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6.한신대학교 박물관

오산 독산성은 임진왜란 때 기발한 전술로 왜적의 포위를 물리친 승리의 현장이다. 독산성과 마주 보는 양산봉 자락에 자리 잡은 한신대 교정에도 오월의 푸른 기운이 넘실댄다. 1940년 한국 최초의 신학대학으로 개교한 한신대는 오산에 터를 잡은 1980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된다. 고고학부터 근현대사까지를 아우르는 한신대 국사학과는 고고학 분야의 역량을 갖춘 전문인력을 육성하는 학과로 유명하다. 경기 남부의 주요한 유적 발굴 현장에는 언제나 한신대 박물관이 있다. 1991년 봄 개관한 한신대 박물관(관장 정해득)에서 한국의 고대사를 밝혀주는 유물과 설레는 만남을 가진다. ■ 한국 고대 역사의 비밀을 밝히는 고고학계의 선봉 도서관인 경원관 2층에 자리 잡은 박물관 입구에 문화재청과 한국대학박물관협회가 주관하는 ‘2024년 매장문화재 미정리 유물보존 및 활용사업’에 한신대 박물관이 선정됐음을 알리는 입간판이 서 있다. 발굴 현장을 소개하는 사진을 통해 한신대 박물관의 역사를 그려볼 수 있다. ‘화성 송산동 농경유적’, ‘서울 풍납토성 백제왕성’, ‘화성 반송동 청동기시대 마을’, ‘화성 길성리 백제토성’, ‘용인 고림동 백제마을’ 등은 한신대 박물관의 주도로 발굴한 유적이다. ‘한신 고고학 영상 스토리’는 이제까지의 사업을 쉽게 알려준다. 연구실에 들어서니 토기 조각이 놓인 책상이 나타난다. 책꽂이에 가득 꽂혀 있는 일본어 서적은 어떤 책일까? 박중국 학예연구사가 궁금증을 풀어 준다. “지난 2007년, 일본 오사카를 무대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중진 고고학자 야나기모토 데루오 교수가 평생 모은 일본 고고학과 관련된 귀중한 자료 6천여권을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 박물관에 쾌척한 것입니다. 야요이시대와 고분시대의 수많은 유적을 직접 발굴조사하고, 대표적인 가야 유적인 김해 대성동유적과 양동유적의 일본어판을 출간하는 등 한국 고고학에도 영향을 끼친 분이지요.” 박물관은 2015년 한성백제박물관과 백제문화특별전 ‘풍납토성, 건국의 기틀을 다지다’를 공동으로 개최한다. “서울 풍납토성은 한국 고고학과 고대사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연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한신대 박물관이 발굴해 정리 중인 경당지구 유물은 백제한성 시기 왕성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입니다.” 입이 깨지긴 했으나 형태가 온전한 항아리 수십 개가 놓여 있다. 설명을 읽어 보니 ‘왕성의 어정(御井)’이다. ‘왕의 샘’에 왜 이 많은 항아리가 묻혀 있었을까? “2008년 6월 풍납토성 경당지구 발굴 현장 206호 네모난 구덩이에서 발굴된 유물입니다. 길이 11m, 깊이 3m의 이 구덩이를 처음에는 연못이라 생각했지요. 이곳에서 펄을 걷어내니 완전한 형태의 도자기가 쏟아졌습니다. 우물에서 발굴된 토기 215점 가운데 충청과 전라지역에서 제작한 여러 점이 포함돼 있습니다. 5세기 초 백제 어정에서 지배층의 결속을 다지는 성스러운 물의 제사를 거행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물 속의 수많은 토기가 우물을 폐기할 때 올린 제사에 사용한 제물로 보고 있다는 해설이 사뭇 흥미롭다. “이 사업을 통해 정리·공개되는 유구와 유물이 고대 백제의 첫 수도이자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기반이었던 풍납토성의 학술적·역사적 가치와 위상을 규명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입니다.” ■ 40년 내력을 가진 탁본전시회 한신대 박물관은 ‘우리 마을(오산) 기록하기’와 ‘오산 문화재 산책’(2022년)을 진행하는 등 지역과 연대하는 사업에도 열심이다. 오산시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독산성과 세마대지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사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매년 하반기에는 한국사학과 탁본연구회와 함께 유교 유적의 비문과 석물에 대한 30여년간의 조사에서 얻은 성과를 기반으로 탁본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600여점에 달하는 탁본 자료는 국내 최대로 우리나라 금석문 연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요.” 지난 2023년에는 경기도와 오산시의 후원으로 ‘탁본전람회 40주년 특별전’을 열었다. ‘진경시대 명필의 금석문 서예’를 주제로 조선시대 숙종과 영조, 정조를 비롯해 조상우, 윤순, 이광사, 강세황, 조윤형 등 다양한 가문에서 배출된 명필의 서법을 소개한 자리였다. 경기도 전역의 명필 금석문을 모두 탁본해 탁본전람회를 열고 있는데 2015년부터의 주제는 ‘조선후기 명필의 재발견’이다. ‘서계 박세당 가문의 서예’(2017년), ‘동강 조상우의 서예’(2018년), ‘안동김씨 가문의 서예’(2019년), ‘창녕조씨 가문의 서예’(2020년), ‘17세기 조선 명필의 금석문’(2021년), ‘광산김씨 가문의 서예’(2022년) 등 유력한 가문들이다. 정해득 관장은 탁본전시회를 여는 까닭을 이렇게 말한다. “1985년 처음 시작했던 탁본전람회가 지난해 40회를 맞이했습니다. 조선시대 역사의 비어 있는 부분을 채워 나가는 역할을 하겠다는 목적 의식을 가지고 금석문 서예전을 꾸준히 열고 있지요.” ■ 지역과 연대하고 협력하는 경기 남부의 중심 박물관 앞에서 소개했듯이 한신대 박물관은 ‘2024년 매장문화재 미정리 유물 보존 및 활용 사업’에 선정됐다. 문화재청과 한국대학박물관협회가 주관하는 이 사업은 과거 발굴조사를 통해 수습됐지만 관련 보고서 미발간으로 인해 각 대학 박물관에 오래 수장돼 있는 유물의 정리작업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각 대학 박물관에 보관된 주요 유적 출토 미등록 유물의 현황을 파악하고 학술가치가 높은 다수의 유물에 대한 보고서 작성 작업을 추진해 국가 귀속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 유물을 활용한 교육, 전시, 도록 발간 등 시민을 위한 서비스 활동도 진행할 계획이다. 박물관은 이 사업에 5년 연속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2020년 사업에 선정된 이후 지역주민과 전공자를 선발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지요. 학계와 국민의 관심도가 높은 유적이므로 중요 유구와 유물의 철저한 보고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학술가치가 높은 유물을 국가에 귀속해 많은 시민과 관련 전공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것입니다.” 한신대 박물관은 오산시 ‘독산성·세마대지’(사적 제140호)에서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 흔적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독산성의 최초 성벽으로 추정되는 토축시설과 통일신라부터 고려시대 문화층, 조선 정조시대로 보이는 내성이 동시에 발견됨으로써 독산성의 역사적 위상과 실체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최초 독산성 축조 이후 폐기되는 시점까지 긴 시간 동안의 역사를 온전히 복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토기 및 도기편, 연화문 와당, 고려시대 청자편·반구병 같은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한신대는 오산시와 평생교육 관학 협력사업으로 ‘교육 문화도시 오산의 역사문화 바로알기’를 진행하고 아주대 도구박물관과 ‘함께 찾는 우리 지역의 옛이야기’를 진행했다. 또 ‘오산시와 한신대 한국사학과가 함께하는 오산 역사 기록하기’와 사진전 ‘우리동네 양산동’을 개최하기도 한다. ‘화성지역 고고학 연구의 현황과 쟁점’과 ‘고고학과 문헌을 통해 본 수원 창성사지의 역사적 가치’라는 학술대회를 주관하는 등 지역과 긴밀하게 연대하며 협력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박물관협회가 주관하는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과 문체부 지원 ‘교육인력지원사업’에 10년 이상 연속 선정된 사실에서도 한신대 박물관의 저력을 엿볼 수 있다. 한신대 박물관은 한국 고대사를 밝혀주는 풍부한 유물을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20명 이상의 단체 관람객은 2주 전에 박물관에 신청하면 토요일도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오는 주말에 아이들과 박물관을 관람하고 독산성에 올라 보면 어떨까.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5.양평 이재효 갤러리

사각의 회색 건물 지붕에 우뚝 선 은빛 나무가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양평군 지평면 초천리에 있는 ‘이재효 갤러리’에도 봄날의 싱싱한 기운이 충만하다. 산자락에 자리 잡은 이재효 갤러리는 입구부터 환상적이다. 주먹만 한 돌멩이를 주렁주렁 매달아 만든 터널을 연출한 작가의 상상력이 재미있다. 허공에 달린 어둑한 터널 끝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나무가 새롭다. ■ 나무와 돌로 빚은 치유와 휴식의 공간 작가는 일상의 사물을 신비롭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를 지녔다. 터널을 지나 매표소가 있는 2층 카페에 들어서면서 또 한 번 놀라운 풍경과 마주한다. 둥근 나무 공이 달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다. 부드러운 나뭇결이 살아있는 조각품이다. 이보다 흥미로운 풍경은 천장이다. 땅에 깔려 있어야 할 나뭇잎들이 천장에 가득하다. 돌이 허공에 달려 있고, 낙엽이 천장을 채우고 있는 낯선 풍경이 너무 재미있다. 이런 것을 ‘발상의 전환’이라 하리라. 과연 전시실과 다름없는 카페는 어떤 풍경일까? 주렁주렁 매달린 자갈돌이 커튼처럼 벽을 장식하고 있고 둥근 나이테가 가득한 나무 공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찻잔이 놓인 테이블도 조각품이다. 평일인데도 외진 시골에 있는 이재효 갤러리를 중장년의 관람객들이 줄지어 찾는 까닭을 알려주는 풍경이다. 카페를 벗어나면 2층 마당이다. 커다란 도넛처럼 생긴 조각품 사이로 붉은 나무 한 그루가 푸른 산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돌멩이로 벽을 만든 돔처럼 둥근 공간이 있고 가운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잘린 아름드리 등걸에 고맙게도 새 가지가 돋아나 있다. 돌들이 꽃처럼 가득한 마당도 정겹고 사랑스럽다. ‘2전시장’ 문의 손잡이는 나뭇가지로 만들었다. 문을 여는 순간,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수십만 장을 꿰어 길게 늘어뜨린 갈잎 벽이다. 가을 숲길 같은 벽을 통과하니 나타나는 너른 공간에 UFO처럼 생긴 조각품과 백두대간처럼 힘이 느껴지는 조각품이 놓여 있다. 거칠게 톱질한 나무를 연결해 공룡의 등뼈처럼 탄탄하고 우람한 산맥을 연출하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벽면의 한곳은 나뭇가지 더미로 채워져 있다. 나뭇가지들이 모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흥미롭다. ■ 모으고 모아 둥글게 둥글게 수천 개의 나무를 잘라 높낮이를 다르게 배치해 입체적으로 표현한 작품은 또 다른 맛을 선사한다. 둥글게 만 상수리잎 수만 개가 모여 연출하는 풍경도 사뭇 신비롭다. 제 역할을 마친 나뭇잎들을 모아 이처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이재효 작가의 상상력은 압권이다. 감탄사를 절로 불러일으키는 전시실을 벗어나면 푸르른 자연이다. 마당을 가로질러 ‘3전시장’으로 향한다. 산새들의 아파트일까? 새집이 과일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가 멋스럽다. 작은 정원 사이로 난 계단을 오르면 철사와 자갈로 벽을 장식한 전시장이 나타난다. 전시장 입구에서 작가 이재효의 화려한 경력을 알려주는 상장과 패널을 마주한다. 이재효 작가는 1997년 한국일보 청년 작가 초대전 대상 수상을 비롯해 1998년 문화관광부 제정 1998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1998년 오사카 트리엔날레 조각 대상, 2000년 김세중 청년조각상, 2002년 우드랜드 조각상, 2005년 일본 효고 국제회화공모전 우수상,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환경조각 작품전 우수상 등을 수상한다. 전시장은 밖에서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크다. 물론 전시된 작품도 대작들이 많다. 둥근 고리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조각이 관람객의 눈길을 압도한다. 자잘한 나뭇가지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고 두텁게 낙엽을 깐 바닥이 아늑하고 편안하다. 갈색은 마음을 따스하고 차분하게 만들어 주는 신비로운 힘을 가졌다.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저 강렬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꼬물꼬물 수백 마리의 벌레처럼 보이는데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휘어진 못이다. 휘고 갈린 못은 한글로 부활해 관람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나무에 박힌 못들이 노래를 들려주는 듯 물고기처럼 물결처럼 기둥을 채우고 있다. 반짝이는 못을 품고 있는 것은 그을린 5m 금강송이다. 작가의 가족과 스태프들의 가족 이름까지 못으로 심고 갈아낸 독특한 작품이다. 원형의 조각품은 무엇일까? 줄에 매달린 수백 개의 돌멩이가 빛과 어울려 연출하는 신비로운 풍경이 압권이다. 나뭇가지를 묶어 웅크린 고슴도치처럼 보이는 작품도 신비로운 빛에 감싸여 있다. 화투를 한 장씩 열을 가해 꽃잎처럼 구겨낸 뒤 붙인 부조는 몇 걸음 떨어져 보면 마치 장미꽃밭처럼 화사하다. 단순한 소재가 작가의 손을 거치면 이처럼 놀라운 작품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작가의 기발한 실험과 상상력은 관람객을 빙긋 웃음 짓게 하고 연신 감탄사를 토하게 만든다. ■ 자연에서 찾아낸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 나무 줄기를 모아 지구본처럼 둥글게 깎아 만든 거대한 나무 공, 이재효 작가의 작품들은 우아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앞에서 봤듯 작품을 이루는 재료는 나무와 이파리, 못, 나뭇가지처럼 우리 주위에 널린 흔한 물건들이다. 역시 작가의 명성을 높여준 것은 나무 작품이다. 밤나무, 잣나무, 낙엽송의 분홍빛 속살에서 자연의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못을 구부리고 갈아 글자들이 반짝이는 기둥이다. 나무에 새겨진 숫자는 얼핏 주민등록번호처럼 보인다. 0121-1110=112035, 0121-1110=1080815. 산수 문제처럼 보이는 글자가 사실은 작가의 이름이라니 놀랍다. 01은 ‘이’, ‘21-1’은 ‘재’, ‘110=1’은 ‘효’를 옆으로 누인 것이다. 그 뒤 숫자는 일련번호로 붙인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작품 곳곳에 뜻밖의 재미를 숨겨 놓았다. 철계단을 올라 들어선 ‘4전시장’은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관람객들을 가장 편안하게 해 주는 공간이겠다. 연필이 작품으로 변신했다. 깎은 색연필을 한데 묶고 잘라 붙여 전혀 새로운 느낌을 전달한다. 두꺼운 흰 종이에 칼날로 오려 살짝 들추면 2차원의 평면이 3차원의 입체로 변신한다. 오래된 책, 용접봉, 연필, 철판, 철사, 나뭇가지 등 버려지거나 보잘것없는 재료로 만든 작품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쓸모없는 것이 생명보다 더 오랜 생명력을 가진 작품으로 부활한 것이다. 창작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표출한 드로잉을 만날 수 있는 ‘5전시장’은 더욱 친숙하고 편안하다. 포르텔 피아노가 놓인 전시장은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소품들로 가득하다. 한 알의 씨앗에서 싹이 나와 거목으로 자라는 과정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이재효 작가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나무 작업이다. 잔가지나 쓸모없이 버려진 나무 둥치들을 한데 뭉쳐 둥그런 원형으로 잘라낸다. 버려진 나뭇가지나 냇가의 돌멩이처럼 하찮은 소재를 고도의 집적을 통해 하나의 미술품으로 재탄생시킨 작가의 손길이 사랑스럽다. 작품 앞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조형으로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을 거쳐야 했을까. ■ 풋풋한 시골의 감수성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다 이재효 작가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으로 유명한 경남 합천군 가야면 출신이다. 해외에서 더욱 유명한 스타 조각가지만 무명의 오랜 세월을 지나왔다. 1992년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15년간 작품을 한 점도 팔지 못했을 정도였다. 오롯이 한 우물만 판 이 작가는 이제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라 명성을 누리고 있다. 자연과의 교감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조각가 이재효의 작품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서울 광진구 광장동 W호텔의 나무 작품 ‘미로’를 비롯해 63빌딩, 여의도 메리어트호텔에서도 만날 수 있다. 미국 워싱턴의 파크하이엇과 라스베이거스 MGM호텔, 스위스 제네바 인터콘티넨털 호텔, 중국 파크하이엇, 독일 그랜드하이엇, 오스트리아 크라운 호텔 등 세계 유명 호텔에 작품이 설치됐다. 작가가 들려주는 다음과 같은 고백은 자연의 위대한 가르침을 새삼 깨닫게 해 준다. “시골 논밭에서 뛰어논 감수성과 경험이 지금 제 예술의 모태가 됐습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4.아주대학교 도구박물관

