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1. 의정부 백영수미술관

우뚝한 도봉산은 언제 봐도 기분이 좋다. 도봉산의 아름다운 풍광에 빠져 산이 훤히 바라보이는 언덕에 터를 마련해 화실을 짓고 그림을 그렸던 화가가 있었다. 의정부시 호원동에 자리 잡고 있는 백영수미술관은 도봉산을 사랑한 화가 백영수(1922~2018)가 1973년 손수 집을 짓고 화실로 사용하던 안말 터에 세운 하우스뮤지엄이다. 백영수·김명애 부부가 미술관 건립을 위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설립한 비영리재단법인 (재)백영수미술문화재단이 2017년 백영수미술관을 개관한다. 2018년 1종 미술관으로 등록된 백영수미술관(관장 김명애)은 의정부시의 제1호 미술관이다. ■ 평생 동심을 일깨운 화가 미술관 새하얀 벽면에 백영수 화백이 창조한 모자상이 설치돼 있다. 엄마의 품에 안긴 아기처럼 미술관이 아늑하다. 자작나무 몇 그루 서 있는 마당에도 모자상 조각이 자리 잡고 있다. 기도와 예배를 드리는 ‘경당’과 화가의 손길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작업실에 들어서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짐작하시듯 미술관은 백영수 화백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집의 형태를 모티브로 설계한 것입니다.” 호원동 화실에서 책의 삽화나 표지화를 그리던 시절이나 프랑스 빌라 슐 바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도 백영수가 일관되게 붙들었던 주제는 소년과 모자(母子)다. 현재 ‘소년’을 주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구상 시인은 백영수를 이렇게 소개한다.  “동심의 세계를 한평생 오롯이 그린 화가를 나는 알지 못합니다. 백영수 화백은 어린이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무한한 시공을 우러르며 살지 싶습니다. 그의 그림이 흐려진 우리의 마음에 신비한 샘물이 돼 맑게 할 것을 바라고 믿습니다.”  시인이 들려주는 말처럼 백영수의 그림은 우리의 흐린 눈과 탁한 마음을 씻어준다. 전시실에서 처음 마주하는 작품은 백 화백이 말년에 매달린 ‘창’을 주제로 한 여백 시리즈다. 붉은 벽에 작고 까만 창이 달려 있는 단순한 구도의 그림이다. 창 너머에 있는 ‘소년’을 만나려면 가슴을 열고 그림 앞으로 다가서야 한다. ■ 소년이 살아 있다 탁자 안에 바지도 입지 않은 벌거숭이 아이가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다. 종이를 오린 것인데,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같은 포즈를 취한 소년이 등장하는 그림은 색감이나 구도가 한편의 동화 같다. 소년의 뒤편에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은 해와 달처럼 보인다. 꽃과 집은 거꾸로 그려져 있다. 새로 도배한 방 벽에 낙서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을 그린 것으로 1998년 작품이다. 발가벗고 방안에 벌렁 드러누워 팔베개를 한 소년을 통해 어린 날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키 큰 해바라기 사이에 한 소년이 서 있고, 그 뒤로 집과 개와 나무가 있다. 바탕의 밝은 주황색이 소년과 해바라기를 뚜렷하게 부각시킨다. 해바라기가 활짝 핀 여름날의 풍경을 떠올린다. 해바라기가 얼굴인 그림도 있다. 생각에 잠겨 앉아 있는 소년의 곁에 새가 한 마리 있다. 피리를 부는 두 소년과 주위에 모여드는 일곱 마리의 새와 여윈 개가 한 마리 있다. 무슨 까닭일까?  1975년 전후 그린 작품들은 하나같이 배경이 어둡다. 작은 연못가에서 피리를 불고 있는 소년 곁으로 새들이 다가온다. 소년의 그림자와 새 그림자가 연못에 또렷하게 비친다. 소년의 피리는 새를 불러 모으고 동무를 불러 모은다. 피리 부는 소년을 통해 희망을 전달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강렬하게 다가오는 ‘남과 여’(1975)는 구도부터 독특하다. 피리를 부는 남자 앞에서 여자는 새를 불러 모아 모이를 준다. 노란 바탕에 푸르스름한 색깔로 그려진 남자와 여자, 그리고 새가 무척 평화롭다. 수백마리의 송사리 떼가 한쪽 방향으로 헤엄치는 ‘송사리’(1969)의 선도 경쾌하다. 그러나 이 무렵 그려진 대부분의 작품은 사춘기 소년의 표정처럼 무겁고 우울하다. 진한 황토색으로 놀란 표정의 소년과 우짖는 새를 그린 ‘새와 소년’이 대표적이다.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공포정치를 펼친 1975년은 한국 정치의 암흑기였다. 이 그림에서 당시 대한민국의 암담한 정치 현실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1976년에 그린 ‘새’와 ‘새와 소년’ 그리고 1978년에 그린 ‘새’도 침울하긴 마찬가지다. 열 마리의 새들 중에서 한 마리만 날고 아홉 마리는 소년의 곁에 모여 있다. 하지만 피리를 부는 소년에 등장하는 새들과 달리 새들의 몸짓이 어수선하다. ‘새와 소년’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가족’(1978)에서 작가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오른편의 모자는 아내와 딸, 왼편에 떨어져 홀로 앉아 있는 사람은 백 화백 자신으로 보인다. 백영수 화백이 프랑스로 이주를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생활고는 물론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했으리라. 320쇄를 돌파한 조세희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표지화에서도 어두운 시대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일까, 피리 부는 소년은 희망을 찾는 몸짓으로 읽힌다. ■ 창 너머에 있는 숨겨진 풍경 백영수 화백은 1922년 수원에서 태어나 두 살 때 일본에 건너가 오사카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한다. 1944년 귀국해 목포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고 1946년에는 천경자 등과 함께 조선대학교에 국내 최초의 미술과를 설립한다. 1947년 서울에 정착해 전시회를 열어 미술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며 최초의 국전인 ‘조선종합미술전’ 심사위원과 ‘대한미술협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한다.  이 무렵 백영수는 수많은 책의 표지와 삽화를 그리고 많은 글을 썼는데, 광복과 6·25전쟁 시기 예술가와 작가들의 생활을 기록한 회고록 ‘성냥갑 속의 메시지’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구상, 서정주, 유치환 같은 시인들과 이중섭을 비롯한 화가, ‘보리밭’의 작곡가 윤용하 등 우리에게 익숙한 문인과 예술가들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백영수가 프랑스행을 감행한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1977년 프랑스로의 출국 전후에 그의 작품에 ‘모자상’이 등장하는 것이 주목된다. ‘어머니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다고 여겼던 그에게 모자상은 평생의 화두로 자리 잡는다.  프랑스 파리에 간 백영수는 요미우리 아트센터의 전속계약 화가로 활동하며 파리와 밀라노 등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22번의 초대전 및 단체전, 살롱전 등에 100여차례 참여한다. 김명애 관장은 유럽에서의 생활을 이렇게 회상한다. “그림을 팔아 남프랑스 빌라 슐 바(Villars-sur-Var)에 별장을 갖고, 파리 근교와 노르망디에 아틀리에를 소유했으니 전업 작가로 성공했던 셈이지요.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백영수의 그림에는 가슴 뭉클한 사연이 많다. 반짝이는 별들로 화면을 가득 채운 ‘별’은 빌라 슐 바에서 별 보기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그린 작품이다. 추위에 떠는 아내를 위해 즉석에서 ‘해’를 그려 주기도 한다. 백영수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을 평생 유지한 특별한 화가였다. 박재용 학예연구사는 백영수 화백의 ‘선’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60여년을 같은 주제로 작업을 하면서도 세련된 선으로 그린 적이 없습니다. 화백님은 에너지를 매우 효율적으로 쏟아낸 작가였습니다.” 백영수미술관은 작고 아담하다. 규모가 작은 대신 공간의 구성이 튼실하다. 김 관장이 평소 매일 기도를 하는 ‘경당’과 백 화백이 생전에 그림을 그리던 화실을 직접 살펴볼 수 있다는 것도 특별하다. 백 화백이 말년에 집중했던 주제가 바로 ‘창’이다. 푸른 바탕에 연두색으로 작은 창을 표현한 그림이 마음을 밝혀준다. 작은 창 너머에 넓고 자유로운 공간이 펼쳐져 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그 너머의 것도 보세요.” 미소를 머금은 은발의 화백이 관람객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것 같다. 푸른 도봉산 아래 따뜻하고 풍성한 이야기를 간직한 백영수미술관이 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0. 연천 전곡선사박물관

단단하고 날카롭게 보이는 주먹도끼가 서 있다. 이곳의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검색한다. 지도를 조금씩 축소하자 박물관이 위치한 마을과 들판을 감싸듯 휘돌아 흐르는 한탄강 물줄기가 뚜렷해진다. 경기문화재단 전곡선사박물관(관장 이한용)이 위치한 곳은 연천군 전곡읍 평화로 443번길 2이다. 숲길을 따라 잠시 걸으니 분홍 꽃을 활짝 피운 자귀나무 우듬지 너머로 둥글고 길게 이어진 은빛 건물이 살짝 모습을 보인다. 둥글고 기다란 은빛 건물은 두 개의 언덕을 잇고 있다.   ■ 주먹도끼 하나가 역사를 바꾸다 전곡선사박물관 로비에 들어서자 공룡의 배 속이나 동굴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전곡선사박물관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을 알려주는 ‘디지털 수장고’와 교육체험특별전 ‘산새들새’를 알리는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디지털 수장고’는 1978년 한탄강에서 발견돼 고고학 역사를 다시 쓰게 한 주먹도끼를 비롯한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과 호모 에렉투스 같은 인류의 조상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주먹도끼, 청동 검, 전동드릴 같은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인류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360만년 전부터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1969년까지 도구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도구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다. 1층 상설전시실은 강이 흐르는 숲처럼 아기자기하다. ‘왜 인류는 두 발로 걷기 시작했을까?’ 전시실에 들어서자 자연스럽게 떠오른 질문이다. 인류가 시작된 곳은 아프리카 초원이었다. 원숭이처럼 나무 위에서 열매를 먹으며 생활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조상은 지구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무성한 숲이 초원이 되자 식량을 구하기 위해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서 생활하게 된다. 앞발을 드는 일을 반복하면서 골반과 척추가 진화돼 두 발로 걷기 편한 체형으로 바뀌었다. 자유롭게 된 두 손은 도구를 만들고 음식을 운반하거나 자식을 돌보는데 사용했다. 처음 마주하는 유물은 ‘전곡의 주먹도끼’이다. 유리관 안에 전시된 다섯 개의 주먹도끼는 이 박물관을 탄생시킨 주역이다.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낸 주먹도끼는 구석기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만능도구였습니다. 주먹도끼는 큼직한 돌을 다듬어서 끝이 뾰족하거나 타원형으로 날을 만든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석기입니다. 주먹도끼는 모양이 나무를 쪼개는 데 쓰는 쇠도끼와 비슷해 지어진 것입니다. 주먹도끼로 나무 다듬고, 짐승의 가죽을 벗겨 내고, 고기를 발라내고, 뼈를 부쉈지요. 이처럼 구석기시대 사람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만능도구였던 주먹도끼를 ‘구석기시대의 맥가이버칼’이라고 부르지요.”  전곡리 주먹도끼는 흔히 아슐리안 내지 아슐리안 스타일의 주먹도끼라고 한다.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전곡리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들은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서양에만 있었다는 모비우스 교수의 학설을 무너뜨리고 세계 구석기 연구를 다시 시작하게 한 획기적인 유물이다.  ■ 주먹도끼, 두 발로 걸으면서 시작된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전시실의 중앙은 인류의 진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700만년 전 살았던 가장 오래된 화석인류 ‘투바이’는 물론 세련된 이름을 가진 ‘루시’와 ‘루시앙’도 두 발로 걸었다는 점을 빼면 원숭이와 구분하기 어렵다. 약 180만년 전에 출현해 최초로 석기를 사용한 ‘호모하빌리스’를 유심히 살펴본다. 털이 많이 줄어든 ‘호모 에르가스터’를 보니 원숭이와 달라진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불을 사용한 흔적을 뚜렷하게 남긴 베이징원인 ‘호모 에렉투스’는 약 70만년 전부터 사냥꾼으로 살았고, 동굴에 멋진 채색화를 남긴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는 3만년 전까지 살았다. 이 무렵에야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하는데, 한반도 후기 구석기 시대의 주인공이다. 뼈바늘을 사용하고 장례를 치른 흔적을 남긴 ‘산정동인’이나 1만년 전의 ‘만달인’은 체형에서 현대인과 별 차이가 없다. 인형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렇다. 모두가 두 발로 걷는 모습이다. 빙하기의 대형포유류 ‘매머드’ 와 얼룩말도 구석기시대의 주인공이다. 매머드의 다리뼈와 가죽으로 만든 움집이 원시시대의 풍경을 연출한다.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해 살아남는 생존능력,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최고의 강점입니다.” 현생 인류가 전 지구에 퍼져 살기 시작한 후기 구석기시대에 예술 활동이 시작됐다. 인간의 역사는 곧 예술의 역사이다.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과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을 재현한 공간도 빠뜨릴 수 없는 과거로의 여행지이다. 아빠 손을 잡은 어린이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동굴로 들어간다. 화려하게 채색된 순록과 들소, 생동감 있게 그려진 말 그림들은 순식간에 원시시대로 인도한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왜 동굴에 그림을 그렸을까? 동굴 벽화와 동굴에서 발견된 유물을 통해 동굴이 주술적 장소, 특별한 무덤, 성년의식의 장소로도 사용됐던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안내하던 심경보 학예연구사가 동굴을 공연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려준다. 전시장 곳곳에서 영상을 통해 구석기시대의 풍경을 보여준다. 화석만 남은 선사시대를 첨단의 기기로 역동성 있게 소개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털옷을 입은 원시인이 주먹도끼로 가죽을 자르고, 창을 들고 동물을 사냥한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원시인과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자 영상 속 인물이 “아까부터 자네와 말하고 싶었네”라며 화답한다. 원시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레고로 제작한 모형들은 어린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많아 교육과 연계해 새로운 모형을 계속해서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 더 가깝게 다가가고 더 친절하게 맞아주는 박물관 “한탄강세계지질공원센터가 박물관 근처에 있기 때문에 지질답사팀들이 많이 관람하러 오십니다. 박물관이 길목의 초입에 위치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지요. 평소 이 지역을 이해하도록 지질 관련 영상물을 상영하지만, 이렇게 전자칠판을 설치해 강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바로 옆에 지질연구자들이 기증한 화석을 전시하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지난해에 휠체어나 유모차가 지나가기 좋도록 이동 공간을 넓히고 전시물의 높이를 낮춰 어린이들이 관람하기 좋도록 변화를 줬지요. 좀 낮아보이지만 일반인들이 관람하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노후화된 시설도 약간의 변화를 주어 관람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이미란 실장은 상설전시실 옆 공간의 활용에 대한 귀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공간은 연천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와 학생 등 지역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박물관 공간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시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낭비를 줄이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지요.”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자세나 공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민하는 마음가짐이 훌륭하다. 지하1층 기획전시실에도 볼거리와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산새들새’전은 전곡선사박물관 주변에 새가 많은 것에 착안한 생태 관련 전시다. 호랑지빠귀, 후투티 같은 예쁘지만 낮선 새는 물론 까치와 꾀꼬리처럼 익숙한 새들까지 다양한 새들을 만날 수 있다. 1993년부터 전국선사박물관이 주관하는 ‘전곡리 구석기 축제’는 박물관의 자랑이다. 이러한 사업의 기획과 진행을 맡았던 이가 이한용 관장이다. 2011년 4월 개관한 전곡선사박물관의 학예팀장을 시작으로 2015년부터는 박물관장으로 재직했는데, 최근 신임 관장 공개모집 절차를 거쳐 다시 연임됐다. 전곡리 구석기 유적과 33년째 인연을 이어가는 이 관장의 꿈은 단단하다. “세계사를 뒤엎은 전곡리 선사유적의 가치를 더 널리 알리고, 도민과 지역사회, 나아가 전 세계와 소통하며 전곡선사박물관을 구석기 문화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품에 안긴 전곡선사박물관은 휴식과 충전을 위한 여행지로서도 손색이 없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9. 과천 추사박물관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국보 제180호로 지정된 ‘세한도’와 ‘추사체’로 불리는 독특한 글씨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추사가 생의 마지막을 과천에서 보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추사박물관(관장 신동선)이 자리 잡은 과천시 추사로 78(주암동)은 아버지 김노경이 1824년 조성한 과지초당(瓜地草堂)이 있던 곳이다. 이때부터 시작된 추사와 과천과의 특별한 인연은 1837년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르면서 더욱 깊어진다. 추사는 북청 유배에서 풀려난 1852년 8월부터 생을 마감하는 1856년 10월10일까지 만 4년을 과천에서 살면서 학문과 예술을 꽃피운다. ■ 과천에서 꽃피운 추사와 후지츠카 부자와의 아름다운 인연 과천시는 1996년 ‘과천 추사 관련 유적 조사 보고서’ 발간을 시작으로 추사 김정희를 조명하는 여러 가지 사업을 활발히 벌인다. 후지츠카 치카시(藤塚隣, 1879~1948)가 수집한 방대한 추사 관련 자료를 그의 아들 아키나오(明直, 1912~2006) 선생이 과천시에 기증한 2006년부터 박물관 건립 논의가 본격화된다. 마침내 2013년 6월3일, 추사의 생신일에 맞춰 추사박물관을 개관한다. ‘추사가 보낸 편지전’, ‘추사묵연전’, ‘추사 글씨 현판전’, ‘다산과 추사 전’, ‘정벽 유최관 전’, ‘자하 신위 전’, ‘추사금석 전’, ‘추사가문의 글씨 전’, ‘추사서화파 전’, ‘추사의 성북동 나들이 전’, ‘추사중국전: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전’, ‘추사가 사랑한 꽃 전’, ‘추사한국전: 추사의 과천시절 전’, ‘소지도인 강창원 전’, ‘추사필담첩1: 1822년 김노경의 연행 전’, ‘다시, 봄: 추사 김정희의 일생과 실학자의 활동’, ‘추사필담첩2: 1809년 추사의 연행 전’을 거쳐 현재 진행 중인 ‘후지츠카 치카시와 난학’으로 이어진다. “추사박물관의 최상위목표는 추사 문집의 정본화 사업입니다.” 추사박물관을 준비할 때부터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는 허홍범 학예연구사는 추사박물관이 추구하는 것이 추사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바탕이 되는 문집의 정본화 사업임을 강조한다. ■ 고난에서 피워낸 추사의 학문과 예술 2층 상설전시실은 추사의 생애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공간이다. 추사가 8세 때 아버지에게 올린 편지를 살펴본다. “장마와 무더위에 건강은 어떠신지요?”라는 안부로 시작하는 맏아들의 편지와 “편지를 받고 보니, 어른을 모시고 글 공부하면서 두루 평안하고, 근래의 돌림병도 우선 면했다니 무척 위로가 되는구나”라는 생부 김노경의 답신이 한 장에 들어있다.  추사가 애용한 인장도 눈길을 끈다. ‘추사’ 다음으로 널리 알려진 ‘완당’을 비롯해 36마리의 백구가 날아드는 초당을 뜻하는 ‘삼십육구초당’처럼 재미있는 내용을 새긴 인장도 있다. ‘북한산진흥왕순수비 발견기’에서 금석학으로 우리 역사의 지평을 넓혀간 김정희의 열정을 발견한다. 아우 명희와 상희에게 보낸 편지에서 평생 형제들과 돈독한 우의를 나눈 추사의 따뜻한 얼굴이 그려진다. 소치 허련이 제주도에서 유배를 살고 있는 스승을 생각하며 그린 ‘완당선생해천일립상’과 이한철이 그린 ‘추사영정’을 통해 추사는 외모가 수려한 미남자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부인 예안이씨에게 보낸 한글 편지는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드는 매력적인 유물이다. 한글인 데다 그 내용이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건강 걱정, 자손 교육에 대한 고민 같은 추사의 인간적 면모가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묵란도’를 비롯한 익숙한 난초 그림도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박물관 외벽을 장식한 ‘불이선란도’를 찬찬히 살펴본다. 추사체의 깊은 맛을 느끼려면 반드시 오래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추사의 스승 박제가의 유물도 있다. 청나라의 유명한 화가 나빙이 그린 ‘박제가상’과 ‘월매도’는 후지츠카 치카시의 저서 ‘청조문화 동전(東傳)의 연구’에도 실려있다. 끝까지 의리를 지킨 제자 이상적을 위해 그려준 그림 ‘세한도’에 얽힌 사연은 감동적이다. 이상적 사후에 민씨 일가로 넘어간 세한도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후지츠카 치카시의 손에 들어간다. 