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지역산업이 살아야 대학이 산다

한국 사회는 지금 두 개의 거대한 파도를 동시에 맞고 있다. 하나는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 또 하나는 지역산업의 쇠퇴다. 많은 이들이 이를 별개의 문제로 보지만 냉정히 바라보면 두 현상은 하나의 고리로 연결돼 있다. 산업이 무너지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젊은이들이 지역을 떠나게 된다. 인구가 줄면 출산율이 떨어지고, 학교의 교정은 텅 비어간다. 학령인구 감소는 지역경제 붕괴가 남긴 사회적 메아리다. 이 문제를 교육정책만으로 다루는 것은 본질을 비켜간 접근이다. 지방대학의 위기는 단순히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이 자생력을 잃어가는 구조적 위기의 한 단면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학의 숨 가쁜 개혁이 아니라 지역과 함께 숨 쉬는 생태계의 회복이다. 대학은 지역의 미래 거점으로 다시 세워져야 한다. 기업의 시선에서 보면 학령인구 감소는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다. 대학은 더 이상 학생 수를 채우는 기관이 아니라 산업과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가 돼야 한다. 기업은 창의적이고 현장감 있는 인재를 원하고 대학은 새로운 협력 모델로 그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위기 속에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설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대학의 미래다. 이제 대학은 학생이 줄어드는 곳이 아니라 지역의 변화를 일으키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지역의 기업, 지자체, 주민이 함께 손을 맞잡고 산업의 방향을 새롭게 디자인할 때 대학은 배움의 공간을 넘어 지역혁신의 심장으로 뛸 것이다. 대학이 지역의 혁신 플랫폼으로 전환돼야 한다. 그리고 대학은 더 이상 강의실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지역의 골목으로, 산업의 현장으로, 주민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마을의 변화가 곧 교육의 변화가 되고 교육의 혁신이 다시 지역을 일으키는 선순환의 파도를 만들어야 한다. 대학이 닫힌 문을 열고 지역으로 걸어 나올 때 배움은 살아 움직이는 힘이 된다. 청년만을 위한 대학이 아니라 지역민 모두가 배우고 성장하는 평생의 배움터, 그리고 미래를 함께 만드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 산업정책의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지역산업, 대학, 지자체가 제각기 따로 움직이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하나의 지역혁신 플랫폼으로 묶어져야 한다. 대학이 산업의 실험실이 되고 산업이 대학의 교육현장이 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산업이 살아야 인구가 늘어나고 인구가 있어야 대학이 존재한다. 대학이 존재해야 지역문화가 피어나고 문화가 있어야 지역이 다시 숨을 쉰다. 이것이 지속가능한 혁신의 순환 고리다. 결국 학령인구 감소는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열라는 변화의 신호탄이다. 대학이 지역의 산업을 살리고 산업이 대학의 숨을 불어넣는 그날, 우리는 다시 지역의 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지역산업과 대학이 함께 서는 데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예산이 아니라 용기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역 대학을 혁신의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예산을 단순한 보조금이 아닌 투자의 마중물로 바라볼 때 진정한 변화는 시작된다. 지역산업의 미래는 멀리 있지 않다. 지역산업과 지역 대학이 함께 손을 잡는 그 자리,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의 희망의 꽃이 피어날 것이다.

