도로였지만 45년을 살아온 길 치곤 그다지 변한 게 없어 어쩌면 정감이 간다. 건너편 행궁동에 비해 유동 인구가 적어 소규모 가게들의 생업은 어렵지만 말이다. 저녁 눈처럼 그리움 묻어 오는 이 길을 오늘은 주간반 최승은님이 그렸다. 도화지 앞에만 서면 하안거의 스님처럼 정진하는 그의 과도한 몰입이 날로 깊어짐을 느낀다. 뜻깊은 꿈이 길을 이룬다는.

[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무속 신앙

역마살이 끼었다고 H는 속으로 말했다. 특별한 이상향도 없지만 계절풍처럼 내 안이 요동칠 때면 배낭을 멨다. 다시 그런 미래가 온다면 거친 길보다 편하고 뻔한 여행을 하고 싶다. 아름다움 뒤에 누추하고 불편했던 것들은 젊음을 무기로 각박하고 빈약한 삶을 헤쳐 나갔던 것과 양립했다. 빌딩 숲속에 과학과 화려한 실존이 존재한다면 변두리 빈민가엔 늘 근심과 걱정과 실체 없는 허구가 난립한다. 매교동 변두리는 무속 신앙이 널브러졌다. 2년 전에 그린 그림을 살펴보니 지금도 바뀐 게 없다. 보이지 않는 담벼락 안에 빨간 지붕이 덮여 있다. 연등이 빨랫줄처럼 걸렸고 장대에 나치 기를 뒤집어 놓은 무당의 깃발이 매달렸다. 징 소리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간다. 허약한 곳에 여린 삶이 신을 의탁해 살아가고 있다. 액운을 덜어내려고, 가로막힌 앞을 뚫어내고 가뭄에 봇물 터지듯 생이 윤택하게 자라길 빈다. 꽃 대신, 계룡 할아버지, 백년암, 천상암, 태을연사, 천신보살, 설악산 박보살, 한국역리연구소, 신가림, 사주, 작명, 병굿 등 무속인과 동종의 집들이 산재해 있다. 미신의 삭정이 같은 영혼은 항상 호두알처럼 엉켜 정상적인 삶을 왜곡하고 있다. 떠날 때 무겁지 않게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해야지. 마음의 깊이를 채우되 헛된 욕망을 비우고 살자. 생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도구만으로 빛나는 계절과 예지를 본다. 훈자의 살구처럼, 우물가의 앵두처럼, 미켈란젤로의 눈동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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