서예가 손재형이 ‘세한도’를 소장한 후지츠카의 집을 여러 차례 찾아가 양도해 줄 것을 간청해 끝내 국내로 돌아오게 된다. 후지츠카가 사용한 인장이 여러 점의 인장에서 한국인의 이름이 함께 새겨진 인장을 발견한다. 유물에서 추사와 후지츠카와의 인연을 발견하는 것도 흥미롭다. ■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진 한국과의 특별한 인연 개관 10주년을 맞아 지난달 3일부터 시작된 특별기획전 ‘후지츠카와 난학(蘭學)’은 추사박물관 10년의 내공이 응축된 전시다. 다음달 6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특별전은 후지츠카 기증유물을 중심으로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8)의 난학과 후지츠카 가문 자료, 후지츠카 치카시의 생애와 학문을 두루 살필 수 있다. 일본 학자가 추사의 무엇에 매료됐을까? “좀 생소하겠지만 ‘난학’은 일본 에도시대에 주로 네덜란드를 통해 전래된 서양의 의학과 과학 지식을 연구한 학문을 말합니다. 후지츠카 가문은 난학의 세례를 통해 신학, 의학, 금석학 등 다방면에 걸친 학문적 성취를 이룩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후지츠카가 김정희를 발견했던 것이고, 추사를 연구하여 1936년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것이지요.”  “일본 실학인 난학이 일본을 근대로 이끌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난학에 바탕을 둔 일본의 서양학문에 대한 관심은 번역으로 이어졌고, 일본이 근대화를 이룩하는 학문적 배경이 되었던 것이지요.” 특별전을 알리는 포스터에 ‘화란문전자류’라는 사전이 실려있다. 17세기 시작된 난학의 전통은 유럽의 서적을 번역하는 열풍으로 이어져 마침내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한다. 반식민지가 된 중국과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후지츠카 치카시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추사에 빠져드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유물이 주목된다. 아버지 후지츠카를 따라 한국에 와서 5년 생활한 아들 아키나오도 한학자인데, 추사 자료를 과천시에 기증한 장본인이다. ■ 지나온 10년, 앞으로 열어갈 100년 추사박물관은 서울시교육청 지정의 청렴 유적지이기도 하다. 추사박물관은 수준 높은 번역서와 논문집도 꾸준히 발간해 추사학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역주 추사 암행어사 보고서’(2014), ‘역주 추사 친필 동몽선습’(2015), ‘탈초·역주 추사필담첩’(2021~2), 김정희, 김노경, 김명희, 박제가, 유득공 등의 ‘추사필담첩’은 주목되는 성과물이다. 특히 ‘추사필담첩’은 박제가와 유득공의 필담, 김정희 연행 필담, 아버지 김노경과 동생 김명희의 연행 필담으로 나눌 수 있는데 추사학 연구의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이 필담첩에서 김정희가 “제 이름은 정희이며 자(字)는 추사(秋史), 호는 보담재입니다. 지난해 시월(10월) 진사가 됐습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기록이 발견됐다. 김정희의 호로 알려진 ‘추사’는 본래 자(字)로 쓰였는데 점차 별호로 쓰였다고 평가된다. 추사 김정희를 쉽게 널리 전달하기 위한 추사박물관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나는 추사 김정희’를 제작하고 ‘스마트 추사박물관’을 구축해 추사를 알리는 데 활용하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2017년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진로체험기관’으로 인증을 받았고, 올해 1월에는 ‘2022년 공립박물관 평가인증제 우수인증기관’에 선정됐다. 3회 연속 우수인증기관으로 선정될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새로운 유물을 발굴해 소개하는 수준 높은 학술회의와 콘텐츠 개발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과지초당을 찾아 “70년 동안 붓 천 자루와 벼루 열 개를 다 닳게 했습니다”라고 고백한 추사의 말을 떠올린다. 절망의 순간에도 붓을 놓지 않았던 추사의 의연하고 투철한 자세가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8.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시 장흥면에 푸른 산과 맑은 계곡을 배경으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과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두 개의 시립미술관 사이에 멋스러운 장흥조각공원까지 만든 양주시의 정책이 신선하다. 2014년에 개관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관장 이계영)은 장욱진의 호랑이 그림 ‘호작도’와 집의 개념을 모티브로 건축한 아름다운 미술관이다. 가족을 비롯해 나무와 아이, 새처럼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소재를 즐겨 그린 동심의 서양화가 장욱진(1918~1990)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따스해지고 편안해진다. 식민지 조국에서 태어나 분단과 동족상잔의 6‧25 전쟁을 비롯한 환란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면서 탄생시킨 장욱진의 작품들에서 발견하는 흥과 웃음과 여유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풀어주는 흥미로운 기획전이 마침 열리고 있다. 지난 4일 개막한 2023 기획전 ‘한국 추상미술의 개척자들’은 앞에서 던진 질문에 답하는 흥미롭고 풍성한 기획전이다. 오는 11월19일까지 열리는 ‘한국 추상미술의 개척자들’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김환기, 백영수, 유영국, 이규상, 이중섭, 장욱진의 작품 30여점을 선보인다. “여섯 명은 순수미술동인인 ‘신사실파’에서 함께 활동하며 한국의 현대화단에 추상미술의 기틀을 마련한 작가들이지요. 해방과 6‧25 전쟁이라는 20세기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자유와 소통을 향한 전위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신사실파’에서 시작한 작가 6인의 도전과 실험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져 한국의 추상미술을 해석하는 틀로 작용하고 있지요. 한국의 모더니스트이자 추상미술의 개척자로 인정받는 이들의 작품은 한국적 추상의 시작점과 그 뿌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김명훈 학예사가 장욱진의 작품이 가진 매력의 비밀이 무엇인지 들려준다. “몇 개의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장욱진의 작품이 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일까요? 장욱진은 대상의 본질을 끌어내기 위해 장식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며 선을 단순화시켰던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마치 순수한 아이가 그린 것처럼 보이지요. 내면의 욕망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비워냄을 의미합니다. 장욱진의 단순한 선은 대상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의 결과입니다. 단순함 안에 담긴 다양함이야말로 서구 모더니즘과 차별되는 장욱진 작품의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 여섯 작가의 화두 ‘사실을 새롭게 보자’ 장욱진은 1949년에 김환기, 유영국 등이 결성한 ‘신사실파’에 참여하는데 ‘사실을 새롭게 보자’라는 주제 의식을 작품에 충실하게 담아낸다. 장욱진의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대담하다. “나는 심플하다”라는 그의 말처럼 장욱진은 평생 자연 속에서 살면서 동화적이고 이상적인 내면세계를 단순하게 표현한 작가였다. 유명 작가 여섯 명의 작품을 소개하는 특별한 자리답게 비가 내리는 궂은날이지만 관람객들이 붐빈다. 김환기(1913~1974)의 ‘산월’(1960)은 푸른 바탕에 검고 굵은 선으로 표현한 산이 품은 달이 짙은 청색이다. 산과 달과 들판까지 검고 푸르다. 무겁고 어두운 색깔은 혁명을 잉태한 그 시대를 증언하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일까. 백영수(1922~2018)의 ‘장에 가는 길’(1953)은 머리에 짐을 이고 등에 아이를 업은 여인들이 길을 걷는 풍경이다. 백영수의 그림은 김환기와 달리 밝고 활기차다. 유영국(1916~2002)의 ‘바다에서’는 제목을 보지 않으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추상적이다. 대신 붉고 푸른색을 써서 답답하지는 않다. 이규상(1918~1967)의 ‘생태11’도 아주 단순하고 과감하다. 기호처럼 그려진 것이 빗방울과 눈으로 보이는 까닭 역시 작품의 이름 때문일 것이다. 짙고 옅은 갈색만 사용한 것이 무척 흥미롭다. 피난처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며 그렸을 이중섭(1916~1956)의 ‘애들과 물고기와 게’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밝은 표정에서 가족을 보고 싶어 하는 작가의 마음이 보인다. 화면을 가득 채운 푸른빛의 호박과 노란 호박꽃 역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려는 이중섭의 슬픈 눈이 그려진다. 몇 개의 선으로 그린 장욱진의 ‘얼굴’은 오랫동안 바라보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한 편의 동화처럼 그린 ‘집과 까치’(1986)도 붉은 해와 푸른 반달, 나무 한 그루 서 있는 초가집 마당에 앉은 까치가 희망을 노래한다. ■ 가족 사랑과 열린 정신 2층 상설전시실에는 장욱진의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는 전시 ‘채움의 방식’이 열리고 있다.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을 보여주는 장욱진의 따뜻한 작품들을 만나는 시간은 행복하다. 마치 한옥의 안채처럼 꾸며진 전시실에 들어서면 장욱진이 어떤 방식으로 가족들을 사랑했는지 그려지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장욱진은 언제나 자신을 비우고 남은 빈자리를 사랑으로 채웠던 심성의 소유자였다. ‘평상’에 등장하는 두 인물은 물론 작가 자신과 아내일 것이다. 작품 속에는 아내와 아이들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강아지와 까치도 가족의 일원이다. ‘가족’은 장욱진의 영원한 주제였다. 그의 작품 앞에서 가족에 대한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 그 소중함과 가치를 다시 생각해본다. 장욱진을 관람객들에게 온전하게 전달하기 위한 미술관의 노력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2022SIMPLE ‘비정형의 자유, 정형의 순수’와 2022 기획전시 ‘선善도 악惡도 아닌’은 이러한 미술관의 생각을 전달하는 전시입니다. 장욱진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심플’ 정신을 계승하고, 현대 작가들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기 위한 연례기획전이죠. 심플의 사전적 의미는 ‘간단한’ ‘단순한’ ‘소박한’ 등인데, 심플은 엽서 정도의 크기, 30호 이내의 작은 캔버스에 사람, 동물, 자연을 품은 장욱진의 그림을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의 그림은 어린아이나 어른 모두에게 쉽게 다가가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 매력입니다.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을 덜어내는 인고의 시간을 통해 사물의 정수만을 담아내었기에 열려있지요. 장욱진의 그림에 무위자연과 무욕의 정신이 담겨있습니다.” 2023 기획전 ‘점 안의 우주’도 장욱진 예술의 단순함 속에 담긴 의미를 살펴본 전시였다. 장욱진 예술의 대표적 화두인 ‘일중일체 다중일(一中一切 多中一)’은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 속에 하나가 있다는 뜻이다. 장욱진 작품의 점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다. 장욱진을 사랑하는 관객에게 다시 질문을 던진다. ■ 단순함에서 찾을 수 있는 삶의 지혜 “장욱진 화백이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난 현재도 그의 심플정신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점점 더 복잡해져 가는 현대의 삶 속에서 우리가 순수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미술관은 관람객들이 장욱진에게서 단순함의 미학, 단순함이 선사하는 삶의 지혜까지 얻어가기를 바라고 있다. 장욱진이 대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라는 선불교의 ‘불사선’을 화두로 삼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작가는 나와 대상이 갖는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대상의 진정한 가치와 직면할 때 우리는 욕망을 바탕으로 맺어진 관계로부터 오는 정신적 공허함과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푸른 산과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장욱진이 평생 화두로 삼은 ‘심플’의 철학을 느끼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과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사이에 자리 잡은 조각공원도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예술 작품이 전달하는 통찰과 즐거움은 물론 자연이 선사하는 여유와 신선함까지 두루 만끽할 수 있는, 그야말로 예술의 명당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7.용인 안젤리미술관

노란 해바라기가 작은 캔버스에 활짝 피어났다. 수채화 붓을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꺼내 완성된 그림을 담는다. 밑그림에 붓으로 색칠을 하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즐거운 시간이다. 문득 궁금하다. 대작을 완성한 전업 화가의 기분은 어떨까? ■ 커피향 맡으며 그림을 그리다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용덕저수지 옆에 자리한 안젤리미술관(관장 권숙자)은 지난 2015년에 개관한 1급 사립미술관이다. 2천500평(8천264㎡)의 대지 위에 제1전시장과 제2전시장, 교육실과 예술대화방, 회의실과 체험실을 두루 갖추었다. 미술관 2층 카페는 관람객들에게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화실로 활용되고 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카페에서 커피 향을 맡으며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몰입’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유년 시절의 풋풋한 추억을 떠올리며 잊고 있던 자아와 만나는 행복한 시간이다. 안젤리미술관 건축물은 권숙자 관장의 정성과 애정이 듬뿍 담긴 작품이다. 검은색과 붉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미술관은 하늘로 비상하는 새를 형상화한 것이다. 외벽을 장식한 네 개의 빨간 원모양의 구조물은 눈을 상징한다. 하얀 날개를 펼친 천사와 마당에 새긴 커다란 별이 환상의 세계로 안내할 것 같다. 두 마리 새와 젊은 남녀가 조각된 전시장 현관문도 멋스럽다. 미술관 안마당에 자리한 200평(661㎡)의 야외 공연장에 들어서면 천사의 품에 안긴 것처럼 아늑하다. 모자이크로 장식된 대형 벽화 ‘오월의 신부’는 관람객의 발길을 머물게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미술관 곳곳에 권숙자 관장과 고인이 된 남편 곽안젤로의 사연이 숨어 있다. 그렇다. 안젤리미술관은 음악가 남편과 화가인 아내가 만든 공동작품이다. 꽃들이 활짝 핀 오월의 화원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을 묘사한 ‘오월의 신부’에 미술관의 탄생 이야기가 숨어 있다. ■ 미술관 곳곳에서 만나는 삶의 이야기 “젊은 시절 프랑스 여행을 하다가 니스에 있는 샤갈미술관을 방문한 후 미술관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됐어요. 니스해변의 푸른 물빛처럼 푸른 색조를 이루고 있는 샤갈그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 미술관으로 스며드는 찬란한 햇살이 미술관 바닥에 그림처럼 드리워지고 있을 때, 문득 미술관을 가지고 싶다는 강열한 욕구가 일어났어요. 그때 안젤리미술관의 태동이 됐던 것이지요.” 권 관장이 미술관을 개관하던 2015년에 펴낸 에세이집 ‘이 세상의 산책 안젤로의 전설’에도 그 특별하고 가슴 먹먹한 사연을 자세히 담아 뒀다. 건축을 시작한 이후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예술가의 길을 걷던 남편을 암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이처럼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겪었으나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여기까지 걸어온 저력은 무엇일까. 뜻밖에 들려주는 대답은 소박하다. “아름다운 미술 작품들을 지역에서도 언제든 감상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혼자서 미술관을 운영하며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인데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사립 미술관 운영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겪는 어려움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죠. 그래도 이 공간을 통해 지역 문화 확산을 이룬다는 사명만큼은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강남대 미대 교수로 37년을 재직한 권 관장이 사비를 털어 2015년에 개관한 사립미술관 안젤리가 개관 후 지금까지 8년의 세월 동안 쌓은 결과물은 풍성하다. ■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를 찾고 깨닫는 공간 안젤리미술관은 지난달 말부터 이달 중순까지 특별기획전 ‘하늘, 사람, 땅’ 전을 열었다. 예술혼을 바치며 창작활동에 전념하는 32인의 작가들이 참여한 기획전에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나 가치나 보람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했었지요.” 권 관장이 들려준 말처럼 작가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작품으로 말하는 존재다.   만 3년 이어진 코로나19의 여파는 컸다. 전업 작가들이나 사립미술관이 겪은 고난은 상상 이상이다. 이 기간 동안 안젤리미술관은 특화된 전시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한다. 체험학습에 다양한 연령층을 참여시키는 일, 레지던스를 이용해 젊은 미술가를 양성하는 일, 시니어 지망생에 대한 1대 1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 찾아가는 미술교실을 적극 운영하며 미술관의 외연을 넓혀왔다. 특히 레지던스를 이용한 젊은 미술가 양성 프로그램은 주목을 받았다.   코로나19라는 악조건 속에서 특화된 전시 프로그램을 개발한 안젤리미술관의 저력은 무엇일까. 강남대 미대 교수로 재직한 권숙자 관장은 대외활동에도 열심이었다. 경기여류화가 회장과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양화 심사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도 세종대 미대 동인인 ‘군자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전통 회화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 권숙자 관장은 작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여 대한민국 국전 우수작품상(1977·1978년)을 비롯해 독일 괴테문화원 초대전 최우수상(2010년) 등을 수상한 실력파 작가다. 이러한 권 관장의 풍부한 경험과 역량이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권숙자 관장은 미술 발전과 후학 양성에 헌신하고, 미술관 설립·운영 및 용인지역의 문화예술 진흥을 이끌며, 복합문화공간 조성과 신진작가 발굴·지원 선도에 기여한 공로로 ‘2022 대한민국 사회공헌 대상’을 수상했다. ■ 지역 문화의 지평을 넓히는 편안하고 즐거운 미술관 올해로 7년째 ‘전국미술공모전’을 개최하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정서함양·인성교육·창의력 신장·미술인재 발굴에 정성을 쏟고 있다. 2016년부터 시작한 안젤리미술관 어린이 공모전은 지역 대표 어린이 미술 대회로 자리 잡았다. 그는 돈과 명예보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사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라 믿고 있다. “사립미술관 운영이 어렵지만 누군가는 지역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요. 신진작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고 용인시 문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나에게 부과된 사명이라 생각하며 각오를 다져요.” 지난해 가을에는 미래의 꿈을 지니고 열정과 혼신을 다하는 청년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대학·대학원 우수작품전 – 청년작가 발굴의 보고(寶庫)전’을 열었다.   안젤리(Angeli)는 이태리어로 ‘천사들’이란 뜻이다. 천사를 내세운 까닭은 무엇일까. “미술의 가치는 미의 역할만이 아니라, 선의 역할 또한 포함해야 한다고 믿고 있어요. 우리 미술관은 미와 선, 그리고 인간다움을 추구합니다.” 안젤리미술관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쟁이 아닌, 안락하고 평안함을 간직한 공간이 되기를 희망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꿈다락토요문화학교 역시 공동작업을 통해 크고 작은 다양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지도해 다른 도시에서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 지난해 여름에는 경기 꿈의학교 ‘유럽의 예술 거장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다음 달부터 12주간 진행했다. 경기도교육청에서 2015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학생이 스스로 기획·운영하고, 참여하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게 돕는 교육활동이다. 유럽의 예술거장의 작가 탐구와 작품 감상을 통해 유연한 사고와 미적 안목을 기르고, 다양한 미술 체험과 활동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창의적으로 표현하도록 하는 알찬 프로그램이다. 올 여름에는 어떤 프로그램이 준비되었을까. “7세 이상의 아동을 대상으로 여는 ‘뮤지엄 아트스쿨’입니다. 환경교육과 미술관 산책, 돌과 타일로 설치 작품 만들기와 물감물총놀이도 해요. 선착순으로 모집하니 서둘러 신청하세요.” 미술관 너머 호수에 저녁놀이 물들고 있다.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순간의 시간이 삶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6. 