[천차춘추] 나는 있는가? 존재와 상담

나는 상담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하면서 가끔 이렇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있는가?” 지금 여기, 수업 시간에 의자에 앉아 있는 당신이 정말로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당연히 있다고 답한다. “네, 있습니다.” 그러렴 나는 다시 물어본다. “그럼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여기에서 호흡하고 있는 것을 얼마나 느끼고 있습니까?” 많은 학생이 잠시 멈춰 생각한다. 어떤 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떤 이는 잠시 숨을 고른다. 그 반응 속에서 나는 학생들이 존재의 의미를 직면하는 순간을 본다. 단순히 의자에 앉아 있는 것, 질문에 답하는 것만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몸이 있다는 것, 말을 하고 반응을 보이는 것, 사건이 일어나고 있음을 아는 것은 모두 물리적 있는 것 뿐이다. 존재론적 ‘있음’은 다르다. 존재론적 존재란, 스스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의미를 선택하며, 자기 의지로 살아가는 상태를 말한다. 진정한 존재란, 지금 이 순간 내가 선택하고 경험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로 서 있는 상태다. 존재는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살아내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로 살지 못하고, 즉 스스로 자신을 지시하며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 가를 탐색하는 대신 다른 것으로부터 지시된 것들 어떤 사건, 의무, 조건화된 가치 등에 매몰돼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심지어 감정도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때는 화를 내야돼”, “지금은 슬퍼 해야해” 등과 같은 기준에 따라 결정할 때도 있다. 이 질문은 상담학과 학생들에게 특히 중요하다. 단순히 수업에 참여하고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담자는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아니라, 내담자가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하는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는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힘이 되어주기 어렵다. “나는 있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호기심이 아니라, 상담자이자 한 인간으로서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성찰하는 출발점이다. 내가 정말 존재하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에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순간에 집중하라는 말이 아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기에 현재를 최대한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도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끝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바탕으로 “지금”은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 자기 가능성을 진정으로 살아낼 수 있는 시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상담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내담자를 만나거나 안내하기 이전에 자기 삶의 의미를 돌아보아야 한다. 상담자는 자기로 살아가는 경험을 통해 내담자가 자신의 삶을 자각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상담자가 자기 존재를 풍성하게 경험할수록, 그는 진정한 사람으로 또 다른 사람인 내담자를 만나게 된다. 이때 내담자는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삶을 선택하는 힘을 느낀다.

[이왕휘의 세계는 지금] ‘APEC 성공’ 한반도 평화 동력으로 활용

지난달 26일 아세안(ASEAN) 정상회의부터 이달 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까지 이어진 외교 슈퍼 위크가 종료됐다. 이 기간 내내 이재명 대통령은 APEC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미, 한일, 한중 정상회담도 매끄럽게 마무리했다. 취임 5개월 만에 대규모 국제 행사를 잘 치러냄으로써 이 대통령의 국익중심 실용외교는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관세협상의 타결로 한미관계의 불확실성이 상당히 제거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요한 압박 속에서도 이 대통령은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했다. 더 나아가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우리나라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한중 관계의 복원도 중요한 성과다. 11년 만에 성사된 시진핑 주석의 국빈방문으로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지속돼 온 경색 국면이 풀릴 기미가 나타났다. 서해 구조물 및 핵추진 잠수함 같은 갈등 요인이 있지만 한중 정상은 2009년부터 계속돼 온 한중 통화 스와프의 연장,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협상의 가속화,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협력 강화에 합의했다. 한일 정상회담도 무난하게 치러졌다. 정치적 성향이 상반되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와의 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대일 정책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강조함으로써 일본 총리의 교체가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됐다. 또 이 대통령은 다음 번 셔틀외교를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인 나라(奈良)에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익 중심 실용외교가 본궤도에 올랐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 주변 3강과 관계를 개선했지만 북핵 문제의 해결과 한반도 평화 구조 구축에는 실질적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8월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에게 피스 메이커 역할을 부탁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 일정 중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기 위해 노력했으나 북미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 방한 직전 최선희 외무상을 모스크바에 파견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접견하게 했으며 순항미사일도 발사했다. 북한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도 난제다. 알렉세이 오베르추크 국제문제 담당 부총리가 APEC 정상회의에는 참석하는 기간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천연자원부 장관이 이끄는 러시아 경제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이 러시아에 2만명 이상의 병력을 파견한 이후 러시아는 북한에 현금, 곡물, 석유 등은 물론이고 군사기술을 제공해 북한의 경제난과 식량난이 완화됐다. 러시아가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한 북한은 남북 회담은 물론 북미 회담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확보됐다. 한미, 한중, 한일 정상회담이 잘 끝났기 때문에 대러 관계만 복원하면 4강 외교는 완성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지지가 없이는 교류, 관계 정상화,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END 이니셔티브가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지만 말고 정부는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해야 할 것이다.