꽃이 지고 난 자리를 채운 나뭇잎들이 싱그럽다. 캠퍼스를 거니는 학생들의 표정과 발걸음에도 싱싱함이 가득하다. ‘율곡관’, ‘성호관’, ‘다산관’, ‘홍재관’은 아주대 캠퍼스의 주요 건물에 붙여진 이름이다. 아주대 도구박물관(관장 김종식)은 ‘연암관’에 있다. 그렇다. 연암관은 ‘열하일기’를 통해 조선의 개혁을 설파한 박지원(1737~1805)의 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수원화성을 설계한 정약용의 호를 딴 다산관도 있고 18세기 문예부흥을 꽃피운 정조대왕의 호를 딴 홍재관도 있다. 캠퍼스 건물에 조선의 대학자와 실학자들이 추구한 실사구시 정신을 우리 시대에 계승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서 아주대의 건학이념이 뚜렷하게 느껴진다. ‘사실에 근거해 진리를 추구한다’는 실사구시 정신은 우리 선조들이 일상에서 사용한 도구에 집약됐다. ■ 국내 최초의 도구박물관 아주대 도구박물관(Ajou University Museum of Tools)은 국내 최초로 ‘도구’를 테마로 한 개방형 전문 박물관이다. 도구와 관련된 유물을 집중적으로 수집해 온 아주대가 개교 40돌인 2013년 도구박물관을 개관한다. 농기구부터 인쇄 도구, 대장간 도구, 목공 도구, 도량형기 등 약 300점의 유물을 전시해 선조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고 흥미롭게 엿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다산 정약용 연구자로 알려진 조성을 교수가 초대 도구박물관장을 지냈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는 도구를 만들면서 발전됐다는 점에서 인류의 역사는 곧 도구의 역사입니다.” 조 관장의 말처럼 도구는 역사의 동력이다. 박물관 입구 유리관 속에 동물 조각처럼 생긴 시커먼 물건이 들어 있다. 무엇일까 다가가 보니 ‘먹통’이다. 먹이 묻은 실을 들었다 놓으면 순간 곧은 줄이 그어지는 먹통은 가구를 제작하거나 집을 짓는 목수의 필수품이다. 기하학적 무늬가 촘촘히 새겨진 다식판과 나무 표면을 다듬는 대패도 들어 있다. 입구에 커다란 필름도 늘어뜨려 놓았다. 세 가닥 필름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앞쪽에 있는 흑백 필름부터 살펴본다. 1973년 제1회 입학식, 1974년 개교기념식 등 아주대 50년의 역사적 순간이 담겨 있다. ■ 툴툴씨네 가족이야기 박물관은 툴(tool)툴(tool)씨네 가족이 사용한 도구들을 전시해 놓은 방식이다. 툴툴씨네 가족은 모두 일곱 명인데 모두 솜씨가 좋다. 논에 물꼬를 내는 ‘살포’를 손질하는 아버지(툴툴씨)가 중앙에 서 있다. 그 왼편에 새끼를 꼬는 막내아들과 곁에 앉아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 길쌈질하는 할머니가 있고 오른편에 대패질하는 할아버지와 일을 돕는 첫째 아들, 짚신을 삼는 삼촌이 있다. 막내아들이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방과 도구를 설명해 주는 임무를 맡았다. 전통 도구들에 어떤 지혜와 사연이 담겨 있을까? 사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 도구박물관 홍현기 조교가 집안을 안내해 주는 툴툴씨의 막내아들 역할을 맡아줬다. 할아버지가 대패질하고 있는 작업장부터 둘러본다. 할아버지는 오랜 시간 소목장으로 일해 솜씨가 뛰어나 마을에서 이름난 목수다. 형은 할아버지처럼 뛰어난 소목장이 되는 꿈을 가지고 일을 배우고 있다. 목수의 손때가 묻은 유물들이 정겹다. ‘정(丁)자자’와 ‘기역자자’는 글자처럼 생겼고 ‘연귀자’는 삼각자와 비슷하다. ‘탕개톱’, ‘깎낫’은 양쪽에 손잡이가 있다. 망치처럼 생긴 ‘그무개’처럼 도구들의 특징과 쓰임을 드러낸 이름이 재미있다. 대팻집은 마찰이 적고 결이 곧으며 수축이 적은 참나무나 느티나무로 만들었다는 사실도 새롭다. 다음은 건넌방이다. 보부상으로 전국을 떠도는 삼촌이 건넌방에서 짚신을 삼고 있다. 삼촌은 올봄과 여름에 시장에 내다 팔 물건들을 준비하고 먼 길을 떠나기 위해 짚신을 만들고 있다. 짚신을 만들 때 ‘짚신틀’을 사용한다. 새끼줄을 걸어 지지대 역할을 해주는 도구로 ‘신틀’ 또는 ‘짚틀’로 불린다. 짚신틀 바닥에 있는 구멍에 두 개의 기둥을 꽂은 후 새끼줄을 걸면 짚신을 만들 수 있고, 세 개를 사용하면 짚신보다 비싼 미투리를 만들 수 있다. ‘나무바늘’, ‘망태기’, ‘신골 방망치’ 같은 도구들이 있다. 벼에서 나온 짚을 이용해 만드는 짚신은 사극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물건이다. 문득 속된 궁금증이 일어난다. 짚신 한 켤레에 담긴 정성은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될까? 남성의 공간인 사랑방에 선비들의 애장품인 문방사우가 있다면 안방에는 여성들의 애장품 ‘규중칠우(閨中七友)​’가 있다. 반짇고리에 담긴 자, 가위, 바늘, 실, 골무, 다리미, 인두 일곱 가지는 조선 여인들이 바느질과 다림질할 때 사용했던 소중한 도구들이다. 불과 얼마 전에도 사용했던 물건이라 눈에 익은 것들이지만 인두는 좀 낯설다. 미니 다리미라 부를 수 있는 인두는 한복의 깃처럼 세밀한 부분을 섬세하게 다릴 때 사용했던 도구답게 끝이 뾰족하다. 숯불이 담겨 있는 다리미와 달리 인두는 화로에 달궈 사용하기 때문에 금방 식는다. 따라서 두세 개의 인두를 교대로 사용해야 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부엌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루, 도마, 강판, 칼, 솥, 시루, 맷돌 등 모두 우리의 눈에 익숙한 물건이다. 바람을 일으켜 화력을 세게 하는 풍로는 요즘 보기 힘든 물건이라 다시 살펴본다. 제사를 드릴 때나 잔치에 빠지지 않는 것이 떡이다. 떡을 만들 때 쓰였던 떡살에 새겨진 문양이 너무나 섬세하고 우아하다. 먹는 떡에도 아름답고 정교한 문양을 새겼던 옛사람들의 고운 마음이 그립다. 떡살은 옛사람들의 미적 감각과 여유를 깨닫게 해준 멋진 유물이다. 창고에는 농기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됐다. 묵은 땅을 갈아엎는 쟁기, 씨 뿌릴 때 골을 타는 ‘고써레’가 보인다. 투박한 ‘새갓통’은 거름을 밭에 뿌리거나 똥오줌을 퍼서 장군에 담을 때 사용하는 그릇이다. 바가지처럼 생겼으나 한쪽에 거름을 따라내기 쉽도록 배출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땅을 기름지게 해야 풍년을 기약할 수 있었기에 똥오줌으로 만든 거름을 내는 일을 빠뜨릴 수 없다. 집을 벗어나면 툴툴씨네 마을(시장) 이야기가 시작된다. 숯불을 달구는 ‘풀무’와 커다란 나무에 넓적한 쇠를 박아 놓은 ‘모루’가 인상적인 대장간을 지나면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상전이다. 18세기부터 책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책을 빌려주는 생겨난 ‘세책점’의 풍경이 재미있다. 전시 유물 중에서 책등을 묶을 때 사용했던 ‘책 조이개’는 매우 보기 어려운 특별한 유물이다. ■ 아주대 50년의 역사를 담다 아주대는 지난해 경기도·수원시와 함께 ‘아주 50년展: 100년을 향한 여정, 협력하는 지성으로(路)’ 특별전을 열었다. 1973년 개교해 지난해 개교 50주년을 맞이한 아주대가 걸어온 여정을 하나하나 살펴본다. 대학 설립부터 세계 수준의 대학으로 도약한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주대가 걸어온 길을 사진과 기록물, 실물 자료 등을 통해 대학의 역사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개관 이래 대학 구성원들로부터 수집·보관해 온 3천300여점의 자료 가운데 90여점을 선별한 것입니다. 1부 ‘아주 50년의 발자취’는 1965년 ‘한국과 프랑스 간 기술 초급대학 설립에 관한 협정’에 의해 설립된 아주공업초급대학의 탄생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아주대 발전사를 보여줍니다. 2부 ‘대학이념의 실천’은 개교 이래 추구해 온 ‘인간존중, 실사구시, 세계일가’의 교육이념에 따라 아주대가 걸어온 길을 주요 주제별로 전시한 것입니다. 3부 ‘아주가 나아갈 길’은 지난 50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미래 100년을 위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아주대의 현재를 담은 영상물을 상영합니다.” 아주대 도구박물관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서 만난 입간판에 적힌 문구가 ‘아주 재미있는 박물관’이다. 수원시의 중심에 알차고 짜임새 있는 전시가 돋보이는 아주대 도구박물관이 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 양평곤충박물관

우리 아이가 장수하늘소의 한해살이를 궁금해할 때 어디를 찾으면 좋을까.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양평군이 설립한 양평곤충박물관이 바로 그런 곳이다. 경기 양평군 옥천면 경강로 1496번지 양평환경사업소 내에 있는 양평곤충박물관(명예관장 황경철)은 신비로운 곤충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해 준다. 곤충은 놀랍도록 다양하고 알아갈수록 더욱 신비로운 생명체다. 달콤한 꿀을 제공하는 꿀벌과 비단실을 토해내는 누에도 있고, 모기와 파리 같은 곤충도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곤충은 이 푸른 지구별을 살리는 소중한 생명체다. 봄날 들판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나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 곤충과 함께한 일평생, 신유항 박사 신유항 박사(1929~2023)는 양평곤충박물관 설립의 공로자다. 우리나라 곤충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신 박사는 경희대에서 정년 퇴임한 후 양평에 살면서 10여년 동안 손수 채집한 곤충과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1천500여점의 곤충 표본을 양평군에 기증한다. 이를 바탕으로 군은 연면적 1천314㎡, 지상 2층 규모로 양평곤충박물관을 건립해 2011년 11월 개관한다. 곤충학자 신 박사는 어떤 분일까. ‘양평군 생태체험관 곤충표본 기증 협약서’는 박물관의 시작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카메라를 든 신 박사가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과 ‘일반 곤충학’ ,‘한국 동·식물도감’, ‘원색 한국나비도감’, ‘한국곤충도감’, ‘원색 한국나방도감’, ‘호랑나비’, ‘반딧불이는 별 아래 난다’, ‘한눈으로 보는 한국의 곤충’, ‘한반도의 나비’ 같은 신 박사의 저서가 전시돼 있다. 신 박사의 양평 사랑은 ‘양평곤충도감’이란 책 제목에서도 느껴진다. 한평생 곤충의 매력에 푹 빠져 살았던 곤충학자의 뜨거운 열정을 느끼며 전시관에 들어서니 나비들이 반겨준다. 신 박사를 이어 2대 명예관장을 맡은 이는 황경철 박사다. 대학에서 환경을 가르치고 환경부의 자문을 맡았던 환경전문가 황 관장은 양평군 민관협치협의회 위원장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황 관장은 주민들과 함께 혐오시설로 인식되던 하수처리장에 생태체험관과 생태공원을 조성해 생태·문화·체험교육의 장으로 거듭나게 한다. ■ 소똥구리를 되살리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푸른 사마귀의 등에 올라탄 ‘물사랑이’와 머리에 노란 은행잎을 붙인 ‘행복이’를 만난다. 물사랑이와 행복이는 양평군의 맑은 물과 1천100살의 용문산 은행나무를 상징한다. 우아한 모양과 화려한 색깔의 나비를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나비처럼 사랑스러운 곤충이 달리 또 있을까. 박태준 학예연구관의 양평 소개를 들으며 나비를 다시 살펴본다. “2010년 조사에 따르면 현재 한반도에 살고 있는 기록 곤충은 25목, 약 1만4천100종입니다. 나비 무리에 대한 조사는 잘돼 있는데 한반도 토착종은 모두 258종, 양평군에서 기록된 것은 80여종이라고 합니다.” 소똥구리가 우리 주위에서 사라진 것은 언제일까. 지난해는 ‘곤충기’를 지은 파브르의 탄생 200주년이었다. 세계에서 만든 우표로 전시관 한 면을 채우고 있다. 나비 우표를 보며 소똥구리를 관찰하는 파브르의 초상이 그려진 우표를 떠올린다. 소똥구리는 양평곤충박물관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곤충이다. 2016년부터 양평군과 박물관은 몽골국립농업대와 업무협약을 맺고 멸종위기종인 소똥구리 복원 사업을 진행한 까닭이다. 곤충학자인 신 박사와 곤충전문가 김기원 학예사 등 연구진이 몽골에서 도입한 소똥구리의 국내 부화에 성공해 2017년 환경부로부터 멸종위기 야생생물 ‘소똥구리’ 인공증식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소똥구리 복원은 친환경농업특구 양평군의 가치를 드높이는 상징적 존재다. 관계자들의 열정과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가만 보니 소똥구리가 꿈틀꿈틀 움직인다. 아이들은 움직이는 모든 생명에 대한 호기심이 높다. 곤충에 대해서라면 관심이 더욱 크다. 어린 시절 곤충을 가지고 놀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손톱만 한 풍뎅이도 엄청 힘이 세고 강하다는 것을. 풍뎅이의 등 껍질을 확대한 사진을 보며 놀란다. 털이 숭숭 돋아있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상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곤충의 세계는 우주처럼 무궁하다. 사슴벌레, 장수풍뎅이를 관찰하고 흙 속에 있는 애벌레를 찾아 만져볼 수 있는 곤충체험실은 어린이들이 오래 머무르고 싶어 하는 공간이다. 곤충 스탬프 찍기, 곤충 배지 만들기 같은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야외 체험장에서는 나비목걸이, 장수풍뎅이 표본 만들기 등 유료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 대한민국의 곤충학 발전을 이끈 사람들 우리나라 곤충을 알리는 데 수고한 인물들을 만난다. 학명을 통해 세상에 처음 소개한 아더 가디너 버틀러(1844~1925)는 영국 브리티시 박물관에 재직하며 1882년 논문 ‘일본과 한국에서 채집한 나비목 곤충에 관하여’를 발표해 우리나라 곤충에 학명을 붙여 세상에 처음으로 소개한 인물이다. 아시아 나비 연구의 선구자 존 헨리 리치(1862~1900)는 1886년 6월 중국에서의 곤충채집 여행 후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 부산 영도에서 하루, 강원도 원산에서 한 달 동안 나비, 나방, 딱정벌레 등을 채집한 것을 바탕으로 ‘중국 일본 한국의 나비’(1893년)를 저술한다. 도이 히로노부(1885~1949)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한국에서 중고 교사와 교장을 지내며 한국산 나비, 나방, 노린재, 잠자리 등에 대한 논문 및 단행본을 여러 편 발표하며 한국의 곤충상을 밝힌 인물이다. 이처럼 곤충 연구는 외국인이 처음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학자들은 누가 있을까? 김창환(1920~2013)은 한국의 곤충생리학 연구와 발전의 선구자로 한국곤충학회 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고려대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곤충의 배후 발생, 벌과 파리 등 주요 해충에 관한 논문 등 26권의 저서가 있다. 한국 나비의 분류학적 연구의 선도자 석주명(1908~1950)은 한반도 전역에 걸친 채집 여행을 통해 75만여마리의 나비를 채집, 한국산 나비의 분포와 변이, 종에 관한 분류학적 연구를 진행했으며 제주도 방언 연구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다. 국내 곤충학의 활성화를 주도한 조복성(1905~1971)은 한반도 전역과 몽골, 만주, 대만, 일본 등 동북아 일원에 걸쳐 광범위한 곤충을 채집, 대학에서 후진 양성에 힘써 많은 곤충학도를 배출하고 초대 곤충학회장을 지내며 학계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다. 특히 딱정벌레에 관한 업적은 탁월하다. ■ 편안하게 다시 찾고 싶은 박물관 눈으로 보고 만져보는 것도 좋다. 전문 해설사와 함께 박물관을 둘러본다면 더 깊은 이해와 공감을 얻을 수 있다. 박물관 측에 문의하면 무료로 해설사와 함께 둘러볼 수 있으며 30분 정도 걸린다. 아담한 크기의 박물관이지만 곤충을 분류별로 관찰할 수 있게 분류해 놓았으며 생태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다. 곤충의 생김새와 변태, 겨울을 나는 다양한 방법은 물론이고 외국 곤충 전시 및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 전시도 둘러볼 만하다. 색깔과 모양, 크기가 다양한 딱정벌레를 이용해 만든 기둥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살아 있는 벌레를 관찰하거나 애벌레를 만져보는 체험 또한 즐겁다. “곤충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살아있는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직접 만져볼 수 있어 어른들도 좋아합니다.” 우리 땅에 사는 곤충에 대한 조사와 연구는 곤충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이러한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양평곤충박물관의 자랑은 또 무엇이 있을까. “우리 박물관은 곤충을 주제로 한 국내 유일의 공립박물관으로 다양한 곤충표본과 아이들이 체험을 통해 곤충에 대해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곳이지요. 방문했던 사람들이 주변에 적극 추천하는 박물관입니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 부천자연생태박물관

지하철 7호선 까치울역에서 10분을 걸으면 부천자연생태공원이 나온다. 와룡산 자락에 자리 잡은 부천자연생태공원의 역사를 살펴본다. 2000년 개관한 부천자연생태박물관은 농촌지도소로 지어졌던 건물을 용도 변경한 특별한 사연이 흥미롭다. 그래서일까. 박물관 외벽에 붙은 무당벌레 조각작품이 더욱 돋보인다. 2002년 문을 연 ‘농경유물전시관’을 시작으로 ‘부천식물원’(2006년)과 ‘부천무릉도원수목원’(2012년)을 연달아 조성해 부천자연생태공원이란 이름을 갖게 된다. 어린이들의 학습장이자 가족과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아 하루 평균 900여명의 시민이 찾는다고 한다. 벚꽃이 활짝 핀 부천자연생태박물관에서 ‘곤충의 촉’(더듬이)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9월29일까지 진행되는 ‘곤충의 촉’전은 부천자연생태박물관 제21차 기획전이다. ■ 오감으로 생명체의 신비를 느끼는 곳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이뤄진 박물관은 4개의 상설전시관과 3D영상관, 홀씨도서관,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박물관에는 매우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카나리아와 십자매 같은 새들은 서식 환경이 좋은 식물원에서 기르고 있지요.” 박물관과 식물원을 안내하는 신남민 학예사의 발걸음이 빠르다. “박물관과 식물원을 혼자서 관리해야 하니 시간이 부족합니다.” 박물관 입구에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애니메이션 ‘꼬마 참새 리차드, 아프리카 원정대’는 한국조류학회 공식 추천작이다. 태어나자마자 황새에게 길러져 자신도 황새라고 믿는 참새의 모험 이야기다. ‘모글리, 정글 어드벤처’는 동물 속에서 자란 소년의 이야기인데, 정글의 평화를 위협하는 밀렵꾼들로부터 아기 호랑이를 구출하는 내용이다.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가 공룡의 이름을 줄줄 외우고 특징을 알려주던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며 박물관에 들어서니 신비로운 자연의 기운이 느껴진다.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호기심이 가득한 어린이들은 수십 종류의 풍뎅이 이름을 외우고 특징을 설명할 줄 안다. 물론 아이들이 자연과 가까워질 기회는 많지 않다. 곤충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란 더더욱 어렵다. 아이들에게 자연의 신비로움을 알려주는 공간을 24년 전에 마련한 부천시의 안목이 놀랍다. ■ 꿀벌의 일과를 살펴볼 수 있는 생태관 1층 생태체험관에 들어서면 몸통이 푸른 커다란 벌레 모형이 있다. 나비 애벌레 모형의 몸통도 작은 전시실로 꾸며졌다.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의 한살이가 궁금하다. 알에서 깨어나 허물을 세 차례 벗어가며 자란 애벌레의 몸이 쭈글쭈글해지면서 번데기가 되는 과정이 사람과 닮았다. 허물을 벗고 날개를 단 어른 벌레로의 변신은 생명의 신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을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는 생태체험관은 언제나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지요.”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수백마리의 꿀벌들이 움직이고 있다. 코앞에서 꿀벌의 활동을 관찰할 수 있다니 발상이 참신하다. “꿀벌을 이처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생물도감에 등장하는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 같은 숲속 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본다. 전시관 모퉁이에 관람객을 위해 벌과 나비 머리띠를 쓰고 기념촬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곤충과의 만남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옛 풀벌레 그림 초충도’ 앞에 선다. 초충도에 등장하는 수박과 오이, 포도 같은 식물과 나비와 꿀벌, 잠자리와 매미 같은 곤충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옛날 사람들이 풀과 벌레에 출세와 사랑, 자손의 번창과 과거급제 같은 소망을 담았다고 해요. 여치와 베짱이는 출세와 벼슬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나나니벌은 부모 닮은 자식을 상징하고 나비는 팔십 노인과 부부 화합을 상징한다. 선비, 신선, 문신, 고결, 불멸을 상징한다는 매미의 생김새를 다시 관찰한다. 그러고 보니 조선의 왕이 쓰는 익선관도 매미의 날개를 모방한 것이다. 메뚜기와 방아깨비는 자손 번창을, 사마귀는 인내를 의미한다. 신사임당의 그림으로 알려진 ‘초충도’에 등장하는 벌레들도 찾아본다. 마침 예순 중반의 여성 세 사람이 전시실에 들어선다. 조용조용 나누는 여성들의 대화를 슬쩍 들어보니 전문가 수준이다. 아이들처럼 머리를 맞대고 곤충의 생태를 관찰하는 어른들의 진지한 모습이 감동적이다. ■ ‘곤충의 촉’은 무슨 일을 할까? “곤충의 촉은 더듬이의 형태는 물론 촉각, 후각, 청각, 미각의 특화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복합 감각기관입니다.” 기획전 ‘곤충의 촉’을 관람하면서 곤충의 머리에 붙어 있는 더듬이가 곤충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쓰임새가 많은 기관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머리 양쪽에 달린 두 개의 더듬이는 밑마디, 흔들마디, 채찍마디의 세 마디로 구분되지요. 대부분 머리 앞쪽을 향해 달려 있지만 머리 위쪽에 달린 것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로 냄새를 맡는 역할을 하는데 때때로 소리를 감지하기도 한답니다.” 곤충의 몸에 붙은 더듬이의 기능과 역할이 신기하다. “코와 혀가 없는 곤충은 더듬이로 냄새를 맡고 맛을 봅니다. 더듬이에 공기의 진동을 느낄 수 있는 털이 나 있어 소리도 느낄 수 있지요.” 곤충의 다양한 더듬이를 16가지로 구분한 그림을 사진으로 담는다. 물결넓적꽃등에의 더듬이는 솔잎과 열매처럼 생겼다. 손잡이를 돌려가며 곤충의 특징을 살펴본다. 풍뎅이의 더듬이는 아가미 모양이고, 배추흰나비의 더듬이는 방울 모양이다. 전자현미경으로 나방의 더듬이를 확대해 촬영한 사진도 있다. 잠자리의 더듬이 사이에 나 있는 무성한 털이 무섭다. 파리의 더듬이가 붉은 눈만큼이나 독특하다. 꽃 향기와 곤충의 관계를 잠시 생각해 본다. 나방과 벌과 딱정벌레는 진동을 듣는 곤충이라고 한다. 눈 대신 소리와 냄새, 손끝에 느껴지는 촉감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는 실험도 재미있다. 곤충의 눈으로 바라보면 물체가 어떻게 보일까? 소리 듣고 곤충을 맞혀 보기, 곤충퍼즐 맞추기처럼 눈과 코와 귀를 활용한 체험 학습도 유익하다. 유치원 아이들이 이런 체험 공간을 가장 좋아할 것 같다. 다양한 풀벌레들의 소리도 들어본다. 귀뚜라미 소리는 익숙하지만 처음 들어보는 방울벌레와 베짱이의 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인다. ■ 자연생태박물관에서 만나는 생명체들 하천생태관에서 만난 ‘치리’는 멸치처럼 보이지만 몸 길이가 15㎝ 이상인 큰 민물고기다. 우리나라 개울과 강에서 자라는 물고기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민물에 사는 220여종의 민물고기 가운데 고유종이 60여종입니다. 각시붕어, 칼납자루, 쉬리, 점몰개, 금강모치, 꺽지, 퉁가리 등이 살고 있지요.” 한국의 토종물고기가 이처럼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다니 감사한 일이다.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가까이서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구리연못과 오리연못, 하늘호수가 있는 수목원에는 멸종위기 동물인 맹꽁이가 살고 있다. 튼튼유아숲체험원과 곤충호텔, 숲울림터, 편백치유숲은 어른과 아이 모두가 좋아하는 곳이다. “박물관에서 상설전시와 연계한 체험교육과 문화행사도 운영하고 있으니 방문 전에 살펴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주말 체험 프로그램이 좋습니다.” 매주 토요일 ‘나는야 동물클레이왕!’을 운영한다. 1월부터 4월까지는 타르보사우루스를 비롯한 공룡마을편, 5월부터 8월까지는 달팽이와 무당벌레, 사과와 애벌레, 잠자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숲속마을편, 9월부터 12월까지는 사슴, 호랑이, 얼룩말, 다람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물마을편이다. 매주 일요일에는 ‘뚝딱뚝딱 자연공작소’가 운영된다. 꿀벌 브로치, 조개껍질 나비액자, 물고기 모빌, 곤충부채, 나무팽이 같은 재미있는 물건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박물관을 나서려는데 박물관 관계자가 솔깃한 정보를 또 알려준다. “4월20일부터 튤립을 중심으로 ‘봄꽃 전시회’가 열립니다. 문화관광해설사와 봄꽃 명소를 함께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으니 잊지 마세요.”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 양평 숲속의 미술공원 C아트뮤지엄