파주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北으로 끌려간 사람들 ‘자유의 다리’에는 6.25전쟁이 시작되면서 멈춰 버린 열차가 전시돼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여덟 글자는 한반도의 분단 현실과 평화통일의 과제를 압축하고 있다. 가랑비가 내리는 흐린 날씨인데 외국인들이 더러 눈에 띈다. 분단의 상처를 훤히 드러낸 슬픔의 현장이 볼거리가 된 것이다. 지난 2017년 평화누리공원 곁에 건립된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 들어서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국립6.25전쟁납북자기념관은 납북자 및 그 가족들의 명예회복과 더불어 국민들과 함께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고 평화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공간이다. ■ 잃어버린 사람들, 기억해야할 이름과 만나는 곳 한자로 납북(拉北)은 ‘끌려갈 납, 북녘 북’이다. 70여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비극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전시관은 제1공간 ‘납북의 배경과 원인’, 제2공간 ‘납북의 전개 과정과 납북자의 고통’, 제3공간 ‘귀환의 노력과 납북자 가족의 아픔’, 제4공간 ‘납북과 인권 그리고 통일을 위한 노력’으로 구성돼 있다. 특별전시관에는 납북자 가족들이 기증한 유물 1천100여점이 전시돼 있다. 건물 중앙을 장식한 소용돌이 형상의 조형물 ‘포토 상들리제’는 전쟁으로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들어간 납북자와 그 가족의 기구한 삶을 말 없이 증언하고 있다. 기념관 관계자는 납북이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된 것이라는 사실을 들려준다. “전쟁이 일어나기 4년 전인 1946년 7월 김일성이 ‘남조선에서 인테리를 데려올 데 대해’라는 담화를 발표합니다. 납북은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된 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증거죠.” 그렇다면 누가 표적이 됐을까?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 건설에 필요한 인재의 확보 및 정권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남한 사회의 저명인사이자, 우익인사, 지식인 계층 2만4천여명을 계획적으로 납북합니다. 항공사, 운전사, 목사, 농업연구가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기획 납북의 대상이 됐지요.” 김규식‧안재홍 선생은 대표적인 납북자로 꼽힌다.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우사 김규식(1881~1950)은 몽양 여운형과 함께 좌우합작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로 백범 김구과 38선을 넘나들었던 사람이다. 일제에게 여덟 번 체포돼 감옥에서 9년을 보내고 해방되는 날 출옥한 불굴의 독립운동가 안재홍(1891~1965)도 분단을 막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다. 김규식, 안재홍 선생처럼 이름과 얼굴이 널리 알려진 유명 인사가 아닌 경우 어떻게 납북 대상자를 찾아냈을까? 기념관 관계자가 누렇게 변색된 카드를 가리킨다. “보시는 것처럼 김형관이라는 보고자가 작성한 카드에는 성명, 연령, 성별, 주소는 물론 조사 대상자의 행적과 약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대상자 안종성은 보성전문 출신으로 만주에서 상점을 운영하며 관동군에게 협력했으며 인민위원회에 협조를 하지 않는 자라고 기록하고 있지요.” 작은 가죽 주머니와 인장과 배지는 무엇일까? 설명을 보니 서울지방법원 판사 심동구가 사용하던 인장과 배지이다. 나방을 붙인 특이한 노트도 있다. 살펴보니, 수원시 서둔동 농사시험장 연구자로 근무하던 이봉우의 농법 관련 원고이다. ■ 단장의 미아리 고개에서 흘린 이별의 눈물 납치인사의 북송은 1950년 7월 중순부터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만, 본격적인 북송은 유엔군 인천상륙작전 이후에 이뤄졌다. “그마저도 폭격을 피하기 위해 밤에만 걸어야 했다고 해요. 북한은 전쟁 발발 직후부터 남한 주민을 연행하거나 동원하는 정책을 계획적으로 추진했습니다. 남한 청년들을 강제 징집해 의용군과 노무자로 동원했다가 북으로 끌고 가기도 했지요. 전쟁 중 납북된 민간인의 전체규모는 대략 10만명 내외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2천438명의 이름이 실려 있는 ‘서울특별시 피해자 명부’는 1950년 12월1일에 발행한 것인데, 서울 수복 직후 공보처 통계국은 1950년 6월25일부터 9월28일까지 서울에서 발생한 피해 상황을 구별로 조사한 것이다. 당시 국회의장 신익희에게 올린 ‘6.25사변 피랍인사명부’도 있다. 1952년 10월 대한민국 정부가 작성한 ‘6.25사변 피랍치자 명부’는 정전회담에서 송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국 시군구별로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취합해 작성한 최초의 전국단위 명부인데, 총 8만2천959명의 납북자 명단이 수록돼 있다. 세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은 남루한 풍경이 등장한다. 1953년 정전 직후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100불의 세계 최빈국이었다. 어머니와 남매만 있고 가장의 자리는 비어 있다. 빈자리에 놓인 밥그릇에서 가장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아내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납북된 하격홍의 결혼사진, 그의 아내 성갑순이 빼곡히 쓴 일기장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손때가 묻은 재봉틀에도 남편을 대신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밤잠을 설쳤을 아내의 한숨과 고단한 사연이 묻어있다. 낡은 함석지붕 아래 오래된 라디오가 놓여 있고, 중년들에게 친숙한 대중가요가 실린 두 개의 앨범이 있다. “님 주신 밤에 씨 뿌렸네. 사랑의 물로 꽃을 피웠네.” 가수 조용필이 부른 ‘일편담심 민들레야’란 유행가가 납북자의 아픔을 노래한 것이라는 사실도 놀랍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납북 사실을 너무나 절절하게 표현한 유행가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라는 대목에 이르면 관람객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히기 마련이다. 납북자들의 ‘죽음의 행진’을 3D 애니메이션으로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다. ■ 슬픔을 씻고 화해와 상생의 길로 ‘100만인 서명 진정서’, 납북피해 가족의 구출대회가 열리는 사진에서 피맺힌 가족들의 아픔이 전달된다. “납북자를 구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납북자는 없다’고 주장하며 현재까지 납북자들의 생사 확인마저 거부하고 있으니 참 안타깝지요.” 1953년에 작성된 ‘휴전협정에 의한 민간인 교환에 관한 건’은 정전 직후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에서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납북자 귀환을 논의한 내용이 실려 있다. 1954년 3월1일부터 하루에 100명씩 실향사민을 남북으로 귀가시키는 데 합의한다. 그러나 북한에서 남한으로 귀향한 인원은 19명의 외국인뿐, 북한은 남한으로의 귀향을 원하는 남한 민간인이 단 한 명도 없다고 통보한다. 납북자들의 명패를 모셔놓은 기억의 방에 들어서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에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에 거쳐 납북자 신고를 받아서 납북자로 결정된 4천777명의 이름과 출신지를 새긴 명패가 가나다순으로 전시돼 있다. 납북이라는 사건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우리 민족의 숙제다. 주목한 것은 기념관에서 관람객을 대상으로 벌이는 다양한 교육활동이다. ‘1950년, 직업이야기’ ‘1950년, 여름이야기’ ‘우리 할아버지 이야기’ 같은 프로그램은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분단의 아픔과 평화의 소중함을 전달한다. 기념관 마중뜰에 있는 추모비 앞에 선다. “전시납북자와 그 가족의 명예회복과 아픔을 위로하는 기념물입니다. 납북의 길을 상징하는 ‘미아리 고개’를 모티프로, 미아리 고개를 넘어가는 납북자들의 방향은 정북(正北)을 향해 있고, 미아리 고개 아래 돌아오는 귀환자의 발길은 정남(正南)을 향해 있지요. 오랜 그리움으로 다시 이곳에 납북자들을 맞이하고자 하는 의지와 희망을 담은 ‘귀환의 길’은 비극의 역사를 하루 속히 끝내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전시관을 나와서 평화누리공원을 산책하며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납북자 가족들이 겪었던 고난의 세월을 생각한다. 임진강평화곤돌라를 타고 임진강 너머 북녘을 굽어보며 다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소서. 남북이 싸움을 멈추고 서로 협력해 평화의 길로 나아가게 하소서.”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5. 동두천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려는 굳건한 의지가 건축물에 충실히 담겨 있다. 외적으로부터 성문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옹성처럼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당당하게 둘러싸며 여러 나라의 국기가 게양돼 있다. 1950년 6월25일에 일어난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유엔군으로 군대와 의료진을 파견한 나라는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네덜란드,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 튀르키예, 필리핀, 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그리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이탈리아, 인도,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독일까지 22개국이다. ■ 목숨을 바쳐 지켜낸 자유와 평화 6.25전쟁부터 최근까지 군에서 사용하던 비행기를 비롯해 전차, 함선에 장착한 기관총 같은 대형의 무기 16점이 전시돼 있는 야외전시장에서 자유와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 지키는 것임을 깨닫는다. 5인치 2연장 함포, 3인치 단연장 함포, 40㎜ 2연장 함포, 105㎜ 곡사포, T-33A 제트기, M48A2C 전차, 8인치 곡사포, M577 지휘용 장갑차, T33A항공기, 해병대가 사용한 LVT 수륙용 장갑차도 있다. 몇 계단을 오르다 만나게 되는 안석주 작사, 안병원 작곡의 ‘우리의 소원’ 노래비는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에게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뤄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음을 알려준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 건립취지문에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려는 시민들의 단단한 의지를 확인한다.   “동두천시민은 6.25전쟁의 참상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국군과 유엔군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전 세계에 널리 알려 민족상잔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고 나아가 온 국민의 안보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안보의 요충지이며 경기의 소금강인 아름다운 소요산 기슭에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건립해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의 고귀한 참 뜻을 영원히 간직하는 한편 후손에게 전하고자 본 박물관을 건립하게 됐습니다.” 박물관 출입구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빙긋 미소를 짓는다. ‘벨기에 오줌 누는 소년상’은 6.25전쟁에 참전했던 벨기에 용사들의 기부금으로 건립된 것이다. 박물관 곳곳에서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전시물을 만나게 된다. 2002년에 개관해 현재 21주년을 맞이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에 작은 변화의 새바람이 불고 있다. 출입구 공간에 친환경 실내 휴식공간 ‘스마트가든’이 조성된 것이다. 산림청 국고보조사업으로 실행된 ‘스마트가든’은 식물 자동화 관리기술을 활용해 휴게공간을 친환경적으로 디자인해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실내 공기를 맑게 하는 사업이다. 비록 작지만 박물관이 변화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것이 전쟁으로부터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완전무장을 한 국군 장병의 힘찬 몸짓과 세계 평화를 표현한 상징물이다. 자유와 평화는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싸워 쟁취한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1층 실감콘텐츠 체험실은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공간이다. 화면에 나타나는 침략군 비행기를 겨냥해 천으로 만든 공을 던져 맞추면 비행기가 파괴되면서 그 위로 숫자가 나타난다. 그 숫자는 관람객이 구해낸 사람의 수이다. 성인 관람객들도 박물관 로비에서 전투기를 조정하는 비행사를 체험해 볼 수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2층 주전시실은 1950년 6월25일 전쟁이 벌어졌을 때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참전한 22개 나라들이 전쟁 당시 무슨 임무를 수행했는지를 알려주는 공간이다. 파견한 나라 별로 병력부터 임무까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전시한 것이 돋보인다. 군복을 입은 군인의 모형을 비롯해 주요 장비, 참전 규모와 주요 전투까지 참전국의 역할을 총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올해는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6.25 전쟁이 벌어진 6월이다. 그래서인지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이 평소보다 많다. ■ 동두천에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이 세워진 까닭? 1950년 7월19일 동두천에 이동병원이 진료를 시작한다. 부상당한 국군과 유엔군을 치료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르웨이 적십자가 편성한 83명의 요원들은 민간인을 위해 외래환자진료소도 운영한다. 한편 덴마크는 최신 의료시설과 의약품, 의료진을 갖춘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를 파견한다. 1947년 8월에 신생 독립국으로 출발한 인도 역시 의료부대를 파견하여 야전병원을 운영하며 부상자를 치료한다. 이탈리아는 유엔 비회원국이지만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했다. 동두천시가 소요산 자락에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을 설립한 까닭이 궁금하다. 동두천은 언제부터 군사도시가 됐을까?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1952년에 미군 제7사단이 동두천에 주둔하면서 군사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물론 군사도시가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그늘도 엄연히 존재했다. 하지만 군대가 도시의 발전과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계단을 오르며 벽면을 채운 흑백사진을 살펴본다. 짐작하듯이 사진은 전시물 못지않게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실을 정직하게 알려준다. 노르웨이 의료진의 활동상을 담은 사진첩은 전쟁의 참상과 생명의 소중함을 웅변해준다.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맺어진 휴전협정의 순간을 기록한 흑백사진은 오랫동안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포성이 멈춘 지 70년 만에 대한민국은 정치 민주화와 경제화를 동시에 이룩하는 기적을 이뤘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동두천은 수많은 생명을 구한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도시라는 사실이다. ‘한탄 이호왕 박사 기념관’은 또 하나의 역사이다. 의학과 미생물학을 전공한 이호왕 박사는 고려의대 교수로 재직하며 동두천 송내동에 연구실을 두고 1976년 한국형출혈열의 병원체인 한탄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다. 동두천과 깊은 인연을 맺은 이 박사는 WHO 유행성출혈열연구협력센터 소장과 한탄생명과학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수많은 생명을 살려낸다. 남북한 520만명이 희생될 만큼 한국전쟁은 비참했다. 특히 민간인의 사망은 전쟁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산가족이 1천만명에 달한다는 사실도 가슴 저리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키는 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러나 세계는 다시 양분되고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남북의 대결 양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철없는 어른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전쟁이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정녕 몰라서 하는 말일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면서 남북 역시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휴전이 아니라 전쟁을 멈춘 상태 곧 정전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분단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한 순간도 자유와 평화, 안보를 소홀히 할 수 없다. ■ 가꾸고 지켜야할 자유와 평화의 동산 4층 기획전시실에 ‘제6회 아트플러스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동두천지역에서 활동하는 화가들의 회화 작품에서 자유와 평화의 기운이 느껴진다. 새롭게 단장한 휴게실에서 국군과 유엔군, 민간인들을 치료하던 야전병원이 있던 역사적 현장을 바라본다. 70년 전의 삭막한 풍경과 현재의 풍요로운 풍경을 대조해 보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자유와 평화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당시 이름도 몰랐던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인들이 감탄하며 바라보는 나라로 우뚝 섰다.   한편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은 경기소금강이라 불리는 소요산(587.5m) 자락에 있다. 고승 원효대사를 비롯하여 매월당 김시습, 화담 서경덕, 봉래 양사언 같은 명사들이 이 산자락을 자주 ‘소요’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아름답고 유서 깊은 소요산 기슭에 자유수호평화박물관과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4. 안산 ‘경기도미술관’

2023년 6월 현재, 경기도미술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미술관이 아닐까.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미술관(관장 안미희)에서 이건희컬렉션을 중심으로 한 한국근현대미술 특별전 ‘사계’가 8일 개최됐다. 8월20일까지 이어지는 특별전 사계는 국민화가로 불리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천경자를 비롯한 유명 작가 41명이 1927년부터 2010년에 이르기까지의 제작한 대표작 또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 작품 90점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행복한 자리다. ■ 사계, 근현대 한국 미술의 뿌리와 줄기 사계는 경기도미술관이 개관한 이래 가장 큰 전시로 꼽히는 특별전이다. 사계는 지난 2021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가족이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여점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 46점을 중심으로, 경기도미술관을 비롯해 광주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리움미술관, 가나아트센터 등 11곳의 소장품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전시의 제목을 비발디가 작곡한 사계에서 착안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통찰력 있는 묘사와 조화로운 구성으로 클래식 음악의 고전인 ‘사계’와 같이 참여 작가들은 한국 근현대미술에 수작을 남긴 분들입니다. 동시대 미술의 자양분이 된 이분들의 업적들을 이번 전시에서 다채로운 화음처럼 선보이고자 합니다.” 경기도미술관은 이처럼 대규모의 특별전을 열기에 최적화된 미술관이다. “4개의 전시공간은 순환 통로와 가변 벽을 둬 다양한 동선을 활용하는 전시를 구사할 수 있지요. 특히 8.5m 높이의 천창에는 개패의 조정이 가능한 천창 시스템을 둬 자연 빛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경기도미술관은 자연과 호흡하고 대중과 소통하며 경기도민 모두에게 열린 문화 공간입니다. 이번 전시도 이런 미술관의 특성을 잘 살려 관람 동선을 구성했습니다.” 미술관 관계자의 조언대로 5개의 주제를 따라가며 각 개념의 구간마다 작가별, 시대별 차이를 비교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이 특별전을 가장 알차고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겠다. ‘새로운 계절’부터 ‘자연으로부터’까지는 동선이 시원하게 뻗어 있다. 