[기고] 평택 통합 30년, 정치가 잊은 교훈

지난달 25일 평택시 통합 30주년 기념 축제가 열렸다. 단순한 지역 행사를 넘어 이 축제는 오늘날 우리 정치가 잃어버린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깊은 성찰의 시간이 됐다. 30년 전 송탄시, 평택시, 평택군의 통합은 단순한 행정구역 조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역의 운명을 건 역사적 결단이었다. 당시 통합을 추진한 주역들은 국가와 지역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내려놓았다. 그들의 소신과 결단은 지금의 정치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귀중한 본보기다. 당시 통합 논의는 순탄치 않았다. 송탄시의 이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강한 반발과 “지역을 팔아먹는다”는 오해가 뒤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故) 김영광 의원을 비롯한 추진 주역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당장의 손익보다 후손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신념 아래 통합을 밀어붙였다. 3개 시·군의 통합은 지역 발전을 위한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이었다. 김영광 의원은 통합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의원 배지를 잃더라도 지역의 미래를 얻어야 한다”며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그의 예견대로 선거에서 낙선했지만 그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평택은 수도권 남부 중심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정치적 손실을 감수한 그의 결단이 평택의 미래를 연 셈이다. 오늘날의 평택시는 통합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경제 규모와 행정 효율성을 바탕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비롯해 첨단산업, 친환경도시 조성, 안보의 심장, 서해안에서 시작돼 내륙으로 이어지는 물류와 유통의 거점 구축 등 평택은 국가적 전략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성장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러운 인구 증가는 정치적 외연의 확대로 발전해 현재 평택시는 세 개의 국회의원 지역구를 보유하는 도시로 성장했다. ‘통합의 도시, 평택’이라는 비전은 김 의원과 당시 지도자들의 헌신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 현실은 어떠한가. 오늘날 많은 정치인들은 공동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정치적 기반을 지키거나 단기적 인기를 얻는 데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갈라치기식 정치와 왜곡된 언행이 반복되며 대중의 무의식적 생각을 의도적으로 특정한 집단적 사고 방식으로 몰아 가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진영 논리는 사회의 건강한 토대를 흔들 수 있으며 사실보다 감정이 앞서는 대중주의로 흐르게 된다. 그 결과 연금·노동·교육개혁, 저출산·기후위기 같은 국가적 과제들조차 이해관계와 진영 간 대립에 갇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30년 전 평택의 통합을 결단했던 그분들의 용기와 책임감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통합 30주년을 맞이한 지금, 평택의 역사는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일은 결국 바른 길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다시금 일깨운다. 진정한 정치는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향한 용기에서 비롯된다. 개인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미래를 우선시하는 희생정신, 단기적 인기보다 장기적 비전을 내다보는 통찰력, 바로 이것이 오늘의 정치가 되찾아야 할 가치다. 그분이 남긴 유산은 한 지역의 성공 사례를 넘어 오늘의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통합의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이 오늘의 평택을 만들었다. 이제 우리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것은 분명하다. 개인의 이해관계를 내려놓고 국민 전체의 미래를 위해 결단하는 용기, 그것이 바로 진정한 정치의 시작이다. 고 김영광 의원의 업적을 기리며 아들이 아닌 한 시민의 마음으로 그 뜻을 되새겨 본다. 평택의 통합이 그러했듯 진정한 정치의 힘은 언제나 ‘분열을 넘어 통합’으로 향하는 용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 남에겐 징계, 자신은 핑계… 법 위에 군림하는 변호사 단체