때는 바야흐로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이다. 세종대왕이 사랑한 당나라 시인 두보의 ‘봄 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春夜喜雨’를 읊조리며 미술관에 들어선다. 봄비에 막 움트기 시작한 새싹들의 환희가 가득한 미술관은 조각품과 시비로 어우러진 숲속에 있다. ■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미술관 양평군 양동면 단석리에 자리 잡은 ‘C아트뮤지엄’(관장 김종애)은 숨겨진 보석 같은 미술관이다. C아트뮤지엄은 지난해 6월 작고한 조각가 정관모 교수가 2006년 설립한 미술관이다. 미술관에는 입체작품 1천300여점, 평면작품 200여점이 전시돼 있다.아시아 최대이자 국내 유일의 기독교 조각미술관 공원으로 숲속 곳곳에 자리 잡은 조각작품과 명시를 감상하며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대표 글자인 ‘C’에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 “C는 ‘이 시대’를 뜻하는 Contemporary와 ‘창조적인’이라는 Creativity와 ‘기독교 정신’이라는 Christianity, 그리고 설립자인 정관모 교수의 성씨 Chung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미술관의 또 다른 이름은 ‘양평 숲속의 미술공원’이다. 정관모기념관은 미술관 설립자인 정관모 작가(1937~2023)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십자가와 성경 속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상징물을 형상화한 조각들을 통해 작가의 영성 깊은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조각공원의 설립자 정관모 교수는 기독교 현대미술 운동에 앞장서 온 최고의 조각가로 평가받는 분입니다.” 학예사로 일하는 김영후 박사의 안내를 받으며 미술관 순례에 나선다. 옷차림이 소박해 얼핏 잡부처럼 보이지만 김 학예사의 내공이 놀랍다. 조각품 소개는 물론 조각과 함께 수십 개의 시비에 적힌 시를 줄줄 외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조경과 전통주에 관한 전문지식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조각공원은 전기차를 타고 돌아야 할 만큼 규모가 엄청나다. 조각공원으로 난 오솔길은 느긋하게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포장된 도로로 휠체어가 다닐 수 있고 장애인 전용 화장실도 갖추고 있다. 옅은 안개가 깔린 숲속에 조각품과 시비들이 나무처럼 서 있는 풍경이 신비롭다. ■ 세 개의 돌기둥을 중심으로 별처럼 펼쳐진 미술관 미술관 마당 한가운데 우람한 세 개의 기둥이 서 있다. ‘심비(心碑)’, ‘마음에 새긴 믿음의 표상’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여러 가지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 세 개의 돌기둥은 우뚝하고 든든하다. 보는 방향과 위치에 따라 세 기둥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기둥에 새겨진 십자가 문양을 자세히 살펴본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돌기둥에 새겨진 성경 말씀을 소리 내어 다시 읽어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상징하는 듯 세 개의 기둥은 세 발 솥처럼 관람객의 시선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부지 22만㎡의 조각공원에는 작가 100여명의 작품 500여점이 숲속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기독교적 영성을 바탕으로 제작된 현대조각과 미술품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500여점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높이 22m에 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상이다. “예수 얼굴상을 조각한 작품으로는 세계에서 제일 큽니다. 특수강판인 코르텐스틸로 제작된 이 작품은 작가가 용접공 5명과 함께 무려 1년에 걸쳐 완성한 것입니다. 코르텐스틸은 한번 녹슨 상태서 시간이 지나면 색상만 좀 어두워질 뿐 녹은 더 이상 슬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의 얼굴이 평안하다. “성서를 보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운명하기 전에 ‘다 이뤘다’고 하지요. 그 순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곧 부활절이다. 잠시 가난하고 고통받는 약자들을 괴롭히고 수탈하는 권력자에게 미움을 받아 끝내 죽임을 당한 예수의 거룩한 생애를 묵상한다. 공원 맨 위쪽에 자리 잡은 ‘홀리스톤, 거룩한 돌’이라 명명한 작품도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화강석 11개로 구성돼 있는데 제일 큰 돌기둥은 높이 7.7m에 무게가 24t에 달합니다. 각각의 돌기둥에는 ‘내 영혼아, 주님을 송축, 경배, 찬양, 기뻐하라’는 문구의 초성 글자 네 개씩을 새겼습니다. 작가의 신앙고백을 담은 것이지요.” 내려오는 길에 시비를 살펴본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김소월, 서정주, 윤동주 같은 시인들의 시를 새긴 시문학동산이다. 유명한 영시와 한시를 새긴 시비도 있다. 시비를 지나니 이번엔 풍만하고 건강한 여성의 몸을 조각한 작품들이 나타난다. 생명을 기르는 여성의 몸은 봄날의 숲속만큼이나 신비롭고 아름답다. 사람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조각도 만날 수 있다. 수목원이나 휴양림처럼 작품을 감상하며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공간을 배려한 것이 돋보인다. ■ 영성이 깃든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1937년 대전에서 태어난 정관모 작가는 중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해 평생 기독교인으로 살았다. 홍익대 조소과와 미국 크랜브룩 예술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는 성신여대 교수를 지냈다. 40대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낼 만큼 조각계는 물론 미술계 전체에서 인정받는 작가였다. 1970∼1980년대 한국 조형이 서구 미학에 매몰될 때 ‘윤목’을 비롯해 토속성과 현대성을 융합한 조각 세계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인전 40회를 비롯해 단체전 300여회에 참여할 정도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쳐 기독교미술상, 김세중조각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았다. 1970년대 중반에 시작한 ‘윤목’ 연작과 ‘코리아 환타지’, ‘표상·의식의 현현’은 한국 전통미를 현대조각으로 재현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기독교 신앙을 육화한 ‘종말의 지평’과 ‘십자가 형태의 조형적 연구’도 관심을 끈다. 정관모기념관에서 만나는 그의 회화는 또 다른 즐거움과 감동을 선물한다. 화면에서 발견하는 물고기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고백이다. 로마제국의 탄압을 받던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기호로 물고기를 사용했던 사실이 흥미롭다. 성경 구절을 읽고 화면에 그려진 상징을 살펴본다. 기호와 색조가 단순하지만 신비롭다. 그림으로 읽는 성경은 글자보다 더욱 선명하게 가슴에 스며든다. 정관모 작가는 암으로 투병하면서 2021년 ‘너그러운 시각’과 ‘나의 오벨리스크’라는 문집을 발간해 자신의 예술철학을 정리한다. 한국미술청년작가 회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국전 심사위원·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놀랍게도 부인 김혜원 작가와 딸 정진아 작가, 사위 박창식 작가 모두가 홍익대 미대 조소과 출신이다. 김혜원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념관도 한 공간에 마련돼 있어 예술가 부부의 작품 세계를 넘나들며 감상할 수 있다. ■ 별자리와 반딧불이와 만나는 곳 예수상 밑받침대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지하묘지에 조성한 예배실 ‘카타콤’을 재현해 놓았다. 천천히 예수상을 향해 걸어가면서 예수상의 변화를 살펴보고 어두컴컴한 카타콤에 들어가 내면을 울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좋겠다. “이곳은 별자리를 관측하기에 아주 좋은 곳입니다.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이 찾아오지요. 홀리스톤, 거룩한 돌이 세워진 곳 옆에는 여름이면 반딧불이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미술관은 미술 관람뿐 아니라 명상에 잠길 수 있는 휴식처를 제공합니다. 예술과 영성과 자연이 어우러진 이 공간을 우리 청소년들이 많이 찾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밤하늘에서 별자리를 찾아보고 반딧불이를 만나는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물 맑은 고장으로 소문난 양평은 C아트뮤지엄을 비롯해 구하우스미술관, 몽양기념관, 세미원연꽃박물관, 양평곤충박물관, 양평군립미술관, 양평아프리카문화예술박물관, 친환경농업박물관, 진아박물관,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이 모여 있는 문화예술의 메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40. 포천 허브아일랜드

100년 전만 해도 겨울에 푸른빛의 싱싱한 식물들이 내뿜는 상쾌하고 달콤한 향기로 가득한 정원을 느긋하게 산책하는 일은 황제나 억만장자도 누릴 수 없었다. 포천시 신북면에 자리 잡은 허브아일랜드박물관(관장 심재인)은 겨울에 찾으면 더욱 좋은 곳이다. 허브아일랜드박물관에는 340종의 허브가 자라고 있다. 경기도박물관협회장이기도 한 심재인 관장은 허브를 이렇게 정의한다. “약효가 있고, 먹을 수 있고, 향기 주머니가 있으면 모두 허브라 할 수 있습니다.” ■ 사계절이 봄날처럼 향긋한 곳 동화의 나라처럼 아름답게 꾸며진 허브아일랜드박물관은 사계절이 봄날이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싱그러운 향기가 가슴 가득 스며든다. 길게 펼쳐진 로즈마리 터널을 통과하면 새로운 향기가 코를 찌른다. 제라늄과 재스민, 유리옵스, 학자스민, 한련화 같은 여러 종류의 허브가 어우러진 공간을 지나 식물원 2관에 들어서면 독특한 생김새의 여우꼬리야자와 켄챠야자, 야레카야자, 테이블야자처럼 열대식물들로 가득하다. 튼실하게 자란 산세베리아와 짙푸른 잎사귀를 자랑하는 필로덴드론셀렘, 푸른 잎을 무성히 단 벤자민고무나무, 용설란과 행운목도 보인다. 집 안에서 기르기 좋은 낯익은 식물들이라 더욱 반갑다. 허브와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한 ‘하늘정원’에 들어선다. 분홍빛의 부겐빌레아, 황금빛 천사의 나팔이 식물원을 밝게 장식하고 있다. 폐와 기관지에 좋다는 계화나무 군락지는 달콤한 복숭아향으로 가득하다. 비염에 좋다는 유칼립투스, 호주 원주민들이 약재로 이용한 티트리, 말레이시아어로 ‘꽃 중의 꽃’이란 뜻을 가진 일랑일랑의 달콤한 향기를 맡으며 허브의 세계에 빠져든다. 허브를 대표하는 식물은 역시 보랏빛 꽃을 피우는 라벤더가 아닐까. 라벤더실에 허브아일랜드 역사관이 마련돼 있다. 설립자 임옥 대표가 설립 초기 허허벌판에서 쪼그리고 앉아 허브를 가꾸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허브아일랜드를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100대 관광지’로 인정한다는 패도 보인다. 태극 문양의 정부 마크와 31개 시·도를 잇는 경기도 마크가 붙은 수십 장의 인증서는 허브아일랜드가 여태껏 얼마나 부단히 변신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잠시 의자에 앉아 동영상으로 허브아일랜드의 역사를 살펴보며 황무지를 낙토로 가꾼 한 인간의 선한 의지에 감동한다. 이름부터 향긋한 ‘향기유물관’에는 어떤 것이 전시됐을까. 옛날부터 전해오는 손때 묻은 도구와 향기로운 씨앗이 담긴 통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일을 추출하고 향을 만드는 약저울, 약사발, 약절구, 약주전자, 약작두, 약장, 약병 같은 도구에도 향긋한 냄새가 배어 있는 듯하다. 눈이 내리면 더욱 어울릴 산타마을에 마련된 ‘상통인형관’은 낭만의 공간이다. 점토로 만든 작은 인형들이 향수로 유명한 프랑스 프로방스 아비뇽 마을 사람들의 삶과 직업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놀랍게도 상통인형 300여점이 모두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을 뽐내고 있다. ■ 천년을 이어온 허브의 향기 포도주도 허브와 연결할 수 있을까. ‘와인관’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제국을 거쳐 프랑스와 스페인, 독일로 퍼져 나가다 15~17세기 무렵 세계로 전파된 와인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와인과 관련된 근현대의 특이한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것도 볼만하다. 와인을 숙성시킬 때 사용했던 온도계, 원액을 만드는 착즙기, 오크통과 코르크 마개를 제작하는 기계를 살펴본다. 시대별, 국가별로 사용된 물건을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재미있다. 프랑스어 ‘발효시킨 항아리’라는 뜻을 가진 ‘포푸리’는 꽃과 향이 좋은 허브 잎, 과일 껍질, 향료들을 함께 첨가해 향기가 오래 나도록 백단유, 수지, 꽃기름 등과 함께 용기 속에 넣어 숙성시켜 만든다. 허브아일랜드의 포푸리 역사가 곧 우리나라의 포푸리 역사라고 자부하는 공간이란다. 세계에서 출판된 허브와 관련된 서적 1천여권이 진열된 작은 도서관도 있다. 조선의 선비들이 읽던 한의학 서적을 비롯해 표지가 바랜 서양의 책과 동양의 한의학에 이르기까지 허브와 관련된 서적을 시기별, 나라별로 만날 수 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 등 외국 서적이 많지만 한글로 된 책도 제법 보여 반갑다. 십자군전쟁 당시 허브로 상처를 치료한 수기가 기록된 희귀한 책도 있으니 찾아보면 좋겠다. 허브로 만든 차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허브차관’은 라벤더, 로즈마리, 레몬밤, 히비스커스, 루이보스, 캐모마일 등 여러 가지 허브차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향기가게에 있는 ‘향신료유물관’은 허브를 이용해 만든 여러 향신료와 그것을 담는 각종 용기, 오일추출기, 착즙기, 그라인더 등을 전시하고 있다. 향신료를 담은 용기는 디자인도 예쁘고 고급스럽다. 향신료유물관은 허브를 이용해 만든 오일, 와인, 술, 식초 등을 함께 전시하며 와인과 식초 만드는 방법도 소개하고 있다. 빵가게에 있는 ‘빵유물전시관’은 전통 장비부터 최근의 기계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발달해 온 빵틀과 바게트를 담는 통, 버터제조기, 빵 자르는 도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부터 오늘날까지 서구인들의 주식으로 이용해 온 밀과 빵의 역사를 살펴보는 시간도 흥미진진하다. 옛사람들은 어떤 커피 도구를 사용했을까. ‘커피관’은 유럽과 중동, 아시아에서 사용되는 커피 도구를 보여준다. 콩을 볶는 로스터기, 콩을 가는 그라인더, 커피머신 등 커피에 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허브 카페에 있는 ‘피에로인형관’에서 인형도 실컷 볼 수 있다. 흰색의 주름 잡힌 폭넓은 옷깃이 달린 의상을 입고 붉은 코에 하얗게 얼굴을 분칠한 피에로가 입을 크게 벌린 채 웃고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일본, 미국 등에서 섬유, 플라스틱, 석고, 도자기, 유리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무려 500여점의 피에로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탈리아에서 유리로 만든 수제 인형 피에로는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다. 피에로의 인기가 이 정도인 줄이야! ■ 허브로 행복하고 건강한 세상을 꿈꾸는 곳 추억의 거리에 마련된 민속관은 이국적인 허브아일랜드에서 만나는 가장 토속적인 공간이다. 야외에 있는 민속관은 허브아일랜드 인근에 사는 포천 주민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전통 농기구를 기증받아 전시하고 있다. 논을 고르는 써레, 쟁기를 끌 때 소 등에 올리는 멍에, 양쪽에 양철통을 달아 둔 물지게도 볼 수 있다. 전통 혼례를 재현한 혼례청에서 혼례복을 입고 꽃가마를 타 볼 수도 있다. ‘체험관’을 찾으면 허브의 원산지라 할 수 있는 지중해 연안 국가에서 제작된 허브 표본을 감상할 수 있다. 식물 전체를 볼 수 있는 로즈마리와 라벤더, 애플민트 같은 여러 가지 표본이다. 표본을 보면서 허브의 이름과 원산지, 이용 부위를 확인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차나 음식, 향수 등 생활에 다양하게 활용하는 허브는 오랜 역사를 가졌다. 허브아일랜드는 허브의 원산지인 지중해, 일본을 돌며 허브에 관한 기초를 다진 뒤 허브 씨앗을 한국 땅에 심고 가꿨다. 허브박물관은 2020년 국가가 인정하는 1종 허브 식물박물관으로 정식 등록됐다. 340여종의 허브가 자라고 있다. 박물관은 허브를 주제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허브 체험장에서는 이곳 농장에서 재배한 다양한 허브를 활용해 화장품과 비누, 생활소품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방마다 아이들에게 익숙한 동화를 그림과 조각으로 옮겨 놓아 아이들이 상상력을 펼치고,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도 어느새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다. 허브는 사람의 기운을 돋우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치유의 식물이다. 상쾌한 향기는 굳은 마음과 얼굴을 펴게 하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허브아일랜드박물관은 허브로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즐거운 놀이터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9. 여주 명성황후기념관