여성 작가들을 집중 조명한 ‘또 하나의 계절’과 고향과 가족이 주된 소재인 ‘향수의 계절’은 오랫동안 발길을 잡아끄는 구간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봄’은 지금, 여기,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성찰하도록 이끌어주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 새로운 계절, 자연으로부터 20세기 초, 일제강점기 조선 화단은 서양의 기법을 체화해 동양의 기법 및 전통과 조화시키려는 모색이 이뤄진다. 1세대 서양화가인 김종태의 ‘사내아이’(1929)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인성의 ‘석고상이 있는 풍경’(1934)은 서양의 기법으로 조선적 색채와 주제를 탐구한 인상적인 작품이다. TV 화면에 비치는 부처를 바라보는 석불좌상을 등장시켜 깊은 사유로 이끄는 백남준의 ‘TV부처, 1974’(2002)는 새로운 계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물을 고전주의 화풍으로 표현한 도상봉, 한국적 풍토에 맞는 인상주의 미술을 구현한 오지호의 ‘여수항 풍경’(1978), 산의 정기를 거친 터치로 그려낸 박고석의 ‘외설악’(1980), 역사적 고난에 대한 공감을 제주 풍광에 투영한 강요배의 ‘황파 1’(2002) 같은 작품들은 자연적 모티프를 통해 한국 근현대미술의 다양한 표현 양상을 살필 수 있게 해 준다. ■ 또 하나의 계절과 향수의 계절 이건희컬렉션에 포함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또 하나의 계절’로 구성해 남성 중심 화단에서 독립된 예술 세계를 이룩해 낸 소수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남성 중심의 세상에 맞서 고군분투했던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을 비롯해 국내 1세대 여성조각가 김정숙, 여성의 관점에서 조형성을 탐구하고 구현한 박래현과 천경자, 추상화가 방혜자의 작품들이다. 1928년 무렵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나혜석의 ‘자화상’은 시대의 우울을 담고 있는 듯 표정이 어둡다. 반면, 천경자의 ‘누가 울어2’(1989)에 등장하는 여성의 눈빛은 남성의 시선을 제압할 만큼 강렬하고 도전적이다. 식민지와 분단, 전쟁으로 이어진 수난의 시기에도 작가들은 예술혼을 불태웠다.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해 주는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7)은 뜨거운 가족애를 화면에 가득 채운 이중섭의 ‘오줌싸개와 달과 개구리’(1950년대 전반)와 함께 관람객에게 빙긋 미소를 짓게 해 준다. 장욱진의 ‘까치’(1987)는 머잖아 반가운 소식이 들릴 것 같은 희망을 보여준다. 한국적 회화의 탐구 과정에서 민족의 혼에 다가선 박생광, 수행하듯 화면을 채운 김환기, 단순한 재현을 넘어 실존적 본질을 추구한 권진규의 작품들은 성찰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는 도대체 어디쯤에 있는 것인가? ■ 소통과 교육의 열린 마당 2006년에 개관한 경기도미술관은 다양한 전시와 활발한 교육 활동을 통해 관람객과 소통하며 성장해 온 수도권의 대표 미술관이다. 경기도미술관은 그동안 무엇을 목표로 어떤 사업들을 벌여 왔을까? “경기도미술관은 경기도의 정치, 사회, 문화에서 출발해 주제를 심화하는 전시 기획인 ‘경기아트프로젝트’와 동시대 미술의 형식과 내용을 실험하고 글로벌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동시대미술의 현장’ 주제전이 핵심 사업입니다. 또한 ‘경기작가조명전’과 ‘청년작가전’ 등을 통해 경기도의 중견 작가를 지원하고 신진 작가를 육성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의 소장품을 다층적으로 담아내는 ‘상설교육전’은 소통과 교육의 장입니다.” “경기도 대표 공립미술관으로서 모두에게 열린 미술관, 문턱이 낮은 미술관을 표방하며 우수한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했습니다. 이건희컬렉션을 통해 도민들이 가까운 곳에서 역사적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기쁩니다. 많이 찾아주셔서 즐기시기 바랍니다.” 2019년 10월부터 경기도미술관을 책임지고 있는 안미희 관장의 말이다. 경기도미술관의 미션은 ‘도민과 함께하는 열린 미술문화기관’이며, ‘지역을 잇고, 함께 공유하는 모두의 미술관’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경기도미술관이 세운 목표는 기획의 새로운 도약, 혁신적 교육, 지역과의 협력, 미술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참여미술관의 실현이다. ■ 잘 지내나요?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 위치한 경기도미술관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 터를 잡고 있다. 화랑저수지와 숲으로 조성된 산책로를 걸으며 멋진 조각 작품을 감상하는 맛도 일품이다. 최평곤 작가의 ‘가족’(2007)은 아이를 안고 좌우에 자녀의 손을 잡은 어머니가 거룩한 모성애를 느끼게 해준다. 미술관의 외관을 화사하게 밝혀 주는 최정화 작가의 ‘꽃꽂이’(2008)는 거대한 꽃과 열매, 잎사귀들로 이뤄진 설치작품으로 가볍고도 딱딱한 재질의 플라스틱과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생명체의 형상을 대비적으로 어우러지게 한 작품이다. 이 밖에도 미술관 실내와 야외에는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으니 함께 감상하기 바란다. 현재 소장품전 ‘잘 지내요?’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모시는 글’에 경기도미술관의 설립 정신이 전달된다. “예술은 삶이 행복한 순간보다 우울하고 외로운 순간에 더 위로가 됩니다. 이번 전시 ‘잘 지내나요?’는 재난이 일상이 돼 버린 것 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경기도미술관은 비극적인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상처에 필요한 ‘위로’를 현대미술을 통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경기도미술관은 이번 전시 ‘잘 지내나요?’가 관객들과 소통의 장을 넓히고, 예술이 동시대와 공감하고 관계 맺기 하는 ‘위로의 방식’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3. 오산 '유엔군초전기념관'

■ 카메라, 평화를 기록하다 오산시 죽미령 평화공원에 위치한 ‘유엔군 초전기념관’에 들어서면 곳곳에서 전쟁을 기억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기념물과 마주하게 된다. 평화공원을 다 둘러보려면 지도를 참고해야 할 정도로 공간이 넓고 둘러봐야 할 기념물이 많다. 스미스 평화관과 신 유엔군 초전기념비 사이에 위치한 유엔군 초전기념관은 현재 ‘평화를 위한 기록’이라는 특별전을 열고 있다. 기념관 외벽에 걸린 대형 포스터에 새겨진 글귀가 눈길을 끈다.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유엔군 초전기념관 개관 10주년/의미 있는 2023년, 국가보훈부 승격을 축하합니다. 대한민국 수많은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과 헌신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유엔군 초전기념관을 설립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전쟁을 충실히 기록하는 일. 포스터에 여러 종류의 카메라가 등장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유엔군 초전기념관의 상징 부조도 6·25전쟁 당시 두 명의 미군이 참호에 있는 사진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특별전을 총괄 기획한 사무국장 고아라 학예연구사가 전시의 기획 의도를 들려준다. “이번 전시는 기록을 위한 시선과 그 시선으로 사용되는 도구 중의 하나인 카메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요. 글을 쓸 수도 있고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재능이 있다면 노래를 만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 순간을 그대로 남기기에 제일 좋은 것은 사진입니다. 우리들도 일상에서 흔히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전시된 카메라들은 대부분 처음 보는 신기한 것들인데, 과천에 소재한 한국카메라박물관에서 임차한 것이라고 한다.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흥미롭고 다양한 카메라에 담긴 사연도 풍성하다. “카메라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어떤 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이의 것을 훔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사랑하는 이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며, 어떤 것은 같거나 비슷한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아 사실을 전달하고 역사를 남기는 데 쓰이기도 합니다.” 처음 소개하는 것이 ‘훔치기 위한 카메라’다. 한 국가나 단체의 비밀이나 상황을 몰래 알아내 경쟁 또는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나 단체에 제공하기 위해 만든 카메라들은 모양부터 기상천외하다. 최초의 스파이 카메라는 신사의 조끼 속에 착용할 수 있는 둥글납작한 모양인데 셔터가 단추처럼 생겼다. 물론 숙녀의 핸드백 속에 장착한 카메라도 전시돼 있다. 반지나 회중시계에 숨겨진 카메라가 말해 주듯이 ‘훔치기 위한 카메라’는 상대의 눈을 속이는 것이 핵심이다. 포스터에 담배가 등장한 까닭도 밝혀진다. 담뱃갑이 카메라인 것이다. “담배 세 개비 중에서 가장 길게 나와 있는 것이 셔터입니다”. 그렇다면 ‘지키기 위한 카메라’는 어떨까? “‘KE-4(1) COMBAT 70MM’는 이름처럼 70㎜의 대형 전투 카메라인데, 포탄을 맞아도 몸체가 손상되지 않도록 특수강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제작 연도가 1953년이니 6·25전쟁 때 사용했을 수도 있겠다. ‘항공기 기관총 타입 카메라 89’는 사격과 촬영이 동시에 이뤄지는 무시무시한 것인데,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39년에 일본 코니카사가 제작한 것이다. “그렇지요. 스파이용이나 전쟁용 카메라를 가장 많이 제작한 나라가 전범국 독일과 일본입니다”. ■ 포화 속 뛰어든 종군기자들 “두 번째까지는 장비가 중심이지만 세 번째 섹션은 종군기자 네 분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최초의 종군기자는 런던타임스 소속으로 크림전쟁을 취재한 월리엄 하위드 러셀(1820~1907)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보도한 그의 취재로 인해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인 나이팅게일이 군 간호사로 참전하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이에요. 덕분에 영국군 부상자의 사망률은 40%에서 2%로 감소하는 기적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정말 놀랍죠”. 20세기 최고의 저널리스트로 꼽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의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1913~1954)는 스페인 내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20세기 현대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쟁터의 최전선에 섰던 기자다. 그는 종군기자의 자세를 이렇게 일갈한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복을 입고 미소 짓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은 또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까? “뉴욕헤럴드트리뷴 소속의 마거릿 히긴스(1920~1966)는 6·25전쟁에 가장 먼저 도착한 유일한 여성 종군기자인데, 1950년 12월까지 6·25전쟁의 주요한 현장은 모두 그가 담은 것이지요. 이때의 활약으로 여성 종군기자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합니다.”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는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로 널리 알려진 독일 기자다. 왜 위험을 무릅쓰고 광주로 달려갔냐고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위험한 곳이라도 당연히 가야 한다. 그것이 기자가 하는 일이다.” 그가 기자정신을 발휘한 덕분에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이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학도병으로 참전한 지갑종(1927~2021)은 국방부 관계자의 요청으로 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에 대해 기록하는 종군기자로 활동한다. 정전 후에도 기자로 활동하며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 16개국을 순방보도하기도 했다. 스미스 부대원들을 추모하고 기념하기 위해 1955년에 건립된 구 초전기념비 기단에 설치한 동판이 1963년에 사라졌다. 1977년 지갑종 유엔한국참전국협회장이 하와이 골동품점에서 우연히 이 동판을 발견해 구입해 2014년 오산시에 기증한다. 육군사관학교 8기로 6·25전쟁 당시 사진대 대장을 맡았던 임인식(1920~1998)은 총대신 카메라를 메고 참혹하고 처절했던 전쟁의 현장을 기록한다. 20세기의 역사적인 순간을 생생하게 기록한 종군기자의 사연과 카메라를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죽미령 전투의 영웅을 기억하라 1950년 7월5일 오전 3시, 빗속을 뚫고 죽미령 고개에 도착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비를 맞으며 진지를 구축한다. 오전 7시, 수원 근처에서 북한의 전차부대를 확인하고, 8시16분에 드디어 유엔군과 북한군과의 첫 전투가 시작된다. 소련제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과 6시간15분 동안 전투를 벌인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2시30분 퇴각을 결정한다.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을 가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이 전투에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원 540명 중 180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는데 북한군도 5천여명 중 150여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된다. 오산 죽미령에서 벌어진 이 전투는 승패와 관계없이 유엔군의 참전을 알리게 된 중요한 전투로 기억되고 있다. 유엔군 초전기념관 상설전시관은 영상과 전시물, 사진으로 재미있게 구성했다. 영상으로 ‘그들을 만나러 가다’를 시청하면 사진과 전시물을 통해 ‘6·25전쟁과 유엔군’, ‘스미스 특수임무부대의 참전과정’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다시 영상으로 ‘죽미령 전투’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그 후, 지금의 우리’를 보여준다. 한국의 평화를 위해 싸운 ‘스미스 부대 540명 명판’이 새겨진 공간을 지나면 ‘스미스 부대원 기증유물’을 만나게 된다. 영상으로 읽는 ‘스미스 부대로부터 온 편지’와 ‘잊지 못할 그들에게’는 평화를 지킨 영웅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분단이 극복되지 않는다면 전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통일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만 평화를 위한 노력은 서둘러야 한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2. 성남 현대어린이책미술관

빌딩 숲에서 만난 어린이미술관은 산속의 옹달샘처럼 반갑다. ‘책’을 테마로 한 어린이미술관은 어떻게 꾸며졌을까? 성남시 판교에 소재한 현대어린이책미술관 MOKA(관장 노정민)는 2015년 8월에 문을 열었다. 이름에서 짐작되듯 책을 주제로 그림책 관련 전시, 테마 교육, 열린서재 등을 통해 아이들에게 타인과 사회를 이해하는 힘을 길러주는 특별한 미술관이다. 연면적 2천736㎡ 규모의 2개의 전시실과 3개의 교육실, 미디어룸, 아틀리에, MOKA 카페 등으로 구성됐다. 앉아서 쉬거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징검다리 형식의 멋진 계단을 오르면 나타나는 열린서재는 미술관의 자랑이다. 81가지의 키워드로 그림책을 분류한 열린서재 옆으로 늘어선 40여개의 거대한 기둥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의 통로를 걸어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종이접기 형식의 교육실과 책꽂이 나무 아래 독서 공간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건축가 김찬중씨가 설계한 이 건물은 개관 당시 세계 3대 디자인상의 하나인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인테리어 아키텍처 분야의 ‘뮤지엄 스페이스’ 본상을 수상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다양한 세대가 함께 어울리고 소통할 수 있도록 설계한 열린 공간이 돋보인다. ■ 그림책에 담긴 재미난 이야기를 듣고 보다 뛰어난 그림책 작가의 작업 과정을 관람객에게 입체적으로 온전히 보여 주는 것이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의 장기다.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의 그림책과 원화작품을 주제별로 분류해 보여줬고,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작가의 그림책을 소개했다. 그림책 속의 그림들이 온라인 플랫폼, 애니메이션, 현대미술 등 여러 방식으로 표현, 창작되고 있는 예술의 유형도 소개하고 미국의 대표 그림책의 70년 역사를 정리하고 칼데콧상 수상 작가의 작품들을 탐구했다. 신진작가 육성을 위해 신진작가들의 다양한 작품과 작업과정을 소개하고, 전시 기간 동안 관람객 투표를 통해 2명의 작가를 선정해 작가의 작품에 독립 출판도 지원했다. ‘아티스트 인 북스’ 전시는 그림책을 통해 위대한 아티스트들을 다시 만나보는 전시로, 유명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재해석한 글과 그림, 그들의 일생과 작품세계 및 창작기법 등을 탐구한 것이다. 현재 포스트모던 그림책의 대표 작가 ‘존 클라센 & 맥 바넷’전이 열리고 있다. 데뷔 초기부터 주목을 받아 칼데콧상, 케이트 그린어웨이상, 보스턴글로브 혼북상을 수상한 두 작가의 첫 작품부터 발간 예정인 신작까지 살펴볼 수 있는 아이디어 스케치, 친필원고, 원화, 연계 프로젝트들이 최초로 선보인다.  전시실1에서는 존 클라센이 쓰고 그린 그림책의 작품과 맥 바넷이 글을 쓴 그림책의 작품이, 전시실2에서는 두 작가가 협업해 만든 그림책과 관련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관람객이 드로잉, 글쓰기, 만들기, 연극놀이, 극장놀이를 통해 작가들의 작품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 역할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작가의 시선에서 글과 그림을 다시 보게 하는 것이 전시의 매력이다.  ‘키드 스파이’는 존 클라센의 모자 시리즈에 연결된 프로그램이다. 키드 스파이가 돼 단서를 찾고 미션을 풀어가는 놀이인데, 낮선 공간, 처음 보는 물건, 전시실 속 작품들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감상하며 단서를 추리해 지령을 완수하는 프로그램이다. ‘모자를 보았어’는 친구와 함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재미있게 경험하는 인성놀이 프로그램이다. 모자는 하나, 사람은 두 명, 게다가 머리에 맞지 않는 큰 모자, 아이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취학 전의 어린이와 가족이 참여할 수 있는 일일 프로그램이다. 9월 초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 권의 그림책에 담긴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어린이 눈높이 프로그램 ‘창의력 쑥쑥’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이 어린이 교육과 관련된 프로그램 개발과 전파에 쏟는 수고와 정성은 각별하다.  “‘리틀 라이터스!(Little Writers!)’는 문학적 문해력을 다루는 미술관 시그니처 교육입니다. 다양한 이야기의 발상 과정을 경험하고 문학적 요소를 이해해 ‘나의 생각이 담긴 그림책’을 창작하는 문학 탐구 프로그램이지요. 현직 글 작가와 만나 작업 환경에 대해 들어보고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그림책을 완성하며, 그림책을 구성하고 있는 기본 요소를 파악합니다. 어린이들이 작가와 함께 읽고-쓰고-표현하고-비평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낸 그림책이 100권이 넘어요.”  미술관 관계자의 말을 들으니 자연스럽게 교육 현장에 참석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일어난다. “참여자들의 반응이 좋아 올해는 중고등학생 대상의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논픽션-‘역사’는 2019년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인 ‘에베레스트’의 작가 안젤라 상마 프랜시스와 함께하지요. 논픽션 그림책에 대해 탐구하고 자료를 편집,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 그림책 제작 과정의 전반을 경험하며 나만의 책을 입힌 논픽션그림책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리틀 아티스트!(Little Aritist!)’는 예술적 요소(시각적 문해력)를 다루는 교육입니다. 현직 예술가와 함께 소통하며 다채로운 실험과 탐구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선사하지요. 예술가가 작품을 창작할 때 거치는 사고의 과정을 경험하는 예술창작 프로그램인데, 지금까지 회화, 디자인, 건축 등 8명의 작가와 함께한 어린이가 2천700명이나 됩니다. 2016년부터 19년까지 4년에 걸쳐 ‘리틀 아티스트’ 교육에 참여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교육의 효과를 연구한 결과,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이해와 창의, 태도에서 역량이 증진됐음이 확인됐어요. 예술을 통한 교육으로 자기이해, 자기표현, 건강한 자아성장을 이루는 선순환적 구조를 갖추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 세계시민으로 성장하는 꿈의 사다리 ‘그림책과 떠나는 세계여행’이라는 스토리를 가지고 각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문화 탐구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18개 나라의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는데 태국, 인도, 폴란드, 헝가리, 파푸아뉴기니, 멕시코, 아랍에미리트, 스페인, 보츠와나, 뉴질랜드, 체코 등 6개 대륙을 모두 잇는 것입니다. 유네스코 공식 프로젝트 ‘MOKA 세계시민교육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운영하고 있는 ‘MOKA와의 세계여행 Little Aritist!’은 어린이들이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세를 갖추고 미래세대의 주인으로서 책임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별한 교육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예술을 만나며 지속가능 발전목표와 환경을 주제로 한 다양한 교육이 운영되고 있답니다.”  버스에 MOKA ‘움직이는 미술관’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문화예술 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시골의 학교를 찾아가 어린이들에게 미술관의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사회 공헌 프로그램으로 현대백화점 사회복지재단의 후원을 받아 진행됐어요. 움직이는 미술관은 유네스코의 대표적인 교육의제인 ‘세계시민교육’을 어린이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꾸며졌어요. 2019년의 경우, 여러 부족이 어우러져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 인도를 주제로 선정해, 문화다양성과 세계문제를 탐구할 수 있는 3가지 전시 교육 콘텐츠를 선보였지요.”  미술관에서 개발한 그림책과 활동지 키트를 문화적으로 소외된 전국 곳곳에 전달해 수업을 비롯한 학교의 다양한 활동에 활용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미술관을 나서며 미술관을 기획할 때부터 참여했다는 최원옥 책임학예사의 바람을 들어본다.  “그림책은 어린이들이 태어나 가장 처음 접하는 ‘예술’이자, 풍요로운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문학’이며, 다양한 세상과 만나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그 속에서 읽고, 쓰고, 표현하며 문학적 상상력과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고, 어린이 스스로 자신의 삶과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 바랍니다.” 교육 등록은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김영호 한국병학연구소장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1. 용인 ‘경기도어린이박물관’