“공정거래위원회는 변호사단체의 사무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라.”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가 지난 발표한 성명서의 요지는 이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변호사단체는 공적 업무를 수행하기에 공정거래법의 감시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공공성’이라는 미명 아래, 스스로를 법치주의의 예외 지대로 만들려는 위험한 특권 의식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변회는 변호사단체가 변호사법에 의해 설립된 공법인이므로 공정위의 규제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법의 원칙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변호사단체가 변호사에 대한 지도·감독 권한을 갖는 것은 사실이나, 그 권한을 이용해 ‘사건 의뢰 시 주의해야 할 로펌 지정 제도’와 같은 방식으로 특정 법무법인을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시키려 한다면, 이는 명백히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다. 어떠한 단체도 ‘직역수호’ 라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어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변협과 서울변회가 이러한 반경쟁적 행위를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문제 삼는 일부 법무법인은 이례적으로 많은 징계와 진정 건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징계 자체가 과연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이루어졌는가? 변협의 징계내역에 따르면, 음주운전이나 경찰 폭행과 같은 명백한 범법 행위를 저지른 변호사에게는 수백만 원 수준의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 반면, 단순 광고 문구 위반을 이유로 특정 로펌에는 이보다 열 배 가까이 높은 수천만 원의 징계 철퇴가 가해지기도 했다. 명백한 범죄 행위에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면서, 표현의 자유와 맞닿아 있는 광고 행위에는 이토록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과연 상식과 형평에 부합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는 법률 시장의 절대자인 양 자의적 판단으로 수백에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과태료를 부과하며 군림하면서, 정작 공정위의 정당한 법 집행에는 성명서까지 발표하며 저항하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진정한 소비자 보호는 투명한 정보와 자유로운 선택권이 보장될 때 실현되는 것이지, 특정 단체가 자의적 잣대로 ‘주의해야 할 로펌’을 지정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불공정 징계 논란은 변협 지도부 소속 로펌들이 규정 위반의 '무풍지대'에 있다는 의혹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최근 한 언론보도를 통해 현 집행부 소속 로펌들의 광고에서 최상급 수식어 사용, 전관예우 암시 등 16가지 이상의 명백한 규정 위반 사항이 발견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지만, 이들에 대한 징계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과거의 불공정한 광고 규제가, 이제는 ‘주의 로펌 지정 제도’라는 더욱 강력하고 위험한 무기로 진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정위의 사건심사 착수는 시장경제의 파수꾼으로서 지극히 당연하고도 정당한 직무 수행이다. 공정위는 특정 로펌을 감싸는 것이 아니라, 변호사단체라는 거대한 사업자단체가 자신들의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시장의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하고 있는지 감독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공정거래법 제1조가 명시한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여 창의적인 기업활동을 조성하고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법의 목적에 온전히 부합한다. 변호사단체가 진정으로 변호사의 품위를 보전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성역 뒤에 숨어 외부의 감시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조사에 당당히 임하여 자신들의 행위가 과연 공정한지 스스로 입증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 어떤 단체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다. 공정위는 일부 단체의 기득권 수호 논리에 흔들리지 말고, 법률 시장의 공정한 경쟁 질서와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해 원칙에 입각한 엄정한 조사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데스크 칼럼] 함께하는 육아, 소멸하지 않는 사회

정자연 문화체육부장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 책임감과 걱정으로 온몸이 두려움에 휩싸였던 기억이 있다. 내 몸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데 이 작고 소중한 생명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나. 막막함과 함께 새로움이 찾아왔다.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땐 함께 아장아장 걸으며 세상을 바라봤다. 풀잎에 스치는 바람 한 점, 물 웅덩이에서 튄 구정물 한 방울에도 까르르 웃으며 즐거웠다. 아이를 안고 창밖의 따스한 햇살을 마주할 때 느꼈던 감동은 지금도 여전하다. 아이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데, 오히려 아이로 인해 세상을 다시 느끼고 사랑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요즘 같은 시대에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엔 수많은 고민이 따른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고 각종 법과 제도가 마련되고 있지만 현실에선 늘 모자란 법이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남성이 늘어나고 있다 해도 중소기업 재직자들에겐 여전히 허울좋은 정책일 뿐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자영업자들에겐 특히나 먼 나라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7위를 기록하는 긴 노동시간과 유연하지 못한 근무시간 속 조부모의 도움 없는 아이들은 ‘학원 뺑뺑이’를 해야 한다. 이 모든 걸 제쳐놓고도 여전히 육아와 돌봄은 여성의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강하다. OECD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한국은 남성의 가사 참여도를 뜻하는 여성 대비 남성의 무급 노동시간 비율은 23%에 그친다. 일본(18%)과 튀르키예(22%) 다음으로 낮다. OECD 평균은 52%로 우리나라의 두 배 이상이다. 현재와 같은 저출산·고령화 추세가 지속될 경우 100년 후 한국 인구가 현재의 15% 수준으로 급감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와도 여전히 사회의 변화 속도는 느리다. 이 지점에서 인구보건복지협회 경기도지회가 저출생 극복 사회연대회의를 통해 펼친 캠페인 중 설문조사 내용은 흥미롭다. 9월6일 경기도의회 대회의실 로비에서 진행한 ‘저출산 인식 설문조사’에서 ‘결혼’은 ‘선택’(133명)이란 응답이 ‘필수’(72명)를 월등히 앞섰다.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결혼에 대한 본인 선택은’이란 문항에 ‘해야 한다’(138명)가 ‘안 해도 된다’(61명)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는 점이다. 보편적인 인식으로 결혼은 선택이지만 자신의 문제가 됐을 땐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혼’ 하면 생각나는 키워드를 질문한 문항에선 가족·가정이(181명)이 가장 많았고 행복(161명), 사랑(150명)에 이어 돈(146명), 주택 마련(132명), 자녀(115명) 등이 뒤따랐다. 많은 이들이 결혼으로 가정과 행복, 자녀 등을 떠올리지만 행복에 대한 기대를 가로막는 요인 역시 많다. 아이를 낳고 싶지만 현실적인 여건으로 낳지 못하는 사회는 개인과 사회 모두 불행할 수밖에 없다. 출산과 육아는 더 이상 엄마, 여성만이 책임지는 몫이 아니다. 가정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평등하게 책임을 지고 육아의 기쁨을 나누는 것에서 출발해 마을공동체, 지역, 사회가 함께하는 육아로 변화해야 한다. 육아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는 소멸하지 않는다. 웃음이 끊이지 않고 상상력이 피어나기 때문이다.