여주시는 예부터 풍요로운 고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여강’으로도 불리는 남한강변의 신륵사, 남한강 푸른 물줄기를 굽어보기 좋은 파사산성, 한글을 창제한 세종의 영릉(英陵)과 북벌 대의를 세운 효종의 영릉(寧陵), 아름다운 부도를 간직한 고달사지 등 유적과 유물도 풍성하다. 여주시에는 미술관과 박물관도 여럿이다. 박물관협회에 등록된 것만 해도 명성황후기념관을 비롯해 목아박물관, 세종대왕역사문화관, 여성생활사박물관, 여주곤충박물관, 여주미술관, 여주박물관, 경기도생활도자미술관, 여주시립폰박물관, 옹청박물관, 죽포미술관까지 11곳이나 된다. ■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느끼는 공간 여주시 명성로 71(능현동)에 있는 명성황후기념관은 2017년 개관했다. 기념관에는 명성황후 편지, 고종 어필 편액, 여흥 민씨 족보 등 137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지난 9월 개관한 특별기획전 ‘선이도에 담긴 조선왕실과 여주’가 내년 6월까지 진행된다. 태조의 어진을 백두산에 배치한 조선전도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그려져 있다. ‘선이도(仙李圖)’는 무엇일까? 한자를 봐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한혜원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며 비로소 고개를 끄덕인다. “조선 왕실의 계보를 지도 모양으로 그린 것입니다. 태조부터 순조까지 재위한 순서대로 왕과 부인의 성 및 이름, 왕릉의 위치를 우리나라 지도 모양의 울창한 나무로 묘사해 조선 왕실이 번성했음을 보여줍니다. 제작한 곳이 나와 있지 않지만 전주 이씨 집안에서 만들어져 배포된 것으로 보입니다. 선이도를 펴낸 1930년대에 전국 곳곳에서 문집과 족보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비록 나라는 잃었지만 조상과 뿌리는 잊지 않겠다는 각오로 보입니다.” 물론 선이도에 여주가 여러 번 등장한다. “세종대왕의 이름은 도이며 영릉은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위치한다.” 제복을 갖춰 입은 고종황제와 순종황제 부자가 함께 찍은 1900년대 우편엽서가 눈길을 끈다. 어린 시절의 영친왕, 순종황제와 순종비, 영친왕(의민황태자) 셋이 등장하는 엽서도 있다. ‘낙선재’ 글자를 새긴 조선백자의 중앙에 오얏꽃, 둘레에는 학을 그려 황실에서 사용한 접시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1897년 10월14일자 ‘독립신문’ 논설문의 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이다. “구습과 잡심을 다들 버리고 문명 진보하는 애국 애민하는 의리를 밝히는 백성들이 관민 간에 다 되기를 우리는 간절히 비노라.” ■ 여성, 아내, 어머니로 만나는 명성황후 명성황후 연표는 19세기가 얼마나 격동의 시대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민자영이 왕비로 간택됐던 1866년 병인양요, 첫 원자를 출산한 1871년에 신미양요가 일어나고 남편 고종이 친정을 시작한 지 3년이 되던 1876년 강화도조약이 체결된다. 이어 일어난 임오군란(1882년)과 갑신정변(1884)은 그에게 커다란 시련을 안겨준다.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 군대를 불러들인 결정은 최악이었다. 결국 청일전쟁이 벌어지고 주도권을 장악한 일본은 이듬해인 1895년 10월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킨다. 명성황후의 뛰어난 재능과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유물은 어떤 것이 있을까? 고종과 명성황후가 이범진에게 내린 천운(川雲)이란 당호 글씨를 비교하며 두 사람의 성품을 짐작해 본다. 1885년 정월 보름에 쓴 명성황후의 글씨는 큼직하고 시원하다. 명성황후의 한글로 된 어찰 20장을 한데 모은 책도 있다. 이모(한산 이씨)에게 답장한 이 편지는 명성황후의 부드럽고 정겨운 면모와 단호하고 냉철한 면모를 함께 보여준다. 그가 정갈하게 써 내려간 궁서체의 한글 편지를 살펴본다. “글씨 보고 야간 잘 잔일 든든하며”는 무슨 말일까? “그것은 ‘편지를 보고 밤에 잘 자서 든든하고’란 뜻입니다. 항상 이 구절로 시작하는 명성황후의 편지에는 임금과 아들 동궁의 안부도 같이 전하고 있지요. 왕비이기 전에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편지로 지난해에 특별전을 열었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기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남달랐다. “밤에 어머니가 궁에 오셨는데 잠이 깊이 들어 뵙지 못해 아쉽다는 내용을 전하는 편지가 있습니다. 그에게 어머니는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두통과 소화불량 등 질병을 호소하는 내용도 있다고 하니 고단했을 그의 궁중에서의 일상이 그려진다. 명성황후가 남긴 유일한 것으로 알려진 한문 봉서도 눈길을 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글씨 옆에 ‘명성황후 구국방책’이라 적혀 있다. 장수를 나타내는 군기(軍旗) 여러 점과 상어 껍질로 칼집과 손잡이가 장식된 환도가 함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유물을 기증한 이도 유물의 정확한 유래를 잘 모른다고 한다. 황실의 여성문화를 보여주는 화려한 머리 장식과 옷 노리개도 눈길을 끈다. 명성황후를 찌른 일본도를 복원해 전시한 옆에 아주 특별한 글이 있다. 일본의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이 2007년 7월31일 명성황후 생가를 방문하고 올린 ‘일본인방문사죄문’이다. “우리들은 이 과거의 사실을 더 많은 일본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늘날의 일본 어린이들에게도 알리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양국의 우호와 평화가 더욱 진전되도록 정진할 것을 맹세합니다.” 일본 정부는 아직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지만 이처럼 양심과 역사의식을 가진 일본 시민들도 적지 않다. 전시관을 둘러보니 아쉬움도 없지 않다. 공간의 구성이나 배치 방식이 필요해 보이고 무엇보다 전시관이 너무 낡았다. 공간을 새롭게 단장하면 역사적인 의미와 관람의 재미가 더욱 살아나지 않을까. ■ 시대의 변화를 모색하는 역사 공간 신구와 동서가 충돌하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명성황후는 우리에게 여전히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전시관을 나와 ‘명성황후 생가 유적지’로 향한다. 민자영이 소녀 시절 책을 읽었던 별당 자리에 비각 ‘명성황후탄강구리비(明成皇后誕降舊里碑)’가 서 있다. 비석 뒷면에 새겨진 ‘배수음체경서(拜手飮涕敬書)’를 풀이하면 ‘두 손을 조아리고 눈물을 삼키며 받들어 쓰다’이다. 아들 순종이 썼다고 전하는 이 비각 옆 한옥이 명성황후 생가인데 경기도문화재다. “원래 황후의 생가는 민유중의 묘막으로 지어진 작은 초가집이었어요. 민치록이 묘를 지키며 살았는데, 이곳에서 명성황후가 태어났지요. 현재의 생가는 1990년 새롭게 복원된 것입니다.” 민치록이 세상을 떠나자 아내 이씨는 여덟 살의 딸을 데리고 한양 감고당으로 이사한다. 민자영은 16세가 되던 1866년 한 살 연하의 전주 이씨 명복과 혼례를 치른다. 시아버지는 그와 평생 갈등하고 대결했던 흥선대원군 이하응이고 남편은 조선 26대 왕 고종으로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초대 황제에 오른다. 안채에 놓인 명성황후의 영정을 살펴본다. 눈매에서 총명함이 느껴진다. 아쉽게도 명성황후의 사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의 초상은 외국인들이 기록한 글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본가 옆에 자리 잡은 한옥은 서울에서 옮겨온 감고당(感古堂)이다. 감고당은 숙종 비 인현왕후가 서인으로 강등돼 한동안 머물렀고 명성황후가 결혼 전에 살았던 집이다. 현재 감고당은 개방돼 교육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감고당에서 펼쳐지는 각종 교육과 문화행사, 전통혼례 등 역사 전통문화 체험 행사는 시민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전통의 멋을 잇고 즐기다 2021년은 ‘추쇄도감의궤’, ‘창경궁영건도감의궤’ 등 왕실 기록문화의 꽃인 의궤에 대해 알아보고 그 속에 담긴 조선 시대 사회상을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올해는 ‘전통의 경험과 발견’을 주제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소개하고 직접 경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규방공예와 전통공예, 전통자수 교육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초보자라도 기법을 익히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어 수강생들의 호응이 높다. 특히 교육이 끝난 후 수강생들의 작품을 전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8. 파주 화폐박물관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마을에는 ‘세상의 거의 모든 돈’을 볼 수 있는 화폐박물관(관장 정옥희)이 있다. 금빛의 ‘화폐박물관’이란 돋움체 글씨가 붉은 벽돌과 잘 어울린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전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전시실을 가득 채운 것이 돈이다. 돈에 둘러싸여 화폐에 얽힌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살펴보는 재미가 특별하다. ■ 화폐에 새겨진 새 기획전 ‘화폐 속에서 예술을 만나다-화폐 속의 새’는 올해 경기지역 문화예술 플랫폼 육성 사업이다. 새만큼 사랑스러운 존재가 또 있을까. 지폐 속에 등장하는 새의 종류가 참으로 다양하다. 자연 속의 새를 찍은 천연색 사진과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그 새를 디자인한 지폐를 전시한 액자가 나란히 걸려 있다. 문득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시물을 배치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긴 부리로 꽃의 꿀을 빨아먹는 귀여운 ‘벌새’를 찍은 사진과 벌새를 디자인한 네덜란드령 안틸레스에서 1994년 발행한 10굴덴 지폐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로 알려진 극락조는 파푸아뉴기니 2키나의 모델인데, 화폐에 디자인된 것은 국가 문장(紋章)인 극락조의 모습이다. 2001년 발행한 스웨덴 20크로나에는 ‘닐스의 이상한 여행’의 동화 작가 셀마 라게를뢰프의 초상과 닐스가 거위를 타고 모험하는 풍경이 그려져 있다. 동화의 한 장면을 지폐에 담은 스웨덴의 문화가 사랑스럽다. 싱가포르 지폐에는 목이 흰 물총새가, 인도네시아 지폐에는 두 마리 백로가 등장한다. 덴마크 20크로네에는 18세기의 유명한 초상화가 옌스 유엘의 초상과 유럽참새 두 마리가 그려져 있고 중국 50위안 속에는 다섯 마리 비둘기가 날고 있다. 새의 실물 사진과 새를 디자인한 지폐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밌다. 화폐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을 비롯해 자연과 건축, 음악과 미술까지 담겨 있음을 깨닫는다. “화폐란 그 나라의 얼굴로 몇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일정한 형태,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동일한 도안, 교환 가치를 나타내는 금액의 표시, 모든 거래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결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통용력 등입니다.” 박물관 관계자가 제시한 조건을 기준으로 화폐를 살펴보니 흐릿했던 질서와 원칙이 보이기 시작한다. ■ 그 나라 최고의 디자이너가 만든 예술품 1층과 2층의 전시실에는 세계 130여개국의 화폐 3천8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이것을 예술, 문학, 과학 등 주제별로 분류해 전시하고 있다. 전시 공간을 재미있게 구성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1층 제1전시실에 전시한 대한민국의 화폐부터 관람을 시작한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주화 ‘건원중보’를 자세히 살펴본다. 가지에 엽전이 주렁주렁 매달린 돈나무는 무엇일까? “쇳물을 녹여 흘려보내 상평통보를 만드는데 마치 나뭇가지와 나뭇잎처럼 보여 ‘엽전’이라 부르게 됐습니다. 한국은행에서 구해와 전시한 것이지요.” 엽전이란 말은 나뭇잎을 닮은 동전이란 뜻이다. 궁금했으나 잊고 있었던 오랜 의문이 풀린다. 상평통보가 상상 이상으로 많이 전시돼 있는데 모양과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옛날 이야기에 등장하는 ‘냥(兩)’은 ‘원’만큼이나 익숙한 화폐 단위다. 무게의 단위에서 유래한 것으로 1876년 개항까지 사용됐다. 1901년 화폐 조례가 공표되면서 등장했다는 ‘환(圜)’은 낯설다. ‘환’은 1953년 제2차 통화개혁 때 다시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1962년 제3차 통화개혁 때부터 등장한 ‘원’이 현재까지 사용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화폐 단위다. 학생들이 독재자를 몰아낸 4·19혁명은 이승만 초상화 일색이던 지폐에도 새바람을 일으켰다. 1962년 발행된 지폐에 평범한 시민이 지폐에 등장한 것이다. “5·16 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저축을 독려할 목적으로 만든 100원권 화폐였는데 당시 조폐공사 직원에게 한복 입고 덕수궁으로 나오도록 해 모델로 삼은 것입니다. 그 모자는 지금도 생존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념비적인 지폐는 군사정부가 화폐개혁을 단행하면서 한 달도 사용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후 등장한 인물이 세종대왕과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충무공 이순신이다. “이 지폐를 잘 보세요.” 박용문 학예사가 가리키는 것은 1972년 제작한 5천원권 지폐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뜻밖에도 율곡 선생의 코가 너무 높다. 여기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1970년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지폐를 만들 능력이 되지 않아 영국에 의뢰해 제작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율곡 선생의 코를 서양인처럼 그린 것이지요. 우리의 인쇄 기술이 없어 영국에서 제조했기 때문이에요. 이 논란을 계기로 표준 영정제가 도입돼 기관마다 다르던 인물 초상을 표준화합니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의 화폐 제작 기술은 세계에서도 가장 앞선 나라에 속한다. 우리나라처럼 디자인부터 인쇄, 주화의 주조까지 100% 전 공정을 소화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몇 나라가 되지 않는다. 성서 시대와 로마 시대에 통용되던 주화를 발견하고 그 크기가 생각보다 훨씬 작은 것에 놀란다. 이처럼 오래된 화폐의 진품을 가까이서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이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역사적 의미와 희귀성을 가진 유물의 가격은 상상 이상이다. 서양 것만 가격이 높은 것도 아니다. 구한말의 5원짜리 금화는 2억5천만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화폐박물관이 아니면 도저히 볼 수 없는 귀중한 유물이다. “화폐는 그 액면가와 관계없이 그 나라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만든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폐 속의 미술, 음악, 문학, 과학 등 주제별로 분류 전시하고 있습니다. 화폐의 인물은 그 나라의 가장 중요한 인물일 테니 그 인물들만 공부해도 한 나라의 정치와 역사, 의식과 문화까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화폐는 그 나라의 역사를 읽는 도구이고 그 나라의 의식을 보는 창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화폐에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도 담겨 있다. 100조마르크 지폐가 있다. 한국의 총통화량보다 많은 액수가 지폐 한 장이다. 0이 몇 개인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패전국 독일에서 사용된 100조마르크 지폐와 1조마르크 주화, 유고 내전 때 유고슬라비아에서 발행된 500억디나르짜리 지폐도 볼 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도 온통 돈이다. 제2전시실에는 시대별 세계 주화를 만날 수 있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의 기념주화와 화폐 관련 조형물도 전시하고 있다. ■ 돈과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공간 박용문 설립자와 정옥희 관장은 은행원 출신 부부다. 제일은행에 입사해 30년을 금융 일에 종사한 전문인이다. 1985년부터 금융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은행 관련 자료를 모으고 취미로 화폐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파주 헤이리마을을 조성할 무렵 이곳에서 살기로 결심하면서 화폐 수집에 열을 올린다. 일본이나 유럽의 문화공간을 두루 탐방하면서 헤이리에 평생 금융인으로 일해 온 자신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살린 문화공간을 만들기로 다짐한 것이다. 부부가 한마음으로 노력해 2008년 전국 최초로 사립 1호 화폐박물관을 개관한다. 관에서 운영하는 것으로는 한국은행과 한국조폐공사의 화폐박물관이 있을 뿐 현재까지 사립화폐박물관은 이곳이 유일하다. 짐작하듯이 사명감과 애정 없이 박물관을 운영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의미를 소중히 생각하기에 경영은 어렵지만 즐겁게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가족과 어린이의 단체 방문이 꾸준하다는 사실이다. 전시실 중앙에 걸린 액자에 새겨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란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화폐박물관이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되새겨 본다. “…약은 사도 건강은 살 수 없고, 시계는 사도 세월은 못 산다. 돈의 가치는 그것을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데 있으니,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인이 되자.”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7. 이천 경기도자미술관

기대 이상이다. 도자예술의 세계가 이처럼 넓고 재미있고 풍성하다니! 이천 설봉산 자락에 안긴 ‘경기도자미술관’에서 만난 도자 작품은 상상력의 최첨단에 서 있다. 2022년 하반기부터 1년 넘게 새롭게 단장해 11월24일 재개관하며 선보이는 첫 소장품 상설전의 이름이 ‘현대도예-오디세이’다. “가장 큰 변화는 소장품 상설전이 마련됐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도자엑스포 준비 때문에 자주 문을 닫아야 했거든요. 그럼에도 전시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뜻에서 오디세이란 이름을 붙였어요.” ■ 천의 얼굴을 가진 도자 2001년 3월 개관한 이천세계도자센터는 2021년 3월 ‘경기도자미술관’으로 명칭을 바꾼다. 20년이나 사용하던 이름을 바꾼 까닭은 현대도자미술관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미술관의 환경도 확 바꿨다. 관람객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디지털 전시 콘텐츠 제작과 콘텐츠 고도화에 공을 들였다. 경기도자미술관이 소장한 2천466점의 작품은 한국현대도예와 세계현대도예의 역사에서 중요한 거장의 작품을 비롯해 동시대 현대도자예술의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 작품 중에서 선별해 상설전을 준비한 것이다. 따라서 작품을 감상할 때 과거나 전통이 아니라 현대와 변화에 시선을 맞춰야 한다. 경기도자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은 현대도자미술의 놀라운 성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도자가 아니면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도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오묘한 매력을 선사한다. 흙으로 빚는 도자는 회화나 조각보다 훨씬 까다로운 과정, 불의 단련을 거쳐야 완성된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다. 김지수 큐레이터의 해설을 통해 도자의 변신이 이미 오래전에 이뤄졌음을 확인한다. “1950년대 전근대적 도자 수공업에서 벗어나 예술로서 도자가 등장합니다. 수공예적 도자에 대한 관습적 사고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대미술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표현 매체’인 예술로서 인식의 전환을 맞으며 등장한 것이지요.” ■ 통념을 벗겨주는 현대도예-오디세이 ‘현대도예-오디세이’는 도자에 대한 통념을 시원하게 벗겨준다. 예술로서 도자를 정립한 20세기 현대도예의 시작과 오늘날 현대도예의 다양한 표현 양상을 살펴볼 수 있도록 3부로 꾸며졌다. 1부의 주제는 ‘흙, 현대 도예의 서막’이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 전쟁의 폐허 위에 한국 도자의 1세대 작가들이 설립한 ‘한국조형문화연구소’, ‘한국미술품연구소’, ‘한국공예시범소’가 한국 도자의 변화를 끌어낸 주역이다. 경영난으로 연구소는 곧 문을 닫지만, 참여 작가들은 조선 도자의 전통을 간직한 이천에 하나둘 자리를 잡으면서 이천은 도자의 성지로 거듭난다. 3대를 잇는 작가들의 작품은 전통의 힘을 보여준다. ‘벗어나고 싶은 심정’은 얼핏 청년 작가의 작품처럼 파격적이다. 그러나 사실은 90대의 원로작가 정담순이 2000년에 제작한 작품이다. 사각의 닫힌 벽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인물의 모습에서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작가의 열망이 느껴진다. 1960년대를 전후해 한국의 대학에서도 도예 교육이 시작된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정규, 권순형, 김익영, 원대정 같은 1세대 작가들이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작가들을 길러낸다. 전통의 흐름을 계승한 일본과 달리 단절되다시피 한 전통을 새롭게 복구한 이들의 노력은 지금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 옆에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작품들을 배치해 시선을 집중시킨다. ‘점토혁명’을 통해 현대 도예의 세계를 확장한 미국 작가의 작품이다. 전통이 짧기 때문일까, 이들은 더욱 과감하다. 흙덩어리를 던지고 부수는 파격적인 모험을 감행한다. 왜 가죽옷을 벽에 걸어놓았을까? 도자로 부드러운 가죽의 질감까지 살려낼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한 작가의 솜씨에 놀란다. 전통에서 과감히 벗어나 흙이 갖는 물질에 집중한 작품들은 도자예술의 미래를 상상하도록 자극한다. 역시 일본 작가들의 작품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과 확연히 구별된다. 소품들이지만, 현대 도예의 선두에 일본의 작가들이 서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한미일 3국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통해 현대 도예가 어떻게 생겨나 변모해 왔는지를 확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2부 ‘흙, 물질과 조형 언어’는 21세기 현대 도예의 다양한 경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국제 공모전에 입상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깨지는 도자의 특징을 이용해 만든 홍콩의 작가 유엔 소링의 ‘무제’는 도자예술의 첨단을 보여주는 듯하다. 노르웨이 토르비욘 크바스뵈의 2014년 작 ‘튜브 조형물’도 묘한 매력을 풍긴다. 창자처럼 잘린 튜브를 겹겹이 쌓았는데, 흙을 빚어 이지러지지 않고 형태를 그대로 살려낸 작가의 솜씨가 경이롭다. 흙의 성질을 아는 사람이라면, 흙을 반죽해 본 적이 있다면 얼마나 놀라운 작품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3부 ‘흙, 현대 도예의 모색과 탐구’에서 더욱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상의를 벗은 할머니가 베개를 쥐어뜯어 사방에 깃털이 어지럽게 흩어진 침실의 풍경이 펼쳐진다. 미국 작가 팁 톨랜드가 2017년에 제작한 작품 ‘짜증’은 도자의 표현이 어디까지 가능할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섬세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솜씨에 거듭 경탄한다. 벨기에 작가 안 반 호이의 ‘기하학에 대한 탐구’란 작품은 흙의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가는 점토를 종이처럼 얇게 펼친다. 잠시만 발을 멈추고 작품을 응시하면 내 안의 고정관념, 상식과 통념이라는 바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상설전을 본 후 기획전시를 볼 수 있도록 관람 동선을 도자기 속처럼 나선형으로 구성했다. 현대도자미술을 재미있게 감상하려면 상설전을 반드시 관람해야 한다. 상설전은 현대도자미술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오솔길이다. ■ 흙이 빚어내는 놀라운 세계 미술관 앞에 세워진 ‘도자문화선언문’을 읽어본다. 2001년 8월 ‘세계도자엑스포2001경기도’를 개최하며 세계도자엑스포조직위원회가 작성한 것이다. “산업기술은 인류에게 많은 것을 주고 또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하지만 흙과 인간의 손으로 빚는 도자의 기술은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직 편하고 아름다운 삶을 창조해 내는 데 기여해 왔다.” 도자는 인류에게 무엇을 말해줄까?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 자연과 문명을 융합하여 지구파괴의 위협으로부터 생명권을 보존하면서 전통기술과 미래의 첨단기술을 이어 단절을 지속의 역사로 바꾸어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경기도자미술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국제교류다. 2001년 개관 이래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를 비롯한 다양한 국제교류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2019년까지는 해외 진출과 세계도예의 국내 유입을 위해 추진됐다면, 2020년 이후는 미술관의 역할과 정체성 확립에 집중하여 세계 속 한국현대도예의 지평을 넓히고 담론을 형성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작가들의 기획과 참여로 이뤄지는 ‘토락교실 교육프로그램’은 도자예술과 음악 미술 체육 등 다채로운 분야를 접목한 프로그램을 통해 참여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경기도자미술관이 자리 잡은 설봉공원 주변에는 이천시립박물관과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이 있어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공원을 산책하며 세계적인 조각가들의 멋진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 이천에 여행을 떠날 때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하겠다. 경기도자미술관은 변신 중이다. 미술관의 콘텐츠와 일부 시설을 보완한 2024년 4월 초에 공식적인 재개관이 이뤄질 전망이다. 그날이 기다려지지만, 지금의 상설전만으로도 현대 도자미술의 멋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6. 화성 엄미술관