무지개 빛깔의 일곱 기둥과 꽃밭 같은 건물 외벽 디자인은 어린이들의 재주와 개성을 나타내는 듯하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앞으로’를 비롯한 정겨운 동요 노랫말을 한 글자씩 새긴 알록달록한 타일이 벽면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동요를 시각화한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의 유리벽화를 보면서 100년 전 우리 겨레의 암흑기였던 식민지 시대에 어린이날 제정을 주도한 색동회를 떠올린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린들은 희망이다. 2011년 9월에 개관한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은 어린이들의 꿈과 호기심, 상상력을 키우는 놀이터이자 배움터로 경기도박물관, 백남준아트센터와 이웃하고 있다. ■ 상상력과 모험심이 ‘쑥쑥’ 어린이들이 전시물을 보고 만지고 이용하면서 배우며 알아가도록 고안된 시설답게 공간의 배치와 구성이 안전하고 재미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넉넉한 공간을 자랑하는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은 어린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전시물이 가득하다. 유치원생들이 친구의 손을 잡고 박물관에 입장하고 있다. 대기하고 있던 박물관 직원들이 아이들을 안내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맞은편 벽면에 파이프 오르간과 꽹과리가 이어져 있고 9m 높이의 꼭대기에 파란 구름과 새가 한 마리 앉아있다. 소리를 듣고 눈으로는 움직임을 따라가면서 소통할 수 있는 김동원 작가의 ‘앙상블’이란 키네틱 아트다. 최문석 작가의 ‘돌고래와 환상의 바다여행’은 아이들과 직접 교감한다. 휴대전화를 꺼내 허공에 매달린 번호로 전화를 걸자 파란 돌고래 네 마리가 환상의 바다를 헤엄치기 시작한다. 아이 둘이 기다란 망이 주렁주렁 매달린 숲을 헤치며 앞으로 나간다. 최성임 작가의 ‘끝없는 나무’란 작품도 아이들의 놀이터다. 작가가 아이들과 함께 만든 작품을 살펴보니 음료수 페트병이 중요한 재료로 쓰였다. 버려지는 쓰레기도 상상력을 발휘하면 재미있는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어린이박물관에 전시된 모든 작품들은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말을 걸고 손을 내민다. ■ 너와 나, 우리 모두 주인공이 돼 놀자 빨간 119 소방차를 타고 소방관 아저씨들이 어떻게 불을 끄는지를 배운다. 아이들은 소방관이 돼 차를 몰아 불이 난 곳으로 달려간다. 젖소와 말, 닭과 병아리, 토끼와 양이 살고 있는 동물농장에서 아이들이 토끼에게 당근을 주고, 다람쥐에게 도토리를 준다. 반달곰 발자국을 따라가면 DMZ가 나타난다. DMZ는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지만 희귀한 동식물들을 만날 수 있는 생태계의 보고다. 반달곰이 들판을 어슬렁거리고 냇가에는 반딧불이가 날고 있다. 금강초롱과 두루미와 고라니 형상의 태블릿 가이드가 안내를 맡아준다. 태블릿으로 반달가슴곰을 찍으면 반달가슴곰에 대한 정보가 화면에 나타난다. 퀴즈를 푸는 활동을 통해 회색의 삭막한 들판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면 생동감이 넘치는 공간으로 변화한다. ‘자연놀이터’는 48개월 미만의 영유아들을 위한 감각놀이 공간이다. ‘작은 생태전’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연은 어떻게 변하는지 알려준다. 텃밭에 채소도 심고, 사과도 따며 사계절의 변화를 느껴본다. 동물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땅속엔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을까? 알 속에 들어가 병아리 돼보기, 동물농장에서 강아지와 말 돌보기, 연잎 위에서 자연의 소리 듣기, 다람쥐가 되어 통나무를 오르고 내려가기, 땅속 두더지가 돼 두더지집짓기를 하다보면 자연의 따뜻함과 편안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 놀면서 배우는 생태와 환경, 그리고 이웃 2층 상설전시실에 마련된 ‘바람의 나라’는 어른들에게도 재미있는 공간이다. 바람의 나라에서는 ‘아기 바람’과 ‘어린이 바람’이 친구가 돼 신나게 논다. ‘어른 바람’과 ‘어르신바람’을 통해 보이지 않지만 늘 우리 곁에 있는 바람의 소중함을 배운다. 바람이 어떻게 이용될까? 바람이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모습, 바람을 타고 춤추는 천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다. 아이 하나가 새의 등에 엎드려 망원경을 보고 있다. 아이의 눈에 비친 경기도의 산과 들판의 풍경이 궁금하다. 씨앗을 먼 곳으로 여행시키고, 식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바람을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다. ‘물의 나라’는 태백산 상류에서 발원해 서해로 흘러드는 22m 크기의 한강 물 테이블이다. 물의 흐름과 힘, 댐과 수력발전의 원리 등을 체험하고 한강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배우며 서해안 갯벌의 생물을 관찰할 수도 있다. 아이들의 마음을 엿보려면 2층 ‘도전 어린이 건축가’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살피면 된다. 증강현실(AR)과 다양한 체험을 통해 어린이 건축가가 돼 볼 수 있다. 못을 사용하지 않는 결구법을 체험하고, 서양의 아치 구조물을 쌓아본다. 건축가의 인터뷰를 담은 AR 영상으로 건축의 구조와 재료를 배운다. 미래의 집은 어떻게 변할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건축물을 직접 짓고 전시실 벽면으로 송출해 다 함께 마을을 만들어 본다. 자신의 상상력을 펼치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다. ‘우리 몸은 어떻게?’는 우리 몸의 장기를 살펴보는 흥미진진한 과학교실이다. 눈, 귀, 코와 손 등 신체 각 기관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다. 온 몸에 피를 보내는 심장이 커다란 나무처럼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붉고 푸른 혈관이 나뭇가지처럼 천장으로 뻗어 올라갔다. 피가 나가는 동맥은 붉은색, 피가 심장으로 들어오는 정맥은 푸른색이다. 열 명 남짓한 아이들이 음식을 씹는 어금니와 혀 위에 앉아 놀고 있다. 나의 손은 어떻게 물건을 잡을까? 뼈만 있는 새끼와 약지손가락이 있는 커다란 손바닥 신기한 듯 쳐다보는 아이의 눈빛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거대한 눈 모형에 들어가 시각원리를 이해하고, 우리의 귀가 소리를 어떻게 뇌로 전달하는지 체험한다. 3층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전시장은 박물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얼굴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다문화가정이 살고 있는 경기도의 특성을 전시로 녹여낸 것입니다. 경기도에 살고 있는 중국, 베트남, 일본, 인도네시아 어린이 가정을 1년여간 방문해 그들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전시장으로 옮겼습니다. 관람객들은 다양한 도구와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각국의 요리와 전통악기, 의상 등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지요.” 박물관 곳곳에 어린이들이 예술가와 함께 만든 작품이 전시돼 있다. ■ 소통과 참여로 만들어 가는 ‘어린이 세상’ 스마트폰이 아이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시대이지만 어린이들은 여전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 속으로 풍덩’은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채고 마련한 것이다. 5월에는 ‘사랑에 빠진 개구리’를 6월에는 ‘배고픈 달팽이와 너무 먼 채소밭’을 공연한다. 공연을 관람한 후 개구리 손 인형 만들기와 달팽이 손 인형 만들기를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 진행한다. ‘21세기 잭과 콩나무’를 오르고 내려오기는 가장 인기가 많은 놀이터다. 14m에 달하는 콩나무를 직접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키가 120㎝가 넘는 어린이들이 체험을 할 수 있다. 박물관의 모든 프로그램은 예약제로 진행되기 때문에 쾌적한 환경에서 전시물과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소통과 참여가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박물관은 개관 때부터 어린이자문단을 둬 어린이들과 함께 박물관을 만들어 가고 있지요. 어린이들의 순수한 꿈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는 역동성이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의 자랑입니다.” 정기 자문회의를 통해 의견을 제시하고, 워크숍을 열어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전시물 제작과 공간구성을 논의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어린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열린 정책은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이 어린이들에게 사랑받는 비결이다. 김준영 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센터장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0. 과천 아해박물관

1989년 전 세계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제정한 ‘유엔아동권리협약’ 31조는 ‘놀이’를 아이들의 권리로 선언한다. ‘모든 어린이는 충분히 쉬고 놀면서 자신의 나이에 맞는 놀이와 예술, 문화 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렇다. 놀이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직업만큼이나 소중한 것이다. ■ 아름다운 숲에서 다 같이 놀자 아해박물관(관장 문미옥)은 한국 전통놀이의 역사와 문화를 두루 살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터이자 창조적 배움터이다. 안해가 아내로 바뀐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아해’는 어린이의 옛말이다. 아해박물관은 옛날 아이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며 어떻게 놀았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주고, 박물관과 이어진 숲에서 옛날 아이들처럼 즐겁게 놀도록 놀이판을 벌여준다. 과천시 주암동 아담한 동산에 안겨 있는 아해박물관에도 싱싱한 초록빛이 가득하다. 박물관에서는 현재 2023년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이 진행되고 있다. ‘자연과 함께 오래 오래 논다는 것’이라는 프로그램의 시간표에서도 전통놀이의 재미가 느껴진다.  1차시는 ‘도토리팽이, 나무에서 떨어져 팽그르 돌다’ 2차시는 ‘연, 바람에 기대어 날다’ 3차시는 ‘염색-풀, 나무, 흙으로 물들다’이다. 도토리팽이, 가오리연, 손수건 천연염색 체험키트를 제공하며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로 진행되는데, 1~3차시까지 중복해서 신청할 수 있다. 단체로 신청하면 차량지원도 가능하다니 관심이 있으면 전화로 문의하면 되겠다. 박물관은 지난 3월부터 11월까지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 ‘우리 동네 전통 놀이터 -다 같이 놀자’를 박물관 옆 아해숲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게줄다리기는 5·7·9·11월 홀수 달에, 비석치기는 4·6·8·10월 짝수 달에 운영한다. 누구나 사전예약으로 신청할 수 있는데 선착순으로 마감한다. 조상들의 슬기를 엿보고 체험할 수 있는 전통 놀잇감 유물들을 전시한 박물관은 어떻게 설립됐을까. 서울여대 아동학과 교수인 아해박물관 설립자 문미옥 관장은 아동교육의 선진 이론을 배우기 위해 국제행사에 참여하면서 한국의 전통놀이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전통놀이가 아동교육에 매우 소중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의 아동학자들에게 자랑하고 내세울 만한 놀이감을 보여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그는 이때부터 열성적으로 전통 놀이감을 수집하기 시작한다. 88올림픽이 열린 1988년부터 수집한 전통 놀이감은 교수연구실을 채우고 집안에도 넘쳐났다.  전통놀이가 창의성과 과학성, 예술성을 기르는 높은 수준의 공부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열망이 가득한 그는 부친이 물려준 대지에 어린이전통놀이체험박물관을 건립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놀이의 즐거움과 낭만을 돌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해박물관의 고민은 어른들의 무지와 욕심으로 아이들에게서 빼앗은 놀이의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일에 집중돼 있다. 아이들이 재미있는 놀이를 통해 꿈을 찾고 가꾸는 놀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정성을 쏟았다. 이런 노력으로 창의체험 프로그램 부분에서 전국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 놀이로 세대와 세대를 잇다 서광일 학예사의 안내로 1층 상설전시실을 둘러본다. ‘천인천자문’은 어떤 책일까? 한 권의 책에 담긴 정성이 놀랍다. “아이가 돌을 맞을 때 선물한 책입니다. 아버지나 조부가 글을 아는 이웃을 찾아다니면서 천자문의 1천 글자를 한 사람에게 한자 씩 1천 사람에게 받은 글씨를 모아서 만든 책이지요. 1년 365일 안에 책을 완성해야 하니 하루에 세 집을 돌아다녀야 했겠지요?”  자세히 보니 천자문 글자마다 오른편에 작은 글씨로 글씨를 쓴 사람의 자필 서명이 있다. 한글로 훈을 단 것도 책의 가치를 더해준다. 직사각형의 방패연이 여러 점 걸려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전선에 우리 군사들만 알아보도록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문양을 단 연을 날려 명령을 전달했던 사연을 들려준다. 놀이감으로만 알았던 연에도 이런 사연이 담겨 있다니 놀랍다. 연을 날릴 때 사용했던 여러 가지의 얼레도 여러 종류가 전시돼 있다.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었던 방패연 옆에 모형 비행기와 우주선을 배치한 것도 재미있다. 손자손녀와 손잡고 박물관을 관람하는 중년이라면 팽이와 썰매를 전시한 곳에 서면 마음이 절로 즐거워진다. 손주에게 자신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들려주며 팽이를 만드는 방법, 잘 돌리는 기술을 설명하다보면 세대 간의 소통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한겨울 꽁꽁 언 시냇가에 친구들과 어울려 썰매를 타고 팽이를 돌렸던 시절을 떠올리며 행복한 미소 지을 것이다. 전시된 팽이가 여러 종류다. 말팽이, 장구팽이, 숫자팽이, 허리들어간 줄팽이, 줄팽이, 88올림픽팽이도 있다. 사금파리팽이와 돌멩이팽이도 있으니 돌릴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지고 놀았다. 명절이면 빠지지 않는 윷놀이도 빼놓을 수 없다.  흔히 보는 일반윷을 비롯해 엄청 커다란 큰윷과 장작윷, 자그마한 종지에 담아 노는 종지윷, 밤 윷, 콩 윷, 팥 윷까지 온갖 윷을 보면 우리 민족이 얼마나 놀이를 즐겼는지 짐작할 수 있다. 팽이만큼이나 썰매의 종류도 다양하다. 양반다리 썰매, 서서타는 썰매, 막대손잡이썰매, 외발썰매, 방향전환썰매, 스케이트 날썰매, 철판날썰매, 눈썰매를 타고 동심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산과 들에 자라는 칡넝쿨을 감아 만든 칡공으로도 축구를 할 수 있을까? 아해박물관 숲에도 칡이 많아 칡 줄기로 칡공, 칡굴렁쇠를 만들어 놀이에 활용하고 있다. 88올림픽 개막식 때 한국의 놀이를 상징하는 놀이로 세계에 소개된 굴렁쇠도 있다. 경기장을 가로지르며 달려갔던 굴렁쇠 소년을 떠올려 본다. 우주소년 아톰을 그린 아톰딱지, 새아씨 종이인형, 판박이 인형옷입히기, 여자아이들도 즐겨 놀았던 구슬치기, 여름날 더위까지 식혀주던 물총도 빛이 바랬지만 유년 시절로 안내하는 유물이다.  전시실 끝에 근대 놀이와 관련된 유물들 전시되어 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이 1937년에 펴낸 잡지 ‘어린이’가 있다. ‘아이를 한울님 같이 생각하라’고 가르친 해월 최시형 선생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은 방정환은 정순철(해월의 외손자) 등과 색동회를 조직해 어린이날을 제정한다. 어린이를 존중하는 정신의 뿌리가 동학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2층은 산마루교실은 체험학습장이다. 통유리를 통해 동산의 나무들이 훤히 보이는 곳에서 아이들은 나무를 잘라 다듬어 팽이를 만들고 칡을 엮어 공을 만든다. 숲에는 상설전시실보다 더 큰 ‘한라백두 놀이마당’과 ‘콩쥐네 집’에도 선조들의 지혜와 땀이 밴 소중한 유물들이 가득하다. ■ 지켜내야 할 아해숲 즐거운 놀이가 벌어지는 ‘아해숲’은 아해박물관 전시실에서 관람한 내용이 펼쳐지는 아해체험숲이다. 아해숲에서 아이들은 감자나 고구마를 구워먹고, 칡을 말아 공을 만들고 숲에서 주운 알밤으로 윷놀이를 벌인다. 아해숲은 사시사철 잔치가 벌어지는 흥겨운 놀이마당이다. 숲에 난 길을 따라 걸으며 대자연의 신비를 가슴에 품는다. 동무들과 소나무길, 밤나무길, 상수리길, 왕벚나무 꼬부랑길, 살금슬금 길을 걸으며 우람한 참나무와 작은 풀꽃을 만나는 시간도 즐겁다. 황토길, 낙엽길, 나무다리길, 굽은 길에서 만나는 곤충과 꿩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깨친다. 숲속 곳곳에 놓인 놀잇감 유물은 전통놀이를 벌이는 작은 마당이다. 그런데 머잖아 이 아름다운 숲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박물관 주변이 주택단지로 지정되면서 박물관 숲까지 개발지역에 포함되어 이 계획을 철회하도록 재판했으나 1차 패소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도시의 품격은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같은 문화시설이 말해준다. 숲이 사라지면 박물관은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아해숲에 우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관계 당국의 결단을 촉구한다. 김영호 한국병학연구소장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9. 고양어린이박물관

오월의 숲은 뛰어노는 어린이들처럼 활기차다. 둥근 지붕선이 멋진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햇볕 가림막이 있는 원형 의자를 한 그루 나무로 배치했다. 노랑, 연두, 초록의 늘씬한 나무들이 무리지어 있는 숲을 형상화한 고양어린이박물관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12가지 무지개 색상으로 채색돼 있다. 어울림의 세상을 다양한 색깔로 표현한 것이다. 경기북부 지역의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해 고양특례시 덕양구 화중동에 마련된 고양어린이박물관(관장 조현영)은 2016년 6월에 문을 열었다. ‘체험학습형 문화공간’임을 내세우는 고양어린이박물관의 주제는 ‘꿈과 미래를 만나는 여행’이다. 여행의 목적은 어린이들이 “무궁무진한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키우도록 돕고 응원하는 것이다. ■ 세상의 모든 것을 만나는 곳 박물관 로비에 나무 모양의 조각 작품이 설치돼 있다. 벽면을 장식한 것은 아이들의 그림이다. 엄마 얼굴, 꽃과 나무, 물고기와 아기 공룡이 관람객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즐거운 나뭇잎 벽화’ 앞에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 선생님을 따라 이동하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흥겹다. 아이들에게 안전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놀이를 통해 안전습관을 배울 수 있는 ‘안전을 약속해’라는 생활안전체험 공간도 눈에 띈다. 박물관 중앙에 설치된 ‘아이그루’는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숲 속 거대한 나무를 모티브로 한 신체활동 체험물로 나무를 오르며 도전정신과 모험심을 기르며 성취감을 느껴보는 곳이다. 탐험을 하다 친구와 가는 길이 겹치거나 마주치면서 양보와 배려, 질서를 자연스럽게 배운다. 안전한 양말과 미끄럽지 않은 운동화와 안전모가 준비되어 있어 안전하게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 “색다른 주제와 발전된 기술을 새롭게 만나보는 전시”가 열리는 기획전시실에는 현재 고양시의 장항습지를 디지털 숲과 AR체험으로 만날 수 있는 ‘원더풀 랜드’가 전시 중이다.  장항습지는 우리나라에서 24번째 람사르습지로 등록된 곳이다. ‘원더풀 랜드’ 앱을 다운 받으면 도시에서 발견된 장항습지 야생동물을 구조하여 디지털 숲으로 돌려보내줄 수 있음을 알려준다. 푸른 이끼로 둘러싸인 동굴을 지나면 온갖 동물들이 살고 있는 장항습지를 디지털로 구현한 신비한 현장이 나타난다. ■ 호기심을 키우고 차이와 어울림을 배운다 2층에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는 전시관이 이어진다. 꽃의 생태와 문화적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꽃향기 마을’을 비롯해서 인종, 성별, 종교, 장애 등 다름을 배울 수 있는 ‘함께 사는 세상’이 있다. ‘함께 사는 세상’은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체험하며 이해해 보는 재미있는 공간이다.  현재 소개하는 나라는 스웨덴이다. 스웨덴에는 어떤 친구가 살고 있을까? 동화와 영화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한 ‘삐삐’가 바로 스웨덴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삐삐의 옷방, 삐삐의 주방, 삐삐의 거실에서 벽에 걸려 있는 옷을 입어보고 사진을 찍어보면서 머나먼 나라 스웨덴 사람들의 문화를 알아가도록 꾸며져 있는 것이 재미있다. 옷과 가구, 좋아하는 무늬 등 스웨덴의 문화와 예술을 경험하며 차이와 다름을 배워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우주와 지구 환경의 중요성을 놀이를 통해 알아보는 ‘안녕 지구!’, 각종 실험 기구를 통해 물의 성질과 원리를 배우는 ‘물빛마을’이 이어진다. ‘물빛마을’은 물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공간이다. 