[경기만평] 보증인...

[사설] 경기남부청 ‘자격 없는 징계위원의 파면 징계’, 문제 있다

호들갑 떨 일 아니지만 가벼운 일도 아니다. 경기남부경찰청의 징계위원 무자격 논란이다. 올해 2월25일, 9명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3명에게 파면 및 해임 등 중징계를 했다. 경징계 2명, 불문경고 4명이 있었다. 파면 및 해임은 확정되면 경찰복을 벗어야 한다. 경징계도 향후 인사에서 적지 않은 불이익을 받는다. 이를 결정하는 전권을 징계위원회가 행사한다. 당연히 절차적 논란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남부청에 논란의 소지가 있다. 일부 징계위원의 무자격 논란이다. 징계위 구성은 경찰공무원 징계령으로 정한다. 위원장 1명을 포함해 11명 이상 51명 이하다. 공무원위원과 민간위원으로 구성한다. 징계위원회 개최는 경찰 기관장이 4~6명으로 구성한다. 이때 민간위원의 수는 위원장을 포함해 절반 이상이어야 한다. 경기남부경찰청의 당시 위원회는 공무원위원 2인과 민간위원 3인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민간위원 1명의 임기가 이미 위원회 이전에 종료된 상태였다. 경찰은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고 설명한다. 징계 내용의 효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도 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임기가 도과한 징계위원의 표결 참여 하자가 징계 의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그 의결이 무효라고 볼 것은 아니라고 판시한 바 있다.” 해당 위원회 결정에 대한 소청 심사가 있었다. 사유는 ‘징계 양정 과다’다. ‘징계가 너무 과하다’는 항변이다. ‘무자격 위원의 징계 의결’을 이유로 하는 소청은 없었다고 전해진다. 무탈하게 처리됐기를 희망한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논란이 가벼운 건 아니다. 경찰이 든 대법원 판례로 모든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표결 하자가 징계 의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인정된 경우’를 전제하고 있잖나. 징계 당사자가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면 이 판례는 제척된다.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 역시 당사자마다 달라질 수 있다. 위원회 토론, 표결 등이 모두 판단 대상일 수 있다. 쟁송으로 간다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다. 당시 징계 당사자들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다. 징계 결정에 이른 구체적 과정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문제를 지적해 두는 것은 한 가지다. 당사자에게 징계위원회는 경찰 인생이 달렸다. 경찰 근무의 기회를 주기도 하고, 경찰 퇴출의 절망을 주기도 한다. 당연히 그 결정 절차에 한 점 의혹도 없어야 한다. 위원 자격부터 적법 논란이 생겨서는 안 된다. 아주 작은 부주의에서 촉발된 이번 논란이 아닐까 싶다. 엄히 다잡고 가야 할 것이다.