화성시에 보석처럼 단단한 미술관이 있다. 화성시 봉담읍 오궁길 37 산자락에 안긴 엄미술관(관장 진희숙)은 조각의 보물섬이다. 미술관 이름 ‘엄’은 한국의 1세대 조각가 엄태정 서울대 명예교수를 가리킨다. 엄미술관은 엄 작가의 개인 작업실을 개조해 2016년 개관한 사립미술관이다. 진희숙 관장은 엄 교수가 창작한 작품을 전시하고 현재도 창작에 전념하는 이곳을 “작가의 고향 같은 곳”이라고 소개한다. 건축가 고(故) 김성국 교수가 설계한 진회색의 미술관은 얼핏 연립주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술관에 들어서면 전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 세계적 조각가의 창작실에 세운 미술관 미술관 안은 기둥과 들보로 지붕을 떠받친 한옥처럼 따사롭고 아늑하다. 실용과 멋스러움이 어우러진 사색의 공간에 평생을 조각에 몰두한 엄 조각가의 청동조각과 회화작품이 숲속의 나무와 돌처럼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다. 평생 조각에 매달려온 노대가의 회화도 예사롭지 않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 벽면에 전시한 커다란 하트 모양의 작품부터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얼마나 손목을 움직여 그려낸 것일까.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서 종이와 먹이 만난 표면을 살펴본다. 수만 번의 치밀하고 섬세한 붓놀림으로 완성했을 작품은 놀랍게도 차분하고 편안하다. 오롯한 정성과 연륜이 묻어 나는 대가의 작품과 마주하면 자신도 몰래 옷깃을 여미게 된다. “선생님은 지금도 무거운 쇠를 용접하고 섬세하게 붓질하며 하루를 채우고 있습니다.” 진 관장이 들려주는 엄 작가의 일상은 구도자의 그것이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작가를 청년처럼 움직이게 하는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엄 작가의 작품은 관람객의 들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힘을 가졌다. 2층 전시실에서 만난 엄 작가의 작품들은 메시지가 구도자의 기도처럼 간결하고 또렷하다. 대가의 연륜과 깨달음이 빚어낸 작품을 오래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영혼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엄미술관의 설립 의도를 진 관장은 이렇게 들려준다. “오랫동안 작가가 작품을 위해 애쓴 공간으로 창작의 예술적 삶이 생생하게 스며 있어 미술관의 가치가 있다.” 엄 작가의 아내로서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를 곁에서 도와야겠다는 마음에서 미술관을 시작한 진 관장이 가장 고민하고 정성을 쏟은 것은 지역민들에게 다가가는 미술관이었다. 그의 노력으로 이웃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미술관에 들어설 만큼 문턱이 낮아졌다. 다양한 기획과 방식으로 이웃을 미술관으로 초대하고 있다. ■ 치유하는 힘을 가진 조각 엄 작가는 ‘현대 조각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마니아 출신의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1876~1957)의 작품에 매료돼 전공을 조각으로 결정한다. 조각의 추상화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한 브랑쿠시를 스승으로 생각하는 엄 작가는 자신의 예술관을 이렇게 풀어낸다. “추상 조각은 사물의 형태를 모방하는 게 아니다. 사물을 사유하고 사물의 본질을 수행을 통해 찾아내는 일이다.” 조각을 통해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할 수 있다고 믿고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엄 작가의 조각은 깊은 사색이 바탕이다. “조각은 사물을 사유하고 그 안에 내재된 본질에 다가서며 참다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추상 조각은 사물의 형태를 모방하는 게 아니라 사물을 사유하고 수행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찾아내는 일이다.” 지난 10월 작고한 김남조 시인은 ‘김세중조각상’을 수상한 엄 작가를 시인으로 불렀다. 사색하는 조각가 엄 교수는 글을 잘 쓰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엄 작가는 1967년 제16회 국전에서 국무총리상을, 1971년 제2회 한국미술대상전 최우수상을 받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조각가의 반열에 서게 된다. 이미륵상(2012년)을 수상하고 프리즈 런던 스컬프처(2019년)에 선정되기도 한다. 일찍부터 국전 추천작가와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한다.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독일 베를린 예술대 연구교수를 지냈다.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엄 작가의 조각 작품은 나라 안팎에서 만날 수 있다. 대법원 중앙 정원에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동물인 해태의 뿔과 꼬리를 조형화한 ‘법과 정의의 상’과 모교인 서울대에 설치된 ‘쌍학’은 품격과 불멸, 지혜를 상징한다. 독일 베를린 총리공관에도 그의 작품이 영구 소장됐다. ■ 지구의 존엄을 지키자 엄미술관은 지구 생태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개발과 성장 만능주의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인 2019년 ‘환경전’을 시작해 ‘대지의 연금술’(2020년), ‘코로지엄과 식탁 위에 카오스’(2021년), ‘푸드 체인 프로젝트’(2022년)는 환경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후 변화를 주제로 선정해 기획한 전시들이다. “오늘날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지구 환경과 땅의 찬가가 필요한 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구에 지구 고유의 마법, 고유의 존엄을 돌려 주려 합니다. 지구 앞에서 경탄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지난 9월 생태미술의 작가로 알려진 ‘이경호’ 개인전에서 진 관장이 건넨 인사말이다. 엄미술관은 전시를 기획할 때부터 폐기물이 나오지 않거나 적게 나오도록 고민한다. 어린이들에게 생태와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는 교육도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다. 환경과 생태를 소중히 하는 엄미술관의 생각은 꾸준한 프로그램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현재 1층 전시실에서 ‘용하현 개인전-사라지다, 살아지다’가 열리고 있다. “화성시와 화성문화재단의 2023 화성예술지원사업으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작가 용하현은 지역의 대학생이지요.” 대학생이 개인전을 열다니 용 작가는 행운아임이 틀림없다. 입구 오른편에 작품들이 여러 점 걸려 있다. 올해 제작한 ‘바다’란 작품이다. 푸른색을 머금은 한지와 얼음 조각처럼 차가운 빛을 내는 유리를 배합해 색다른 느낌을 전달한다. 제작 기법이 유리에 열을 가해 굽는 과정을 거친 ‘유리 가마 소성’이다. 찢기고 해어진 현수막에 포구와 어촌이란 글자가 보이고 뒤집힌 세움 간판이 ‘조개구이전문’인걸 보니 작가가 주목한 곳은 바닷가 마을이다. “…무분별한 도시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자연과 이곳에 남아 계속 살아가게 될 우리의 모습을 담아 내려 한다.” 작가의 문제의식, ‘사라지고, 살아지는’ 주제를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공간을 어떻게 배분해 작품을 설치하는가는 큐레이터의 변함없는 숙제다. 용하현 개인전에서도 작품과 전시 공간의 조화, 관객의 시선을 고려한 배려가 전시장 곳곳에서 느껴진다. ■ 품격을 지키며 앞으로 지난 5월 개막한 작가 씨킴의 작품을 담은 도록 ‘충심의 사물, 그 예술의 꿈’을 펼쳐본다. 한글과 영문을 함께 적은 도록에서 품격이 느껴진다. 개관 때부터 매년 두세 차례씩 펴낸 도록은 예술작품처럼 아름답다. 이런 편집 방침을 고수한 덕분에 ‘올해의 박물관미술관 출판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이처럼 매사에 투철하지만 사립미술관의 운영은 매우 고달픈 일이다. 수입은 고사하고 지출이 늘어간다. 열심히 일하면 알아주리라 기대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 비웠다. 이제까지 지켜왔던 품격과 신념을 지키며 앞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 미술관 마당에는 소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다. 푸른 소나무와 쇠로 된 조각이 어우러진 풍경과 늦가을 햇살에 황금빛으로 물든 미술관이 멋스럽다. 산자락에 포근히 안긴 미술관에 가을 햇볕이 가득하다. 엄미술관에서 가까운 거리에 세계유산에 등재된 융릉과 건릉이 있다. 찜질방을 개조해 만든 소다미술관과 용주사 경내에 있는 효행박물관도 멀지 않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겠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5.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노여움도 내려놓고 아쉬움도 내려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이 유명한 시를 지은 이는 나옹 선사(1320~76)이다. 고려는 물론 중국에서도 명성이 높았던 나옹 선사가 득도한 곳이 양주시 천보산 자락에 자리한 회암사다. 나옹은 고려 말의 개혁 군주 공민왕의 스승이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 대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는 무학 대사가 주지로 있는 회암사에 자주 행차했는데 1398년 상왕으로 물러난 후 회암사에 궁실을 짓고 머무르며 수행하기도 했다. 왕실사찰인 회암사는 세종의 작은 형 효령대군을 비롯해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수렴청정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문정왕후 등 왕실의 후원으로 번영을 누린다. 그러나 회암사가 언제 설립되고 언제 폐사됐는지조차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12세기 건립되고 16세기 말 어느 시기 유생들의 방화로 폐사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1964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회암사지를 1997년부터 2019년까지 13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벌였다. ■ 고려 말 조선 초 최고의 왕실사찰 회암사의 위상 최석현 학예연구사의 안내를 받아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양주시장 강수현) 상설전시실을 둘러본다. 왕을 상징하는 용무늬 그림을 배경으로 기록해 놓은 회암사의 역사가 흥미롭다. 회암사를 조선 최고의 사찰로 만든 지공 선사, 나옹 선사, 무학 대사의 초상을 만난다. 우리 역사를 풍부하게 기록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회암사를 어떻게 소개할까. “회암사는 천보산에 있다. 고려 때 서역의 중 지공이 여기에 와서 말하기를 ‘산수형세가 완연히 천축국 나란타사원과 같다’고 했다. 그 뒤 중 나옹이 절을 세우기 시작했으나 마치지 못하고 죽었고, 그 제자 각전 등이 공역을 마쳤다. 절이 무릇 262칸인데 건물과 상설이 굉장하고 아름다워 동방에서 으뜸으로 중국에서도 많이 볼 수 없는 정도다. 목은이 기문을 지었다.” 태종실록의 기록은 더욱 흥미롭다. “태상왕이 소요산에서 회암사로 행차했다. 태상왕이 회암사를 중수하고 또 궁실을 지어 머물러 살려고 하니 임금이 그 뜻을 어기기 어려워 대부 150명을 보내 부역하게 했다.” 조선왕조실록은 태조 이성계가 회암사를 일곱 번 방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모형으로 회암사를 찾는 태조 이성계의 행차 장면을 보여준다. 발굴한 유물이 생각보다 풍성하다. 지붕에 올라가는 장식기와 잡상이 놀랍게도 갑주를 입고 앞을 노려보는 무장 형상이다. 회암사지에서 발굴한 잡상은 삼장 법사, 손오공 등 ‘서유기’의 등장인물이 아니라 갑옷을 입은 무장형과 인간과 동물의 모습이 혼합된 반인반수형, 말이나 새 등의 동물을 표현한 동물형이다. 전시실 중앙에 전시된 청동금탁은 어떤 사연을 품고 있을까. 보광전 처마에 매달려 청아한 소리로 승려들의 마음을 씻어줬을 청동금탁은 높이 31.7㎝, 지름이 30.7㎝나 되는 초대형인데 몸체 상단에 15자, 하단에 134자가 새겨져 있다. 금탁에 새긴 소원이 갸륵하다. “우리가 이 신묘하고 아름다운 연기를 받들어 조선의 국호가 만세에 전해지도록 하소서. 전쟁이 영원히 그쳐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고 마침내 같은 인연의 깨달음으로 돌아가게 하소서.” 정교하게 조각된 대형의 용두와 토수에서도 왕실사찰의 위엄과 품격이 느껴진다. 커다란 송곳니를 드러내고 목을 뒤로 젖힌 용은 지붕 처마 끝자락을 하늘로 들어올릴 듯 힘과 기상이 넘친다. 범어가 새겨진 수막새 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1434년 세종의 작은 형 효령대군이 제작한 ‘효령대군 선덕갑인’은 회암사의 역사와 위상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고고함이 느껴지는 최상급 자기의 바닥에 새겨진 천, 지, 현, 황 순의 글자가 이채롭다. 파란빛의 청기와는 청동금탁 못지않게 희귀한 유물이다. “청기와를 제작하려면 화약의 원료인 염초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신하들은 비용이 많이 드는 청기와의 사용을 강력하게 반대했지요.” 영상으로 만나는 ‘회암사 대가람’이 압권이다. 고려 말, 조선 초 최대의 왕실사찰 회암사 대가람을 복원모형 및 영상으로 각 건물의 역할과 생활상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모란과 국화 문양을 새긴 향로 향완이 우아한 자태를 자랑한다. “청동으로 제작된 향완은 많으나 분청사기로 제작된 것은 이것이 유일합니다.” ■ 양주 사람, 양주 이야기 박물관 2층에 마련된 ‘360° 다면실감’은 양주 화암사지의 역사적 의미를 4면의 벽과 천장과 바닥까지 6면의 미디어아트로 황홀하게 표현한다.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특별전시 ‘양주 사람, 양주 이야기’는 어떤 내용일까. “양주시 승격 20주년을 기념해 시의 유일한 공립박물관인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에서 그간의 역사를 돌아보는 내용으로 마련한 전시입니다. 2003년 시로 승격한 이후 현재 인구 26만의 도시로 성장했지요. 가장 성황을 이뤘던 조선시대 양주목에서부터 근현대기 양주군까지의 내용을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전시된 여러 종류의 고지도 중 ‘조선팔도지도’는 옛 양주지역의 광활한 영역을 잘 보여준다. 조선 양주목의 기능을 확인할 수 있는 조선왕릉 및 양주목사 관련 유물도 눈에 들어온다. 양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의 3·1절 기념사가 가슴을 울린다. “우리 조국을 광복하오리다. 만일 그렇지 못하게 되면 나의 몸을 불에 태워 죽여주시오.” 양주는 600여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문화의 고장으로 양주별산대놀이를 비롯한 유·무형의 중요한 문화재를 여럿 간직하고 있다. 양주시의 위상과 미래 발전의 가능성을 전망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내년 2월까지 운영된다. 박물관 입구에 전통놀이 문화공간 ‘우리놀이터 양주’가 있다. 노란색 벽에 옛날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공기, 고누, 팽이가 전시돼 있다. 11월18~19일 이틀 동안 이곳에서 진행할 전통생활문화교육 프로그램이 주목된다. ‘쿵떡쿵떡 놀이학당’은 어린이들이 여러 가지 전통놀이와 전통생활문화를 체험하면서 배려와 존중, 소통, 협력의 가치 등을 배우고 세대 간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교육 활동이다. 지난해 설치된 전통놀이 문화공간 우리놀이터 양주는 관람객 누구나 무료로 다양한 교구재를 통해 전통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현재 ‘2023, 주말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회암사지 출토유물을 주제로 어린이 역사탐험대, 모의 발굴체험, 얌얌 쿠킹클래스, 왕실 백자공작소, 역사꿈틀 자연꿈틀, 전래놀이 등 6종의 주말 교육프로그램이다. 올해 새롭게 개설한 ‘어린이 역사탐험대’는 회암사지 유적이 지닌 역사적 배경과 지역 문화유산 및 교과단원 연계를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높이는 프로그램이다. ■ 회암사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양주시는 2015년부터 7년간 학술연구를 통해 지난해 7월20일 양주 회암사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양주시는 올해 1월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전담할 세계유산추진팀을 신설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박물관 광장에 세계유산 홍보관을 마련해 관람객들이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수도를 설치하고 회암사지 안내책자의 비치와 홍보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최석현 학예연구사가 회암사지가 세계유산에 등재될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들려준다. “양주 회암사지 유적은 14세기 동아시아에 만개했던 불교 선종문화의 번영과 확산을 증명하는 탁월한 물적 증거입니다. 불교 선종의 수행 전통, 사원의 공간 구성 체계를 구체적으로 증명하는 고고 유산이지요.” 박물관을 나와 숱한 사연을 간직한 유물이 쏟아져 나온 회암사지를 둘러본다. 나옹이 노래한 청산은 천보산이 아닐까? 천보산 너른 품에 안긴 회암사지를 답사하며 다시 나옹의 시를 읊조려 본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4.광명 충현박물관