물이 없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물빛마을에서 물의 힘을 체험하며 물 에너지에 대해 이해하고, 물의 흐름을 바꾸며 이리저리 바뀌는 물의 이동 모습을 살펴보며 물을 새롭게 이해한다. 물을 통한 다양한 놀이로 물의 성질과 원리를 발견하고 물의 소중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36개월 미만의 유아와 부모들을 위한 휴식과 놀이의 공간 ‘아기산책’은 영유아들의 감각을 기반으로 공간에 대한 이해와 시각, 촉각, 청각 등 감각 발달을 지원하는 체험 공간이다. 엄마와 함께 소형, 대형 쿠션을 옮기고, 아빠와 함께 소리가 나는 물체를 만져보는 유아들의 몸짓이 사랑스럽다. 스펀지 매트 위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뛰는방, 소리가 나는 물체를 흔들며 소리를 탐색하는 기둥방, U자방, 까꿍 끈방, 아늑한 방, 검은방, 동굴방 등 재미있는 공간이 이어진다. ■ 어린이들이 주인공이 되어 직접 꾸미는 박물관 3층은 애니메이션의 제작과정을 직접 체험해보고 이해할 수 있는 ‘애니팩토리’를 비롯해 과거와 현재, 미래가 어우러진 도시 ‘고양시’를 직접 만들어보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건축놀이터’, ‘꽃’을 주제로 풍부한 상상력과 예술적 감각을 키워볼 수 있는 ‘아트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간단히 식사나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카페테리아, 텃밭과 테라스가 펼쳐진 야외정원이 있는 옥상까지 있어 가족들과 휴식을 즐기기에 좋다. 고양어린이박물관은 어린이교육 전문가들의 학술자문을 통해 다양한 테마별 주제로 풍성하게 꾸며졌다.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자신감을 키우며, 문제해결 능력을 높이고 그들 스스로 고유한 잠재 능력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박물관 관계자는 “어린이의 잠재력에는 한계가 없다”고 강조한다. “어린이의 그 큰 가능성처럼 고양어린이박물관은 더 앞선 생각과 새로운 도전으로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습니다. 고양어린이박물관은 그 무궁무진한 상상을 현실로 펼치는 최고의 공간과 최고의 시간을 선물합니다.” 다양한 테마로 구성된 12개의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 및 체험물을 통해 어린이 가족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경험을 선사한다. 어린이박물관은 어린이가 주도적으로 보고 느끼고 만들어가는 체험 교육을 중시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호기심과 상상력을 키워간다. 대상별(유아·초등·가족·성인) 교육, 시즌 교육, 전시 연계 교육 등 늘 찾고 싶은 가족 복합문화공간이다. 축제, 온·오프라인 연계 이벤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어린이날과 크리스마스 등 계절별 축제, 뮤지엄라운지 프로그램, 메이커스페이스, 박물관 크리에이터 가족 ‘와글팸’ 등 유연한 운영이 특징이다. 배려와 공존을 생각하며 누구나 누리는 장벽 없는 박물관, 안전하고 편안한 박물관을 추구하며 만들어왔다. 올해 말까지 이어지는 ‘나나아스트로 고양: 별 여행’은 우주 고양이 나나아스트로와 함께 떠나는 고양별(Goyang Planet) 여행이다. 함께 지내던 반려동물이 우리 곁에서 사라진다면 어떨까? 작가는 반려 고양이 ‘나나’가 떠난 후 이별의 슬픔을 예술을 통해 풀어냈다. 작가의 상상 속에서 재탄생한 ‘나나아스트로’와 함께 광활한 우주 속을 탐험한다. ‘나나아스트로’의 첫 번째 여행지는 고양별이다. 꽃과 식물은 어떻게 자라나는 걸까? ‘꽃향기마을’은 꽃을 심어보고, 피어나는 꽃을 관찰하고, 다양한 꽃의 씨앗을 탐색하며 꽃과 식물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꽃과 함께하는 일상의 즐거움을 경험하고 자연과 더욱 친해질 수 있다. ■ 아이들이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해진다 박물관 곳곳에 고양시의 특성을 반영한 디자인과 시설들을 배치하여 자연스럽게 꽃박람회가 열리고 호수공원이 유명한 도시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준다. 고양어린이박물관은 어린이날을 맞아 5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2023년 들썩들썩 놀자 페스티벌’은 ‘맘껏 펼침’을 주제로 어린이들이 무엇이든 마음껏 펼칠 만한 놀이와 체험의 장을 어린이박물관 실내와 야외광장에서 진행한다. 다양한 체험·공연이 펼쳐질 어린이날 축제 야외 체험 행사는 예약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행사장은 ‘놀이를 펼쳐봐’ 공연과 퀴즈 같은 이벤트로 어린이들의 상상을 실현하는 ‘상상을 펼쳐봐’와 ‘생각을 펼쳐봐’ 야외광장에서 가족들과 소풍을 즐길 ‘마음을 펼쳐봐’ 구역으로 구성된다. 고양어린이박물관은 아이들의 빛나는 눈빛과 해맑은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김준영 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8. 부천로보파크

■ 입구 들어서면 반갑게 맞아주는 ‘로피’ 로보파크 1층 입구에 들어서면 안내로봇 ‘로피’가 인사한다. 로봇 가이드 로피의 역할이 사람 못지않다. 아이들은 진짜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로피에게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한다. 로봇박물관 로보파크에서 관람객이 가져야할 필수 덕목은 ‘호기심과 용기’다. 전시물 앞에 설치된 버튼을 눌러 로봇과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소개’ 버튼을 누르면 “안녕?” 하며 인사를 하고, 감정을 표현한다.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버튼을 하나씩 누를 때마다 반응하는 로봇의 변신이 재미있다. 4D 영상관에서 로봇이 주인공인 영화 ‘스파키’와 ‘볼츠와 블립’을 관람하고 관절을 이용해 사다리를 오르는 ‘레더보이’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더욱 흥미로운 공간이 펼쳐진다. 바퀴 달린 자동차가 인조인간으로 변신하는 ‘변신로봇’을 비롯해 ‘마술로봇’이나 음악을 연주하는 ‘몬스터밴드’는 로봇의 역할과 가능성을 흥미롭게 전달해 준다. 로봇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 분야에도 깊숙이 진출해 있다. 청소용 로봇, 극한 작업용 로봇, 학습용 로봇, 완구용 로봇 등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는 로봇의 존재를 거듭 확인하게 된다. 우리 눈에 익숙한 휴머노이드 ‘휴보’와 세계 최초의 네트워크 기반 인간형 로봇인 마루·아라를 가까이서 마주하는 것도 즐겁다. ■ 미래 꿈나무들에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로봇 로보파크는 아이가 전시물을 직접 작동해 볼 수 있는 체험형 박물관이다. 로보파크는 매년 아티스트 로봇전시와 로봇체험전 같은 기획전을 열고 다양한 로봇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시물을 어린이가 직접 작동시켜 볼 수 있기 때문에 관람객들의 호응도 매우 높다. 로보파크의 자랑은 다양한 전시 연계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장난감을 만들고 금속 프레임을 이용해 꼬마 로봇을 제작하며 기계의 원리를 배우고 투석기를 제작하여 미니대회를 진행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로봇 아카데미’는 로봇 과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최고 수준의 교육 과정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화가처럼 그림을 그리고, 축구 경기를 하고 불평 없이 청소를 하는 로봇은 어떤 역사를 가졌을까? ‘로봇’이라는 단어는 노동을 의미하는 체코어 ‘로보타’에서 나왔다. 로봇은 혼자서도 척척 움직이며 스스로 작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기계이다. 로봇은 점점 사람과 닮아가고 있다. KAIST가 만든 국내 최초 휴머노이드 ‘휴보’를 비롯해 학습용 로봇, 댄스로봇, 영어회화용 로봇 등 다양한 지능형 로봇은 우리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로보파크는 그동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로봇에 대한 꿈을 키워주고 과학에 대한 체험과 교육을 통해 우리나라 최고의 로봇관련 전시 및 교육, 체험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관람객의 초상화를 즉석에서 그려내는 화가 로봇,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댄스 로봇, 응접을 담당하는 서비스 로봇까지. 직접 체험은 물론 로봇을 만들어볼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한 로봇교육과정도 마련하고 있다. 체험실은 학습용 로봇을 조립하는 유치원생들로 가득 찬다고 한다. 부천 로보파크 전시관 2층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로봇 스포츠센터에서는 로봇이 발로 뛰고 장애물을 넘고 미로를 찾아가는 ‘로봇스포츠’가 펼쳐진다. ‘로봇 K-1’으로 불리는 로봇 격투기 대회도 바로 이 로봇 스포츠센터에서 열린다. 로보파크가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로봇 스포츠 대회를 개최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로 지능형로봇 전문 과학관으로 개관해 크게 주목을 받았던 로보파크는 개관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청소년을 대상으로 로봇교육을 진행해왔다. 교육로봇 특별전을 열어 공학에 뜻을 둔 학생들의 호기심과 지적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기획전시실이 있는 로보파크 3층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로봇 제작에 몰두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기획전시실은 유아부터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체험프로그램은 물론 산업현장의 전문 인력들에게 로봇활용 직무능력 교육과 로봇교재 및 교육 콘텐츠를 홍보하는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지역 내의 관련 기업과 기관이 참여하는 ‘휴머노이드 코딩교육’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연계 체험교육을 통해 전시 관람은 물론 로봇활용 교육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실도 빠트릴 수 없다. ■ 인간·로봇이 어울린 세상을 상상하는 놀이터 부천 로보파크는 우리 일상에 들어와 있거나 장래에 들어올 첨단 로봇과의 관계가 어때야할 지를 생각하도록 이끈다. 산업 전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 인공지능은 물론 로봇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머잖은 날에 실행될 자율주행자동차에도 로봇에게 맡겨야 할 역할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과 로봇 사이에 효과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인간과 동행할 휴먼 로봇의 발전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미래를 상상한다. 로보파크는 사람처럼 환경을 이해하고 사람처럼 생각하고 결정해서 사람처럼 행동하는 로봇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로봇이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로봇 산업의 최종 목표는 사람과 같은 로봇을 만드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연구 개발하면서 사람처럼 생각하는 로봇 인공지능 개발을 목표하고 있다. 로봇은 인간의 동료이자 친구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인식되고 있다. 거실 바닥을 청소하고, 자신들과 놀아주는 친숙한 존재이다. 챗GPT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이 거리를 활보하는 시대가 오면 세상은 좀 더 살만해질까. 전시관에서 만난 아이들의 맑은 눈빛을 떠올리며 ‘인간과 공존하는 따뜻한 감성을 지닌’ 휴먼로봇의 출현을 기다린다. 부천산업진흥원은 로보파크를 통해 4차 산업혁명시대를 이끌어 나갈 로봇 과학인력 양성에 많은 정성을 쏟고 있다. 이러한 정책에 힘입어 로보파크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로봇교육을 실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로봇전문 교육기관으로 이름을 떨쳤다. 연간 1만1천여명의 교육생을 배출해왔으며, 2009년에 창단돼 50명으로 구성된 로봇스포츠 클럽 ‘로파스’를 운영하는 것도 로보파크의 자랑이다. ‘로보파크의 친구들’이란 뜻의 로파스 팀은 각 분야의 로봇 교육 기초 단계를 거친 친구들 중에서 선발되며 구동형 로봇반과 휴머노이드 로봇반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부천시의 미래산업팀과 부천산업진흥원의 로봇융합팀이 서로 협력한다는 사실과 테크노파크에 로봇기업과 연구기관이 입주해있다는 사실은 로보파크가 내세울 수 있는 또 하나의 자랑이다. 로보파크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단기 체험학습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재미를 주면서 창의력과 로봇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준다.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과 창조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로보파크의 전시물과 체험프로그램은 매년 새롭게 채워지며 개발되고 있다. 아이를 동반한 학부모들이나 유치원, 초중등학교에서 로보파크를 즐겨 찾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7. 과천 한국카메라박물관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 손톱만 한 카메라가 무려 다섯 개가 있다. 카메라가 휴대폰에 장착되면서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은 카메라는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을까. 앞으로 카메라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과천 한국카메라박물관을 찾았다. ■ 200년에 걸친 카메라의 발달사 지하철 4호선 대공원역 4번 출구 바로 앞에 한국카메라박물관(관장 김종세)이 있다. 2000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개관했던 것을 2007년 현 위치에 건물을 신축해 이전한 것이다. 박물관은 카메라를 연상하도록 만들어졌다. 외관은 렌즈의 단면으로 디자인하고 건물 상부는 조리개 모양과 후드가 조화를 이룬다. 한국카메라박물관은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려는 인간의 꿈과 집념의 역사를 보여준다. 카메라는 짧은 시간에 극적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는 독일제 ‘콘탁스’와 ‘라이카’의 시대였다. 그러나 1959년 ‘일본광학’에서 카메라 역사의 기념비적 모델이 된 ‘니콘 F’를 출시하면서 카메라 시장은 독일에서 일본으로 넘어간다. 이후 기술의 발전을 거듭하여 디지털카메라를 탄생시킨다. 스마트폰의 출현으로 한국은 카메라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카메라의 극적인 변천사를 실물로 확인하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다. 층별로 3개 전시실이 있다. 1층 1전시실은 카메라와 렌즈, 부속 기자재들을 테마와 이야기를 담아 주제별로 기획 전시하는 공간이다. 2층에 위치한 상설전시실은 카메라가 최초로 등장한 1839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단위로 카메라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대별로 카메라를 전시해 놓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유물이 전시되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유물로 가득하다. 지하는 교육과 전시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우리 박물관에는 카메라와 렌즈가 각각 7천여점, 옛날 유리 원판 필름과 각종 부속품, 기자재까지 소장품은 모두 2만5천점에 이릅니다. 100년이 넘은 카메라를 많이 소장하고 있지요. 사립박물관으로는 우리 박물관이 세계 최고라 자신합니다.” 김 관장의 소개말에 긍지와 자부심이 묻어난다. 카메라의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상설전시실에서 카메라의 시조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와 마주한다. 라틴어로 ‘어두운 방’을 뜻하는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 한쪽 벽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이 들어와 반대쪽 벽에 구멍 밖 풍경을 거꾸로 나타내는 원리를 이용해 제작한 것이다. 최초의 카메라 옵스큐라는 1839년에 프랑스에서 제작한 것이지만, 전시된 유물은 1890년 무렵 독일에서 교육용으로 제작한 것이란다. 카메라 루시다 역시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유물이다. 1826년 무렵 카메라가 세상에 등장했으니 대략 200년의 세월이 흘렀다. 100년의 세월 동안 변신을 거듭하면서 휴대용 카메라와 스냅사진이 등장한다. 플라스틱 롤필름을 발명하면서 사진기는 휴대하기 좋도록 작고 가벼워진다. 디지털카메라의 발명은 카메라 역사의 최대 혁명이다. 카메라의 필수품이던 필름이 사라진 것이다. 디지털카메라가 휴대폰에 장착되면서 또 한 번의 혁명이 이루어진다. ■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다 콘탁스Ⅱ 라이플은 특별한 생김새만큼이나 얽힌 사연도 풍성하다. 관람객들이 전체를 살펴볼 수 있도록 둥근 유리관에 전시했다. “총의 개머리판 위에 장착된 카메라를 방아쇠를 당겨 셔터가 동작되도록 만들었지요. 히틀러 나치 정부의 주문으로 단 4대가 제작되었으나 한 대는 사라져 현재 3대 만 남았는데, 실물을 볼 수 있는 곳은 오직 우리 박물관에서만 가능합니다.” 제작한 해가 1936년이다. 베를린올림픽 동영상 촬영 때 쓰였던 카메라를 어떻게 구했을까. “20년 전쯤 독일 컬렉터에게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절대로 되팔지 않겠다’라는 각서를 쓰고 소장한 귀중한 물건입니다. 결승점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손기정 선수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같이 전시되어 이 특별한 카메라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가장 애착이 가는 소장품은 무엇일까?  “목재로 만든 1907년 모델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샀는데 크리스티 경매에 나왔던 물건보다 더 깨끗하고 상태가 좋았습니다.” 카메라의 원조인 카메라 옵스큐라, 카메라 루시다부터 최초의 은판 사진술 카메라인 1839년 모델, 최신 디지털카메라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카메라들이 마주하면서 “인간의 눈”에 다가가려는 기술 발전의 종착점을 상상한다. 라이카, 니콘, 펜탁스 등 세계 카메라 제조사에도 없는 초기 모델까지 살펴볼 수 있음에 감탄하며 설립자의 이력을 살펴본다. ■ 카메라를 향한 한 사람의 열정과 헌신 한국카메라박물관은 설립자 김종세 관장의 헌신과 열정의 산물이다. 젊은 날 광고와 디자인 계통의 일을 하면서 카메라에 빠져 카메라 수집에 열을 올렸다는 김 관장은 1976년에 구입한 ‘아사히 펜탁스 K2’와 인연을 맺으면서 카메라의 매력에 빠져든다. 아사히 펜탁스 K2하고 독일제 자이스 이콘에서 생산한 콘타플렉스를 비교하면서 카메라 렌즈를 모으기 시작한 그는 박물관 설립을 마음먹은 1993년부터는 돈이 생기면 카메라를 사서 렌즈를 테스트하고,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으면 카메라를 구입한다. 물론 카메라 발전사에 기여했거나 희소성이 있는 것들이다. 영국에서 희소성이 있고 상태가 좋은 카메라들을 많이 만난다. 소련이 붕괴한 직후 러시아와 동유럽의 길거리에서 명품들을 많이 산다. 1997년 IMF 때 일본 사람들이 와서 좋은 카메라를 싹 다 걷어가는 것을 보고 일본으로 나가려는 카메라를 모두 사 들인다. 물건 양이 많아서 나중에는 돈 빌려 가면서 구매한다. 1998년부터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카메라를 구입하기 위해 런던 크리스티 경매장을 드나든다. 카메라를 수집하기 위해 다닌 나라가 120여개국이나 된다고 하니 그가 이제까지 쏟은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필요에 의해 카메라를 교환하는 일은 있었지만, 팔아서 돈을 만든 일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의 이런 투철한 자세가 우리나라 최초로 카메라 전문박물관을 개관할 수 있었던 힘이다. 지하에 있는 제3전시실은 사진 전시, 스튜디오, 암실 등 다목적기능을 가진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카메라’ 교육과 같은 문화강좌, 카메라를 직접 만들어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만들어 보는 체험, 카메라의 원리, 사용법, 촬영방법들을 간단하게 배운 뒤 촬영한 필름을 암실에서 직접 현상, 인화작업을 해보는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시민들의 호응이 아주 좋아 놀라고 있습니다.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가장 즐겁고 보람된 일이죠.” 카메라의 원리가 궁금해 하는 관람객들을 위해 박물관은 카메라 옵스큐라, 바늘구멍 카메라 만들기 체험을 통해 카메라의 원리를 전달한다. 박물관에서 제작한 바늘구멍 카메라는 2천300여년 전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강의 노트에 기록되어 있던 원리를 이용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 한국카메라박물관을 살려야 한다 매년 특별전을 열고 있는 한국카메라박물관은 그동안 라이카 카메라 특별전, 펜탁스 카메라 특별전, 옛날 카메라로 찍은 사진전, 입체카메라 특별전, 군용카메라 특별전, Rolleiflex & 세계 이안반사식 카메라 특별전시회를 열었다. 현재 ‘120년 역사, 세계 접이식 소형 카메라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지하 전시실에는 현재 김종세 작가의 다랑이논을 주제로 한 사진전 ‘가방제전/묘족 이천년의 혼’이 열리고 있다. 과천 한국카메라박물관은 세계가 인정하는 명소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 박물관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라 박물관 전체 토지가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을 허물고 주택을 건설한다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누가 내렸을까. 국가는 당연히 박물관을 보호해야 한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13조 2항에 ‘국가나 지자체 장이 지원 육성해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권산 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6. 남양주 우석헌자연사박물관