[사설] 유엔 ‘글로벌 모범도시’ 인천... 지속가능발전 인증이다

인천이 유엔 해비타트(UN-Habitat) 선정 ‘글로벌 모범도시’에 올랐다. 기후 위기 대응과 주거·복지 혁신 등에서 도시 지속가능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살기 좋은 도시’ 반열에 이름을 올린 셈이다. 요즘 인천은 좋은 소식이 많다. ‘대한민국 제2경제도시’나 ‘인구 순유입 전국 1위’ 등이다. 인천시가 지난달 31일 ‘2025 유엔 글로벌 지속가능발전 도시상’을 수상했다. ‘세계 도시의 날’을 맞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열린 유엔 해비타트 기념 행사에서다. 이날 유엔은 인천을 포함한 에스포(핀란드), 메디나(사우디아라비아), 보고타(콜롬비아), 알제(알제리) 등 다섯 곳을 ‘유엔 글로벌 지속가능발전 모범도시’로 선포했다. 유엔 해비타트는 1976년 설립된 유엔 산하 기구다. 전 세계 도시의 주거 문제 해결과 지속가능발전을 지원한다. 해마다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17개 지표를 기준으로 도시를 평가해 선정한다. 빈곤·기아 종식, 에너지 효율, 경제 성장, 불평등 완화, 기후변화 대응 등의 지표다, 올해는 35개국에서 85개 도시가 지원했다. 인천은 올해 공모에서 인천형 지속가능정책 다섯 가지를 제출했다. 탄소중립, 주택 정책, 국제협력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한 천원주택 공급 및 인천형 공공주택 확충 등 ‘아이(i)플러스’ 정책 등이다. 출산·양육 지원 쳬계를 마련하고 주거·복지의 질을 함께 높인 점이 주목받았다. 인천시 지능형교통체계(ITS)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대중교통 정보를 통합 관리, 도시 전역의 교통 문제를 개선하고 시민들이 보다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평가다. 인천은 또 ‘2045 탄소중립 비전’을 선포하고 저탄소 경제 생태계 조성, 기후 위기 적응 강화 등의 사업을 이어 온 점도 인정 받았다. 이번 선정으로 인천은 유엔 해비타트 공식 홈페이지 ‘NUA 플랫폼’에 이름을 올린다. 전 세계 도시들이 참고하는 글로벌 모범 사례가 되는 것이다. 내년 5월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리는 세계도시포럼 때는 인천 홍보관도 운영한다. 인천시는 ‘천원주택’, ‘친환경 지능형교통체계’ 등 주요 정책을 매개로 국제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할 방침이다. 인천이 유엔기구로부터 지속가능발전을 인증받은 것은 의미가 크다. 일상의 살림살이와는 거리가 있지만 시민 삶의 질에 관한 것이다. 앞으로도 내실 있는 정책 발굴을 지속, 글로벌 선도 도시로의 도약을 이어 가야 할 것이다. 저성장 수축사회 시대에 지속가능의 희망을 보여준다.

[지지대] 기술자들

영화 ‘기술자들’은 뛰어난 금고털이 기술자가 업계 최연소 헤커 및 인력조달 전문가와 팀을 이뤄 범죄를 저지르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검은손에 스카우트돼 인천세관에 숨겨진 1천500억원의 비자금을 40분 안에 훔치는 역대급 미션을 수행한다. 그 안에서 치밀한 작전, 배신과 반전 그리고 기술자들 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을 보여준다. 결국 금고털이 기술자가 검은손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면서 비자금의 진짜 주인이 된다는 결론이다. 흔히 ‘기술자(技術者)’는 과학적 지식과 수학적 원리를 활용해 실용적인 문제 해결과 제품, 시스템, 구조물 등의 설계·개발·구축 및 유지 관리하는 전문가를 뜻한다. 이들은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고 프로젝트를 관리하며 안전성과 효율성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건축, 컴퓨터, 기계, 전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상을 바꾸는 기술 발전의 핵심 동력이 되곤 한다. 교육 현장에는 다른 의미의 ‘기술자들’이 있다. A교사는 초등학교 교사로 하이러닝을 이용해 온·오프라인을 오가면서 수업을 하고 있다. 교실은 물론이고 교실 밖도 수업공간으로 활용된다. 교사와 학생들의 수업 몰입도에 교육계에서 인정받는 실력자다. 특수교사인 B교사는 다학년의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을 한 반에 모아 각자의 학년 진도에 맞춰 수업을 하고 있다. 그는 학생들이 느닷없이 던지는 질문과 의문을 놓치지 않고 수업의 중요한 콘텐츠로 엮어 가며 학생이 주인공이 되는 수업을 이어 간다. 다른 특수교사들조차 ‘감탄스럽다’고 한다. 최근 한국 교사들이 다른 국가에 비해 교사 업무의 본질인 수업 외에 학부모 민원과 학생들의 언어폭력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고 한다. 이로 인해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B교사처럼 천생 교단이 어울리는 이들의 모습에 미소 짓게 되는 건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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