한옥의 멋은 담장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와로 장식한 기다란 담장에 청사초롱을 닮은 등이 걸려 있다. 어두운 밤거리를 밝혀줄 따스한 불빛을 상상하며 대문을 열자 아늑한 풍경이 펼쳐진다. 광명시 오리로 347번길 5-6의 충현박물관 정원은 궁궐의 후원처럼 아름답다. 2003년 개관한 충현박물관(관장 함금자)은 조선의 명재상 오리 이원익(梧里 李元翼·1547~1634)의 생애와 직계 후손들의 유물과 유적, 종가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 ‘오리 정승’ 이원익의 영정에 담긴 사연 다듬잇돌이 가득한 계단을 오르면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박물관 입구에 전시한 이원익의 생애와 업적, 이원익 종가의 역사와 가계도를 통해 충현박물관이 종가박물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리 정승’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원익은 임진왜란을 극복하고 대동법을 시행한 탁월한 경세가이자 대표적인 청백리다. 충현박물관에서 가장 귀중한 유물은 네 점의 이원익 초상화를 꼽을 수 있다. 이원익과 동시대의 인물인 서애 류성룡이나 충무공 이순신의 초상화가 단 한 점도 없는 점을 견줘 봐도 아주 특별한 일이다. 보물 제1435호로 지정된 ‘호성공신도상 이원익 영정’은 이원익이 58세가 되던 1604년 그려진 작품이다. 오사모를 쓰고 흉배가 달린 단령포의 대례복을 입고 두 손을 소매 안에 넣고 ‘곡교의’라는 의자에 앉은 모습이다. 공신도상의 제작 과정을 보여주는 ‘초모본 이원익 영정’과 영정을 담는 함까지 완벽하게 보존한 사실도 놀랍다. ‘평양 생사당 구장 영정’으로 불리는 ‘이원익 선생 영정’은 경기도유형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된 것인데, 유물에 담긴 사연이 더욱 흥미롭다. 1595년 우의정에 제수돼 경상·전라·충청·강원 4도 도체찰사로 떠나자 평양 감영의 서리들이 생사당을 세우고 감사 이원익의 초상화를 그려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원익이 사람을 보내 사당을 허물고 수습해 온 영정이기 때문이다. ‘오리영우’에 모신 영정도 사연이 많다. 다산 정약용이 이원익의 영정을 모신 ‘오리영우’를 참배하고 이런 글을 남긴다. “이 한 사람으로 사직의 평안함과 위태로움이 달라졌고, 이 한 사람으로 백성의 여유로움과 굶주림이 달라졌고, 이 한 사람으로 외적의 진격과 퇴각이 달라졌고, 이 한 사람으로 윤리 도덕의 퇴보와 융성이 달라졌다.” 정약용이 목민관의 사표로 삼은 이원익의 친필도 여러 점 만날 수 있다. 경기도유형문화재 제230호 ‘이원익 유서’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1630년 84세에 손수 작성한 이 유서에는 후손들 간에 우애를 잃지 말 것, 항상 검소할 것, 자신의 장례를 풍수에 얽매이지 말고 간소하게 치를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원익이 77세로 관직에서 물러나자 왕이 기로연에서 의자와 지팡이를 내려주고 연회에 참석한 빈객과 주고받은 축시와 연회 장면을 그린 시화첩 ‘계해사궤장연첩’도 경기도유형문화재다. 목민관으로서 유념해야 할 덕목을 제시한 ‘연풍현감으로 부임하는 손자 수약에게’라는 글이 마음을 울린다.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고, 몸을 닦는 데는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공무에 충실하다가 소홀히 한 일도 없지 않았다. ‘도망시(悼亡詩)’를 나직이 소리 내어 읽으면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영일 정씨를 그리워하는 남편 이원익의 슬픈 얼굴이 그려질 듯하다. 이순신의 유고 및 관련 기록을 모은 ‘충무공가승’에 두 사람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글이 실려 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직속상관인 도체찰사 이원익에게 어머니를 찾아뵐 수 있도록 휴가를 허락해 달라고 보낸 청탁 편지는 심금을 울리는 명문이다. 이원익이 존경했던 류성룡의 ‘징비록’을 번역한 한글본도 희귀한 유물이다. 이원익이 손녀에게 써 준 정몽주의 시를 새긴 두 점의 목판에서 이원익을 향한 후손들의 존경심이 느껴진다. ■ 종부로 이어온 이원익의 정신 관감당(觀感堂) 편액, 오리영우 편액과 열쇠패도 이원익의 위대한 생애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이원익의 후손들이 과거에 급제한 사실을 보여주는 백패와 홍패,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향로와 향합에서 가문의 긍지가 느껴진다. 1층 전시실로 내려가는 계단에 부착된 글과 사진을 통해 ‘종가에서 박물관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400년 긴 세월을 이어온 이원익 종가의 유물로 채워진 전시실의 배치가 아기자기하다. 장죽으로 불리던 기다란 담뱃대와 푸른 녹이 슬어 더욱 정겨운 방짜 놋요강, 한겨울 방안을 덥혀 주던 화로, 떡과 다식의 모양을 멋스럽게 만드는 떡살과 다식판, 떡을 찌는 떡시루가 놓여 있다. 물건을 담는 버들고리, 다림질에 쓰이던 인두와 옷을 지을 때 사용한 가위와 자까지 조선 양반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유물이 가득하다. 숟가락 하나까지 소중하게 보관하고 정리해온 종부의 정성과 노력으로 만나게 된 유물이다. ‘오리 정승’의 정신을 잇는 후손들의 노력은 13대 종손 이승규 박사와 종부 함금자 관장까지 이어져 ‘최초의 종가박물관’인 충현박물관이 탄생할 수 있었다. 박물관 마당을 지나 경기도문화재자료 제90호인 종택에 들어선다.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문간채가 마당을 끼고 ‘ㅁ’자형으로 배치돼 있다. 1917년 건립된 안채는 13칸 반 규모의 소로수장집이다. 건넌방과 대청 및 안방, 부엌과 온돌방이 연결된 20세기 초반에 건립된 경기지역 살림집의 형식을 잘 갖추고 있다. 방과 부엌과 대청마루에 반상 및 장롱, 뒤주와 절구 같은 생활유물이 전시돼 있다. ■ 관감당, 고위 공무원들이 반드시 찾아야 할 집 ‘보고 느끼는 집’이란 뜻을 지닌 5칸의 한옥 관감당(觀感堂)을 소개한 안내판을 살펴본다. 1631년 1월, 인조가 승지를 보내 이원익을 문안하도록 한다. “두 칸 초가가 겨우 무릎을 들일 수 있는데 낮고 좁아서 모양을 이루지 못하며 무너지고 허술해 비바람을 가리지 못합니다.” 승지의 보고를 들은 인조는 “이공의 청렴하고 간결함은 모든 관료가 스승 삼아 본받을 바다”라며 5칸짜리 집 한 채를 지어 하사한다. 하지만 이원익은 “이것도 백성의 원망을 받는 한 가지”라며 받기를 사양한다. 거듭 사양 끝에 받은 집이 바로 ‘관감당’이다. 400년 수령의 측백나무와 이원익이 앉아 거문고를 연주했다는 ‘탄금암’에 앉아 관감당을 바라보며 이원익의 생애를 더듬는다. 종택과 관감당 사이로 난 길을 통과하면 이원익을 추모하는 사당 ‘오리영우’가 있다. 영정을 살피며 실록에 기록된 그의 모습을 그려본다. “이원익은 스스로의 몸가짐을 청렴하고 간소하게 해 하루에 먹는 음식이 몇 가지에 지나지 않았으며, 민폐를 살피고 무비(武備)를 잘 닦았기 때문에 비록 전쟁을 겪었어도 백성들의 마음이 흩어지지 않았다.” 정탁과 함께 죽음의 위기에 처한 이순신을 끝까지 변호해 살려낸 사람도 이원익이다. 1634년 정월, 향년 88세로 서거하자 사관은 그의 생애를 이렇게 추모했다. “…원익이 늙어서 직무를 맡을 수 없게 되자 바로 치사하고 금천(광명시 소하동)에 돌아가 비바람도 가리지 못하는 몇 칸의 초가집에 살면서 떨어진 갓에 베옷을 입고 쓸쓸히 혼자 지냈으므로 보는 이들이 그가 재상인 줄 알지 못했다.” 오는 30일까지 열리는 ‘여성생활사 특별전-충현박물관 소장 가구전’은 조선 시대 종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기획이다. 충현박물관에서 가까운 동산에 이원익의 신도비와 묘소가 있다. 그 곁에 광명시가 세운 오리서원은 공직자들의 청렴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는 이익을 보면 치욕을 생각했다.” 오리 이원익이 말년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들려준 말이다. ‘견리사치(見利思恥)’라는 오리의 말씀을 이 시대의 공무원들, 특히 장차관급의 고위공직자들이 기억하면 좋겠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3.수원 국립농업박물관

한국인들이 쌀밥을 먹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인구의 80%가 농촌에 살았지만,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배를 채워야 했던 ‘보릿고개’가 1960년대까지 이어졌다. 식량을 자급하고 쌀밥을 먹게 된 것은 불과 50년 전인 1970년대 중반이다. 쌀로 대표되는 농업은 한국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지금의 아이들이나 젊은 세대에게 까마득한 이야기 같으나 한국전통문화는 대부분 농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 농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 있다.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여기산 자락에 있는 국립농업박물관(관장 황수철)이 바로 그곳이다. 지난해 12월 개관한 국립농업박물관은 개관 10개월 만인 올해 10월 관람객이 40만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 농업의 성지에 자리를 잡다 ‘농업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박물관’을 주제로 하는 국립농업박물관은 전체면적 약 1만8천㎡ 규모로 전시동, 식물원, 교육동을 갖추고 있는 국민휴식처이자 교육장이다. 전시동에는 두 개의 농업관을 비롯해 기획전시실과 어린이박물관이 있고 식물재배시설도 갖추고 있다. 문득 궁금하다. 국립농업박물관이 삼성전자로 기억되는 인구 120만의 수원특례시에 왜 설립됐을까? “농업박물관이 자리한 이곳은 2014년까지 농촌진흥청이 있었던 곳입니다. 수원은 농업과 관계가 아주 깊은 도시인데, 박물관이 자리한 이곳 서둔동은 한국 농업의 성지라 할 수 있어요.” 농업박물관이 개관할 때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에 귀가 솔깃하다. “박물관 옆에 220년 전 정조대왕의 명으로 수원사람들이 만든 축만제가 있어요. ‘서호’로 불리는 축만제는 농사에 쓸 물을 저장하기 위해 만든 인공저수지입니다. 서둔동은 축만제의 물로 농사를 지었던 국영농장이 있었던 마을이지요. 2003년까지 서울농대가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국립농업박물관에는 ‘호호부실 인인화락’이라는 정조대왕의 꿈이 깃들어 있다. 박물관 뒤편 여기산에 있는 우장춘 박사의 무덤도 이곳이 한국 농업의 성지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 한 그릇의 밥이 상에 오르기까지 박물관에 들어서면 아홉 개 커다란 콩을 만날 수 있다. ‘임원경제지’에 기록된 재래종 콩인 ‘까치콩’을 모티브로 한 설치미술 작품인데, 예쁜 색깔의 커다란 콩 위에 걸터앉을 수도 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 옆에는 둥글고 커다란 식탁에 네 가지 곡물이 진열돼 있고, 네 개의 모니터에서 네 가지 곡물로 음식을 만든 사람들의 인터뷰가 상영되고 있다. “메밀은 베지근한 맛, 옥수수는 배틀한 맛, 수수는 들척지근한 맛, 팥은 훗 맛”이라 소개한 글을 나직하게 소리 내 읽어본다. 농업관1에 들어서면 벽면 스크린에서 영상을 보여준다. 하늘과 땅, 사람의 조화 속에 발전한 우리 농업의 역사와 문화가 화려한 영상으로 펼쳐진다. 문명의 시작과 함께 한 농사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땅과 물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전시된 쟁기와 멍에가 농사를 홀로 지을 수 없었던 사실을 일깨워준다. 경운기가 등장하기 전까지 누렁소는 농사일에 빠트릴 수 없는 존재였다. 품앗이와 두레의 전통이 보이는 유물도 있다. 뒤웅박에 담긴 것은 내년 농사에 쓸 종자다. 농부는 가장 좋은 과일이나 씨앗을 먹지 않고 종자로 남겨두었는데 이것을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 한다. 파종법, 농업용수의 이용, 제초, 비료 등의 주요 농사 기술의 발전상이 눈부시다. 식량 자급을 위해 분투한 한국인의 굳센 의지를 거듭 확인한다. 짚을 촘촘하게 꼬아 항아리처럼 만든 씨오쟁이와 탐스러운 곡식이 그려진 백자철화광구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농업의 근본이 되는 것은 땅과 물과 종자입니다. 종자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도구들이 이처럼 다양합니다.” 땅을 개간하고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확보해도 좋은 씨앗을 마련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예전에는 흔했으나 이제는 보기 어려운 농업 관련 유물을 살펴보며 이런 물건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귀중한 유물과 마주한다. “세종의 명으로 편찬된 ‘농사직설’과 장영실이 발명한 해시계 ‘앙부일구’는 진품입니다. 국립농업박물관을 대표하는 귀중한 유물이지요.” 세종대왕이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조선 팔도 농민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편찬한 ‘농사직설’의 가치를 강조한다. 농서를 편찬하기 위해 신하들의 의견을 널리 구한 정조대왕의 글 ‘어제권농정구농서윤음’도 꼭 살펴봐야 하는 유물이다.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서유구 같은 학자들이 정조의 뜻에 따라 농업을 개혁할 방안을 올린 사실을 떠올리며 세종과 정조처럼 위대한 지도자들의 공통점을 발견한다. ■ 농(農), 한국전통문화의 숲 농업박물관의 첫 기획전의 주제는 ‘농農, 문화가 되다’이다. 지난달 시작된 이 기획전은 우리 역사와 문화의 줄기이자 뿌리가 농업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황수철 관장은 관람객에게 기획전의 의도를 이렇게 소개한다. “우리 역사의 근본이자 문화의 밑바탕이 된 농업의 가치를 새롭게 찾아보고, 농(農)이 우리 사회의 뿌리임을 되새겨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수렵과 채집 활동을 하던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 “이 탄화미는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부터 한반도 전역에서 조·수수·기장·보리 등의 곡물이 출토돼 농사가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유물이지요.” 불에 탄 볍씨 한 알이 우리 고대사를 새로 쓰게 했다니 놀랍다. ‘농업, 먹거리, 삶’은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가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작고한 오윤의 판화 ‘춘무인추무의’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몸짓이 흥겹다. 풍물패들이 들고 등장하는 ‘농자천하지대본’은 농업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말이다. 밥을 지을 때마다 한두 숟갈을 통에 담았던 플라스틱 절미통이 여러 개 전시돼 있다. 1970년대까지 서민들의 부엌에 놓여 있었던 물건이지만, 어린이들이 저 물건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게에 장군이 올려져 있다. “인분을 담는 장군 앞에서 유치원생들이 사진 찍기를 아주 좋아했는데, 똥오줌을 담는 것이라고 알려준 뒤로는 멀찍이서 바라만 봐요.” 겨울이면 농부들이 사랑방에서 볏짚으로 만들었던 짚신과 멍석과 가마니도 쌀을 주식으로 삼았던 한민족의 문화를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3부 ‘삶 속의 예술, 농업’은 농업을 예술가의 눈으로 그려낸 것이다. 밥상으로 사용되던 소반, 만(卍)자가 조각된 고급스러운 찬합, 오색실로 국화꽃을 수놓은 수저집, 대한제국의 관인이 찍힌 됫박과 저울추 등 곡물을 계량하기 위한 물건이 시간을 과거로 돌려놓는다. ■ 과거를 지키고 현재를 지탱하며 미래를 준비해 가는 일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교육동에 마련된 식문화체험관도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별관인 식문화관에서는 한식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전시 관람과 요리강좌, 농생명과학 실험, 농업특화교육 등 다채로운 체험형 농업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야외체험시설은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계절별로 여러 가지 농작물을 재배해 농촌 경관을 재현하기 때문이다. 다랑논에서 자란 벼는 이미 추수했고, 밭에는 김장용 배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층층이 펼쳐진 다랑논이 포근하고 정겨운 농촌의 모습을 연출한다. 농사일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를 위한 농업박물관의 배려는 체험을 비롯한 교육프로그램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농업박물관은 교육박물관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수준 높은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연령대별 공간에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수요자 맞춤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전시주제 기반 자기주도형 교육과 활동지를 제공하고 있지요.” 사실적인 전시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생각하는 체험을 통해 농업에 대한 즐겁고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국립농업박물관의 부단한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2.남양주 모란미술관

푸른 소나무 우듬지와 파란 하늘빛이 조화로운 정원 가장자리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조각품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국광 작가의 ‘적(積)-만남의 장’이 나이테를 드러낸 나무처럼 자신의 속을 보여주며 말을 걸어온다. 미술관 카페 ‘발자크’에서 차를 마시며 정원으로 눈길을 돌린다. 넓은 정원의 중앙에 꿈틀거리며 춤추는 듯한 최만린 작가의 ‘태(胎)’를 배치한 의도를 알 것 같다. 아기를 잉태한 엄마의 배 속처럼 아늑하다. 남양주시 화도읍에 자리를 잡은 모란미술관(관장 이연수)에도 가을빛이 가득하다. ■ 시와 노래가 흐르는 미술관 넓은 잔디밭 너머로 두 개의 감각적인 건축물이 있다. 밝은 노란색의 사각형 건물은 수장고이고, 비스듬하게 우뚝 솟은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은 ‘노래하는 탑’이다. 잠시 벤치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미술관에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건축가 이영범이 설계한 ‘노래하는 탑’은 바람이 불면 맑은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던 곳이다. 노래하는 탑 안에 특별한 조각품 두 점이 소장돼 있다. 현대 조각의 길을 연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이 1898년 완성한 석고상 ‘발자크’와 한국의 대표적 조각가 김세중의 ‘피에타’이다. ‘발자크’에 대한 로댕의 발언이 놀랍다. “이 작품은, 나의 필생의 역작이며 미학적 동력이다. 이것을 창조한 날부터 나는 새로운 인간이 됐다.” 작품과 함께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더한 바람이 작가에게 또 있을까. 김세중의 ‘피에타’와 함께 로댕의 ‘발자크’는 모란미술관의 애장품이다. ‘피에타’를 조각한 작가 김세중(1928~1986)은 지난 10일 소천한 한국 시단의 거목 김남조 시인의 남편이다. ‘피에타’는 물론 김남조 시인과 이연수 관장의 특별한 인연도 모란미술관의 소중한 자산이다. 시와 조각으로 삶을 노래한 김세중 작가와 김남조 시인, 그들은 작품과 예술혼으로 모란미술관에 살아 있다. 모란미술관 곁에 모란공원이 있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이처럼 우리 가까이에 있다. ■ 달리는 말과 시계, 낡은 책은 무엇을 보여줄까 현재 진행 중인 2023 모란미술관 특별기획전의 초대 작가는 ‘이석주’다. 한국 구상화의 원로 작가인 이석주는 추상미술이 한국 화단을 주도하던 1970년대 극사실회화를 선보이며 구상회화의 새로운 흐름을 끌어낸다. 극사실적 표현을 통해 현실에서 마주하는 개인의 정서나 느낌을 표현했던 작가의 대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이석주 작가의 안내에 따라 초기 작품을 전시한 1층부터 2층으로 이동하며 작품을 살펴본다. 1970년대 군사독재와 불안정한 청년기의 고민이 느껴지는 ‘벽’과 ‘일상’의 연작은 1970년부터 1980년대까지 이어진다. 1977년 작 ‘벽’은 마치 붉은 벽돌이 튀어나올 듯하다. 벽은 단절을 상징하지만,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 꼭 필요하다. 그러니 부정하거나 버릴 수 없다. 인간이 살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한 작품들이다. 1987년 작 ‘일상’은 시계와 구두를 통해 반복되는 현대인의 삶을 보여준다. 시계 판에 새겨진 숫자가 ‘111’, ‘00’, ‘99’처럼 제멋대로다.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것은 여전하지만 인간은 결국 늙어 죽는다. ‘일상’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늘씬한 말이 사랑스럽다. 자세히 보니 그 아래는 시계가 놓여 있고 지평선 너머 연기를 뿜으며 열차가 달리고 있다. 열차 앞부분은 선명하지만, 뒷부분은 흐릿하다. 철판을 잘라 붙여 만든 ‘창’은 1999년 작인데, 매우 실험적이다. 바늘이 없는 시계가 걸려 있고, 창엔 꽃이 담긴 화병이 있어 주제는 비슷하다. 스승의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가 창에 뚫린 예수의 가슴에 손가락을 넣는 장면을 담은 ‘사유적 공간’은 259×388의 대형이다. 두 사람 아래는 역시 대형 시계 판이 놓여 있다. 우리의 눈에 익숙한 명화들이 이석주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점이 흥미롭다. 작가의 그림에는 카라바조, 렘브란트를 비롯해 20세기 화가 에드워드 호퍼 같은 거장들의 작품이 등장한다. 아마도 이것은 자신과 관객에게 생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말은 늘씬하고 강인하며 시곗바늘은 길다. 작가는 말과 시계를 통해 빠르게 지나가는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려는 것일까. 그의 작품에 공통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 바로 눈부시게 밝은 빛이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세상이지만, 매 순간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최선의 삶이겠다.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작가의 임무가 아닐까. ■ 어머니 품처럼 따스하고 편안한 미술관 모란미술관 야외 공원은 유명 조각가들의 작품으로 풍성하다. 잔디밭과 나무 아래서 멋진 조각 작품들과 만난다. 3만3천㎡(1만평)에 달하는 넓은 모란미술관의 산책로를 따라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즐겁다. 뒷짐을 진 할아버지 뒤로 염소들이 줄지어 따르고 있다. 여유와 인정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벌거벗은 여덟 명의 사내들이 커다란 통나무를 어깨에 메고 힘겹게 서 있다. 무게를 감당하는 사내들의 허벅지에 힘줄이 뚜렷하다. 한 사내는 탈진한 듯 곧 쓰러질 것 같은데 뒤에 있는 사내가 몸을 받쳐줘 겨우 서 있다. 통나무에 새겨진 사람들의 얼굴과 마주하고 흠칫 물러선다.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들이기 때문이다. 임병선 작가의 ‘사람들-오늘’은 우리가 처한 현실을 곰곰이 돌아보게 한다. 흥미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왜 캔버스가 나무에 걸려 있을까? “지난해 초대전 ‘자연하다’를 열었던 김아타 작가가 설치한 것입니다. 바닷가에 혹은 모래밭에 숲속에 세웠던 캔버스를 이번에는 모란미술관 정원에 세운 것이지요. 김 작가님은 ‘자연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신정원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며 캔버스를 다시 살펴본다. 한 해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자연이 그려낸 그림이 신기하다. 마크 브뤼스의 1992년 작 ‘우리 집’은 모두의 바람처럼 안정되고 튼튼하다. 김영중의 ‘사랑’은 그윽하고 웅숭깊다. 산책로를 따라 만나는 작품과 대화하다 보면 머릿속이 가을 하늘처럼 투명해진다. 모란공원 곁에 조각미술관을 건립할 계획을 세운 사람이 궁금하다. ■ 만남과 인연을 소중히 하며 달려온 33년 “1990년 4월 개관했으니 올해 33주년이 됐습니다. 30주년이 되던 2020년 펴낸 ‘모란미술관 30주년 1990-2020’에 그간의 실험과 성과와 성장의 과정이 정리돼 있습니다.” 이연수 관장은 ‘모든 것에 감사한다’라는 말로 33년의 여정을 들려준다. “30년의 하루는 축복으로 감사한 날들이었지요.” 개관전 주제를 ‘21세기를 향한 조각의 새 표현 전’으로 잡은 것에서 짐작되듯 미래의 전망을 제시하고 새로운 형식을 선보인다. 출발부터 조각의 현실을 냉철히 진단하며 방향성을 제시한다. 1992년 ‘국제조각심포지엄’을 열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을 기르고 지원하는 일에 앞장섰다. ‘모란미술대상’과 ‘모란조각대상’으로 역량 있는 조각가를 발굴하고 지원해왔다. 건축, 설치, 조각을 아우르는 ‘모란 폴리 2015 국제공모전'은 한국을 넘어 세계를 아우른 국제대회였다. 모란미술관의 저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모란미술관에서 만난 사람은 많지만 고(故) 이경성 관장님과의 인연은 특별합니다. 오랫동안 미술관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고 미술관의 길을 이끌어 주신 분입니다.” 평론가 이경성 선생(1919~2009)의 뜻대로 모란공원에 묘소를 마련한다. 멀지 않은 곳에 평론가 김윤수 선생의 묘소도 있다. 모란공원에 가면 무덤 사이에서 눈에 익은 조각품을 발견할 수 있다. 모란공원은 모란미술관과 한 몸이나 마찬가지다. 미술관을 거닐며 조각 작품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편안하고 홀가분해진다. 자연의 품에 안긴 모란미술관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아늑하고 따스한 위로와 휴식의 공간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1.김포다도박물관