호기심 가득한 어린이나 일상이 지루하고 시시해진 어른이 찾아봐도 좋을 매력적인 공간이 있다. 지구 역사와 생명의 신비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곳이다. 화석으로 남은 과거의 생명체와 광물, 암석을 통해 46억 년의 나이를 가진 지구의 역사와 다양한 생명체의 신비를 풀어주는 우석헌자연사박물관(관장 한국희)은 남양주시 진접읍 금강로 1095에 있다. ■ 어여쁜 돌의 집, 우석헌 ‘우석헌’이란 이름은 설립자 김정우의 아호인 ‘우석(愚石)’에서 유래한 것인데, ‘어여쁜 돌의 집’이라는 뜻이다. 다양하고 희귀한 진본의 화석과 광물을 전시하고 있는 우석헌자연사박물관은 2003년에 개관하여 올해 20주년이 되었다. “화석과 광물은 광활한 우주공간 속에 한 점으로 존재하는 우리 지구를 생생하게 이해하는데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우석헌자연사박물관은 세계에 흩어져 있는 화석, 광물, 암석 산지를 직접 탐방하여 최고의 가치와 학술적 의미를 가진 표본과 자료를 수집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우석헌은 관람객 여러분들에 의해서 완성될 것이며, 함께 하는 기관과 사람들로 인해 빛이 날 것이라 믿습니다.” 한국희 관장의 말처럼 우석헌자연사박물관은 지역 및 관람객과의 소통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관람객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였고 최근 유튜브를 통해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생명의 신비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곳 박물관은 모두 8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생명의 신비, 1억년의 지배자, 바다-생명의 요람, 포유류의 승리, 순환하는 암석, 제2의 석기시대, 광물의 세계, 야외 기획전시실이 그것이다. 30여 년간 체계적으로 수집된 공룡, 광물, 암석 등 지질관련 자연사 표본을 2층과 3층, 별관(디스커버리센터)로 구성된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자유 이동식 전시대, 4면 관찰식 전시대 등 3세대 전시 기법을 도입하여 재미있게 구성했다. 입체적으로 설계한 상설전시실의 붉은 바탕색은 관람객의 시선을 유물에 집중하도록 도와준다. 생명체는 언제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신주경 학예연구사의 해설에 귀를 기울이며 시간 여행을 시작한다. 신비로운 역사를 간직한 화석(化石) 앞에서 발을 멈추고 대화를 나눈다. 맨 처음 만나는 화석은 지구상에 가장 먼저 출현한 생명체들의 모습을 간직한 화석이다. “고생물의 유해나 흔적이 남아 있는 화석을 살펴보면 생물체의 구조나 생활환경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37억년 무렵의 화석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가 가장 먼저 만나는 화석인데, 모양이 마치 영지버섯 같다. 척추를 가진 물고기화석과 마주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명체의 모양과 빛깔이 아름다워진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연꽃처럼 보이는 화석은 또 무엇일까? “바다나리 화석인데, 바다나리는 사실 식물이 아니라 동물입니다.” 물론 지금도 산호처럼 동물과 식물의 특성을 가진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쥐라기를 대표하는 동물은 역시 공룡이다. 공룡 시대 바다에 살던 파충류로 어룡이라고도 하는 이크티오사우루스(Ichthyosaurus)의 화석이 완벽하다. 바다 깊은 곳에서도 앞을 볼 수 있는 크고 발달한 눈을 가진 이크티오사우루스의 지느러미에 아직 발가락뼈가 남아 있다. 본래 육지에서 살다가 바다로 내려온 증거다. “이 동물은 돌고래를 많이 닮았습니다. 전혀 다른 생물이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진화하는 것을 ‘수렴진화’라고 하지요.” ■ 작은 광석 하나에 우주의 역사가 담겨 있다 백악기에는 식물들도 크게 번성한다. 온전한 형태의 나뭇잎 화석들이 시선을 끈다. 공룡 화석이 다양하다. 유치원생들도 수십 종의 이름을 외울 정도로 공룡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공룡의 똥 화석과 공룡의 몸에 들어있었던 ‘위석’은 음식물을 갈아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매머드의 이빨을 정면과 측면에서 관찰하도록 설계한 유리관이 이채롭다. 이제는 신비로운 광물들이 나타난다. 공작석 (Malachite), 방해석 (Calcite), 황철석 (Pyrite), 금강석 (Diamond), 청금석 (Lazulite), 운석 (Meteorite) 등 광물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금강석과 운석을 뺀 나머지는 처음 알게 된 이름이다. 생명체를 존재하게 한 방해석(Calcite)이 궁금하다. “흐물흐물한 연체동물들은 딱딱한 껍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많아요. 공룡 시대의 암모나이트를 비롯해 조개나 다슬기, 달팽이와 껍질들의 재료가 바로 방해석이지요. 방해석은 칼슘과 탄산이 만나서 만들어진 광물입니다. 이 방해석은 연체동물의 집은 물론 인간의 집을 짓는데 사용되는 시멘트를 만드는 원료입니다.” 청금석(Lazulite)은 또 어떤 광물일까? “파랑색보다 더 깊은 군청색은 ‘울트라마린’이라고도 합니다. 청금석으로 만든 물감을 군청색이라 불렀지요. 파랑색 물감이 귀했던 옛날 유럽에서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쌌다고 해요. 청금석을 잘 살펴보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한 금색의 황철석이 보입니다.” 스밀로돈(Smilodon)은 메머드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거대한 고양잇과 동물이다. 매우 강한 힘이 있어 이빨로 먹잇감의 숨통을 끊었다고 한다. 커다란 이빨은 짝에게 구애하는데도 사용되었다. 이런 동물이 지구에서 사라졌다! 강하다고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메갈로돈(Megalodon)은 지구에 존재했던 가장 거대한 상어로 사람을 한 입에 삼킬 수 있다. 이 거대한 생물의 화석은 매우 희귀하다. 물렁물렁한 상어 뼈는 화석으로 남기 어렵지만 딱딱한 이빨은 화석으로 남았다. 수백개의 이빨을 가진 메갈로돈보다 4천만년이나 먼저 지구에 등장한 귀상어는 여전히 살아있지만 메갈로돈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강하다고해서 오래 살아남고 먼저 나타났다고 해서 먼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게 바로 진화다. ■ 살아갈 지구의 건강한 회복 길잡이 분화석(Coprolite)은 짐승의 똥도 화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똥화석은 귀해요. 딱딱한 뼈보다 화석으로 남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지요. 과학자들은 똥화석을 통해 공룡이 무엇을 먹었는지, 위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예상합니다. 육식공룡의 똥화석은 길쭉한 반면, 초식공룡의 똥화석은 찌그러진 축구공처럼 생겼지요.” 중생대를 대표하는 공룡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초식공룡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갑옷이나 뿔 혹은 커다란 몸집을 만들었고, 육식공룡은 날카로운 발톱과 더 빨리 달리기 위한 신체를 만들었다. 그런데 초록색이나 갈색이라고 믿었던 공룡이 화려한 색을 가지고 있거나 깃털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공룡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다양한 모습을 상상해볼 것을 권한다. 공룡에 대한 편견처럼 겉모습과 소문으로만 듣던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생각도 틀릴 수 있으니 편견을 거두고 자신을 돌아보자고 권유하고 있다. 박물관에서는 상설 체험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화석발굴체험은 매우 인기가 많다. 수정 모래액자 만들기를 비롯해 화석 레플리카 만들기, 보석 유리병 목걸이 만들기, 암모나이트 지우개 만들기, 나만의 별자리액자 만들기도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하기 좋은 체험 프로그램이다. 점점 병들어가는 지구, 멸종해 가는 생명체들을 지켜보면서 건강한 지구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석헌자연사박물관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의 건강한 회복을 고민하고 있다. 남양주시에는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우석헌자연사박물관은 남양주시의 주변 환경과 관계 기관들과 긴밀하게 연계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시민들에게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근처에 둘러볼만한 곳으로 모란미술관과 광릉 국립수목원이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끼기에 좋은 계절이다. 우석헌자연사박물관은 이런 바람을 한꺼번에 충족시켜줄 훌륭한 교실이자 놀이터이다. 김영호 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5. 고양 ‘포마자동차디자인미술관’

“다가올 미래에 먹고 살아야할 창의력의 양식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디자인이라 믿는다. 디자인이 나라를 살찌게 한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싶어 미술관을 세웠다.” ‘디자인국부론’을 굳게 믿고 이를 실재로 입증한 사람이 설립한 특별한 미술관이 경기도에 있다. 고양시 덕양구 향동에 위치한 포마자동차디자인미술관(관장 박종서)은 대한민국 최초이자 세계 최초의 자동차디자인미술관으로 2016년에 1종 미술관으로 등록됐다. 포마(FOMA, Form Of Motors and Arts)의 설립자 박종서 관장은 한국 1세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한국 자동차 디자인의 산증인이다. 미술관 입구부터 마당과 로비도 자동차와 관련된 작은 전시장이다. ■ 자연에서 찾아낸 미학 자동차디자인미술관 로비에 곤충표본이 전시된 까닭이 궁금하다. 비치한 돋보기로 자세히 살펴보니 풍뎅이의 몸통이 자동차를 닮았다. 그렇다. 독일의 명차 폭스바겐도 딱정벌레를 모델로 디자인했다. 그런데 ‘갑옷’은 자동차’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자동차의 금속 가공기술은 중세시대 갑옷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더욱 호기심이 발동한다. 벽 위에 수시로 색깔이 변하는 카멜레온 모형이 있다. 신비로운 자연의 색상에 감탄하며 지하에 마련된 주 전시실로 향한다. 널따란 주 전시실은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공간 구성과 바닥에서 천정으로 이어진 전시물의 배치가 인상적이다. “전시실은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어떻게 자동차 디자인으로 연결되는지 그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자연의 비례, 황금분할은 자연이 이미 이루어 놓은 조화이지요.” 멕시코 연안에 사는 앵무조개를 반으로 잘라 크게 확대하여 3D로 출력한 조형물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1.618이라는 비례를 실현하고 있는 자연물이다. “이러한 자연의 질서를 알았을 때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지요.” ■ 카멜레온과 딱정벌레 자동차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어느 인터뷰에서 같은 질문을 받은 박 관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생명이 없는 물건이나 기계에 이야깃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이야깃거리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나의 디자인 철학이다.” 천장에 매달린 특이한 조형물이 또 있다. 호랑가시나무 잎과 가오리 모형이다. 이처럼 전시물의 상당 부분이 자연이다. 박 관장이 디자인한 ‘티뷰론’은 돌고래의 선을 착안해 탄생한 것이다. 훌륭한 디자인이란 자연에서 비롯돼야 한다고 믿고 있는 박 관장은 자연의 색깔, 형태, 냄새, 촉감을 느끼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곤충표본이 왜 전시실 입구에 놓여 있었는지 분명히 알겠다. 박 관장은 아반떼와 티뷰론, 싼타페, HCD-1 콘셉트카를 디자인할 때도 곤충의 선과 색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가장 아름답고 기능적인 디자인은 자연의 미와 정서적으로 부합할 때 나온다.” 설계도를 철사를 이용해 입체적으로 만든 자동차 모형, 자동차 차체를 제작하는 전통 장인들의 작업장 ‘카로체리아’도 전시돼 있다. 유럽에서 아직도 옛날 방식으로 자동차 디자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전시된 페라리는 1930년대의 모델이지만, 시속 335㎞를 달렸다고 한다. 당시 독일의 바우하우스 조형론의 주 이론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이다. 페라리 모델에서 장식은 물론 불필요한 것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 1992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선보인 우리나라 최초의 컨셉카가 눈에 들어온다. 박 관장이 돌고래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작품이다. 현대 소나타BIW 모델은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조형적 요소와 엔지니어가 설계하는 기계적 요소가 어떻게 만나는지 확인시켜 준다. 첨단의 디자인과 성능을 보여주는 페라리 곁에 대장장이가 사용하던 망치가 전시돼 있다. 망치로 두드려 만드는 과정을 상상해본다. 스마트폰이 일상으로 굳어진 첨단의 디지털시대에 쇠망치를 바라볼 어린 관람객들의 시선이 궁금하다. ■ 디자인은 이야기를 입히는 일 기술 바탕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경쟁력 갖춰 세계시장에서 성공을 거두었을까? 미술관에 전시된 자동차 모형들은 새로운 마케팅을 개척한 일등공신들이다. 싼타페, 봉고, 쏘나타, 포터, 아반떼, 스쿠퍼, 티뷰론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 박종서 관장의 손을 거친 것이다. “자동차 디자인은 혼자가 아니라 팀이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능한 디자이너가 더욱 요구되고 있습니다.” 미래의 디자이너들이 연구하는 공방의 풍경이 궁금하다. 마침 공방에서는 십여 명의 청년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펄떡이는 심장처럼 열기가 가득한 공방은 미래의 자동차디자이너들이 탄생하는 현장이다. “디자인은 결코 한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 낼 수 없어요. 창의적 생각에 대한 철저한 나눔의 과정입니다. 시대적 가치의 결정체인 디자인은 홀로 화폭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순수예술의 고민과는 차별되지요. 디자인은 다양한 생각과 물리적 과정을 통해 원석과 같은 첫 생각은 여러 차례의 갈고 닦음을 통해 비로소 그 빛을 드러냅니다. 디자이너의 고뇌가 담긴 과정들엔 많은 이야기들이 담기게 됩니다. 창의의 세계에 남겨진 이야기, 빛나는 결과물을 낳기 위한 과정의 이야기를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포마자동차디자인미술관은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외국의 경우에도 자동차의 수집하는 박물관은 있지만 디자인을 속속들이 파헤쳐 보여주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미술관은 없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박 관장은 입시 위주의 교육 현실에 지친 청소년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가슴 아파한다. “우리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자동차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풍부한 영감을 얻어가길 바랍니다.” 박 관장은 영국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s)에서 수학한 최초의 한국인이다. 수석으로 학업을 마치고 35년간 현대기아 자동차연구소 수석 부사장으로서 대한민국 자동차 디자인 분야의 초석을 마련한다. 퇴사 후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장, 대한민국산업디자인 협회장, 대한민국 브랜드 학회장을 역임하며 디자인부국론을 전파해왔다. ■ 미래 디자이너들 꿈이 영그는 곳 미래의 디자이너를 꿈꾸는 초 중 고교생을 위한 ‘포마 아카데미 주니어’나 진로체험 프로그램 ‘나는 디자이너다’는 향후 디자이너로의 진로를 희망하는 미래의 디자이너를 위한 체험 프로그램이다. ‘포마아카데미’는 창의적 직업, 진로를 희망하는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1년 동안 함께 꿈을 꾸고 함께 꿈을 만드는 체계적인 과정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친구와 협력하며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입시미술을 목표로 하거나 일회성 스펙 쌓기를 지양한다. 본인 스스로 강한 열정과 참가의지를 지닌 청소년만 참가 가능하단다. 포마자동차디자인미술관이 현재 포니정재단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포니정 디자인 아카데미’도 주목된다. 포니 자동차 탄생 50주년(2025년)을 앞두고 미래 시대에 걸맞은 디자인 혁신 인재 양성을 위한 프로젝트다. 현재 대학부 12명, 고교부 7명이 아카데미 인재로 교육을 받고 있다. 공예, 예술, 디자인 부문에 관심과 열정을 지닌 청소년과 청년이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데, 지원자가 제출해야 하는 과제부터 신선하다. 나의 가장 뛰어난 재능이나 재주 세 가지를 소개하기. 지금까지 살면서 자기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행함으로써 타인에게 도움을 주었던 활동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느낀 것이나 변화된 것을 설명하기.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자연, 현상, 사물은 무엇인지 설명하기.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혁신가, 디자이너들 중 한 사람을 선정하고 만일 그 사람에게 질문을 한다면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질문을 작성해 보기 등이다. 신록이 꽃보다 아름다운 4월, 포마자동차디자인미술관에서 디자인 부국을 향한 위대한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김영호 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4. 광주 ‘영은미술관’

광주시 쌍령동에 위치한 영은미술관은 동시대 근현대 작품을 연구,소장, 전시하는 현대미술관이자 창 작스튜디오에서 작가와 대중, 기획자가 소통할 수 있는 복합문화시설이다. 영은미술관 전경. 윤원규기자 활짝 핀 살구꽃과 벚꽃이 눈부시다. 광주시 청석로 300에 자리 잡은 영은미술관(관장 박선주)에 생명의 기운이 약동하고 있다. 1992년 한국예술문화의 창작활동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한 대유문화재단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2000년 11월에 개관한 영은미술관의 설립이념과 추구하는 지향점은 분명하다. “영은미술관은 동시대 현대미술 작품을 연구, 소장, 전시하는 현대미술관이며 또한 국내에서 처음으로 창작 스튜디오를 겸비한 복합문화시설입니다. 우리 미술관은 기존의 미술관 형태를 과감히 변화시켜 미술관 자체가 살아있는 창작의 현장이면서 작가와 작가, 작가와 평론가와 기획자, 대중이 살아있는 미술과 함께 만나는 장입니다. 종합미술문화단지의 성격을 지향하는 영은미술관은 조형예술, 공연예술 등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예술을 수용하고 창작, 연구, 전시, 교육 등의 복합적 기능을 수행하여 참여계층을 개방하고 문화를 선도해 나가고 있습니다.” 박선주 관장의 소개말에서도 봄기운이 느껴진다. ■ 아버지의 사랑과 생명의 기운이 약동하는 미술관 영은미술관 설립배경에는 고(故) 이준영(1917~2007) 대유문화재단 이사장의 문화예술에 대한 의지와 먼저 떠난 아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숨어있다. 그는 회고록에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내 이름 이준영의 마지막 글자인 ‘영’자와 큰아들 상은(고(故) 이상은 회장, 1940~1992)이 이름의 마지막 글자인 ‘은’자를 따서 영은미술관이라고 지은 것이다. 이 사업을 통해 한국 현대미술 진흥 발전에 기여하고 세계미술 속에 한국미술의 위상을 높이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렇게 명명한 것이다.” 영은미술관은 터도 넓고 공간도 넉넉하다. 33만7천607㎡(10만2천126평)의 널따란 부지에 미술관동과 레지던시 작가들을 위한 스튜디오와 연구동이 자리 잡고 있다. 지하1층~지상3층의 미술관동은 3개 전시장과 세미나실, 자료실, 강의실 및 평면스튜디오를 두루 갖추고 있다. 미술관과 스튜디오 시설로 구분되어 두 기능이 상호 분리되고 호환될 수 있도록 설계된 독특한 구조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이다. 영은미술관의 모태인 대유문화재단이 1992년부터 한국 근현대미술의 경향과 스타일을 대변하는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매년 구입하고 기증을 받아 현재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500여 점에 이른다. “회화, 조각, 설치, 공예, 사진,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 김창열의 「회귀」를 비롯해 도흥록의 「Drawing_05-I」, 강영길의 「GODOT」, 강형구의 「Maria Callas」, 방혜자 「빛의 눈」, 이우환의 「From the Line」, 박서보의 「묘법 52-73」 등을 비롯해 영은창작스튜디오를 거쳐 간 역대 작가들의 기증 작품 역시 주요한 소장품입니다.” ■ 조각과 회화로 표현한 생명의 기운·우주의 기운 영은미술관 특별기획전 ‘한국의 네오모더니스트 김영원 기(氣) 오스모시스 조각과 회화전’은 6월18일까지 이어진다. 특별전이 열리는 제1전시장은 130평에 전시실로 기둥이 없고 벽면 높이가 7m나 되어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공간 연출이 가능한 공간이다. 특별전을 기획한 정효정 학예연구사의 해설에 귀를 기울인다. “김영원 작가는 1994년 2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영상을 통한 기조각과 퍼포먼스를 처음 발표하여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 무렵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작업하고 있는 작가의 기공명상을 통한 예술작업은 영은미술관 특별기획전을 통해 ‘기(氣) 예술art’이라는 장르와 이를 해석할 수 있는 미학이론을 함께 제시하는 전시입니다. 전시한 169점의 회화작품과 23점의 조각은 거의 대부분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지요.” 사실 ‘기(氣)’라고 하는 것은 존재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그 실체를 알기 어렵고, 이를 미술 작품에 적용한 미학이론은 아직 없다. “이번 전시는 세계 미술계에 김영원 작가의 기 예술을 이론으로 정립한 ‘기(氣)오스모시스’라는 새로운 미학을 화두로 던지는 것입니다. 우주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기로 구현한 작가의 예술작품 공간 속에서 기오스모시스를 느끼고 체감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삼투, 스며들기로 풀이되는 ‘오스모시스(Osmosis)’와 ‘기’의 결합을 머리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작가의 예술세계를 가까이에서 탐색하고 깊이 분석한 평론가 홍가이의 해설을 살펴본다. “동양에서는 우주의 모든 것이 기의 모임과 흩어짐이라고 하니 ...김영원의 기공명상 예술행위를 기오스모시스를 통한 예술행위로 간주하면 좀 더 현대적 감각과 용어로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기의 흐름을 표현한 회화와 조각 작품을 감상하며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한쪽에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창작 과정과 작품 세계를 해설하는 김 작가의 인터뷰를 들으니 궁금증이 하나둘 풀린다. 조각 기둥에 새겨진 꿈틀대는 형상은 손가락으로 후벼 파낸 것이다. 기공체조를 하며 작품에 몰두하는 작가의 몸짓에 생기가 감돈다. ■ 시대를 증언하고 해석하는 예술가의 상상력 제4전시장과 제2전시장에서는 영은 창작스튜디오 12기 입주작가 정영한 개인전 ‘발견된 신화’와 진민욱 개인전 ‘펼쳐지고 깊어지는’이 4월23일까지 열린다. 실험적인 전시공간인 지하의 제4전시장부터 안내한다. 중앙대 미술학부 교수 정영한 작가의 작품이 어쩐지 친숙하다.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쇼셜미디어, 잡지, 등 대중매체에서 떠도는 이미지 혹은 관습으로 자리 잡은 신화적 이미지를 차용하고 재구성하여 작품의 모티브로 활용했기 때문이죠.” 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나 파블로 피카소의 ‘황소’를 등장시켜 관객들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작가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전시실 안쪽에서 만나는 브릴로박스는 또 무엇일까. “일반적인 팝아트의 차용기법과는 맥락을 달리하여 박스 안에 작품을 숨겨둠으로써 ‘해석의 절단’을 맞이한 미술사의 이면을 지적하고 작품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고민이 담긴 작업 노트를 살펴본다. “나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이란 시대와 이미지에 대한 거대 담론을 탐구한 끝에서야 발견한 어떠한 커다란 상자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참신한 메시지와 이미지를 꺼내 보여주는 것과 같다. ...나의 작업은 나의 꿈, 누군가의 즐거움, 그렇게 우리 모두의 삶에 감각적 질문을 던지는 ‘그림’이 될 것이다.” 2층 제2전시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젊은 한국화가 진민욱의 개인전 ‘펼쳐지고 깊어지는’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을 세밀히 관찰하여 비단으로 된 화폭에 옮긴 것이다. 활짝 핀 매화, 수선화, 가을에야 볼 수 있는 석류가 있다. 새와 애벌레와 나비도 있다. 얼핏 보면 정물화인데, 사계절의 풍경이 담겨 있다. 사각의 고정된 틀을 부수고 윗부분이 산모양이거나 병풍처럼 포개진 화폭에 펼쳐놓은 풍경이 재미있다. “보시는 것처럼 여러 시점에서 그려진 자연 속 오브제들이 긴밀하게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진민욱 작가의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은 ‘산책’이다. 산속의 나뭇잎이나 길가에 놓인 화분, 말라 비틀어진 나뭇가지에 이르기까지 곳곳을 걸으며 발견하는 일상의 자연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관람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새로운 형식을 편안하게 전달하는 작가의 재주가 놀랍다. ■ 새봄 나들이 유혹하는 미술관 국내외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영은창작스튜디오’는 오래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실험적이고 창조적인 창작기능을 활성화하는 공간답게 작가와 연구자가 생활하면서 작업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평면작업실과 입체작업실, 생활공간은 물론 해외미술계와 교류할 수 있는 자료정보센터와 도예공방과 유리공방까지 갖추고 있다. 작가들에게 최적의 창작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때때로 이곳을 개방하여 지역 주민들이 창작체험과 미술문화 교육을 받는 곳으로 쓰고 있다. 화사한 꽃들과 연둣빛 새싹이 눈부신 영은미술관에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하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민중들의 함성이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던 1919년 3월 하순, 김포에서도 만세운동의 뜨거운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3월22일 월곶면과 검단면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3월29일까지 8일간 동안 양촌, 고촌, 하성 등지에서 약 15회에 걸쳐 이어졌다. 만세운동에 참가했던 1만4천여명의 주민들 가운데서 120여명이 일제의 총검에 부상을 당했고, 200여명이 체포됐다. 미주지역에서 발행한 ‘신한민보’는 3월23일 김포 지역의 만세시위운동에 대해 ‘1만여명의 대관중’이라 표현하고 있다. 참여 인원으로 따지면 경기도내에서 두 번째이다. 그럼에도 김포지역의 만세운동은 오랫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김포시민들의 노력과 열망으로 2013년, 김포시 양촌읍 양곡2로 30번길 46에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 독립만세의 불길, 33세 여성이 불을 지피다 김포에서 이처럼 대규모의 만세운동이 일어난 배경은 무엇일까.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조선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1914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는데, 이때 김포, 통진, 양천군을 김포군으로 통합하고 경찰서와 주재소를 집중 설치한다. 양동면에 일본인이 농림회사를 설립한 1914년 5월부터 김포지역에도 일본 자본과 일본인들의 진출이 본격화된다. 농토를 잠식한 일본인 지주들 아래에서 높은 소작료를 내야했던 조선인 소작농들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1919년 3월22일 오후 2시, 군하리 장터에 모인 수백 명의 군중들 사이로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진다. 이날의 만세운동 중심에는 이살눔(1886~1948, 본명 이경덕) 애국지사가 있다. 33세의 나이로 이화학당에 다니던 늦깎이 학생 이살눔은 독립선언서 수십 장을 옷 속에 감춘 채 월곶면에 돌아와 마을의 유지인 성태영, 박용희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한다. 이살눔은 군하리 장터에 모인 군중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통진향교와 면사무소, 주재소 등으로 돌아다니며 만세를 불렀다. 장터를 누비며 여성들의 참여를 독려한 그녀의 뜨거운 외침은 김포 만세운동에 불을 지폈다. 이살눔은 ‘김포의 잔다르크, 김포의 유관순’이라 불린다. 3월 22일 군하리 장터 시위에 참여했던 최우석(1892~1942)은 28일 당인표의 집에서 동지들과 다음 계획을 논의한다. 3월29일 11시 무렵 읍내 향교에 400여 명의 군중들이 모여들자 최우석은 이들을 지휘하여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12시 무렵에는 월곶면 조강리와 갈산리 마을 주민 수백 명이 갈산리에 모여 태극기를 들고 임용우, 윤영규 등이 앞장서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갈산리 만세운동을 주도한 명덕학교 교사 임용우(1884~1919)는 체포를 피해 학교가 있는 부천군 덕적면에 돌아가 다시 만세운동을 벌인다. 4월9일 덕적도 진리 바닷가에서 열린 명덕학교 운동회에서 학생과 학부형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던 것이다. 이때 체포된 그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 1919년 3월23일 오라니장터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오라니장은 김포에서 가장 큰 장이었습니다. 일제의 임시토지조사국 조사에 따르면, 오라니장의 규모는 김포읍장과 군하리장을 합친 것의 두 배쯤이 되었다고 해요. 오라니장은 1770년에 펴낸 ‘동국문헌비고’에 장소와 개시일이 기록되어 있을 만큼 유명한 장입니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왜 이곳에 독립운동기념관이 세워졌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1919년 3월23일에 벌인 오라니장터에서의 만세운동은 두 조직에 의해 각각 전개되었다. 오후 2시에 벌인 만세운동은 박충서 박승각 박승만 안성환 등이 주도하였고, 오후 4시에 시작된 만세운동은 정인섭, 임철모 등이 주도한 것이다. 같은 날 2시간을 사이로 두 개의 조직이 만세운동을 벌였던 것은 물론 일제의 감시와 방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박충서(1898~1934)는 어떤 청년이었을까? 양촌면 누산리 출신인 박충서의 신상을 기록한 감시카드에 부착된 흑백사진을 보며 잠시 시간 여행을 떠난다. 수재들이 즐비한 경성제1고등보통학교(경기고)에 다녔으니 박충서는 집안과 이웃의 기대와 신망을 받았던 똑똑하고 반듯한 청년이었을 것이다. 만세운동의 현장에서 체포된 박충서는 경찰서에 끌려가 흠씬 두드려 맞으며 만세운동의 준비부터 진행과정을 빠짐없이 진술한 후에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사진사 앞에 간신히 앉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박충서의 모습은 의젓하고 당당하다. ‘불령선인’을 철저히 감시하고 관리하기 위해 상반신 정면과 측면을 촬영한 사진을 나란히 붙였다. 이름을 쓴 커다란 흰 천을 단 상의는 모진 고문을 당해 살이 터지고 시퍼렇게 멍이 든 몸을 가려주었을 것이다. 박충서는 자신이 작성한 격문 수십 통을 외가 친척인 오인환, 정억만 등을 통해 양촌면 주민들에게 배포하도록 한다. 3월23일 오후 2시, 박충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오라리장터에서 태극기를 펼쳐들고 군중을 향해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주도한다. 얼마 후 총검으로 무장한 일본 헌병대가 출동하여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키고 현장에서 박충서를 비롯한 6명을 시위주동자로 체포한다. 박충서는 징역 2년, 박승각 박승만 정억만은 징역 1년, 안성환 전태순 오인환은 징역 8월을 선고받는다. 한편, 오후 4시의 만세운동은 정인섭 임철모 등이 주도한다. 23일 전날에 만들었던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장터로 향한 정인섭(1986~1944)은 군중들이 모인 장터에서 태극기를 펼쳐들고 시위대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했고, 임철모(1883~1919)는 태극기를 휘두르며 시위대를 이끌었다. 군중을 이끌고 감시와 탄압, 수탈의 말단 기관인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향하던 이들은 연락을 받고 출동한 용산 헌병대에게 태극기를 빼앗기고 체포된다. 정인섭은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았고, 임철모는 징역 8월을 선고 받고 옥중에서도 수인들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모진 고문을 받고 5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3월 24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진 고촌면의 만세운동은 산곡리 출신의 김정의(1899~1963)가 주도한다. 중동학교 학생 김정의는 서울에서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를 피해 고향에 돌아와 김정국, 윤재영, 이흥돌 등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며 만세운동을 결의한다. 3월 24일 인근 주민들과 신곡리 뒷산에 모여 준비한 태극기를 나눠주고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다음날에도 김남산, 이흥돌 등과 함께 태극기를 장대에 높이 달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3·1독립정신’ 김포를 빛낸 독립운동가들의 얼굴과 행적을 새긴 동판이 이어진다. 그들 중에서 안경을 낀 여성 한 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바로 김포에 만세운동의 불길을 지핀 독립운동가 이살눔 선생이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한다. 세상을 떠난 지 44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오라니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임철모 선생은 체포된 그해 옥중에서 순국하지만, 72년이 지난 1991년에야 애국장에 서훈된다. 동판에 새겨진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은 생전에 제대로 보상과 대접을 받지 못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공적이 명백하게 확인되지만 일제가 남긴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포상에서 빠진 분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은 양촌청소년문화의집(김포시청소년육성재단 대표이사 심상연)과 한 공간에 둥지를 틀어 지역 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김포시의 빛나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배우고 있다. 현재 기념관에서는 ‘신문이 그려낸 김포’라는 주제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특별전을 기획한 김민주 학예연구사의 안내를 받아 누렇게 변색된 오래된 신문 속에서 김포의 숨겨진 역사를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나라 안팎이 소란하고 어지러운 삼월이다. 104년 전 겨레를 하나로 뭉치게 했던 3·1정신의 숭고한 뜻을 되새겨야 할 때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 수원박물관

104년 전 3월, 온 겨레가 한마음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그날의 함성은 세계를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한국인들의 의식까지 변화시켰다. 폭력에 굴종하던 식민지 백성에서 독립을 갈망하는 자유민으로 거듭난 것이다. 3·1운동은 남성중심의 제도와 여성을 차별하는 문화에 갇혀있던 우리의 여성들이 역사의 주인으로 나선 운동이기도 하다. 백성들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하고 외세의 간섭에 맞서 싸웠던 1894년 동학농민혁명 이후 엄청난 변화가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여성들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았다. 1919년 ‘기미년 만세운동’은 한국 여성들이 비로소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위대한 사건이다. ■ 나라를 찾기 위해 떨쳐 일어선 여성들 만세운동이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확산되고 두 달 넘게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다. 만세운동의 현장을 기록한 사진을 통해서도 수많은 여성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3·1운동 당시 여성들의 활약을 살펴보기 위해 수원특례시 영통구 이의동에 위치한 수원박물관(관장 황종서)을 찾았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지역이다. 화성의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안성3·1운동기념관, 김포시독립운동기념관은 이를 말해준다. 독립된 기념관은 아니지만 수원박물관은 3·1운동에 관한 관련 유물이 풍부하고 연구도 활발한 박물관이다. 수원박물관은 지난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여 ‘수원여성의 독립운동’이라는 특별전을 열었다. 박물관에서 만나는 독립운동가들 중에서 수원 기생 만세운동의 주역 김향화와 구국의 선봉에 나선 학생 이선경은 민족대표 48인의 한 분인 김세환 선생, 신흥무관학교 분교 양성중학교의 교장으로 독립군을 양성한 임면수 선생과 함께 수원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이다. ■ 수원 기생들, 경찰서 앞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다 한지에 가는 세로로 33줄로 쓴 1천350자 분량의 ‘대한독립여자선언서’는 특히 주목되는 유물이다. 이름에 나타나듯이 조선 여성들의 독립선언문이기 때문이다. 김인종을 비롯한 8명의 여성 이름이 적혀진 이 선언서는 “때는 두 번 이르지 아니하고 일은 지나면 못 하나니 속히 분발할지어다. 동포, 동포시여 대한독립만세”라는 호소로 끝을 맺는데, 작성일자가 단기 4252년(1919) 2월이다. 3·1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에 이미 여성들이 독립선언의 대열에 동참한 증거물이다. 수원은 정조의 개혁정신과 효심이 깃든 화성을 품고 있는 수원은 예향(藝鄕)이기도 하다. 수원예기조합이 존재했던 사실을 통해 수원의 경제적 풍요와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수원에는 기생 신분으로 일제 경찰서 앞에서 만세를 불렀던 의기(義妓) 김향화가 있다. “본디 경성 성장으로, 화류간의 꽃이 되어, 삼오 청춘 지냈구나, 가자가자 구경 가자, 수원산천 구경 가자, 수원이라 하는 곳도, 풍류기관 설립하여, 기생조합 이름 쫓네, 일로부터 김행화도, 그 곳 꽃이 되었세라, 검무 승무 정재춤과, 가사 시조 경성잡가, 서관소리 양금치기, 막힐 것이 바이없고, 갸름한 듯 그 얼굴에, 죽은깨가 운치 있고, 탁성이듯 그 목청은, 애원성이 구슬프며, 맵시동동 중등 키요, 성질 순화 귀엽더라.” 기생 김향화의 얼굴이 단아하게 느껴진다. 왜장을 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한 논개를 ‘의기’로 부르듯이 김향화의 이름 앞에도 자연스럽게 ‘의기’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알려져 있듯이 일제의 식민지배가 시작된 1910년부터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까지 10년은 일제는 일본도를 차고 말을 탄 헌병을 앞세운 무단정치로 일관했다. 만세운동의 확산을 막기 위해 광분하던 때에 일경들의 가득한 수원경찰서 앞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여성이 기생 김향화이다.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김향화의 얼굴이 단아하다. 화성 행궁에서 가까운 남수리에 살았던 김향화는 1919년 3월 29일 수원 기생들의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김향화가 수감되었던 서대문형무소 여성 옥사 8호 감방에는 개성 일대에서 3·1운동을 이끌었던 권애라, 이윤희, 신관빈, 파주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임명애, 그리고 천안의 유관순이 함께 수감되어 있었다. 김향화는 함께 투옥된 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부르며 옥살이의 고달픔을 달래주었다. 1920년 3월1일 8호 감방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은 1주년을 맞아 옥중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안타깝게도 김향화가 출옥한 이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의 후손도 확인되지 않아 수원박물관에서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을 하여 2009년에 비로소 대통령표창을 받고 독립운동가로 인정됐다. ■ “석방이 되도 독립을 위해 싸우겠소!”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데 열정을 쏟은 이동근 학예연구사는 수원의 유관순, 이선경을 알리는 일에도 열심이다. “수원에도 19살의 나이에 대한독립을 꿈꾸다 순국한 열사가 있습니다. 이선경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할 이름입니다. 이선경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갖은 고초를 치르다 순국했습니다.” 이선경의 활약도 유관순 못지않았다. 만세운동을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임무를 수행하였고 이후 비밀조직운동을 벌이며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군을 지원해 주는 간호사가 되려고 준비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아 마침내 19세의 나이에 목숨을 잃은 여성투사 이선경이다. 이선경은 박선태 등 선배들과 더불어 비밀문서를 치마 속이나 가슴에 숨겨 대전, 청주, 안성 등지로 여러 차례에 걸쳐 전달한다. 만세운동의 행동대로 활약했던 이선경은 1920년 6월 임순남, 최문순과 함께 비밀조직인 구국민단에 참여한다. 구국민단은 ‘첫째, 한일합방에 반대하여 조선을 일본제국 통치하에서 이탈케 하여 독립국가를 조직할 것 둘째, 독립운동을 하다가 수감되어 있는 사람의 유족을 구조할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1920년 7월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수원 읍내에 있는 삼일학교(현 매향여고)에서 만나 독립신문의 배포 등을 논의한다. 이선경을 비롯한 세 명의 여학생은 이때 상해 임시정부 적십자회에 들어가 간호원이 되어 후일 독립전쟁을 벌일 때 역할을 다하기로 결의한다. 삼엄한 일본경찰의 눈을 피해 활동하던 1920년 8월 이선경은 박선태, 이득수, 임순남 등과 함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지만 “석방이 되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겠소.”라고 당차게 주장한다. 1921년 4월, 박선태와 이득수는 징역 2년을 언도 받고, 이선경을 비롯한 여학생은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언도 받았다. 구류 8개월 만에 석방되었으나 이선경은 일제경찰의 혹독한 고문으로 석방된 지 9일 만에 열아홉의 꽃다운 나이에 순국하였다. 이선경은 수원박물관의 노력으로 2012년 3월 건국훈장 애국장이 서훈되었다. ■ 독립운동가들이 못다 이룬 꿈을 꾸자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3·1운동에 참여한 인원이 204만6천938명이다. 이 가운데 사망자가 7천508명, 부상자 1만5천849명, 수감자가 4만6천306명이나 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국내외에서의 독립운동으로 서훈을 받은 분들은 겨우 1만8천명이다. 이중에서 여성은 400명이 되지 않는다. 김향화, 정부와 관계기관이 좀 더 적극 나서서 독립운동에 헌신했음에도 평가를 받지 못하는 숨겨진 유공자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104년 전 3월, 횃불이 오르고 만세소리가 울려 퍼졌던 팔달산과 방화수류정, 화성행궁을 둘러보며 다시 김향화와 이선경을 비롯한 수원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수원에서 처음 만세를 부른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김향화가 동료들과 만세를 부른 화성행궁 앞에도 3·1운동을 알리는 작은 기념물이라도 세우면 좋을 것 같다. 독립운동가들의 피로 광복을 맞이했으나 여전히 분단된 현실에 놓여있다. 독립운동가들이 못다 이룬 미완의 꿈은 통일된 조국이다. 꽃샘추위가 매섭지만 봄이 달려오고 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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