가을 햇살이 투명한 오후, 박물관 야외 조각공원의 잔디밭 곳곳에 중년의 여성들이 둘러앉아 있다. 바구니에 담긴 보자기를 풀자 하얀 찻잔과 찻주전자가 햇빛에 반짝인다. 한 여성이 익숙한 솜씨로 차를 따른다. 차를 나누며 담소하는 중년 여성들의 모습에서 운치가 느껴진다. 김포시 월곶면에 자리한 김포다도박물관(관장 손민영)에서 마주한 풍경이다. 2001년 개관한 김포다도박물관은 다도를 주제로 설립한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이다. ■ 김포, 한국 차문화의 성지 ‘다반사’라는 말이 있듯이 한국인은 오래전부터 차를 즐겨 마셨다. ‘삼국사기’에 신라 선덕여왕 때부터 차가 있었으며,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귀국하면서 가지고 온 차의 씨앗을 흥덕왕이 지리산에 심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가 손수 차를 볶았다는 흥미로운 기록도 남아 있다. 고려 귀족들이 즐겨 마시던 차는 조선으로 이어진다. 조선의 대학자 점필재 김종직이 하동군수로 재직할 때 차 종자를 구해 차밭을 재배해 임금께 올리는 공물을 충당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왜 김포에 다도박물관이 설립됐을까? 손 관장이 들려주는 사연이 흥미롭다. “김종직 선생님은 차를 무척 즐긴 선비였지요. 점필재의 수제자 한재(寒齋) 이목 선생(1471~1498)이 지은 ‘다부(茶賦)’는 초의선사의 ‘동다송’보다 무려 340년 앞선 것입니다. 동다송보다 분량이 풍부하고 내용도 독창적입니다. 우리 박물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선생을 기리는 한재사당과 묘소가 있어요. 1976년 사단법인 예명원을 설립해 전통예절과 다도를 교육했어요. 박물관이 필요해 자리를 찾고 있다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서 김포에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김포다도박물관은 사단법인 예명원과 매년 6월 첫째 주 한재당에서 이목 선생께 헌다례를 올린다. 김포가 우리 차의 성지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다부’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까닭이 무엇일까? 24세 문과 장원급제한 이목은 일찍부터 임금과 조정의 주목을 받았다. ‘차가운 집’이라는 뜻의 ‘한재’라는 호에서도 느껴지듯 대쪽 같은 선비였다. 이목은 큰 가뭄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을 때 영의정 윤필상을 탐관오리라며 죽이라고 상소를 올려 조정을 놀라게 하고 왕과 당사자의 분노를 사기도 한다. 이목은 연산군 4년(1498년) 유자광, 윤필상 등 훈구파들이 일으킨 ‘무오사화’에 연루돼 죽임을 당한다. 겨우 28세에 세상을 떠났으나 적지 않은 시문을 남겼다. 선조 대에 편찬된 문집이 있지만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다가 1980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유승국 원장에 의해 ‘다부’의 존재가 알려진다. 손민영 관장은 인복이 많다며 두 스승을 소개한다, “청사 안광석 선생님과 최근덕 전 성균관 관장님을 스승으로 모시며 가르침을 받은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지요. 예명원을 설립할 때 도움을 베푼 분들입니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즐비한 조각공원과 팔도의 장독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야외 전시장과 호젓한 정자, 생태 양어장과 거위들이 노니는 아름다운 연못을 갖춘 1만여평의 땅도 후원자가 마련해준 것이다. “포정문화재단 민경덕 이사장님은 다도박물관의 설립부터 운영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나는 박물관에 전시될 유물만 가지고 왔어요. 이사장님의 두 며느리도 저에게 다도를 배웠어요. 언젠가는 이 제자가 이 박물관을 운영하게 될 것입니다. 박물관의 역사를 이어갈 후계자가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요.” 손 관장의 부모님도 다인(茶人)이었다. “서당 훈장이시던 아버지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어머니가 차를 만들어 손님께 대접했는데, ‘쓴차’라 불렀지요. 부모님 덕분에 차를 일찍부터 가까이했던 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차에 더 깊이 빠지게 된 것 같아요.” 서당 훈장인 아버지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어머니가 ‘쓴차’를 대접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손 관장에게 운명적인 만남이 있다. 남편은 물론 시댁까지 자신을 지원해 준 것에 깊이 감사하고 있다. ■ 보여주고 가르친다 우리 차의 역사와 문화는 풍성하다. 대학에 다도학과가 생길 정도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우리 차와 예절에 대해 말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박물관에서는 관람객과 교육생들에게 우리 차를 어떻게 알려주고 있을까. “다도는 들려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줘야 해요.” 다도를 어떻게 보여준다는 것일까? 48년 다도를 세상에 알린 명인의 교육법이 더욱 궁금해진다. 손 관장은 대학교 여성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교양으로 예절과 다도를 가르쳤다. 우리나라의 차 문화와 예절을 가르치는 데 평생을 헌신한 대가에 대한 작은 보상이 주어졌다. 지난 5월 손 관장은 (사)한국박물관협회로부터 ‘제26회 자랑스런 박물관인상’을 수상했다. 다도 경연대회, 세계 찻자리 전시 등을 운영하며 우리 차 문화의 역사와 우수함을 세계에 알리는 데 이바지한 공을 높이 산 것이다. 또 지역사회와 문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다례 교육을 펼쳐 기관의 특성을 살린 고유한 공헌 활동을 추진해 지역민과 함께 상생하는 박물관의 모범적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20년째 학예사로 일하며 전시와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안정아 국장의 안내로 박물관 전시실에 들어선다. 전시실에는 고려와 조선시대 다기류는 물론 최근 것까지 300여점이 진열돼 있다. 전시실 입구에 진열된 찻잔 100개를 살펴본다. 찻잔마다 담고 있을 사연을 상상해 본다. 이목 선생이 지은 ‘다부’를 새긴 조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물을 담는 주전자와 차를 끓이는 화로, 뜨거운 물을 식히는 찻잔, 다례상 등 선조들의 손때 묻은 낡은 유물들이 더욱 반갑다. 이 찻잔은 누가 사용했던 것일까? 야외에 나가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목각함이 전시된 곳에 그림 한 폭이 걸려 있다. 목각함을 들고 양반을 따라나서는 어린이의 모습을 담은 ‘다동화(茶童畵)’다.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던 동자는 누구보다 일찍 차 맛과 다도의 풍류를 터득했을 터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다도 도구를 유심히 살펴본다. 과연 우리만의 특징은 무엇일까? “중국, 일본과 달리 한국은 주전자에서 뜨거운 물을 잠시 담아 두는 물 식힘 사발 ‘숙우’를 갖추고 있습니다.” 양반사대부가 여성들의 안방을 재현한 공간이 멋스럽다. 자개가 박힌 장롱과 나비를 장식한 촛대, 달항아리를 갖춘 우아한 안방에서 차를 마시던 옛 여성의 표정을 상상해 본다. 저 많은 유물과 자료를 모으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들였을까. 차에 미치지 않으면 감히 엄두조차 내기 힘든 일이다. 전시실을 둘러보다 문득 “다도는 먼저 보여주는 것”이란 말의 뜻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다구를 정갈하게 관리하고 가지런히 배열하는 것은 순수와 질서를 가르쳐 줍니다. 예절 속에 자연스레 녹아 있는 차와 함께하며 행동과 태도가 달라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 없어요.” ■ 다도가 선물하는 인간의 품격 지난 5월 사단법인 예명원과 공동 주관으로 ‘예절과 다도 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예절과 다도 경연대회’는 올해로 27회를 맞았다. 세계 찻자리 대회, 전통문화큰잔치, 성년례가 열린다. ‘성년례’는 올해 성년이 되는 19~20세 해병들에게 전통 성년의식인 관례 의식에 따라 관을 씌워주며 성년이 된 것을 축하하는 행사였다. 박물관이 가장 정성을 쏟는 교육 대상은 유아들이다. 앙증맞은 아이들의 손에 찻잔이 들려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맴돈다. 사진 한 장이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유치원 아이들이 다소곳이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사진이다.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다도는 사람의 품격을 높이는 신비한 힘이 있다. 김포다도박물관은 가을 소풍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 한강 너머 북녘땅이 훤히 보이는 애기봉 전망대도 박물관에서 7분 거리에 있다. 사랑하는 이와 따뜻한 차를 마시며 깊어가는 가을을 음미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0.남양주 실학박물관

지금이야말로 실학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첨단과학시대를 살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점을 보고 가짜 뉴스에 휘둘린다. 지식은 늘어나도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를 구별하는 지혜는 부족하다. 고급 정보와 부는 소수가 독점하고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여전히 벌어지는 것일까? 왜란과 호란을 겪었지만 백성들의 삶과는 무관한 예송논쟁에 몰두하던 17세기 조선의 답답한 정치가 연상된다. 이러한 풍토를 개탄하며 백성들의 살림을 늘리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제시하는 학자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반계 유형원과 성호 이익, 연암 박지원과 다산 정약용 같은 학자들이 추구한 학문을 ‘실학’이라 부른다. 남양주 두물머리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 곁에 자리한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관장 김필국)은 실학을 주제로 한 국내 유일의 박물관이다. ■ 시대를 앞서간 실학자들의 숨결을 만나다 2층 상설전시실에서 조선의 위대한 실학자들의 뜨거운 숨결을 만난다. 담헌 홍대용, 혜강 최한기 등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생애와 업적을 살펴보며 시대를 앞서간 학자들의 고민을 떠올려본다. 잠곡 김육, 포저 조익, 연암 박지원과 환재 박규수, 혜강 최한기 같은 실학자들의 유물은 이를 소중히 간직했던 가문에서 기증한 것들이기에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역시 그림이 먼저 눈길을 끈다. ‘송하한유도’는 얼핏 보면 동양화의 한 폭 같다. 사실 소나무 밑에 서 있는 사람은 대동법을 확대하는데 온 정성을 쏟은 김육이다. 인물보다 소나무를 더 크게 그린 이 독특한 구도의 초상화는 중국 화가의 작품이다. 그의 손자도 대동법 시행에 앞장섰는데 독특한 눈썹을 가진 김석주의 초상화는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다. 특별한 초상화가 또 있다. ‘양주팔괴’로 불리는 청나라의 화가 나빙이 그린 초정 박제가의 초상화 역시 강렬하다. 키는 작지만 뚜렷한 이목구비를 갖춘 박제가의 당당한 풍모를 잘 표현한 이 초상화가 실사구시를 주창한 추사 김정희와 관련이 깊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박제가의 초상화는 김정희를 통해 청나라의 선진문물이 조선을 거쳐 일본으로 전달됐다는 사실을 밝힌 일본 학자 후지즈카 치카시를 통해 국내에 알려진다. 19세기의 실학자 최한기의 유물도 빼놓을 수 없다. 최한기는 지구의를 만들고 세계지도와 ‘지구전후도’를 그렸으며, 세계의 자연·인문지리에 관한 책 ‘지구전요’를 저술한 만능학자였다. 1861년 제작한 ‘대동여지도’는 언제 보아도 감동적이다. ‘대동여지도’만큼 주목해야할 지도가 또 있다. 그것은 대동여지도보다 100년 전인 1755~1757년 무렵에 제작된 ‘동국대전도’다. 그렇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백리척을 적용해 정밀한 지도를 제작한 정상기‧정항령 부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조선에 전래된 세계지도는 어떤 것이 있을까? 페르비스트가 1674년에 제작한 ‘곤여전도’를 보면서 서양의 힘은 하늘의 별자리를 관측하고 바다를 개척한데서 비롯됐던 사실을 보여준다. 송이영이 천체를 측정하기 위해 1669년 만든 ‘혼천의’도 주목되는 유물이다.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는 개화파를 길어낸 인물로만 알려졌으나 별자리의 위치를 통해 시간과 계절을 측정하는 ‘평혼의’와 천문관측기구 ‘간평의’를 제작한 과학자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이번 전시에서 실학박물관 학예연구사들이 가장 주목한 유물은 무엇일까? 바로 실학자 유금이 1787년 만든 아라비아식 천문시계, ‘아스트로라브’이다. 유금의 조카는 ‘발해고’를 지은 역사가 유득공이다. ■ 실감콘텐츠 체험전 ‘조선의 하늘과 땅’ 실학박물관 제3전시실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펼쳐진다. 9월12일부터 진행되고 있는 실감콘텐츠 체험전 ‘조선의 하늘과 땅’은 전통시대의 과학문화재를 첨단의 기술과 전시기법을 동원해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립박물관·미술관 실감콘텐츠 제작 및 활용 사업에 선정돼 마련된 이번 체험전은 실학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국보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곤여만국전도’, ‘혼천시계’와 ‘혼개통헌의’ 같은 과학 문화재를 실감 나는 영상으로 감상하다 보면 미지의 세계와 정확한 시간에 대한 우리 조상들의 관심과 지혜에 새삼 놀라게 된다. 특히 360도 원형의 대형 LED스크린에서 파노라마처럼 상영되는 ‘1787: 스페이스 오디세이’ 영상은 환상적이다. 마치 우주여행을 하는 것 같은 신나는 경험을 선사한다.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방아를 찧는 전설의 달부터 우주를 향한 꿈과 희망을 담은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에 이르기까지 과학 발전의 발자취를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측우기’와 ‘앙부일구’처럼 독창적인 발명품을 제작한 힘이 세종의 열린 태도였음을 감탄하게 된다. ‘조선의 때 이른 절정’을 구가한 세종시대는 물론 문화를 꽃피운 영정조시대의 실학도 만날 수 있다. 실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혼개통헌의’를 비롯한 실학시대 과학문화재는 이 시대의 실험정신을 보여준다. 체험 콘텐츠 ‘AR-혼천시계’는 국보 혼천시계를 증강현실로 만나게 한다. ‘내 손안의 곤여만국전도’는 디지털 퍼즐게임을 즐기면서 조선시대 세계지도와 세계 인식을 배우는 미디어테이블이다. ‘AR-혼천시계’는 박물관에 전시된 혼천시계의 형태와 세부 구조를 참고해 3D 데이터로 제작한 것이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설치된 태블릿으로 유물 위에 증강된 혼천시계를 감상할 수 있다. 전자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성인들도 재미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혼천시계의 구조와 작동원리가 궁금하다. 쥐부터 돼지까지 열두 동물의 ‘십이간지’ 캐릭터, 혼천의 주변에 펼쳐지는 우주를 연출하는 효과도 대단하다. 특히 ‘내 손안의 곤여만국전도’는 곤여만국전도를 3가지 체험 활동으로 재구성한다. 곤여만국전도에 숨겨진 사실을 알아보는 ‘곤여만국전도 알아보기’, 곤여만국전도에 그려진 대륙과 동물 퍼즐을 맞춰보는 ‘곤여만국전도 퍼즐’, 곤여만국전도를 지구본에 입혀 입체감 있게 만든 ‘빙글빙글 곤여만국전도’가 있다. 입체 지구모형을 돌려보면서 움직이는 동물과 배를 감상하고 현재의 지도와 고지도를 비교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과학기술과 관련 문화재가 생각보다 훨씬 풍부하고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 실학의 관심사는 사람과 우주로 뻗어 있다 그동안 진행한 특별전과 기획전을 살펴보면 실학박물관의 관심사와 지향점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달력, 시간의 자취’, ‘유배지의 제자들, 다산학단’, ‘실학청연(實學淸緣), 벗과 사제의 인연을 그리다’, ‘반계수록, 공정한 나라를 기획하다’, ‘18~19세기 국화 열풍과 실학자의 국화 애호’, ‘재상 채제공, 실학과 함께하다’ 등 다양한 인물과 폭 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전시와 연계한 학술회의도 주목된다. 2012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 선정기념 학술대회 ‘다산 사상과 서학(西學)’과 2013년 성호 이익 서세 250주년 기념 특별전 ‘새로 보는 하늘 땅, 세계–성호 이익의 실학’ 같은 규모가 큰 학술대외가 잇달아 열렸다. 또 실학박물관과 파주시가 공동주최한 학술대회 ‘율곡학과 경기실학’이나 가평군과 공동으로 주최한 ‘대동법 시행으로 조선을 살린, 잠곡 김육과 가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도내의 시‧군과도 협력해 실학정신을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을까?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을 대상으로 ‘밭으로 간 실학자’는 옷감을 생산하는 목화를 키우면서 실학의 실용적 가치를 몸으로 배우는 농사 체험프로그램이다. ‘생생! 실학여행’과 ‘실학자와 유물 하나’는 쉽고 재미있게 아이들이 실학적 자세를 터득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관람객들도 참여할 수 있는 주말 상설 프로그램 ‘실~하게 놀자~!’는 홍대용의 혼천의, 박지원의 수레, 정약용의 거중기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어 인기가 높다. 가을은 사색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실학박물관을 찾아 시대를 앞서 고민했던 반계나 성호, 다산 같은 실학자들을 만나 세상을 살아갈 지혜와 용기를 배우자.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9.파주 한길책박물관

“‘나나’도 읽었다. 테오야, 졸라는 확실히 제2의 발자크라 할 수 있지.” 1882년 7월23일, 빈센트 반 고흐가 아우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그림에 미친 화가 반 고흐는 독서광이었다. “나는 책에 대한 열정을 억누를 수 없어. 마치 성장하기 위해 빵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공부를 통해 나를 향상시키고 싶어.” 독서의 유용함을 잘 알고 있었던 고흐는 이렇게 주장한다. “사람은 책 읽는 법을 배워야 한다. 보는 법을 배우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하듯 말이다.” 독서에 대한 열망은 그림으로 옮아간다. 19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를 보고 크게 감동한 고흐는 벗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요전날 런던을 묘사한 도레의 작품을 전부 훑어봤지. 아, 그의 그림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고상해.” ■ 독서광 반 고흐의 편지와 아름다운 책 그림을 만나다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에 위치한 한길책박물관(관장 김언호 박관순)은 1976년 창립해 인문학 출판을 선도한 한길사 김언호 대표가 설립한 책 전문 박물관이다. 현재 이곳에서 ‘고흐가 사랑한 책’ 전시가 열리고 있다. 2023 경기도 박물관 미술관 지원사업으로 열리는 특별전이다. 고흐의 편지를 읽다 보면 그의 그림만큼이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을 느끼게 된다. 박물관 전시실을 둘러보면서 그 비결이 바로 독서라는 것을 확인한다. 반 고흐는 편지에 셰익스피어, 귀스타브 도레, 가바르니, 찰스 디킨스 등 여러 작가의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과 소감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고흐를 만나기 위해 지하 전시실로 향한다. 유리창을 통해 푸른 나무가 보이는 창이 보여 환하다. 전시실 입구에 걸린 고흐의 그림을 살펴본다. 무릎 위에 두꺼운 책을 펼쳐 놓고 왼손으로 턱을 괸 ‘아를의 여인’은 무슨 책을 읽다가 감동한 것일까? 생각에 잠긴 여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고흐가 자신이 그림에 책을 그려 넣은 10여점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고흐의 예술세계로 빠져든다. 전시실 모퉁이에 아늑하고 멋진 공간이 마련돼 있다. 그림으로 친숙한 ‘아를의 침실’을 재현한 체험 공간이다. “반 고흐는 아를의 침실이란 이름으로 세 작품을 그렸습니다. 이 가운데 세 번째 작품은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을 위해 그린 것이지요. 세 작품 이외에 고갱과 아우 테오에게 쓴 두 편의 편지에도 ‘아를의 침실’ 스케치가 들어 있어요. 관람객 중에는 침대에 누워보는 분도 있습니다.” 반 고흐는 생전에 똑같은 그림을 다섯 번이나 그린다. 1888년 그린 ‘아를의 침실’은 고흐에게 위로와 충전과 평안함을 선사한 둥지였다. 이유신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들으며 침실에 들어선다. 아를 침실은 기념사진을 찍기에 아주 훌륭하다. 꽃과 나무와 잎, 새 등 자연의 아름다운 생명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든 우아한 장식이 여러 점 전시됐다. 시인, 사회 운동가, 출판사 운영 등 다양한 분야에 많은 활동을 해 ‘토털 아티스트’라 불린 윌리엄 모리스가 1861년 완성한 실내 장식이다. 윌리엄 모리스는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일어난 공예 운동 ‘아트 앤드 크래프트’(미술공예운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켈름스콧 프레스(Kelmscott Press)를 설립해 출판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이다. ■ 대중 잡지와 레코드판에 담긴 앤디 워홀의 열정 고흐도 사랑했던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가 실린 희귀한 고서를 소장한 한길책박물관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19세기 유럽에서 출판된 아름다운 고서들을 비롯해 일러스트 잡지, 소설 ‘돈키호테’에 들어간 판화 등 희귀 자료가 무려 2만여점이나 소장됐다. 이 중 가장 소중한 유물은 무엇일까? “애서가이던 윌리엄 모리스가 가장 존경한 영국 시인 제프리 초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함께 영문학의 아버지로 불리지요. 모리스는 자신이 설립한 켈름스콧 출판사에서 총 53종 66권의 책을 출판합니다. 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책이 1896년에 출판 ‘초서 저작집’입니다. 이 책은 ‘켈즈의 서’와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3대 책으로 꼽힙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앞에 선다. 양가죽으로 만든 장정과 본문에 공들여 새긴 그림과 활자에서도 품격이 묻어 난다. 윌리엄 모리스는 켈름스콧 인쇄와 서적 디자인도 크게 발전시킨다. 켈름스콧 출판사에서 제작한 53종 66권의 책 전질을 보유한 기관이나 컬렉터는 세계에서도 매우 희귀한 형편이다. 일본이나 중국의 애서가들도 초서저작집을 비롯한 켈름스콧에서 출판된 책을 보기 위해 한길책박물관을 찾아온다고 한다. 이처럼 한길책박물관은 아름다운 책, 귀중한 고서를 소장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런 곳에서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을 만나게 될 줄이야! 20세기의 가장 영향력이 있는 미술가로 평가받는 앤디 워홀은 책과 어떤 인연을 맺었을까? 1층 전시실부터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예술세계가 펼쳐진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앤디 워홀의 젊은 시절의 작품세계 전모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앤디 워홀이 상업작가로 활발히 활동한 1949년에서 1964년 사이 다양한 작업으로 책과 잡지 일러스트, 그리고 LP 커버를 소개하고 있지요.” 전시실에 들어서자 1960년 유행했던 팝송이 귀를 즐겁게 한다. 자유와 변화의 열기로 충만했던 1960년대 활력이 가슴을 두드린다. 이처럼 다양하고 풍부한 자료를 누가 어떻게 수집했을까? “‘영 앤디 워홀’은 남다른 안목으로 귀한 자료를 모은 컬렉터 이돈수가 존재했기에 가능한 전시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에스콰이어’를 비롯한 대중 잡지에서도 앤디 워홀의 이름을 발견한다. ■ 책은 미래를 여는 상상력의 창고 한길책박물관은 책과 멀어진 현대인들의 마음을 움직여 다시 책과 가까워지게 해 주는 공간이다. 1970년대부터 인문·예술학 출판을 선도해온 한길사 대표 김언호 관장은 아름다운 책 수집가로도 유명하다. 책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름다운’ 책에 관심이 많았던 김 관장은 소년 시절 화가를 꿈꾸었을 정도로 미술에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고서는 한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보여주는 문화재다. 김 관장은 유럽의 책방을 순례하면서 운명처럼 19세기 영국의 예술가이자 위대한 출판인인 윌리엄 모리스(1834~1896)와 만난다. 모리스는 출판인 김 관장의 영원한 스승이다. 아름다운 책을 출판하기 위한 모리스의 정성과 열정을 박물관에서 확인한다. 모리스는 여러 가지 활자체를 디자인하고 고품격 출판에 필요한 종이와 잉크를 개발한다. 나뭇잎과 꽃봉오리들이 반복 배치된 문양을 바탕으로 디자인한 서체와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그린 삽화는 여전히 매력을 발한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삽화를 그린 19세기 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도레(1832~1883)에 대한 김 관장의 사랑도 각별하다. 한길사는 삽화 228점을 넣은 ‘도레의 성서’의 복각판을 펴내기도 한다. 한 일간신문이 창간 70주년을 기념해 광복 이후 한국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을 선정했는데, 한길사에서 펴낸 책이 여러 권 선정됐다. 1위로 꼽힌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12위에 오른 ‘함석헌전집’은 여전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책이야말로 미래를 창조하는 원천입니다. 영화·뮤지컬·애니메이션 등 어떤 콘텐츠든 책이 그 가운데 있습니다.” 미래학자들이 책의 소멸을 예견했으나 여전히 종이책이 중심이다. 김 관장의 생각을 들어본다. “인터넷에 들어가든지 스마트폰을 보면 웬만한 정보는 다 있습니다. 그러나 깊은 사유를 하기 위해서는 종이책을 읽어야 합니다. 좋은 책은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습니다.” 한길책박물관은 책방 ‘북하우스’와 연결돼 있다. 계단 없이 오르내릴 수 있는 완만한 경사길 벽면에 고객의 손길을 기다리는 책들이 가득하다. 서점에서 빈센트 반 고흐와 앤디 워홀을 다시 만난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8.양평 잔아박물관

초가을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북한강 물빛이 검푸르다. 강 너머로 수종사를 품은 운길산이 우뚝하다. 두물머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 문학의 쓸모와 매력을 전달하는 잔아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 산책로를 걷다가 마주친 모자를 쓴 소녀와 잔디밭에 앉은 다섯 아이의 표정이 해바라기처럼 환하다. 흙으로 빚은 조각 작품들이지만 마치 살아서 말을 거는 듯하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아동문학까지 문학의 전모를 보여주는 잔아박물관(관장 김용만)은 1996년 5월 개관한 1종 전문박물관이다. 마지막 아이를 뜻하는 ‘잔아’는 설립자인 김용만 관장의 필명이다. ■ 꿈을 되찾고 가꾸는 공간 “잔아박물관은 어른들에게는 잃어버린 젊은 날의 꿈을 되찾아주고 학생들에게는 높은 이상과 지성의 정신을 길러주는 학습의 장입니다. 문학은 시나 소설 창작 말고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물론 사업을 하는 데도 꼭 필요한 정서적인 기본 양식입니다. 세상 사는 수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성적 판단보다도 신비나 환상 같은 감성적 느낌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입니다.” 여든을 훌쩍 넘겼지만, 소설 창작과 글쓰기 강의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김용만 관장이 들려주는 말이다. 문학의 역할과 사명에 대한 노 작가의 신념은 역동적이다. 테라코타를 활용해 문학을 입체적으로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발상이 참신하다. 초등학생을 비롯한 어린 관람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비결이 여기에 있을 듯싶다. “잔아박물관은 특히 어린이들의 관람을 환영합니다. 유치원생이라도 한글만 읽을 줄 알면 그들에게 톨스토이, 세르반테스, 카프카, 괴테, 헤밍웨이, 도스토옙스키, 셰익스피어 같은 대문호들을 소개합니다. 이분들의 이름만 기억하게 해도 어린 영혼에 엄청난 문화충격을 주는 것입니다. 인터넷 게임이나 문자메시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차원 높은 세계, 우주와 영원과 진리 같은 넓고 깊은 세계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잔아박물관을 ‘글과 흙의 놀이터’라고 부르는 까닭이 궁금하다. “이곳이 문학과 테라코타가 어우러진 세계임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흙을 인간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글은 인간을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언어라고 볼 수 있지요.” 글이 김용만 작가를 상징한다면 흙은 테라코타로 문인들의 흉상을 제작하는 여순희 작가를 상징한다. 잔아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은 부부가 합심해 글과 흙으로 빚어내는 문학과 예술의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 한국의 유명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다 테라코타를 활용한 전시실은 입체적이다. 전시실 구석이나 모퉁이에서도 뜻밖의 재미와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성실하게 꾸몄다. 느긋하게 전시실을 한 바퀴 둘러보면 우리나라 근현대 문학의 흐름을 한눈에 그려볼 수 있다.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의 흉상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다. 세르반테스의 파란만장한 일생과 대표작품을 소개하는 글을 읽고, 그 앞에 놓인 세르반테스의 흉상과 작은 액자를 살펴본다. 작은 사진 액자는 세르반테스를 찾아 떠난 문학기행 때의 김 관장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세르반테스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늦깎이로 등단한 김 관장의 본보기가 아닐까. 김남조, 신경림, 정호승을 비롯한 유명 시인의 친필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신달자 시인이 2014년 7월 남긴 글을 소리내어 읽어 본다. “비가 오거나 햇살이 나거나 하는 날 잔아문학박물관에 왔네. 내 문학 속의 핏불이 아우성치네. 그리운 문인들이 와 가슴속으로 오시네.” 수첩과 증명서 같은 작가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도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한 문학도가 걸어온 삶의 오롯한 흔적이다. 흙으로 빚은 물고기를 들고 웃고 선 함민복 시인 곁에 서 있는 여순희 작가의 모습도 푸근하게 다가온다. 한 장의 흑백사진이 한 편의 수필만큼 풍부한 사연을 담고 있기도 하다. ‘오적’으로 권력층의 부패를 고발한 고 김지하 시인의 친필 원고가 있는 옆에 구약성서를 번역하면서 시인이 된 문익환 목사의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다”는 글과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글씨가 나란히 전시돼 있다. 1960년대 초반 혜성처럼 문단에 등단한 ‘무진기행’의 소설가 김승옥과 함께 찍은 사진도 걸려 있다. 김 관장이 사귄 시인과 잔아박물관을 찾은 작가들이 무척 많았던 사실을 보여주는 전시물이다. 표지는 낡았지만, 문학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희귀본 소설책과 시집도 여러 권이 전시돼 있다. 여순희 작가가 빚은 문인들의 테라코타 흉상의 부드러운 선은 따스한 색을 만나 깊고 그윽하다. 한 작가의 삶과 개성이 잘 표현된 상을 창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까. 작가들의 흉상 앞에서 대표작품을 떠올려본다. ■ 책은 만져만 봐도 반은 읽은 셈이다 위대한 작가들의 굴곡진 생애도 작품만큼이나 흥미롭다. 의학을 공부하다 문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아Q정전’을 지은 루쉰, 동양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설국’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황무지’의 시인 T.S. 엘리엇과 소설 ‘오만과 편견’의 여류 작가 제인 오스틴 같은 대가들의 흉상 앞에서 박물관 관계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린다. “위대한 문학작품은 아이들의 꿈을 찾아주고 심어줄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 푸시킨, 셰익스피어, 괴테, 도스토옙스키, 헤밍웨이, 카프카, 빅토르 위고, 존 스타인벡, 에밀리 브론테, 찰스 디킨스 등 세계 문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강아지 똥’의 권정생 작가를 비롯해 아이들에게 듬뿍 사랑받는 아동 문학가들을 만나는 공간에 들어선다. 동화책 속 익숙한 이야기 장면들이 벽화로 재미나게 꾸며져 있다. 테라코타로 한국 전래동화 속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재현한 장면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책장에서 동화책을 꺼내 펼치도록 만드는 마력이 느껴진다. 문인들의 테라코타 흉상이 가득 놓인 방안에 들어선다. 세계적 문호들과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낯익은 얼굴이다. 황순원, 서정주 같은 작고 작가들은 물론 소설가 김연수, 시인 문태준처럼 왕성하게 활동하는 젊은 작가의 얼굴도 여럿 보여 반갑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작가들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 책으로 탄생한 작가의 원고를 살펴본다. 작가의 묵은 원고에서 문학의 생명력을 체험한다. 작가의 친필 원고와 작가들이 어울린 한 장의 흑백사진, 작가의 흉상 테라코타는 멀어 보이던 문학과 문학인에 대한 심리적인 문턱을 낮추어 준다. ■ 소통과 공감의 열린 공간 오는 24일 ‘잔아박물관 가을 시낭송회’가 열린다. 올해의 초청 시인은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오세영 시인이다. 2012년 장석남 시인을 시작으로 정호승, 문태준, 문효치, 도종환, 김남조, 신달자, 함민복, 안도현, 나희덕 시인과 함께했다. 올해로 11회째를 맞은 잔아박물관 가을 시낭송회는 양평지역의 대표적인 문화행사로 자리를 잡았다. 낭송자 10여 명의 애송시 및 창작시를 낭송하고 색소폰 연주와 성악공연, 클래식 기타 합주 같은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박물관 야외 잔디정원은 빛과 소리가 어울리는 축제마당으로 변모한다. 잔아박물관의 교육 프로그램은 최상급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박물관협회가 주관하는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지원사업에 올해 9년째 연속으로 선정된 것은 잔아박물관의 저력을 보여준다. ‘나는?너는?누구?’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길 위의 인문학은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박물관 관람과 강연, 체험 교육이 11월까지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소현 학예사의 바람을 들어본다. “감정표현과 자아 성찰의 어려움을 함께 이해해보는 시간을 통해 학생들은 올바른 인간관계 형성과 긍정적 감정표현, 공동체 의식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2023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7.안양 김중업건축박물관

삼성산 자락에 천년의 시공간을 아우른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안양예술공원에서 만난 김중업건축박물관과 안양박물관은 고려 천년의 기억과 대한민국 건축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문화예술재단(이사장 최대호)에서 운영하는 김중업건축박물관은 2014년 3월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건축 전문박물관이다. 안양시가 설립한 공립박물관 두 곳이 건축가 김중업(1922~1988)이 1959년 설계한 유유제약 공장의 사무실을 구조 변경한 것이다. ■ 김중업의 흔적과 정신이 살아 있는 공간 1959년 완공해 2004년까지 사용된 이 건물의 문화적 가치를 주목한 안양지역의 시민과 건축가들이 유유산업의 부지와 건물을 안양시가 매입해 건축박물관으로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 건축가와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안양시는 공장 부지를 매입하고 2014년까지 리모델링해 김중업건축박물관을 개관했다. 이러한 역사를 가졌기에 김중업건축박물관에 대한 안양시민들의 사랑과 기대는 각별하다. 김중업건축박물관에 가려면 보물 제4호인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고려시대 삼층석탑부터 만나야 한다. 4차에 걸친 발굴조사로 고려시대 안양사(安養寺) 명문기와가 출토된 현장을 둘러보며 박물관이 들어선 터가 그야말로 명당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안양이란 지명이 유래된 터전에 안양박물관과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안양의 뿌리와 역사와 문화를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외관부터 독특하다. 갈비뼈처럼 밖으로 훤히 드러낸 외벽의 하얀 기둥과 2층 복도 좌우로 낸 세련된 창문은 7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여전히 감각적이다. 멋진 산과 맑은 계곡을 품은 언덕에 자리 잡은 김중업건축박물관 앞에 서면 마음이 여유롭다. 건축가 김중업의 일생과 작품을 보여주는 상설전시장은 1층 ‘김중업, 건축예술의 문을 열다’와 2층 ‘김중업, 건축예술을 완성하다’로 구성돼 있다. 평양에서 태어난 소년 김중업이 한국의 대표 건축가로 성장하던 여정을 보여준다. 1부 ‘청년, 꿈을 키우다’는 시와 미술을 사랑했던 소년 김중업이 평양고등보통학교와 일본 요코하마고등공업학교에서 수학하며 예술로서의 건축관을 다진 사실을 확인한다. 2부 ‘건축가의 여정과 도약’은 1952년 베네치아에서 열린 ‘제1회 국제예술가대회’의 한국 대표로 참여했다가 우연히 만난 세계적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문하에 들어가 활동한 내력을 살펴본다. 파리 ‘아틀리에 르 코르부지에’에서 동료들과 찍은 흑백 사진 한 장이 흥미로운 사연을 들려준다. 김중업은 세계의 여러 건축가와 교류하며 선보인 1950년대 건축 작품 전시회를 국내에서 연 사실도 놀랍다. 청년 김중업의 얼굴에서 넘치는 끼와 야망을 찾아본다. 3부 ‘한국 건축예술을 대표하다’는 서구 근대 건축과 한국 전통문화를 재해석한 그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에필로그 ‘건축가의 길’은 당대에 출판된 건축 잡지와 서적에 실린 그의 말과 글을 통해 김중업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전시실 맨 끝에 쉴 수 있는 체험 공간은 쉼터다. 작은 책상에 앉아 색연필을 들고 김중업의 작품 도안에 색칠을 하며 숨을 고른다. 2층 전시실에 들어서니 대가로 성장한 김중업의 작품세계가 산맥처럼 펼쳐진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이르는 시기다. 김중업의 건축 설계도면과 사진을 활용한 권민호 작가의 미디어아트 작품 ‘도면의 춤’을 감상하며 건축이 종합예술임을 거듭 확인한다. 1부 ‘건축, 살아 있는 선’은 제주대학교 본관, 서산부인과 등 건축가 김중업이 부드러운 선의 이미지를 활용해 펼쳐낸 우아하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보여준다. 2부 ‘건축, 시대를 이끌다’는 1971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을 날카롭게 비판해 박정희 정권의 미움을 받아 해외로 추방되기 전 설계한 고층빌딩 작품을 소개한다. 중년들의 기억에 여전히 살아있는 ‘삼일빙딩’은 이 시기 김중업의 대표작이다. 3부 ‘건축, 삶을 꿈꾸다’는 개인주택 설계 작품들이 중심이다. ‘집은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구현된 작품들과 마주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4부 ‘건축. 세계로 나아가다’는 1971년부터 1979년까지 한국에서 추방돼 프랑스와 미국을 떠돌며 생활하던 시기에도 멈추지 않았던 건축가의 열정과 노력을 보여주는 작품과 설계안을 보여준다. 5부 ‘김중업, 한국 건축에 새겨지다’는 김중업이 1979년 귀국해 작업한 작품과 1988년 작고하기까지 김중업건축연구소 직원들과 함께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2층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건축과 예술의 생명력을 생각해 본다. 김중업 건축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복도를 활용한 에필로그 ‘예술인들과의 교류’는 문학과 미술, 춤 등 국내외 예술가들과 교류했던 흔적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토지’의 작가 박경리를 찾아 원주에 갔던 사실을 기록한 친필 메모도 찾아볼 수 있다. ■ 70년 세월을 건너 온 ‘어느 건축가의 흔적’ 지난 6일 개막한 상설기획전 ‘어느 건축가의 흔적’은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2023 안양시 승격 50주년 기념전 ‘안양연화’를 둘러본 관람객들이 ‘어느 건축가의 흔적’을 감상하기 위해 야외로 몰려간다. 철근이 튀어나온 건물 기둥과 기둥조각, 테두리 보와 바닥재들 사이에 깃든 사연을 살펴보고 있다. 야외 전시장에 콘크리트 기둥이 서게 된 까닭이 재밌다. 2018년 주한 프랑스대사관 신축 계획으로 집무실 건물의 철거가 결정된다. 이 소식을 들은 김중업건축박물관 관계자들이 서둘러 프랑스대사관을 방문해 특별한 협조를 요청한다. 이렇게 해 주한 프랑스대사관 집무실 건축부재 43점이 김중업건축박물관으로 오게 된 것이다. 날렵한 지붕 처마로 유명한 주한 프랑스대사관은 김중업의 초기 대표작이다. 이 작품으로 김중업은 1962년 서울시문화상을 받고, 1965년 프랑스 드골 대통령으로부터 프랑스 국가공로훈장과 슈발리에 칭호를 얻었으며 프랑스 공인 건축가의 자격을 가지게 된다. 건축을 예술의 범주로 끌어 올렸다고 호평 받았던 작품의 콘크리트 기둥을 비롯한 건축부재들이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안양사 주춧돌과 함께 공존하게 된 것이다. ■ 시민들이 되살린 역사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지난해 ‘육군박물관’으로 무애25년건축상을 수상한다. 2014년 제정된 무애25년건축상은 25년 이상 지난 국내 건축물 중 현대까지 건축-공공적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을 선정해 한국건축가협회가 건축주와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수상작인 육군박물관은 김중업이 1982년 설계한 작품으로 당시 대한건축사협회가 주최하는 한국건축전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지난해 김중업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마련한 기획전 ‘김중업, 건축예술을 완성하다’를 통해 김중업 건축의 전모를 살피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 김중업건축박물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3년마다 실시한 ‘공립박물관 평가인증’에서 안양박물관과 함께 인증기관으로 선정됐다. 김중업건축박물관은 ‘연구사업 지표’에서 만점을 받아 2회 연속 인증기관에 선정된 것이다. 한편 박물관은 시민참여 교육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2023 김중업건축박물관 어린이 교육프로그램 ‘어린이 건축학교’는 4주 동안 진행되는 어린이 전문 건축 교육프로그램이다. ‘어린이 건축학교’는 현직 건축가들과 함께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건축 이론을 배우고, 건축 공간을 직접 스케치하며, 목재를 이용해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어보는 재미있는 시간도 가진다고 하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박물관으로 문의하기 바란다. 안양예술공원 언덕에 자리 잡은 김중업건축박물관과 안양박물관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성찰과 사색의 공간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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